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한치과의사회 대의원총회가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필자가 의장이던 새 밀레니엄 첫해로부터 12년 만이다. 국회 개원 중으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강창희 국회의장이 내려와 축사를 했다. 고문단 석을 가리키며, “저기 계신 지헌택 고문님은 제 고교 대선배이시며, 전임 김형오 국회의장 장인이십니다.” 지 선배가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한다. 말은 안 해도 내심 뿌듯하셨을 게다. 당시는 청와대가 국정을 주무르는 십상시 시대가 아니고, 국회의장이 장관 인사를 추천할 만큼 민주주의 정치가 작동하던 시절이었다. 강 의장은 대전고 4년 후배인 김명수 총회의장과 동기동창이니, 최소한 협회 숙원사업에 대한 대정부 언로는 무난했다. 제1부 행사 뒤에 지 선배님을 시내관광으로 모셨다. 중학교 5년을 대전서 보냈지만, 상전이 벽해로 변한 모습에 연신 감탄하다가, 대청댐 전망대 계단 앞에서 발을 멈춘다. “닥터 임, 나 여기 못 올라가.” 아뿔싸, 90 노구(老軀)를 깜빡한 것이다. 선배님은 서울치대 졸업 후 세브란스병원 보철과를 맡고 치대를 설립하였으며, 협회장을 연임하고 협회 사를 처음 발간하였다, 2002년 부부동반 동유럽여행을 함께 했는데, 말로만 듣던 선배의
2016년 12월 광화문 촛불집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반드시 올 것이니 오늘은 조율을 이루어 보자면서 가수 한영애가 노래한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돌아가고 싶은 그 옛날은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가? 오공 시절? 유신시절? 자유당 때? 일제 강점기? 왕이 즉위하면 원·명·청에 허가를 얻어야하고, 처녀 총각은 노비로 끌려가며, 열심히 조공을 해도 툭하면 쳐들어와 짓밟던 고려·조선 시대? 평화의 역사는 환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50년 전 군사독재 잔재로 규탄하는 굿판이니, ‘행복한 시절’은 분명히 5·16 전일 텐데, 당시는 국민소득 $80에 문맹 80%,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보릿고개 시대였다. 부황난 지게꾼이 서울역에서 염춘교까지 늘어서고, 양동 골목에는 미군부대 잔반을 끓인 꿀꿀이죽을 사먹으려고 줄을 섰다. 가수에게 출연료를 제대로 주는 곳도 미 8군 무대뿐이요, 삼시세끼 찾아먹게 된 첫 해가 1976년이었다(쌀 自給). 수천 년을 대륙국가 중국에게, 다시 일제에게 시달리고, 김일성 남침의 폐허에서 해양지향의 기적적인 경제개발로 겨우 허리를 폈다. 이날의 ‘조율’은 감성에 호소하는 선동이요
솟을대문을 지나 오른쪽이 사당 채, 야트막한 돌계단을 오르면, 등나무가 얽혀 성긴 지붕과 바람벽을 이룬 작은 마당이 있었다. 기단과 댓돌을 올라 두 칸쯤의 대청, 다음이 네 칸 넓이의 제실이다. 기고(忌故)가 들면 일가친척들이 모이니까, 제실 문을 들쇠에 걸어, 제실과 대청이 하나로 통했다. 어른과 맏손자는 제실문턱 안에, 다음은 항렬에 따라 대청에 서고, 나머지는 등나무 마당에서 참섭한다. 서손(庶孫)은 항렬이 높아도 제실 안에 설 수 없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영의정 윤두수 후손인 해평 윤씨 가문인데, 숙부 윤치영은 서자라 하여 댓돌 아래 세웠다 한다. 윤보선은 부산파동 때 이승만과 결별하고(1952) 다시 박정희에 맞섰으나, 윤치영은 끝까지 이승만을 받들고 허약한 제2공화국을 비난했으며, 열렬한 박정희추종자였다. 한 살 터울의 숙질간에 둘도 없는 불알친구였지만, 정치색이 달라 80이 넘어서야 비로소 다시 손을 잡았으니, ‘서자 론’은 참새들이 지어낸 얘기인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제기(祭器)는 성안(成顔)도 못한 증조부 때 장만하셨다니, 못해도 족히 150년이다. 요즈음 방짜처럼 반짝이지는 않아도, 묵직하고 은은하여 위엄이 있다. 기일이 닥치면 동네
