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2016)’를 보면서 몇 번 울컥했다. 딴따라시절부터 우리 연예계는 곡마단 단막극 ‘홍도야 우지마라’나 ‘눈물의 여왕 전옥’ 등 최루성 드라마로 잔뼈가 굵었다. 절체절명의 공포 속에서 내 목숨보다 서로를 더 아끼는 가족애(愛),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에 뛰어드는 작지만 위대한 영웅들. 대형 재난영화답게, 주연보다 정진영 나문희 등 베테랑급 조연진과 군중을 정밀하게 지휘한, 박정우 감독의 오케스트라는 감동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진 팬들은, 김영애씨의 열연에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투자한 ‘황토팩’ 사업에 1,700억 매출의 대박이 터지며 순항했지만,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소비자고발 프로(이영돈 PD, 2007) 한방에 도산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거대언론을 상대로 피 마르는 법정투쟁 중에 사업파트너였던 남편과 이혼, 가정파탄에 건강마저 잃는다. 결국 보도내용은 1심에서 ‘허위’로 밝혀져 일억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상고심의 해석은, “명예훼손 행위가 공공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였고(2012), 그해에 췌장암 수술을 받는다. 억장이 무너지고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연기의 열정을 불태우고 갔
처음 본 봉준호 감독 영화는 ‘괴물’이었다(칼럼; 괴물과 퀴즈, 2006. 8). 개봉 2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보도에 이끌려 영화관을 찾았다. 스크린과 좌석 수의 독점(각각 37%와 68%)은 논외로 하고, 필자의 세 가지 퀴즈를 검토해보자. 첫째 괴물의 탄생 원인은?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 군무원 맥팔랜드가 시신 방부제 포르말린을 한강에 방류한 탓이다. 독성이 비슷한 크레솔은 포르말린 화합물로서, 희석하여 검진기구 소독용으로 많이 쓴다. 둘째 괴물을 쓰러뜨린 세 가지 무기는? 운동권의 주 무기인 화염병 신나(thinner)와 쇠파이프다. 셋째 마지막에 조사결과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 연구소(CDC) 발표의 의미는? “패망한 이라크에서 핵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를 패러디하여, “북 핵은 없다”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때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시대였으니까. 일본의 전설 ‘고질라(1954)’에 비해 날렵한 괴물의 동작은 CG 덕분이지만 과연 디테일하고, 아쉽게 시간패 아픔을 간직한 양궁선수 배두나의 활약은 코믹하고도 뭉클하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두 시간짜리 ‘이념 찬양의 간접광고(PPL)’만 본 듯한 씁쓸함도 없지 않았으리라.
박정희의 창씨개명은 다카키마사오(高木正雄), 일제 말 학교입학과 취직에 중요 절차였다. 굳이 그 이름을 부활시킨 수법은, ‘친일파-매카시즘’이 생업인 자들이 상대를 “거리낌 없이 죽여도 되는 괴물”로 만드는 세뇌작업 첫 단계다. 만주·일본 육사와 만주근무도 그렇다. 일제 36년, 한반도에 현대적 전문 군사지식·기술을 익힐 기관이나 방법이 있었는가? 만주 특설대를 악용한 해석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필자는 그를 인간적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뱀띠답게 차가운 성격도 비 호감 포인트요, 특히 육 여사 서거이후 드러낸 탐닉과 엽색의 행각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그가 그린 ‘조국근대화’를 위한 웅대한 밑그림과, 끈질기게 추진한 열정·끈기·결단력은, 5천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뻥튀기’도 따라오지 못할 폭발적인 성장 속에, 땅 짚고 헤엄치는 그 흔한 축재(蓄財)도 하지 않았다. 가히 반만년 역사의 위인 반열에 오를만하다. 남침 전과자인 무장집단과 맞서서 삼선개헌·유신의 무리를 거듭하면서, 그는 적과 피해자를 양산하였다. 미국원조에 매달려 굶기를 밥 먹듯(絶糧) 하던 GNP $80 시절부터 경제가 몇 백배로 수직상승하자, 소외된 계층의
