사람은 흙으로 빚었다는데, 가난한 사람은 심줄과 피래, 심줄과 피에 가죽과 뼈래. 마음은 여려도 등은 실팍해. 16톤을 캐내면 얼마나 벌지? 하루 더 일을 해도 빚은 더 늘지, 베드로여 내 이름 부르지 마오. 내 영혼은 회사 재산, 나는 못 가오. 듬직한 저음으로 켄터키 석탄광산 광부의 애환을 읊은 노래가, 10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다(Tennessee Ernie Ford; 1955). 탄소 제로 조기달성을 장담한 나라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이 벌겋게 타오르는 코미디를 보고 있지만, 인류의 경제에 첫 번째 비약을 가져온 제1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은 석탄이었다(영국 웨일스 탄광). 막장에서 등이 휘도록 종일 일 해도 16톤 할당량에 미달이면 일당이 뭉텅 깎인다. 일당은 현금이 아니라 매점에서 통용되는 전표(錢票)로 받으니까, 몇 년을 일해도 저축, 즉 ‘탄광 탈출’은 구조적으로 어렵다. 영혼을 회사에 저당 잡혀, 베드로가 불러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못 간다고 일러라!”의 원조요 ‘영끌’의 대명사다. 부자와 빈자는 원자재부터가 다르다고? 앞에 쓴 졸역(拙譯) 1절의 넉 줄 중 뒤 두 줄은 반복되는 후렴(Refrain)이다. 작사자(Merle Trav
할머니가 들려주신 옛날얘기 한 토막. 해거름에 떡장수 할머니가 깔딱 고개를 넘는다. 떡판에 팔다 남은 떡 몇 개가 들어있다. “어흥!” 무서운 호랑이가 앞을 막는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얼른 내주었다. 다음 고개에서 또 나타난다.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다음은 “이쪽 팔도 주면 안 잡아먹지.” 마지막에는, “두 팔이 없으니 못 달아나지?” 할머니로 변장해서 아이들까지 잡아먹으려고 찾아온 호랑이를 남매가 꾀를 내어 꽁꽁 묶은 다음, 배를 가르고 할머니를 꺼내어 잘 꿰매니 도로 살아났다는 해피엔드다. 물론 한여름 밤 어린이용 납량(納凉)특집 공포 괴담이다. 웃지 마시라, 영화 판도라를 보고 탈 원전 하자는 어른이도 있다. 큰일은 청와대수석이 다 하니 장관벼슬이 옛날 참판만도 못하다고 하지만, 외무부 수장이, “코로나로 인한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는 주제넘은 망언 죄로 잘렸다. 평양 김여정이 지적한지 꼭 한 달만이요, 통일·국방장관에 이어 세 번째다. 아무리 능력에 벅찬 자리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잘리면, 분해서 간경화(肝硬化)로 넘어가지 않는 게 신기하다. 요즘 유행어 ‘김여정 작사, 아무개 작곡’ 막장 드라마 시즌 1이다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초강력 전기에너지에 의하여 최초의 유기물이 합성된다. 이어서 이끼류가 태어나고 식물이 진화하자, 엽록소라는 공장(Chlorophyll)에서 물과 태양광 에너지를 원료로 화학에너지 탄수화물을 생산한다(Photosynthesis). 이 탄수화물을 먹이로 동물이 자라나 지구촌 생태계가 완성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더니, 사실은 세상 만물이 태양광 에너지에서 비롯하여 전기와 화학에너지 등으로 전환된 것이다. 석유 석탄 가스 같은 화석에너지도, 지각 변동으로 지하에 파묻힌 동식물이 고온 고압에 변성된 산물이다. 육지와 바다는 태양에 의하여 가열·냉각되는 속도가 달라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생기고, 이들이 섞여 안정될 때까지 소용돌이치는 것이 바람이요, 이를 팔랑개비로 잡으면 풍력발전이 된다. 이글대는 태양으로 바닷물이 증발하면 구름이요, 바람에 밀려가다가 산을 만나 응집되면 폭우로 쏟아진다. 강을 이루어 낮은 곳으로 흐르던 물은 낙차가 큰 지점에서 폭포가 된다. 이 낙폭의 차이가 위치에너지요, 이것으로 터빈을 돌리면 수력발전이다. 인류가 누리는 모든 에너지와 물질적 혜택은 결국 따사로운 태양으로부터 얻어 쓰는 것이다. 효율적인 클린에너지와
