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회의 발전을 이끌어온 엔진은 개방적·적극적인 서구문명이요, 그 요람은 그리스 문화를 이어받아 서방세계를 제패한 로마제국이었다. 반대로 고대문명의 쌍두마차였던 중국문화는, 명-청(明·淸)에 들어와서도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정책을 고집하다가, 선두주자의 지위를 빼앗기고 삼류로 전락하였다. 이제 ‘박정희 식’ 개발모델을 빌려다가 G-2 까지 성장하자, 찬란했던 옛 영화를 되찾겠다며, 사드배치관련 3불(三不)정책 강요처럼 무례한 반칙을 동원하여 전 방위로 떼를 쓰고 있다. 그러나 구시대의 전제군주국가 보다 더 무자비하고 원시적이요, 중국 특유의 선민의식(中華)에 오염된 공산주의 마인드를 버리지 않는다면, 무리한 욕심은 스스로를 자멸로 이끌 것이다. 주변국들로부터 왕따와 집단성토를 자초할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는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인류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였으나 가톨릭이 강요한 ‘신앙 과잉’으로 서구문명은 암흑시대를 맞는다. 유일신(唯一神)의 질투와 배타성은, 다신교(Polytheism)에 길들여진 유럽에서 마찰을 피할 수가 없었으니, 마녀사냥 같은 무리한 정책의 부작용 또한 예정된 코스였을 것이다. 역사에는 의외성이 높다. 첫째 Pax Romana가
스페인 순례 길의 종착지 콤포스텔라에 야고보의 유해가 있다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에는 마가(Marko)의 유해가 있다. 로마에서 순교한 야고보는 신도들이 몰래 수습하여 모셔왔고, 마르코는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옮겨(훔쳐)왔다고 전해진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가 봉안된 적멸보궁이 다른 절과는 격이 다르듯, 성인의 유해는 범할 수 없는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다. 인민의 행복과는 동떨어진 사이비 이념의 공산국가들이, 비싼 방부(防腐) 처리와 관리 경비를 무릅쓰고 선임 독재자의 ‘시체장사’를 하는 행태는, 독재유지를 위하여 무신론자들이 종교를 흉내 내는 이율배반이요 자기기만이다. 왜 자연으로 돌려보내지를 못하는가? 산마르코 광장을 내려다보는 커피숍(Caffe Florian)에서 커피를 마셨다. 1720년에 문을 열어 괴테와 바그너도 마시고 갔다는 곳. 두 잔에 이탈리아에서는 조금 비싼 17유로인데, 2.5 x 2 + 음악 감상요금 12란다. 한국 호텔에 비해 ‘바가지’는커녕 너무 싸다. 가면 쓴 카니발의 원조 베네치아... 사육제가 끝나면 열 달 뒤 사생아가 무수히 태어나, 빨간 머리의 신부 비발디가 고아들을 거두어, 여성 오케스트라를 편성했단다.
아프레게르(Apres-Guerre; 前後派)는 일차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예술사조로서, 전쟁 전의 표현파-추상파-초현실파를 총칭하는 아방게르에 대(對)한다. 6·25 직후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1954)’에 나오는 사치와 퇴폐의 여성상을, 아프레와 여성을 합성한 ‘아프레걸’이라고 불렀다. 사실은 아프레와는 거리가 멀고, 엄청난 파괴·살육 뒤에 겪는 ‘허무주의’일 뿐이었다. 첫째 해방과 정부수립 각각 5년 2년도 채 안된 세월에 의미 있는 문화가 성숙할 겨를이 없었다. 전전(戰前)이 없는데 무슨 전후? 둘째 아방게르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과 인물을 비웃는 의미로도 쓰였으므로, 아프레 완장은 꽤 유효한 무기였다. 상대를 친일파 꼰대로 몰아가는 낡은 수법처럼... 셋째 문제의 본질은 갑작스러운 양키문화 습격사건이다. 가난하고 희망 없는 폐허에서 미국 원조물자로 연명하면서, 미국영화의 환상에 빠졌다. 자유분방한 민주국가 이면에 숨어있는 엄중한 질서와 준법정신은 아직 모르니까, 화려한 겉모습과 방종한(?) 남녀관계를 전부로 착각했다. 영화 자유부인에서 장 교수는 치과의사 박암이 열연했다. 지적 남성미가 물씬한 사나이였다. 긴장 풀린 사회에서
“지지 않겠다, 자력갱생하자?” ‘자력갱생’은 평양 백두 김가네 전매특허다. 말이 좋아 자력이지 고난의 행군 당시(1994–97), 백만은 못 되지만 실제로 33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대약진운동(1958–61) 정책실패로 1,800만 – 4,200만을 아사시킨 마오(毛)에 비하면 김정일은 부처님이다. 후유증 사망을 합쳐 61만 명이라니, 인구비율로 따져 남한에서 130만이 목숨을 잃고, 거의 전 인구가 왜소·병약(矮小·病弱)화한 셈이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사람은 이골이 나서, 피죽만으로 석 달을 버틸지 몰라도, 잘 먹고 살던 우리는 사흘을 못 견딘다. 자력갱생은 그저 한 번 웃자는 실언으로 치고, 멀쩡한 동맹국끼리 난데없이 ‘지지 않는다.’는 건 또 뭔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요 그야말로 ‘평지풍파’ 아닌가? 무형의 국가권력을 받쳐주는 것은 정권의 정당성이다. 야당과는 물론 당내에서도 심각했던 ‘불통’ 탓에, 주류에서 밀린 한국당의 내부자들이 ‘촛불작전’에 앞장섰으니, 외침보다 내홍(內訌)이 더 무섭다. 승자 스스로 촛불‘혁명’이라하니, 총칼만 안 들었지 탈법적인 헌정중단과 정부전복임은 인정한 셈인데, 쉬쉬 해야지 자랑삼아 내밀 카드는 아니다.
