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을 전후로 하여 연예인 중심으로 유행했던 양악수술(턱교정수술)은 미용목적의 고비용 수술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양악수술은 본래 부정교합을 해소하고, 교합을 바르게 하여 씹는 근육을 포함한 저작계의 모든 구성요소가 균형 있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치료목적의 수술에서 발달하였다. 환자마다 발생원인과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정교합의 치료는 크게 외과적 수술을 병행하는 수술교정과 치아교정만으로 진행하는 비수술교정이 있다. 그 중 수술교정에 속하는 턱교정수술은 치의료기술의 끊임없는 발전으로 전통적 방식의 방사선 사진과 치아모델을 이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3차원 디지털 기술(CAD, CAM)을 이용한 검사·진단·예측·평가를 통해 단순히 교합기능 개선뿐만 아니라 심미적으로도 얼굴의 외형을 개선할 수 있는 수술로 발전하였다. 윗니와 아랫니가 맞닿지 않아 냉면을 앞니로 끊어 먹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을 씹는 것 자체가 어려워 삼킬 수밖에 없는 환자들과 심한 주걱턱이나 무턱으로 인한 외모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온 환자들은 양악수술에 큰 관심을 표하면서도 고비용 수술이라는 말을 듣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하
국가 간 정상회담은 형식이고, 국가수반의 측근 실무진 사이에 사전조율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발의할 때도, 먼저 설득을 위한 물밑작업을 한다. 대부분이 정치초년생이던 자유당 시절, 당시 국회의사당(부민관) 건너편 무교동의 ‘방석집’은, 정계거물의 ‘막후정치판’이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미인들이 다 모인 요정에서, 최고의 인기스타는 젊고 핸섬한 국회의원 YS라고 했다. 한일국교가 정상화되자, 군사정권 이후 정치인 출입이 뜸해진 빈자리를 양국 무역업자들이 채웠지만, 매출에 한계가 있었다. 물장사들은 임대료가 싼 미아리 등지로 업소를 옮겨,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보다 대중적인 영업을 개시한다. 우선 뱀 집이 부쩍 늘었다. 정력에 좋다는 독사 탕 한 사발에 하룻밤 술판 플러스알파가 세트 메뉴로, 일본관광객에게 최고 인기였는데, 한국 한량에게는 약간 버거운 가격이었다. 당시 땅꾼에게 들은 얘기. “한국 손님에게는 왼 마리를 넣고, 왜놈한테는 슬쩍 눈속임해서 반마리만 넣지. 공연히 불쌍한 우리 누이들만 고생할까봐.” 과연 숨은 애국자(?)요, 미아리 ‘기생관광’의 원조다. 일본 원로 정치인 가메이가 한국의원 몇 명과
위기를 만났을 때 지도자의 행동에 따라, 국가·국민이 약진하느냐 또는 재앙을 맞느냐가 좌우된다. 대략은 1. 정면 돌파 형 2. 우회타협 형 3. 나몰라 회피 형의 세 가지로, 1과 2는 각각 전두환과 노태우 쯤 될 것이다. 한국 사람은 우유부단한 3형이 많은 탓인지, 몇몇 분은 걸핏하면 외유를 떠나곤 했다. YS는 우유부단보다 자기현시욕과 경제 무지로, 국내에선 자승자박·국제적으로는 고립무원을 자초하여, IMF 환란 유치와 좌·우익 정권교체에 큰 공을 세웠다. 경제 폭망에 따른 정권상실로 중상을 입은 보수 정당은, 집권을 해도 지키지 못하고 제1 야당으로서 견제도 못하는 ‘불구의 몸’이 되어, 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뒷걸음치는 것은 아닌지... 트럼프의 압박과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로 북핵문제는 갈수록 꼬이는데, 한·일의 경제마찰은 악화일로요, 카디즈는 중·소의 놀이터가 되었다. 야당이 외교 폭망을 비난하는 가운데, 체코슬로바키아 및 발칸 3국(?)과 6월 백야를 즐긴 북유럽여행은 그저 흘러간 꿈이다. ‘휴가취소’ 보도에 기대를 걸었더니, “앞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일본에 있음”을 경고한다는 한가한 말씀이다. 잘못은 싹싹하게 인정하고 정면 돌파로 더 큰
