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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밸린더와 베란다 : 실버 통신 1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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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 빠, 밤 – 빠, 밤빠 밤빠 밤 -”  일요일 아침, 경쾌한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멜로디를 신호로, TV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는다.  전천후 원조스타 임택근, “화랑의 아들, 유관순의 딸!”을 부르짖던 스포츠중계의 이광재,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박종세.  그 계보를 이어받아 TV시대에 때맞춰 등장한 차인태 아나운서는, 참신한 마스크에 지적인 재치로, ‘장학퀴즈’를 최장수 프로로 만든 대들보였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니(Even Homer Nods), 차인태의 ‘옥에 티’ 하나를 소개한다.  침 속에 있는 전분 분해효소를 묻는 질문에 학생의 답이 막히자,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만 ‘므티알린’ 해버렸다.  원고에는 프티알린(Ptyalin)인데, 순간 피읖(ㅍ)을 미음(ㅁ)으로 잘못 읽은 것.  이 실수가 어찌 치과의사의 귀를 피해 가랴?  이과(理科)가 아닌 연세대 성악과 출신이니, 한 번 웃고 애교(?)로 넘어갔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P를 묵음 화하여 ‘타이얼린’이다.

 

   차인태보다 나이는 작아도 데뷔가 약간 빠른 이상벽은, 당시로는 좀 생뚱맞은 팝송 해설가로 떴다.  어느 분야나 개척자의 길은 항상 험난한 법이지만, 동갑내기 송창식 윤형주 등 쎄시봉 그룹의 인기에 편승하여, 비교적 순탄한 출발로 ‘아침마당’ 등 여러 인기프로를 무난히 이끌었다.  수더분한 용모에 약간 어눌한 말투가 친근감을 더하였다.  60년대 대학가는 남녀 그룹미팅이 대세요, 거기서 외국 팝송 한 곡 뽑지 못하면 낄 수 없었다.  미성이 아니어도 원어(原語)발음이 그럴듯하면 절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더러는 혀를 너무 굴려서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일제강점기에 교육받은 선생님들의 발음은 너무 괴상해서, 다시 이분들에게 배운 우리또래의 영어발음은 실로 부끄러웠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그냥 콩글리시로 버텨라, 쓸데없이 혀만 굴리면 상대방이 더 못 알아듣는다.”는 충고를 들었다.
 듣기에는 우습지만 힝글리시 따글리시(인도·필리핀)가 훌륭하게 통하지 않는가?
 언젠가 심야토크쇼에서 이상벽이 한 건 했다.  대담 중 베란다(veranda)를 밸린더란다.  소리대로 다시 옮기면 ‘valinder’가 된다.  아마도 ‘베란다’가 촌스러운 일본식 발음 같다는 느낌에 순간적으로 혀를 굴린 것 같은데, 영어발음의 무게가 큰 팝 해설가 출신의 TV 발언으로는, 애교가 아니라 작은 사고였다.

 

   실 평수 20평의 실버하우스 ‘사이언스 빌리지’로 둥지를 옮긴지 5개월째이다.
 식사·청소에 각종 레저시설과 건강 체크까지 챙겨주니, 안식구는 인생의 해방을 맞아 말 그대로 신난다.  실내골프는 두 팔꿈치 인대가 다 나가 포기하고, 뒤늦게 당구를 배우고 있다.  영화관 음악 감상실과 교양방송에 시간을 빼앗겨, 책 읽고 글 쓰는 오피스텔 출근이 소홀해진 것은 유감이다.  가장 즐거운 시간은 시원한 맥주 한 잔 들고 베란다 너머로 야경을 내려다볼 때다.  갑천에 걸린 대덕대교 너머로 쭉 뻗은 8차선 대덕대로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엑스포 공원에서 경성 큰 마을까지 버스정류장만 여덟 개.  붉고 푸른 신호등과 백색 전조등에 다시 붉은 후미 등까지, 어렸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던 만화경(萬華鏡)처럼 시시각각 형형색색으로 장면이 바뀐다.  비라도 올라치면 물그림자가 환상적으로 번져, 5성 호텔 스카이라운지가 부럽지 않은 대형 풍경화다.  그런데 며칠 전 할머니들이 모여 수군수군하더니, 베란다를 새시로 막아달라고 난리다.  물론 나는 반대한다.
 첫째 건축사가 고심하고 정성을 들여 설계한 작품을 왜 훼손하는가?  둘째 벌집 같은 아파트에 촘촘히 박혀 살면서, 그나마 자연과 만나는 최소한의 공간 아닌가?
 새시(Sash)로 막아서 두 평을 늘린 밸린더 보다는, 세 평쯤 작더라도 살아 숨 쉬는 ‘베란다’가 나는 더 좋다.  나만 그런가?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