국가 간 정상회담은 형식이고, 국가수반의 측근 실무진 사이에 사전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발의할 때도, 먼저 설득을 위한 물밑작업을 한다. 대부분이 정치초년생이던 자유당 시절, 당시 국회의사당(부민관) 건너편 무교동의 ‘방석집’은, 정계거물의 ‘막후정치판’이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미인들이 다 모인 요정에서, 최고의 인기스타는 젊고 핸섬한 국회의원 YS라고 했다. 한일국교가 정상화되자, 군사정권 이후 정치인 출입이 뜸해진 빈자리를 양국 무역업자들이 채웠지만, 매출에 한계가 있었다. 물장사들은 임대료가 싼 미아리 등지로 업소를 옮겨,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보다 대중적인 영업을 개시한다. 우선 뱀 집이 부쩍 늘었다. 정력에 좋다는 독사 탕 한 사발에 하룻밤 술판 플러스알파가 세트 메뉴로, 일본관광객에게 최고 인기였는데, 한국 한량에게는 약간 버거운 가격이었다. 당시 땅꾼에게 들은 얘기. “한국 손님에게는 왼 마리를 넣고, 왜놈한테는 슬쩍 눈속임해서 반마리만 넣지. 공연히 불쌍한 우리 누이들만 고생할까봐.” 과연 숨은 애국자(?)요, 미아리 ‘기생관광’의 원조다. 일본 원로 정치인 가메이가 한국의원 몇 명과
위기를 만났을 때 지도자의 행동에 따라, 국가·국민이 약진하느냐 또는 재앙을 맞느냐가 좌우된다. 대략은 1. 정면 돌파 형 2. 우회타협 형 3. 나몰라 회피 형의 세 가지로, 1과 2는 각각 전두환과 노태우 쯤 될 것이다. 한국 사람은 우유부단한 3형이 많은 탓인지, 몇몇 분은 걸핏하면 외유를 떠나곤 했다. YS는 우유부단보다 자기현시욕과 경제 무지로, 국내에선 자승자박·국제적으로는 고립무원을 자초하여, IMF 환란 유치와 좌·우익 정권교체에 큰 공을 세웠다. 경제 폭망에 따른 정권상실로 중상을 입은 보수 정당은, 집권을 해도 지키지 못하고 제1 야당으로서 견제도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어, 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뒷걸음치는 것은 아닌지... 트럼프의 압박과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로 북핵문제는 갈수록 꼬이는데, 한·일의 경제마찰은 악화일로요, 카디즈는 중·소의 놀이터가 되었다. 야당이 외교 폭망을 비난하는 가운데, 체코슬로바키아 및 발칸 3국(?)과 6월 백야를 즐긴 북유럽여행은 그저 흘러간 꿈이다. ‘휴가취소’ 보도에 기대를 걸었더니, “앞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본에 있음”을 경고한다는 한가한 말씀이다. 잘못은 싹싹하게 인정하고 정면 돌파로 더 큰
‘징병피해보상’은 1965년 한일경제협정으로 받은 무상 $3억에 반영되었다고 결정한 민관공동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은, 현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여당 대표다(2005). 특별법 제정으로 6,200억 원을 지급했는데(2007), 2012년 누락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다시 불붙어 파기 환송되자, 박근혜 양승태 팀은 경제·외교적 태풍을 막으려고, 판결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를 적폐로 지목한 현 정부는, 대통령 고유권한인 대법관·대법원장 인사를 통하여, 옛 위원회 결정을 뒤집도록(2018) 부채질했다는 것이 아베의 시각이다. 판결이 14년 전 행정부 결정을 배척하고 일본 국내법과도 충돌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사법자제(自制)’ 등 노력하기는커녕, 분쟁과 반일감정을 조장해놓고 “사법부 일에 개입할 수 없다”며 딴청을 부린다고 본다. 위원회결정 때와 오늘의 말이 180도 달라,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더불어(Double 語)민주당은 신뢰할 수 없으니, 대화나 약속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속지만, 선거의 달인은 포퓰리스트를 한눈에 알아보고 경멸한다. 국민의 안위가 달린 중요한 외교문제도 득표수단으로 이용하여 생존기반인 국가 자체를 좀먹
