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작은 나라는 스위스·오스트리아 사이의 리히텐슈타인. 금년에 3백주년을 맞은 이 공국(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은, 인구 38,000에 강화도 절반 크기지만, GDP는 세계 1위인 $17만. 금속가공과 우표판매가 주수입이라지만, 알짜배기는 조세피난처(Paper Company)다. 수집가의 성지답게 우표박물관이 뛰어난다. 1719년 신성로마제국 찰스 6세가 만들어, 4년 뒤 제국의회에 한 자리(一席) 준 것을 보면, 다분히 정치 냄새가 난다. 중세에서 근세까지 유럽의 마녀사냥·탄압·전쟁이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졌고, 전쟁원인이 황제와 교황의 세력다툼과 왕위계승이었음을 깨닫는다. 국방과 외교 통화는 스위스가 맡고, 독일어를 쓴다. 식당 Adler Vaduz의 중식(中食) 라지아니 요리는 그저 그렇다. 음식에 굳이 등수를 매긴다면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스페인의 순서다. 스페인 음식은 소금밭이다. 귀국 행 공항소재지는 상업중심지 취리히. 리마트 강가에서 자유 시간 겨우 두 시간. 2000년 역사의 니더도르프 골목상가와 세 성당을 둘러보았다. 본시 수녀원이었다가 성당으로 다시 교회로 탈바꿈한 Frau-Muenster. 원본이
요즘은 치아에 문제가 생기면 보통 임플란트 치료를 받지만, 전신질환이나 기타 사정들로 인해 임플란트가 불가능한 경우 틀니 치료를 받는 환자도 여전히 많다. 실제로 국내 틀니 인구는 약 600만에 달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2명 중 1명은 틀니를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사회 진입, 틀니 건강보험 적용확대 등으로 사용자는 더욱 증가될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사용자가 늘어난 만큼 제대로 된 관리요법을 모르는 사람도 늘어나는 점이다. 잘못된 틀니 관리는 구강 건강에 위협을 가져올 수 있으며, 틀니의 곰팡이균이 입안에 감염돼 생기는 의치성 구내염이 가장 흔하다. 대한치과보철학회에서 지정한 틀니의 날(7월 1일)을 맞아 강동경희대학교치과병원 보철과 안수진 교수와 함께 틀니의 올바른 관리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틀니 곰팡이균 때문에 생기는 의치성 구내염 틀니의 잘못된 관리로 사용자가 흔하게 겪는 대표적인 구강 질환은 의치성 구내염이다. 2017년 대한치과보철학회가 틀니 사용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틀니 사용자 10명 중 7명(69.6%)이 의치성 구내염 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치성 구내염이란 틀니 내 번식된 곰팡이균이 입안이나 주변
꽃의 도시 피렌체 아르노 강가에서 태어난 단테는(1265-1321), 청년 시절부터 베스트셀러 작가요 인본주의 세상을 꿈꾼 정치가였다. 아홉 살 때 만나 첫눈에 빠진 베아트리체는, 그의 ‘놀라운 환상’을 키우고 방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일생의 뮤즈였다. 시정(市政)위원으로서 흑당·백당으로 맞서 싸우는 시정해결을 위하여 교황을 찾아간 동안, 프랑스 왕제가 피렌체를 침공하고 반대당이 집권하여 그를 추방한다. 19년 망명의 시작으로, 파리와 베로나를 거쳐 라벤나에 정착하지만(1317), 후원자 폴렌타 백작을 위한 외교여행 중 말라리아에 걸려 숨을 거둔다. 피렌체는 유럽의 인기스타인 그의 시신을 가져가려 하지만, 폴렌타는 이를 거절하고 장중한 영묘를 짓고 존경으로 모신다. 피렌체는 346년 뒤 교황까지 움직여 무덤을 열었지만, 라벤나의 수사(修士)들이 교묘하게 빼돌려 다시 안치시켰다. 그토록 그리던 고향이지만 벌금을 내고 사과하라는 귀국조건에 “정의를 외치다 고통 받은 사람이 어찌...”라며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단테. 유해를 돌려주지 않으면 영묘의 유등(油燈)값이라도 지불하게 해달라는 피렌체의 요청에, 라벤나는 마지못해 매년 성금을 받는다고 한다. Via Dan
포르투갈 기사 호세가 투덜댄다. 안도라에서 곧장 가야하는데 갑자기 길이 막혀 스페인 쪽으로 한 시간을 되돌아, 딴 길로 프랑스 국경을 넘어야 한다. 그래도 금방 쏟아질듯 한 돌산과 끝없이 이어진 산봉우리(雪山峰)는 환상적이다. 까르까송을 지나니 아를(Arles)이다. 그리스 어촌으로 시작하여 론 강이 적셔주는 광대한 평야에서 쌀을 경작하고, 케자르 때부터 중개무역항으로 번성한 고도(古都). 토사가 쌓여 제1항구의 지위를 마르세유에 넘겼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광으로 뭇 예술인들을 불러들인 곳. 여기서 대부분의 작품을 그린 고흐가 입원했던 병원이 남아있고, 노란색으로 치장한 카페 반 고흐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일명 갈리아의 로마답게 BC 1세기의 원형경기장과 원형극장이 남아 있다. 며칠을 꼭 머물고 싶은 곳. 한 시간을 달리면 엑상프로방스. 중세도시의 자취가 남은 세잔의 고향에서, 그림으로 눈에 익은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본다. 에밀 졸라의 친구(뒤에는 원수?)로서 피카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세잔의 아틀리에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사과가 가득 담긴 보자기를 샀다. 지금은 필자의 거실 테이블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다. 두 시간 거리에 영화제의 도시 칸.