군의후보생 함상 훈련을 당시 주력함 충남함에서 받았다(DE; 호위 구축함, 1970). 2차 대전 유물로 시속 20노트 배수량 1770톤 앞뒤 5인치 포 1문씩이었다. 전역할 무렵 들여온 정규구축함(DD) 9시리즈는, 시속 36노트 배수량 2,500톤 5인치 포 5문으로 격상되었다. 통상 전함의 강철판 두께는 장착한 포의 구경과 같은데(自艦 主砲 對應; 탱크도 동일), 구축함은 얇아서 별명이 깡통(Tin can)이다. 구축함의 주 임무가 순발력을 무기로 잠수함을 구축(驅逐)하는 함대의 보디가드, 즉 총알받이(어뢰) 역할 아닌가. 다음 단계인 3.200톤의 광개토대왕 급은 최초의 국산 전함이며, 헬기(DDH)와 대공미사일을 갖춰, 비로소 독립 작전이 가능한‘자함방공함(自艦 防空艦)’이었다. 콤팩트형 5인치 포 1문에 하푼 함 대함 미사일이 있다. 충무공이순신 함은 5,000톤이 넘어서, 링스헬기 2대와 현무 함대지 순항 미사일을 장착, ‘자함 방공’에서 ‘함대 방공’으로 승격한다. 끝으로 세종대왕 급은 세계 다섯 번째 이지스구축함. 만 톤이 넘는 순양함 급 크기로, 구축함의 개념을 바꾼 현대해군의 주역이며, 현재 세종대왕 율곡이이 서애유성룡 3척에다가 3척이
고교 교련선생님은 “왜 이렇게 꾸물거려! 너희들 ‘당나라 군대’야?” 하셨다. 사실은 공산군에 쫓겨 타이완으로 달아난 국부군을 가리키는 말로, 우방국을 비하하기 민망하니 에둘러 ‘당나라’를 갖다 붙였다. 애당초 몇 시간의 제식훈련으로 줄 맞춰 절도 있는 행진은 무리였다. 당나라는 중국역사 최강의 제국이었으나(貞觀의 治), 시조 이연부터 한(漢)족 아닌 70%쯤 선비족이라 한다. 장개석의 국부군은 막대한 미국군사원조와 압도적인 병력을 갖고도, 철저한 부패와 무능에다가, 마오의 평화협상 전술에 속아서 완패한 것이다. 삼국지를 보면 병불염사(兵不厭詐)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가 일상의 지혜요, 마오는 대놓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선언하였다. 중국의 선한(?) DNA를 믿고 존경·굴종하는 사대모화(事大慕華)사상이 얼마나 무지 몽매한지는 역사가 증언하고,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는 현재진행형이다. 4백여 년 거란과 몽골의 지배를 벗어나 모처럼 한족이 세운 명나라 영락제는, 무슬림 내시인 정화를 사령관으로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남해원정을 한다.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한 세기 앞섰고, 시진핑의‘일대일로’ 중 일로에 해당한다(1405). 목적이 조공무역의 확
미친개에게 물리면 물을 무서워하니까(恐水病), ‘공수처’라면 광견병 걸린 개 임시 수용소인가 했더니, 알고 보니 고위공직자를 수사하는 곳이란다. 하위공직자들이 열 받아 “차별 철폐!” 띠 두르고 위헌심판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더 신기한 것은 시행해보기도 전에 법을 고친다는 국회다. 고치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법사위나 본회의에서 법안의 오류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의원들의 무지, 아니면 국민에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려는 무리수다. 