가족을 식구(食口) 즉 ‘먹는 입’이라고 한다. 중국의 궈런(口人)보다 밥 식자가 더 솔직한 ‘먹여 살릴 입’이다. 조선조 후반 200여 년간은 농업 생산성이 조금도 향상되지 못하여, 농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먹고 살기 어려웠다. 7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입 하나를 줄이겠다고, 어린 딸을 부자 집에 수양딸로 보내곤 했다. 말이 좋아 딸이지 굶기지나 말라고 떠맡긴 어린 식모였다. 수양모가 착하면 십여 년간 집안일에 부린 뒤, 혼수를 찔끔 얹어 짝을 지워주었다.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을 보면, 이차대전 후 어려운 이태리 농촌에서, 부모가 돈 몇 푼에 두 딸을 차례로 잠파노에게 넘긴다. 1943년 일본군 5,000명 모집에 조선인 30만 명이 지원(志願)했고, 이승만은 승전국은 고사하고, ‘일본 지원국(支援國) 명단’에서 한국 이름을 빼는 데에 애를 먹었다. 국가 총동원령 하의 배급사회에서 군수공장 노동자를 빼고 일자리가 어디 있었을까. 일본 남자는 몽땅 전쟁터에 나간 노동현장에서, 열악한 전시체제하의 노동조건에 불구하고, 징용은 총알받이를 면하면서도 입에 풀칠할 탈출구였다. 파산한 패전국 기업들이 밀린 임금·퇴직금을 깔끔히 마무리 못했던 측면도 있다.
중학교 때 ‘공민(公民)’은 사회과목의 원조로, 내용은 기본 법률상식과 공중도덕이었다. “국회의 동의를 받은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는 구절을 기억한다. 국가 간 신뢰와 안정을 위하여, 어느 나라 헌법에도 이런 쌍무 조항이 있다. 어릴 때 잘 배워야 히틀러 같은 돌 아이가 나중에 딴 소리를 못한다. 조선조가 대물림한 가난에 일제 수탈과 전쟁의 포화까지 덮쳐, 미국 원조로 연명하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살길은, 미국의 권고요 박정희의 소신인 한일국교정상화와 경제협력이었다.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에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 타결되고, 경제협력 협정으로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 총 8억 달러를 제공받는다. 그해 12월에 발효된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에는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 확인”, 제3조는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이 안 되면 30일 이내에 제3의 중재 위원... ”으로 명시 되어있다. 조약문에 이중삼중으로 안전망을 둘렀지만,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또다시 한일관계에 걸림돌로 떠올랐다. ‘65 한
몇 달 전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원 50여명은, 65년 만에 한동일씨 영구귀국과 한국 시민권 회복을 축하하는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1954년 당시에 줄리아드에 가는 피아노 신동 한동일의 뉴스는, 휴전 직후 각박한 우리 삶에 밝은 위안이었다. 필자 두 살 위의 또래였기에 기억에 더 깊이 새겨졌으리라. 음악가는 연주로만 말한다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천진한 어린이의 말투로 난해한 클래식을 쉽게 풀어주는 ‘금난새 식 콘서트’의 인기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거쳐, 비록 하이라이트지만, 오페라(La Traviata))에 이르렀다. 근엄한(?) 백발의 금노상 지휘자보다 6세 맏이 형이면서도, 더 젊어 보이는 금난새의 미소 띤 동안(童顔)이 만들어낸 변화로, 클래식 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참신한 시도다. 지난 8월 18일 한동일씨의 ‘나의 삶과 피아노’ 공연도, 축복 속에 8순을 눈앞에 둔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감사와 추억의 말씀’을 가득 담은 감동의 ‘금난새 식’ 콘서트였다. 제1부는 슈베르트 즉흥곡 1, 3번으로, 인생의 추수기를 맞은 노인의 감사기도다. 공산치하에서 빈손으로 쫓겨난 흥남시절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