사이언스 빌리지(사빌)에 둥지를 튼 뒤, 새벽산책은 거의가 탄동천 코스다. 바로 집 앞이 건널목이요, 길 건너 중학교 운동장을 끼고 돌아, 5분이면 숲길과 만난다. 대덕운동장까지 나이에 어울리는 만보(漫步)로 다녀오면 한 시간쯤, 만보(萬步)는 못되어도 일일권장량 6천보는 훌쩍 넘긴다. 지질자원연구원쯤이 알맞고, 조폐공사에서 되돌아오면 40분쯤 걸린다. 짧은 코스를 잡은 날은 조폐공사 앞 천변에 앉아, 10여분쯤 쉬며 한 시간을 마저 채워 7 시, 샤워와 아침 식사시간에 딱 들어맞는다. 한창 뜨거운 7, 8월이지만,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를 벗으면 시원한 새벽공기에 피톤치드향이 물씬하다. 개울 징검다리로 내려가는 넓은 돌계단 위에 앉았으니, 새벽 산책객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엉덩이까지 시원하게 호강을 한다. 새들이 짹짹대고 개울물은 졸졸 흐르니, 생각에 잠기기에 “딱 좋아!”다. 갑자기 동남쪽 하류에서 찬란한 햇살이 닥아 온다.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그런데 그 많던 매미며 여치는 어디 갔지? “아직은 날개가 이슬에 젖어 날지 못해요.” 조금만 참으면 너희들 날개도 햇볕에 말라, 훨훨 날며 짧은 여생을 여한 없이 노래하겠지... 오늘의 명상 주제는 은퇴
수많은 고전음악가 중 단 한분의 성인(樂聖)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은 전 세계의 팬들은, 코로나의 회오리 속에서도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다. 과학기술인의 실버타운인 사이언스 빌리지(사빌) LP 동호회도, 예비모임을 #6 전원 교향곡(카라얀; 베를리너)으로 선택했고, 계속 베토벤을 듣고 있다. 지난 22일 ‘해피 엘피’ 정례모임은 피아노소나타 시간으로, 전반에 3대 소나타 비창·월광·열정을 빌헬름 켐프의 연주로 들었다. 그라모폰 LP판의 임자인 총무가 너무나 사랑했던(?) 탓인지, 월광은 잡음이 심했지만, 불평은 한 마디도 없었다. 후반은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인 #29 – 32 번. LP가 아니라 Rudolph Serkin의 녹화 동영상이었다. 제르킨은 보헤미아(지금 의 체코, 1903-91) 태생 유태인으로 비엔나에서 활동했다. 나치에 쫓기자 토스카니니와 공연(1936)을 인연으로 미국에 망명, 주로 뉴욕에서 연주활동을 하여 뉴욕 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Violinist 이레네(Irene, 독일)는 3세 때 그의 초청 연주를 듣고, “내가 커서 18세가 되면 저 남자와 결혼할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약속은 지켜져 6남매를 두고 해로하였다 하니,
은퇴를 하니 낡은 연식, 망팔(年式 望八)의 삭신으로 넓은 빌라의 관리가 벅차다. 탈출구는 실버하우스, 첫걸음은 세간 1/4로 줄이기다. 이십여 년 길이 들어 가족처럼 임의로운 가구며 옷을 버리는 일은 괴로운 헤어짐이다. LD·CD·DVD·LP 등 8천여 장과 홈시어터 장비가 가장 큰 덩치인데, 마침 ‘사이언스 빌리지(사빌)’에 영화관과 강당이 있어, 기증형식으로 맡기기로 했다. 독일제 괘종시계와 조각 작품 3점, 선친의 유품으로 학생 때 요긴하게 사용한 백년 넘은 현미경과 책도 동참했다. 사빌은 한국과학기술인 공제조합에서 지어, 입주민은 대부분 과학연구·기술개발에 평생을 바친 분들이다. 최상급 하이엔드도 아니건만 매킨토시 앰프와 탄노이 캔터베리 스피커에 모두가 열광한다. 마니아들이 당장 음악 감상 동호회를 만들고, 동네야구 주장은 공 임자라며 필자에게 회장을 맡긴다. 명칭을 ‘Happy LP’라고 붙이고, 첫 모임에 바흐의 무반주첼로를 들었다. 한 번도 10시를 넘기지 못한 볼륨을 12시 넘게 올리고, 34좌석 계단식 극장에 앉아 듣는 즐거움. 비록 턴테이블은 조강지처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테크닉스지만, 가끔 지-익 딱 하는 잡음을 추임새 삼아, 바흐의 첼로
“밤 – 빠, 밤 – 빠, 밤빠 밤빠 밤 -” 일요일 아침, 경쾌한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멜로디를 신호로, TV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는다. 전천후 원조스타 임택근, “화랑의 아들, 유관순의 딸!”을 부르짖던 스포츠중계의 이광재,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박종세. 그 계보를 이어받아 TV시대에 때맞춰 등장한 차인태 아나운서는, 참신한 마스크에 지적인 재치로, ‘장학퀴즈’를 최장수 프로로 만든 대들보였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니(Even Homer Nods), 차인태의 ‘옥에 티’ 하나를 소개한다. 침 속에 있는 전분 분해효소를 묻는 질문에 학생의 답이 막히자,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만 ‘므티알린’ 해버렸다. 원고에는 프티알린(Ptyalin)인데, 순간 피읖(ㅍ)을 미음(ㅁ)으로 잘못 읽은 것. 