중3때 처음 본 산마리노와 모나코 우표는, 그림이 투박하고 지질이 거친 우리 우표와 달리 화려한 총천연색 그라비어 인쇄였다. 동족상잔의 남침전쟁으로, 폐허 속에 헐벗은 흑백의 삶을 살아야 했던 때문일까? 팝송 노랫말처럼 그림 속에서, “머나먼 바다 건너 이상한 이름의 나라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Faraway places with strange sounding names are calling, calling me).” 후배가 제안한 작지만 아름다운(美小) 유럽 네 나라 여행에 선뜻 동참한 이유다. 스페인 한복판 마드리드에서 성지순례길(Camino de Santiago)을 따라 북상한 다음, 빌바오에서 90도 우회전하여 안도라를 들려,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일로 동쪽으로(아를-엑상프로방스-칸-생폴드방스-니스-모나코) 달린다. 이탈리아에 들어서면 친퀘테레에서 U 턴 하듯 산마리노-라벤나-베로나-코모-벨린쪼나를 끝으로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한다. 버스 이동만 모두 39시간, 장장 3,230Km의 장거리 ‘Coach-tour’다. 첫 번째 멈춘 부르고스는 마드리드에서 북으로 245Km 떨어진 순례코스의 하나. 스페인 3대 성당 중 가장 큰, 고딕의
“도올 김용옥은 방대한 불경 중에 ‘부모은중경’을 한 시간 교재로 선택했고, 강의내용은 본문의 해설 외에 덜고 더함이 없었다.” 경기치원 지(齒苑 誌; 2003. 4)에 기고한 칼럼 I. O. U.의 한 대목으로, 이는 네 번째 칼럼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첨삭(添削)이 없다 함은 칭찬이 아니라, 서당훈장이 불러주는 한문해석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그 강의는 소위 동양철학의 권위자로서 도올에 대한 필자의 신뢰가 무너지고, 도덕경을 취미로 읽은 주부로부터 주류 학자들까지 왜 그를 폄하하는가를 깨닫는 계기였다. 한때 ‘노자와 21세기’ 세권을 사서 읽을 만큼 심취했고, 공자까지는 그냥 들을 만 했는데, 종교에 들어서자 ‘수박 겉핥기’의 바닥이 드러난 것이다. 팩트를 벗어날 수 없는 이과 분야는 지식의 전달에 쫓겨, 열강은 몰라도 명강·졸강이 없다. 문과 강의를 우직한 이과교수에 맡기면, 60분 강의가 5분에 끝난다. 이 50여분 공백이 바로 도올의 렉튜테인먼트(lecture + entertainment) 무대다. 주의를 집중시켜 딱딱한 동양철학에 이해를 높이는 ‘강의의 기술’이라 하지만, 5분용을 한 시간으로 늘이려고 몇 가지 장치를 쓰고 있다. 본래 찌그러진
오월부터 일본 연호가 헤이세이에서 레이와(平成-令和)로 바뀐다. 쇼와 이후 평화의 첫 걸음까지(平 + 和), 꼬박 30년이 걸렸다. 신라 진덕여왕이 연호를 버리고 조공을 맹세한 것이, 오늘날 시진핑에게 “역사상 한국은 중국의 변방이었다.”는 헛소리의 빌미를 줄만큼, 고유 연호는 한자권 국가들에게 독립의 상징이었다. 고종이 국호 대한제국·연호 광무를 선포한지 13년 만에 순종이 국권을 잃자(융희 4년1910), 지옥 같은 500년 세월을 살아온 노비와 천민과 한양에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승려들이, 지배계층의 분노에 과연 얼마나 공감했을까? 인터넷에서 “기미 독립선언서’를 처음 읽고 감동했다”는 말에 정말로 놀랐다. 필자가 중2때엔가 전교생이 줄줄 외우던 숙제였다. 상대를 친일파로 때려잡는 패거리싸움으로 시작, 선언서 초안을 쓴 ‘육당 최남선 죽이기’를 거쳐, 어물쩍 내쳐진 것이다. 힘차고 유려한 서술보다 내용을 보자. 오천 년 역사 2천만 ‘민족’의 ‘자유’발전, 각개 ‘인격’의 정당한 발달, ‘인도적 정신’ 등을 내세우고, 조선은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하였다. 구년 전에 패망한 대한제국의 ‘황제’는 단 한 마디 언급도 없다. 일제