본과 3년 때 명동 서점에서 페렌바크의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을 샀다(1965). 깨알 같은 본문만 장장 720여 쪽을 닷새 만에 읽었을 만큼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최근 번역본이 나왔다기에 찾아내보니, 너무 낡아 다시 읽기는 포기했다. 첫째 궁금증은 처음 도착한 스미스 부대 4백여 명이 왜 사흘 만에 반 토막이 났을까? 이차대전 후 대폭 축소된 미 육군. 맥아더 사령부에는 사실상 전투 병력이 없었다. 타자수와 취사병 등으로 급조된 부대는 오합지졸(Ragtag Outfit). “당신들 모습만 보아도, UN 결의에 따라 외국군이 왔다는 사실에, 양국의 전투행위는 끝날 것이다.” 즉 경찰행위(Police Action)일 뿐이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지시를 받고 중화기도 없이 파견되어, 이름만 거창한 스미스부대(Task Force Smith)였다. 둘째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행방이다. 예상 못한 기습에 무너진 책임을 지고 해임된 Fat Chae(유도선수 출신 육중한 체격 탓)는, 사실상 백의종군 중에 하동전투에서 전사한다. 한밤에 텐트 밖이 소란하자 무모하게 권총을 뽑아들고 뛰어나가, “누구야!”하고 외치는 순간 집중사격을 받아 쓰
“현대전의 승패는 병참(Logistics)이 좌우한다.” 사막의 여우 롬멜의 명언이다. 근대 이전에는 농업생산성 1.5배가 넘으면 필승이었다. 전력이 약했던 유방은 승리의 공을 총사령관 한신보다 보급 담당 소하에게 돌렸다. 최근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독일군은 전상보다 아사나 병·동사자(餓死, 病·凍死 者)가 더 많았을 정도요, 생산·이동체계가 열악하고 인명에 무관심한 스탈린의 전체주의 공산국 소련은 두 배가 훨씬 넘는 것으로 본다. 좌경학자들은 이차대전 승리의 주역을 소련으로 포장한다. 소련국민 2,700만이 죽어, 독일·서방연합군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이다. 서부전선의 교착상태 해소,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하여, 처칠·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동부전선의 강력한 공세(Offensive)를 강청한 것은 맞는다. 그러나 넓은 영토의 농민 동원도 어렵고, 문맹이 집총 대오를 갖추기까지 훈련도 힘들며, 먹이고 무장시킬 능력이 없었다. 스탈린은 루즈벨트에게 간난 아기 젖 보채듯 군수물자를 요구한다. 양대 전선에서 바쁜 미국의 생산에 한계가 있고, 북해항로에서 험난한 파도와 날씨, 잠수함과 싸우며 월 50만 톤을 수송하는 악전고투는, 매클레인의 소설 ‘HMS
대영제국의 식민지 삼각무역은,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노예들이 서인도제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 설탕은 인도 산 면화로 옷감을 짜는 아일랜드·웨일스인인 공장 노동자들에게 연료 주입하듯 먹이는 식의 흑 역사였다고 한다. 제품의 소비시장은 다시 식민지였으니, 상선은 항로마다 노다지요 산업혁명은 엄청난 부를 낳았으며, 이 사이클을 돌리는 두뇌·동력과 윤활유는 바로 거대자본이었다. 독일 경제학자 엥겔스는 아버지의 맨체스터 방적공장에서 일하면서, 권리도 없이 열악하게 사는 영국노동자의 삶을 목격하고, 이를 글로 발표한다(1845). 자신도 아버지에게 얹혀 살면서도 일생의 동지 마르크스를 먹여 살렸으니, 제 손으로 벌어먹지 못한 원조 ‘백수(白手) 운동권’이다. 부의 축적과 여유 즉 가치창출은 노동자의 공이며, 자본가는 이를 착취할 뿐이라는 것이 쉽게 푼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이라면, 이는 거대한 사이클은 보지 못하고 노동 현장만 살핀 피상적인 인식을 근거로, 하숙집에 틀어박혀 관념론적으로 상상한 ‘장님 코끼리 더듬기’식 결론이 아닐까? 처칠은 음흉한 스탈린의 영토야욕과 세계 공산화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막으려하지만, 평생 지병으로 탈진한 루즈벨트는 관심이 없었고,
