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빨강 황토길 저기 저 고개/ 언제나 하늘 붉은 저녁때이면/ 막대 잡은 할머니가 넘어갑니다.” 귀동냥으로 배워 제목도 모르는 노래다. 할머니는 무사히 집에 가셨을끼? 소년은 넘어가 본적 없는 저 먼 고개 너머가 얼마나 궁금했을까? 김동환 시 김규환 작곡 ‘남촌’은, 박재란이 ‘산 넘어 남촌에는’(김동현 곡)이란 제목으로 다시 불러, 가곡과 대중가요가 상생한 드문 경우다. 봄이면 따뜻한 남풍을 실어오는 산 너머에는, 진달래 향기와 보리 냄새를 만드는 ‘꿈의 공작소’가 있기에, 하늘빛까지 저리 곱다는 시인... 시인의 상상력이 파란 하늘보다 더욱 고와서 다투어 곡을 붙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사시사철 왼 종일이 아름답기에, 이 항구는 영원한 세계 3대 미항이다. 그런데 자살자가 끊어지지를 않는다. 드넓은 북미대륙을 가로질러 몇날 며칠을 달려왔더니, 이제 ‘그 길’은 끝이란다. “Death of the Road!”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나그네는, 금문교 난간에 서서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다가, 끝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다. 미국의 극작가 오닐(Eugene O’Neal, 1888-1953)은 ‘지평선 넘어(Beyond the Horizon)
대전은 본시 식장·보문·계족(食藏 寶文 鷄足) 세 개의 산이 둘러싼 해발 100m의 아늑한 분지다. 계룡산 영험한 정기에 힘입어 홍수·태풍 등 자연재해가 모두 비켜간다. 조선조 궁궐터후보 영순위로 천하의 무당이 모여들어 치성을 드렸으며, 결국 삼군의 심장부 계룡대·자운대 및 정부종합청사가 옮겨왔다. 그래서 이제는 광역시로 훌쩍 컸다. 먹거리를 품었다는 남쪽 식장산은, 가끔 검게 탄 쌀이 나오던 신라·백제의 경계로, ‘성재’라는 능선이름(옛 백제)을 전한다. 가장 높은 598m의 수리봉에는, 휴전 후에도 대전고에 주둔했던 미 통신대대와 태평양사령부를 잇는 중계 탑이 있었다. 신흥초등학교는 겨울방학에 상급반 학생을 불러내 식장산에 올랐다. 선생님은 몽둥이 들고 밑에서 기다리고 학생들은 위에 올라가, 일제히 와! 함성을 지르며 내리달리면, 앞다리 짧은 토끼가 놀라 뛰다가 나뒹굴어, 선생님들 손에 잡힌다. 한겨울 극기 훈련이요 영양보충이었다. 서쪽 보문산은 전망 좋은 보물이다. 수통 골로 시루봉(457m)에 오르면 마지막 100m는 급경사 유격훈련장이다. 술과 담배를 배운 추억의 산, 공원도 많은 데이트코스다. 신라가 쌓은 동북쪽 계족산성(423m)은 야경이 일
금병산(錦屛山)은 이성계가 조선창업의 큰 뜻을 품고 8도를 돌며 기도하다가, “비단 병풍을 갖추고 치성하라.”는 현몽을 얻어 찾은 곳이라고 한다. 최고봉이 372m로 대전 유성구와 세종 금남면에 걸쳐 열두 봉우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비단병풍 아늑한 품안에 대한민국 군사교육·훈련시설인 자운대가 둥지를 튼 지 어언 27년이다. 수운교 도솔천을 돌아, 소하천을 거슬러 눈부신 억새밭을 지나면, 사방댐 위로 탄동 천 맑은 물 7.4Km의 발원(發源)지를 만난다. 탄동교에서 물 따라 한국기계연구원과 애경·대림·쌍용·한국타이어·호남석유 및 화학연구소를 거쳐 신성교에 이른다. 여기서 탄동천이 갑천과 합류하는 2.94Km가 ‘숲 향기 길’이다. 갑천은 다시 흘러 저 아래서 금강과 합류한다. 도룡동 집에서 출발 국립중앙과학관까지 남행하여 우회전하면 만나는, 매봉교에서 신성교까지가 바로 ‘산책코스 2’의 하이라이트, 숲 향기 길이다. 신성교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연구단지 네거리를 넘어 집에 온다. 합계 9.000보로 건강을 위한 하루 권장량을 너끈하게 넘긴다. 숲향기길의 춘하추동은 벚꽃·녹음·단풍·갈대다. 그 사이로 탄동천이 흐른다. 물줄기가 완만한 곡선의 오선지라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한 청와대만찬에서 박효신은 자작곡‘야생화’를 불렀는데(171107), 이것을 라이브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부안 해변을 배경으로 가슴 치는 감성을 ‘소울’로 풀어낸, 반 흑백 뮤직비디오의 감흥이 여지없이 깨어졌을 테니까. 그러나 필자가 울적할 때면 몇 번이고 다시 듣는 야생화는 복면가왕에서 팝콘소녀 알리가 부른 노래다(161106). 왜냐고 묻기 전에 한 번 들어보시라. 한밭수목원을 산책할 때도 야생화원(花園)에 한참씩 쪼그리고 앉아 머물다온다. 그저 지나칠 때는 볼품없는 꽃이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기화요초다. ‘꽃의 예찬’이라는 글에서 한남대 최영근교수의 옻과 자개와 난각(卵殼) 공예품 넉 점을 소개한 바 있다(130320). 8호가 채 안 되는 봉선화·민들레·맨드라미·할미꽃의 정밀화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어떤 대작보다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보릿고개를 막 넘어선 70년대 후반, 먹고 살만해진 중상위층에 사치바람이 불었다. 마님 방 문턱 너머 힐끗 보이던 화려한 자개장... 그 DNA를 대물림했는지 당시 천만 원 대의 대형 나전칠기 자개장이 날개 돋친 듯 팔
