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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안식 이야기 3 : 삶과 벗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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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종말론’ 칼럼에, 침대머리 기도문을 넣었다. 
 “이제 잠자리에 들려 하매/ 주여, 이 영혼을 지켜주소서/ 잠들어 깨어나지 못한다면/ 주여, 이 영혼을 거두어 주소서.” Sleep과 keep, wake와 take로 운율도 좋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Soul & Body)를 나누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러므로 영육분리는 인간만이 누리는 언어·사고(思考)·문화와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다. 서양에서는 영혼을 다시 영과 혼으로 동양에서는 혼과 백으로 나누는데, 모두가 불가지(不可知)인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풀어내어, 지푸라기 잡듯 ‘영원불멸’의 한 자락을 쥐고 싶은 간절한 안간힘이 아닐까? 휴머니스트로서 온 프랑스국민의 사랑을 받은 문호 빅토르 위고는 신부의 임종 미사를 거절했고, 20세기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호킹은 천국과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다. 공상과학소설의 거장인 아더 클라크도, 과학자 겸 작가로 아폴로계획을 적극 밀어준 칼 세이건도 무신론자였다. 현대문명 최고 반열의 사색가(思索家)들 모두가 영혼의 세계는 풀어내지 못한 것 같다.

 

   1993년 월간지에 ‘치과인의 영화감상’을 쓰면서, ‘All That Jazz’에 나오는 로스(Elizabeth Q. Ross)의 “인간이 죽음을 인지하기까지의 다섯 단계”를 소개했다. 
 저서 ‘On Death & Dying’은 영미에서만 백만 부 팔린 베스트셀러로,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존엄성 되찾아주기”는 사망 학(Thanatology)의 커다란 터닝 포인트요, 호스피스운동의 시작이었다(1969). 필자는 거부 분노 애걸 우울 수용(Denial Anger Bargaining Depression Acceptance)의 5 단계를  DABDA라고 외웠다. 필립 아리스의 설명대로, 죽음은 평온한 자가 우호적인 사회로부터 빠져나가는, 은밀하지만 품위 있는 출구(Easy & Peaceful Way Out)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한부선고를 받은 환자도 위안을 받고, 자신이 끝까지 버려지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남겨질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하는 길이다. 자신을 신에게 의탁할 통로가 없는 비(非) 종교인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괴로움을 덜어줄 하나의 이정표 내지 복음의 제시였다. 

 

   조지 큐커 감독의 ‘가스등(Gaslight, 1944)’은 추리 심리 공포의 3박자를 갖춘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희귀보석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그레고리(Charles Boyer)는 아내 폴라(Ingrid Bergman)가 받은 유산 속에 감춰진 보석을 차지하려고, 아내를 집요하게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정신과 용어 가스라이팅의 어원이다. 한번 좌표를 찍어주면 광적인 누리꾼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모는 풍조와 비슷하다. 노래 ‘여름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가 타이틀백은 소프라노로, 중반에는 그레고리의 피아노(Jakob Gimpel)로 흐른다. 아일랜드의 전통 멜로디에 붙인 무어(Thomas Moore, 1805) 시인의 이 노래에서, 베토벤을 위시한 수많은 작곡가 시인이 영감을 얻었으며, 인용과 변주로 사랑받았다. 시는 “여름의 마지막 장미/ 저 홀로 남아 피어 있네.”로 시작한다.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진실한 정(情)은 시들어 스러지고/ 사랑하는 이(벗)들도 사라져버리면/ 
  아! 그 누가 머물고 싶으랴/ 나만 홀로 황량한 이 세상에.”

 제5단계인 “죽음 받아들이기”를 수용(受容: Acceptance) 한 낱말로 정리했지만, 그 과정에는 인간이 살아오며 쌓아온 숱한 기억장치가 작동한다. 첫째, 죽음의 공정함이다. 대통령도 재벌총수도,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영웅호걸과 절세가인도 결국은 낙양 성 십리 허에 잠 들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외한다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부모처럼 가까운 어른들을 보내드리는 경험은, 공정성을 넘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셋째는 친구들과의 헤어짐이다. 
 동시대인, 그 중에서도 부부와 벗은 몸과 마음을 함께 부대껴온 내 인생의 전부다.
 벗과 반려가 모두 떠난 세상은 더는 내가 살던 삶의 무대가 아니다. 장미를 빌어 그 아릿한 정서를 그려낸 무어의 시에, 세월을 뛰어넘어 그 누가 찬탄을 마다하랴.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