문명의 기원을 조손(祖孫)관계에서 찾은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다. 농경을 익혀 삶에 여유가 생긴 인간, 노동에서 풀려나 어린 손자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 틈틈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흘러간 이야기들. 바로 교육과 역사의 시작인 스토리텔링이다. 중구난방의 얘기들이 정돈되면서 신화와 역사가 탄생한다. 제정(祭政)일치의 원시사회에서 신화는 무당에게 힘의 원천이었고, 공동체가 국가로 진화하면서 역사는 통치권을 뒷받침하는 무기가 된다. 역사상 개국(開國) 영웅은 반드시 탄생설화를 갖고 있다. 허황된 중국식 과장은 기본이요,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좌파 국가의 ‘제2의 천성’이 ‘역사 위조’임을 예언하고, 전담부서 이름을 진실성(Ministry of Truth)이라고 비틀었다. 공개된 옛 소련 문서를 들추지 않아도, 명백한 김일성 남침을 북침이라고 우기는 새빨간 거짓말은, 그중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다. 작은 도시국가의 집단 그리스는 철학과 시민을 위한 경기장과 연극이 있는 원조 민주국가였다. 지중해 중계무역과 수많은 노예의 고통 위에 쌓은 여유 덕분이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던 로마시대, 귀족들은 다투어 그리스 가정교사를 두었다. 지적 배고픔을 달래려는
핸드폰이 울린다. “광수냐? 그쪽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가 있대. 뉴스에 떴으니, 운전 조심해.” “말도 마, 역주행이 한두 놈이 아니야, 수백 대가 넘어!” 이쯤 되면 누가 역주행하고 있는지 짐작할 게다. 날카로운 해학의 대명사 박광수씨의 만화다. 어느 독재자가 반대 목소리를 잡아넣다보니 경찰청장과 저만 남았다. 온 국민이 수감 중이라면, 정작 갇혀있는 죄수는 나 아닌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집권자들은, 저들 한족만이 빛날 화자 중화(漢族·中華)요 온 사방이 오랑캐(東夷·西戎·南蠻·北狄)라고 하였고, 그 선민의식은 스스로를 자폐증과 서구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시켜, 청조의 몰락을 자초하였다. 사방천지가 오랑캐라면, “혹시 내가 바로 오랑캐?”라는 의문을 품어볼 수는 없었을까? 문제는 실용주의를 택한 덩샤오핑이 박정희식 개발모델을 좇아, GDP $5천에 세계2위의 강국으로 발돋움한 지금도,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중화사상에 공리자영(共理資營: 공산주의 이념에 자본주의 경영)을 덧칠한 괴물은, 역사속의 온건한 절충사상(中體西用)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 몽-대국굴기-일대일로 해가며 아무리 변성명 한들, 주변국들을 중국의 역참(驛站)이나 해
네 번째 작은 나라는 스위스·오스트리아 사이의 리히텐슈타인. 금년에 3백주년을 맞은 이 공국(Principality of Liechtenstein)은, 인구 38,000에 강화도 절반 크기지만, GDP는 세계 1위인 $17만. 금속가공과 우표판매가 주수입이라지만, 알짜배기는 조세피난처(Paper Company)다. 수집가의 성지답게 우표박물관이 뛰어난다. 1719년 신성로마제국 찰스 6세가 만들어, 4년 뒤 제국의회에 한 자리(一席) 준 것을 보면, 다분히 정치 냄새가 난다. 중세에서 근세까지 유럽의 마녀사냥·탄압·전쟁이 종교의 이름으로 벌어졌고, 전쟁원인이 황제와 교황의 세력다툼과 왕위계승이었음을 깨닫는다. 국방과 외교 통화는 스위스가 맡고, 독일어를 쓴다. 식당 Adler Vaduz의 중식(中食) 라지아니 요리는 그저 그렇다. 음식에 굳이 등수를 매긴다면 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스페인의 순서다. 스페인 음식은 소금밭이다. 귀국 행 공항소재지는 상업중심지 취리히. 리마트 강가에서 자유 시간 겨우 두 시간. 2000년 역사의 니더도르프 골목상가와 세 성당을 둘러보았다. 본시 수녀원이었다가 성당으로 다시 교회로 탈바꿈한 Frau-Muenster. 원본이
꽃의 도시 피렌체 아르노 강가에서 태어난 단테는(1265-1321), 청년 시절부터 베스트셀러 작가요 인본주의 세상을 꿈꾼 정치가였다. 아홉 살 때 만나 첫눈에 빠진 베아트리체는, 그의 ‘놀라운 환상’을 키우고 방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일생의 뮤즈였다. 시정(市政)위원으로서 흑당·백당으로 맞서 싸우는 시정해결을 위하여 교황을 찾아간 동안, 프랑스 왕제가 피렌체를 침공하고 반대당이 집권하여 그를 추방한다. 19년 망명의 시작으로, 파리와 베로나를 거쳐 라벤나에 정착하지만(1317), 후원자 폴렌타 백작을 위한 외교여행 중 말라리아에 걸려 숨을 거둔다. 피렌체는 유럽의 인기스타인 그의 시신을 가져가려 하지만, 폴렌타는 이를 거절하고 장중한 영묘를 짓고 존경으로 모신다. 피렌체는 346년 뒤 교황까지 움직여 무덤을 열었지만, 라벤나의 수사(修士)들이 교묘하게 빼돌려 다시 안치시켰다. 그토록 그리던 고향이지만 벌금을 내고 사과하라는 귀국조건에 “정의를 외치다 고통 받은 사람이 어찌...”라며 자존심을 굽히지 않은 단테. 유해를 돌려주지 않으면 영묘의 유등(油燈)값이라도 지불하게 해달라는 피렌체의 요청에, 라벤나는 마지못해 매년 성금을 받는다고 한다. Via D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