손에 익은 핸드피스를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자판을 두드리니, 막상 글발이 더디다. 글발의 발이 디디는 그 발이 아니요, 글발의 본뜻은 ‘글월 또는 문맥’임을 익히 알지만, 말끝에 달린 ‘발’을 꼬투리 삼아 글짓기의 완급에 비유함도, 이 또한 글쟁이의 특권이요 무료함을 달래주는 심심파적(破寂)이다. 마감에 쫓겨 가며 회무(會務)와 진료 틈틈이 원고를 쓸 적에는,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정작 멍석을 깔아놓으니 해찰을 부린다던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머릿속이 멍하고 생각이 멈추면 제 몸을 괴롭힌다.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쥐어뜯는 기사 조치훈의 심정을 짐작한다. 자해는 자위와도 통한다던가? 젊은이처럼 샌드백을 두들길 수도 없으니, 일단 갑갑한 방을 탈출한다. 마련해둔 사랑방이 마침 엑스포 공원 부근의 오피스텔인 덕분에, 산책 코스는 차고 넘친다. 선택 1호는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한밭수목원이다. 엑스포 시민광장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나뉘는 한밭수목원은, 갑천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무지개다리로 이어지는 엑스포 과학 공원과, 남으로는 예술의 전당·시립미술관·고암미술관·연정국악원·평송 청소년문화센터 등 문화예술-콤플렉스
조토가 그린 ‘유다의 입맞춤’(1305)이 최초의 르네상스 회화라고 한다. 예수를 넌지시 제사장에게 알린 그 신호로, 유다는 밀고자(密告者)의 대명사가 되었다. 소설 ‘밀고자(The Informer, Liam O’Flaherty 1925)’에서 지포는 현상금 20파운드에 친구 프랭키를 밀고하여 동료에게 처형당한다. 아일랜드는 말(게일 語)과 땅을 영국에게 빼앗긴 채 700여년을 살아왔다. 19세기 들어 다시 불붙은 독립 운동에 밀고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영국정부는 밀고자 신원을 극비로 보호하고, 반대로 아일랜드 민중은 밀고자라면 그 후손들까지 응징하였다. 그런 정서를 모르면 이 소설, 나아가 IRA(Irish Republican Army)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선조 5백년간 소수 양반만을 위해 살았고, 일제 36년 동안을 3등 국민이었던 한(恨)이 맺혀, 문득문득 드러나는 우리의 반관(反官) 정서와 밀고자에 대한 혐오를 많이 닮았다. 내부고발 자를 ‘whistle blower’라 한다. 도둑이나 간첩이 순경처럼 호루라기를 불을 리 없으니, 밀고에 대한 적대감은 잠시 접어두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과
일본에 유학하여 한창 물이 오른 기사 조훈현이 병역문제로 귀국하자, 마지막 애제자를 잃은 83세의 스승 세고에 9단이 자살한다. 기성(棋聖) 우칭웬을 키워낸 노스승에게는, 제2의 우칭웬을 기대한 제자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컸을까. 기력이 쭉쭉 뻗어가는 십대에 3년의 경력단절은 ‘절대’ 만회할 수 없고, 성인 성(聖)자는 만인이 승복해야만 붙이는 것 아닌가? 그 후 조훈현은 근 20년 간 한국바둑계에 전신(戰神)으로 군림하고, 십여 년간 세계를 제패한 신산(神算) 이창호를 길렀으며, 현역 국회의원이다. 만약 조훈현이 병역특례를 인정받아 계속 정진했다면, 대한민국의 위상과 세계바둑의 역사가 달라졌으리라. 몇 년 전까지도 공한증(恐韓症)에 떨던 중국바둑이, 정부의 대대적인 후원으로 고속 성장하여, 한국의 천만 바둑 팬들은 박정환·최정의 고군분투에 조마조마·일희일비하고 있다. 남자들이 모이면 화제 1호가 군대시절 얘기요 2호가 축구이니, 군대에서 축구하던 얘기를 하면 날 새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손흥민이 멋진 골을 넣으면 며칠 동안 온 동네 사람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밝으니 작업능률이 올라가고 국민화합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따질 수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의 중·남부에 있던 연맹왕국인 마한·변한·진한을 삼한(三韓)으로 통칭한다. 