‘징병피해보상’은 1965년 한일경제협정으로 받은 무상 $3억에 반영되었다고 결정한 민관공동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은, 현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여당 대표다(2005). 특별법 제정으로 6,200억 원을 지급했는데(2007), 2012년 누락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다시 불붙어 파기 환송되자, 박근혜 양승태 팀은 경제·외교적 태풍을 막으려고, 판결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를 적폐로 지목한 현 정부는, 대통령 고유권한인 대법관·대법원장 인사를 통하여, 옛 위원회 결정을 뒤집도록(2018) 부채질했다는 것이 아베의 시각이다. 판결이 14년 전 행정부 결정을 배척하고 일본 국내법과도 충돌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사법자제(自制)’ 등 노력하기는커녕, 분쟁과 반일감정을 조장해놓고 “사법부 일에 개입할 수 없다”며 딴청을 부린다고 본다. 위원회결정 때와 오늘의 말이 180도 달라,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더불어(Double 語)민주당은 신뢰할 수 없으니, 대화나 약속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속지만, 선거의 달인은 포퓰리스트를 한눈에 알아보고 경멸한다. 국민의 안위가 달린 중요한 외교문제도 득표수단으로 이용하여 생존기반인 국가 자체를 좀먹
치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특히 소아 환자의 경우 성인보다 치과는 더 무섭고 두려운 곳입니다. 소아 환자의 재미있고 즐거운 치과 경험은 앞으로의 치과에 대한 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이 시기는 평생의 구강 관리 습관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여 소아치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진료실에서 활짝 웃어주는 아이들의 해 맑은 웃음을 볼 때, 아이들이 수줍게 꺼내서 주는 ‘선생님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소아치과는 출생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전반적인 구강 조직의 건강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과입니다. 소아환자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최소화하도록 항상 노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치아의 성장과 발육, 치아우식증의 예방 및 치료, 부정교합 관리, 외상 치료, 소수술, 진정요법, 장애인치과 등의 분야를 진료하고 있습니다. 유치는 빠질 치아라서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충치가 생기고, 충치 때문에 생긴 뿌리 아래 염증이 영구치가 자리 잡고 있는 곳까지 파고들게 되면 영구치 자체가 약하게 만들어지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나오게 되
가족을 식구(食口) 즉 ‘먹는 입’이라고 한다. 중국의 궈런(口人)보다 밥 식자가 더 솔직한 ‘먹여 살릴 입’이다. 조선조 후반 200여 년간은 농업 생산성이 조금도 향상되지 못하여, 농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먹고 살기 어려웠다. 7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입 하나를 줄이겠다고, 어린 딸을 부자 집에 수양딸로 보내곤 했다. 말이 좋아 딸이지 굶기지나 말라고 떠맡긴 어린 식모였다. 수양모가 착하면 십여 년간 집안일에 부린 뒤, 혼수를 찔끔 얹어 짝을 지워주었다.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을 보면, 이차대전 후 어려운 이태리 농촌에서, 부모가 돈 몇 푼에 두 딸을 차례로 잠파노에게 넘긴다. 1943년 일본군 5,000명 모집에 조선인 30만 명이 지원(志願)했고, 이승만은 승전국은 고사하고, ‘일본 지원국(支援國) 명단’에서 한국 이름을 빼는 데에 애를 먹었다. 국가 총동원령 하의 배급사회에서 군수공장 노동자를 빼고 일자리가 어디 있었을까. 일본 남자는 몽땅 전쟁터에 나간 노동현장에서, 열악한 전시체제하의 노동조건에 불구하고, 징용은 총알받이를 면하면서도 입에 풀칠할 탈출구였다. 파산한 패전국 기업들이 밀린 임금·퇴직금을 깔끔히 마무리 못했던 측면도 있다.