이 실수가 어찌 치과의사의 귀를 피해 가랴? 이과(理科)가 아닌 연세대 성악과 출신이니, 한 번 웃고 애교(?)로 넘어갔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P를 묵음 화하여 ‘타이얼린’이다. 차인태보다 나이는 작아도 데뷔가 약간 빠른 이상벽은, 당시로는 좀 생뚱맞은 팝송 해설가로 떴다. 어느 분야나 개척자의 길은 항상 험난한 법이지만, 동갑내기 송창식 윤형주 등 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은 세 글자로 ‘신천지’요, 중국에 문을 열어 우한코로나 세계 2위로 우뚝 선 쾌거는, ‘감염주도 방역정책’이란다. 시진핑의 꾸중 한 번 안 듣고, 한·중 외교적 마찰을 무사히 피해갔으며, 역으로 중국이 한국인 입국을 억제하는 것은 사소한 부작용에 불과하다. 중국 위생상태가 열악하고 방역 체계가 허술하여, 변방 소국으로부터 바이러스의 역수입을 차단했을 뿐이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따끈한 유머들이다. 대선공약을 지켜 새 세상을 보여주고 중국과 외교를 돈독히 했으며, “당신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임을 온 국민을 바쳐 증명하였다. 문제는 한국인을 막는 국가 숫자가 백에 육박한다는 점이다(3월 5일 현재*). 어르신 중국은 빼고, 우방인 미국에 형제 같다는 터키 몽골까지다. 수출로 먹고사는 세계10대 무역국에게, 방문판매와 해외공장 관리를 포기하라니. 한국인 입국억제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폭풍한설 몰아치는 한겨울에, 내 새끼 잠든 방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 못난 부모가 어디에 또 있을까? 모진 계모도 새끼들 입고 덮을 내복과 이불은 내다 팔지 않는다. 마스크나 방호복쯤이라면 몰라도... 계속 변신하는(mutation) 바이러스의 기습
우한 폐렴이 폭발적으로 번지면서, 정부의 미숙한 초동대응에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2월 23일까지 최고위 책임자였던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몰매를 맞았다. 처음부터 중국인입국을 막지 않은 이유를 묻자, 가장 큰 원인이 “중국에서 돌아온 한국인들”이라는 발언과, 문열어놓고 모기 잡느냐는 추궁에 “지금은 겨울이라 모기가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멍든 국민의 가슴에 염장을 질렀다. 박장관은 상당히 신중한 이 정부 최장수 장관으로서, 동정의 여지는 있다. 첫째 군주국가 내시에 비유되는 청와대 비서관이 날고 긴다면, 장관은 사실상 하부조직의 기관장급 정도다. 외국에서 간경화 환자인지 통역사인지 제 대접을 못 받는 외무부는 물론, 원전(原電)문제로 아랍토후국과 마찰이 있을 때는 상선(尙膳) 임종석이 날아갔으며, 개헌 등 주요 정책발표는 총리나 주무장관을 제쳐놓고 조국 정무수석이 도맡았다. 둘째, 정치계와 관료가 의료업을 물로 보고 보건과 복지를 한데 묶어 보복(保福: 報復)부가 되었다지만, 박장관은 보건 의료가 아닌 복지 전공이다. 의료정책의 많은 부분을 의료계에 맡기고 비교적 소통이 원활했던 박장관이, 의사협회의 중국인 입국금지 권고를 묵살한 것은, 본인의 소신
콩밭 매는 아낙네야 배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음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짧은 노랫말이지만 한자어나 들온말(外來語)은 단 하나도 없고, 모두가 순수한 ‘겨레말’이다. 있다면 단 하나, 제목이기도 한 ‘칠갑산’인데, 사람이든 땅이든 작품 속의 홀이름씨(固有名詞)는, 낯선 이에게 호기심과 동경을, 익은 사람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한마디로 스토리텔링이 시작되는 것이다. 새마을 이전에 들어온 4H 운동(Head Heart Hands Health: 知德勞體 1902 미국)은, 비료의 중요성을 알리는 “중가리 가리 가리, 중가리 가리.”라는 노래를 가르쳤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는 속담도 있지만, 비료의 3요소 질소 인산 카리 중에 유기체에 필수적인 질소성분은, 자연 상태에서 오로지 콩과식물만 합성이 가능하다(뿌리 혹 박테리아). 그래서 예로부터 논두렁에다가 콩은 심어도 콩밭은 드물었다. 따라서 ‘콩밭’이라하면 삼림을 불태워 비옥해진 땅에 한 해 농사만 짓고 떠나는 화전민(火田民)이 떠오른다. 낯 설은 산 이름에 유랑하는 화전민 아낙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