도합 78개의 국(國) 중에 마한 백제가 백제로, 변한 구야가 가야로, 진한 사로가 신라가 되었다. 삼국시대 이후 삼한이 신라·백제·고구려의 의미로 변하였으니 바로‘대한민국’의 어원이며, 마한을 고구려 - 변한을 백제 - 진한을 신라로 본 최치원의 일통삼한(一統三韓)이라는 기록이 ‘통일’의 기원이다. 그러나 삼한시대에 북쪽에는 부여·옥저·동예가 있었고, 3국 시대 백제·신라·가야의 북쪽에는 고구려가, 통일신라의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고 후백제를 병합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936). 엄밀하게 말하면 신라의 통일은 남·북국시대로 이어졌고, 명실 공히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통일’의 주역은 고려였다. 그 결과로 우리는 Corea (Korea) 라는 영자(英字)이름을 얻었고, ‘고려연방제’라는 작명(作名)에도 그런 뜻이 담겨있다. ‘적폐청산(積幣淸算)’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적폐의 판정기준이 상대와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다면, 청산은 사적인 원한을 풀려는 싸구려 갑 질로 전락한다. 반만년 역사에 최악의 적폐는
온 국민이 국제사정에 무지한 해방공간에서, 김일성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소련과 김일성이 조선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사기극’이 통했기 때문이다.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된 현재에도 이 날조를 믿는 광신도들에게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일·소가 1941. 4. 13일 ‘중립조약’을 맺은 후, 관동군은 기관총 급 외에 모든 중화기를 시급한 미국과의 태평양전장에 넘겼으니, 백만 대군은 허수아비였다. 1940년 일제 토벌에 쫓긴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망가 배치된 소련 극동군산하 ‘88 특별저격여단은, 국경지역 정찰과 공산주의 교육이 주 임무로 관동군과의 교전은 불필요·불가능했다. 스탈린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에게, 대독전쟁이 끝나면 2, 3 개월 이내에 대일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한다. 8월 6, 9일 원폭이 투하되어 일제 항복이 확실시되자, 스탈린은 점령지 차지에 늦을세라,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한다. 그 후 사실상 무저항의 만주를 거쳐 북한을 점령하는데, 관동군사령관은 본국지시가 늦어져 8월 19일에야 항복한다. 소련군의 대일전쟁은 무려(?) 열흘간의 만주‘여행’이었고, 거기에 김일성은 없었다. 그는 점령군이 아니라, 소련에 간택된
신협 소식지 ‘미소’에 ‘정체성 이야기’ 라는 칼럼을 썼다. 누구든지 특히 전문 지식인은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데에서 보람을 찾아야 할진데, 언제부턴가 긍지와 자존감은 사라지고 ‘치부의 실현’ 즉 돈이 평가의 잣대·서열의 기준이 된 결과, 만인이 벌거벗은 욕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세상에는 증오·분노·갈등·폭력이 만연한다는 얘기였다. 지난 11월 3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프레디 머큐리에게서 느낀 ‘정체성 위기’를 화두로 몇 꼭지 글을 써보려 했는데, 주제가 벅찬 탓이었는지 시작부터 힘이 들어, 이제야 마무리에 들어간다. 순서상 우리 자신부터 주제파악을 해봐야겠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한국은 양차대전 후 지구촌의 지상목표가 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체제를 갖추고 OECD 클럽에도 가입하여, 외형상 정치·경제 양면에서 모범국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유’는 어느덧 사라지고, 70여 년 역사에 몸 성한 전직 대통령이 단 한 사람도 없다. 희화화 된 ‘이 윤 박 최 돌 물 깡’ 일곱 분 이후 네 분 또한 ‘봉 황 박 박’이니, 퇴임 후 폐서인(廢庶人) 되는 전통(?)을 깨뜨릴 대통령은 앞으로도 당분간 만나보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