중학교 때 ‘공민(公民)’은 사회과목의 원조로, 내용은 기본 법률상식과 공중도덕이었다. “국회의 동의를 받은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는 구절을 기억한다. 국가 간 신뢰와 안정을 위하여, 어느 나라 헌법에도 이런 쌍무 조항이 있다. 어릴 때 잘 배워야 히틀러 같은 돌 아이가 나중에 딴 소리를 못한다. 조선조가 대물림한 가난에 일제 수탈과 전쟁의 포화까지 덮쳐, 미국 원조로 연명하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살길은, 미국의 권고요 박정희의 소신인 한일국교정상화와 경제협력이었다.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에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 타결되고, 경제협력 협정으로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 총 8억 달러를 제공받는다. 그해 12월에 발효된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에는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 확인”, 제3조는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이 안 되면 30일 이내에 제3의 중재 위원... ”으로 명시 되어있다. 조약문에 이중삼중으로 안전망을 둘렀지만,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또다시 한일관계에 걸림돌로 떠올랐다. ‘65 한
몇 달 전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원 50여명은, 65년 만에 한동일씨 영구귀국과 한국 시민권 회복을 축하하는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1954년 당시에 줄리아드에 가는 피아노 신동 한동일의 뉴스는, 휴전 직후 각박한 우리 삶에 밝은 위안이었다. 필자 두 살 위의 또래였기에 기억에 더 깊이 새겨졌으리라. 음악가는 연주로만 말한다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천진한 어린이의 말투로 난해한 클래식을 쉽게 풀어주는 ‘금난새 식 콘서트’의 인기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거쳐, 비록 하이라이트지만, 오페라(La Traviata))에 이르렀다. 근엄한(?) 백발의 금노상 지휘자보다 6세 맏이 형이면서도, 더 젊어 보이는 금난새의 미소 띤 동안(童顔)이 만들어낸 변화로, 클래식 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참신한 시도다. 지난 8월 18일 한동일씨의 ‘나의 삶과 피아노’ 공연도, 축복 속에 8순을 눈앞에 둔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감사와 추억의 말씀’을 가득 담은 감동의 ‘금난새 식’ 콘서트였다. 제1부는 슈베르트 즉흥곡 1, 3번으로, 인생의 추수기를 맞은 노인의 감사기도다. 공산치하에서 빈손으로 쫓겨난 흥남시절 회
영화 ‘판도라(2016)’를 보면서 몇 번 울컥했다. 딴따라시절부터 우리 연예계는 곡마단 단막극 ‘홍도야 우지마라’나 ‘눈물의 여왕 전옥’ 등 최루성 드라마로 잔뼈가 굵었다. 절체절명의 공포 속에서 내 목숨보다 서로를 더 아끼는 가족애(愛),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에 뛰어드는 작지만 위대한 영웅들. 대형 재난영화답게, 주연보다 정진영 나문희 등 베테랑급 조연진과 군중을 정밀하게 지휘한, 박정우 감독의 오케스트라는 감동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진 팬들은, 김영애씨의 열연에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투자한 ‘황토팩’ 사업에 1,700억 매출의 대박이 터지며 순항했지만,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소비자고발 프로(이영돈 PD, 2007) 한방에 도산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거대언론을 상대로 피 마르는 법정투쟁 중에 사업파트너였던 남편과 이혼, 가정파탄에 건강마저 잃는다. 결국 보도내용은 1심에서 ‘허위’로 밝혀져 일억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상고심의 해석은, “명예훼손 행위가 공공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였고(2012), 그해에 췌장암 수술을 받는다. 억장이 무너지고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연기의 열정을 불태우고 갔
처음 본 봉준호 감독 영화는 ‘괴물’이었다(칼럼; 괴물과 퀴즈, 2006. 8). 개봉 2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보도에 이끌려 영화관을 찾았다. 스크린과 좌석 수의 독점(각각 37%와 68%)은 논외로 하고, 필자의 세 가지 퀴즈를 검토해보자. 첫째 괴물의 탄생 원인은?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 군무원 맥팔랜드가 시신 방부제 포르말린을 한강에 방류한 탓이다. 독성이 비슷한 크레솔은 포르말린 화합물로서, 희석하여 검진기구 소독용으로 많이 쓴다. 둘째 괴물을 쓰러뜨린 세 가지 무기는? 운동권의 주 무기인 화염병 신나(thinner)와 쇠파이프다. 셋째 마지막에 조사결과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 연구소(CDC) 발표의 의미는? “패망한 이라크에서 핵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를 패러디하여, “북 핵은 없다”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때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시대였으니까. 일본의 전설 ‘고질라(1954)’에 비해 날렵한 괴물의 동작은 CG 덕분이지만 과연 디테일하고, 아쉽게 시간패 아픔을 간직한 양궁선수 배두나의 활약은 코믹하고도 뭉클하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두 시간짜리 ‘이념 찬양의 간접광고(PPL)’만 본 듯한 씁쓸함도 없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