국회는 현대 법치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입법기관’으로서, 한번 선출되면 리콜하기 힘든 대통령에 비하여 국민의 요구사항을 실시간 반영해주는 ‘호민관(護民官)’이기에, 의장은 국가 의전서열 2위다. 따라서 의장은 통상 당적을 버리고 표결에 불참하여 불편부당의 권위를 과시하는데, 이날 박병석 의장은 표결에 동참하였다. 비록 남 부끄러운 ‘개정안’이더라도 거대여당이 숫자로 밀어버리면 통과는 기정사실이니, 의장으로서 초연하게 표결에 빠져도 핑계는 당당하고, 역사에 이름이 남을 좋은 기회였건만... 하기야 전임 국회의장을 세 계급이나 깎아 서열 5위의 대통령 얼굴마담 총리를 시켜주자, 그래도 좋다고 실실 쪼개
아프리카 밀림 속 작은 광장, 물이 설설 끓는 가마솥 옆에 백인 선교사가 묶여 있다. 아이가 막대기로 쿡쿡 찌르니 엄마가 타이른다. “아가,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면 못 써!” 미국 만화에서 본 이야기니까 그냥 전도에 따르는 위험과 어려움에 대한 해학으로 이해하시라. 종교는 문득 깨닫거나 신의 계시를 받아 시작된다. 비 종교인의 눈으로 보면 직관이니, 그 성인이 살던 환경이나 문화와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다. 단순화 해본 3대 종교의 출발점은, 유대 율법학자를 뛰어넘은 그리스도, 구약을 유목 생활에 접목한 마호메트, 성직자가 군림하는 브라만을 바로잡은 석가모니 아닌가? 가르치려 들면 누구나 질색하고 내 주장만 내세우면 ‘꼰대’라 하는데, 하물며 어디서 눈동자 피부색도 괴상한(?) 인간이 나타나 낯선 것을 따르라 하니 쉽게 먹혀 들 리가 없다. 처음 시작할 때는 본고장에서도 그랬다. 병나면 푸닥거리요 가물면 기우제 지내는 무당에게 새로운 경쟁자자 반갑겠는가? 부족국가가 큰 나라로 자라면 정교(政敎)의 마찰과 화해를 거쳐, 종교는 군주의 위계질서확립에 봉사하든가 아니면 도태된다. 산업의 발달과 도시화, 체제 변화와 주력계급 이동에 적응하지 못해도 역시 낙오
서서히 성숙하고 연한이 차면 스스로 퇴화하는 ‘두뇌’라 불리는 슈퍼컴퓨터. 그것도 수십억 수백억이 다 다른 기종(機種)을 오직 단백질 하나만으로 조립해내는 전능한 ‘절대자(Supreme Being)의 존재’를 부인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초기 컴퓨터라는 새하얀 천에 청실홍실 수를 놓으며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엮는다. 절대자는 곧 ‘신’이요 어떤 수를 놓느냐 하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이라면, 인간의 ‘영적상태’를 한 시점에 고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삶을 꿰뚫어 정성껏 수놓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더러 만난 시행착오나 갈지 자 걸음은 용서를 받고, 마음이 탈진한 ‘치매’ 영혼도 당연히 구원받아야 한다.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제 7일을 안식일이라 하니 안식 이야기를 여섯 꼭지로 잡았는데, 마무리가 늘어진 것은 필자 능력의 한계이리라. 고금동서 철인들이 평생 천착했던 엄중한 주제이니, 앞으로 더욱 매달릴 사색의 화두로 남겨둘 밖에... 풀리는 답이 아니라 원주율처럼 끝없이 풀어가야 할 인류 공동의 숙제이니까... 엎친 데에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니 갈데없는 말세다. 대 재앙이 닥치면 인류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지난 세기 격동을 겪으며 인성은 거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