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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빈 수레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36>

 

   휴전 전후 철없던 코흘리개 시절, 동네아이들 간에는 병정놀이가 유행이었다.
 구멍가게마다 널렸던 장난감 계급장을 사서 달고, 양키모자는 신문을 접어서 썼다.
 계급순서에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어서, 대략은 장비(?)를 척척 사주는 ‘있는 집’ 아이 우선이었다.  동물세계에서 외적방어는 수컷의 몫이기에, 남자아이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소방관 또는 군인’이라고 대답하면, 그 사회의 앞날은 밝다.  대한민국이 과연 그럴까?  아무리 우스개라도 희망 일호가 ‘임대 주(賃貸主)’라던가?
 전후(前後)에 어렵던 시절은 그랬다 쳐도, 중진국이라는 오늘날 그 옛날 천민(賤民) 의식이 오히려 더 증폭되었다면, 그야말로 ‘헬 조선’을 증명하는 인증서 아닐까?
 어쨌든 군 제복에 대한 남자들의 로망은 원초적이어서, 마니아급 수집가가 꽤 많은데, 특히 이차대전 당시 독일군장이 인기라고 한다.  전 세계를 상대로 두 차례나 대전을 치른 깡(?)과 전투능력 덕분도 있지만, 영화에서 보는 군복은 그자체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멋지다.  전쟁은 ‘멋’과는 거리가 먼 지옥이요, 15세 아이에서 65세 노인까지 남자인구 1/3 을 동원하여 8백만 전사자를 낸 히틀러는 악마였지만, 독일군(軍: Wehrmacht)이 근검하고 용맹하며 잘 싸운 사실만은 틀림이 없다.

 

   나폴레옹 당시 화려한 제복은 눈에 쉽게 띄지만, 강선 없는 소총은 명중률이 낮아, 위세 과시용 직립전진에 별 지장이 없었다.  남북전쟁 때 라이플이 나오자 전투복은 위장용 색깔로 바뀐다.  자코페티의 다큐 ‘몬도카네(1962)’에 “제복만 화려한 연전연패의 이탈리아 군대”라는 자학적인 멘트가 나온다.  나라가 늙은 탓인지 지난 한 세기 동안 이탈리아가 승리한 유일한 나라는, 창과 몽둥이로 무장한 에티오피아뿐이었다.  그래서 “화려한 군복과 전투력은 반비례한다.”는 격언이 있다.
 신생 아프리카나 바나나 공화국 군복은 세계에서 사치 넘버원이다.  과거에 한국군 초급장교는 연한만 차면 자동진급 했다.  낮은 연봉에 대한 보상차원이라던가.
 70년대 초 소령 모자 채양에 새똥이 깔렸다(금실로 수놓은 월계수 잎).  해군소령(Lt. Commander)은 함장이 아니라 정장(艇長) 급인데, 중견장교의 상징인 금실은 일종의 인플레였다.  5공 때 장군 모자 테두리에 또 새똥을 두른다.  정치군인 판에서 제복은 사치로 흐르고 전투력은 폭락한다.  혁신차원에서 원상회복되었으면 한다.
 피렌체에서 오페라 아리아 중에 가장 선율이 아름답다는 ‘O mio babbino caro’(푸치니)의 베키오 다리를 거닐고, 이어 가죽제품 점이 밀집된 성당 앞 골목에 갔다.
 고를 것도 없이 어디나 품질이 뛰어나고 값은 놀랍도록 저렴하다.  세계 명품의 40%가 이탈리아제라는 말을 실감한다.  제국 이후 십여 개 나라로 갈라져 살아온 역사와, 이탈리아국민에게 2차 대전은 히틀러와 손잡은 ‘두체(무솔리니)의 전쟁’이었음을 감안하면, 연전연패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실팍하고 멋진 제품과 맛깔 나는 파스타에 와인을 만들어내는, 꾸밈없는 그들의 저력에 놀라고 감탄한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법규를 어기고 공관 리모델링에 4억7천여 만 원을 전용(轉用)했다고 한다.  고등법원장과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3계급을 건너뛰니 어리버리 해진 탓일까?  설령 전용이 아니라 법규에 맞는 공사일지라도, 전임자는 구속 상태요 판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 다니는 판국에, 사법부 수장이 사치스러운 겉치장에 공을 들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한가?  난데없는 벼락출세에 속이 헛헛해진 정치군인들이 보이던 이상행동을 닮았다.  옛 말 그른 데가 없다.
 철없는 벼락부자가 집 단장에 바쁘고, 늙은 기생 분칠이 두껍다고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뜻이다.  행여나 ‘정치 판사’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