먼저 관행이었던 나쁜 말 두 마디를 인용할 데에 대하여 량해(諒解)부터 구한다. 다리 저는 친구를 놀리는 아이에게 엄마의 준열한 꾸짖음, “얘, 너는 문둥이(한센 씨 병)를 문둥아, 문둥아! 하고 부르면 좋겠니?” 마찬가지로 정신과 병동의 절대금기어가 “미친놈!”이란다. 사람은 천형(天刑)처럼 주어진 약점을 찌르는 막말을 삼간다. TV 다큐에서 본 뻐꾸기의 탁란(托卵)은 끔찍하지만,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더 차지하려는 다툼은 친 형제간에도 치열하다. 건강한 형제가 병약한 한 마리를 집중 공격하여 둥지에서 밀어내기도 한다. 어차피 엄혹한 생존경쟁을 견디지 못할 열성 DNA를 없애려는 자연도태요, ‘왕따의 기원’이다. 민주교육은 약자와 함께 가는 사회성을 기르자는 것인데, 어린 아이들은 아직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 평양 시내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었다는데, 패럴림픽 등 스포츠를 선전에 이용하려는 공산당 방침인지, 평양발 뉴스에 장애인이 ‘출연’하기 시작했다. 무늬만 종교인 절·교회처럼... 당과 수령을 위해 효용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도태시키는 전체주의 공산당의 생리 탓에, ‘빨갱이’라는 이름도 태어났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피와 혁명의
2012년 제18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가 된 시진핑은, 소련공산당의 몰락 원인이 궁금했다. 결론은 ‘부패와 이념의 동요’ “이 두 사회악(?)부터 척결하자.”는 그의 판단을 풀어보자. 먼저, 부패에 대하여: 첫째 삼국지를 보면 황실이 쇠하니 불 깐 내시들이 실권을 잡아, 십상시가 벼슬을 팔아먹는다. 경제가 무너지자 많은 백성들이 굶주림을 피해 황건적에 가담, 나라가 기운다. 황건적토벌에 공을 세운 영웅호걸에게 벼슬을 제수하는데 또 뇌물이다. 가짜 유공자와 무능한 지방관을 가려내려고 파견한 독우(督郵) 역시 손부터 내민다. 참다못한 장비가 독우를 늘씬하게 두들겨 팬 뒤, 의형제 트리오는 벼슬을 버리고 떠난다.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쳐 수·당·송·원·명·청 모두가, 등장인물만 다를 뿐 똑 같은 시나리오를 반복한다. 몇 천 년 역사라면 ‘부패의 DNA 설’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세월 아닌가? 둘째 장사의 귀재라는 화상(華商)들의 금과옥조가 상불염사(商不厭詐)다. 장사가 ‘속임수’를 꺼리지 않으니 가짜 계란에 가짜 백신이 나돌고, 수정방 술 한 병 값이 몇 만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셋째 중국 후룬(胡潤)연구소에 의하면, 세계 $10억 부동산부자 239명
칼럼 ‘막가파(180802)’는 대선당시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부르짖던, 트럼프 모자에서 본 이니셜 MAGA의 된 발음에서 시작되었다. 동맹국들을 미국에 빨대 꽂고 사는 기생충 내지 미국의 서민·노동자를 가난하게 만든 주범으로 몰아 대선에서 승리한 것 까지는 좋다. 그러나 취임 후에도 누명쓴 우방에 대한 분노를 연료삼아, 국가운영 철학의 빈곤을 감추려함은 비겁하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단순악용이 아니라 그의 소신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심한 ‘남의 탓’은 ‘피해망상(Paranoia)을 의미한다. 단편소설 한편 써보자. 깊은 밤까지 졸라 밀린 집세를 받아 돌아오는 도날드 소년에게, “내일 아침 우리아기 우유 값이에요!”라며 애걸하던 엄마의 눈물이 떠올랐다면... 누가 쫓아와서 뒤통수를 갈기거나, 하늘에서 무엇인가 번쩍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병적인 신념으로 출발한 정책은 반드시 역효과로 보답을 받는다. 보복관세를 매겼더니 오히려 무역적자가 늘어나지 않던가?. 부메랑 또는 누를수록 반발이 거센 용수철처럼... 소설 ‘추악한 미국인’은 베스트셀러였다(Lederer & Burd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