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2016)’를 보면서 몇 번 울컥했다. 딴따라시절부터 우리 연예계는 곡마단 단막극 ‘홍도야 우지마라’나 ‘눈물의 여왕 전옥’ 등 최루성 드라마로 잔뼈가 굵었다. 절체절명의 공포 속에서 내 목숨보다 서로를 더 아끼는 가족애(愛),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에 뛰어드는 작지만 위대한 영웅들. 대형 재난영화답게, 주연보다 정진영 나문희 등 베테랑급 조연진과 군중을 정밀하게 지휘한, 박정우 감독의 오케스트라는 감동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진 팬들은, 김영애씨의 열연에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투자한 ‘황토팩’ 사업에 1,700억 매출의 대박이 터지며 순항했지만,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소비자고발 프로(이영돈 PD, 2007) 한방에 도산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거대언론을 상대로 피 마르는 법정투쟁 중에 사업파트너였던 남편과 이혼, 가정파탄에 건강마저 잃는다. 결국 보도내용은 1심에서 ‘허위’로 밝혀져 일억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상고심의 해석은, “명예훼손 행위가 공공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였고(2012), 그해에 췌장암 수술을 받는다. 억장이 무너지고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연기의 열정을 불태우고 갔다. 고의건 아니건, 가짜뉴스를 퍼뜨린 언론에 의해 많은 피해자가 비몽사몽의 오해 속에 무너졌다. 공업용 우지·양잿물 간장·멜라민 우유·불량 만두소·광우병 소고기... 다큐처럼 공포의 팩트만 나열한 박감독의 메시지가 엔딩크레딧 직전 자막으로 나오는데, 글쎄 ‘탈원전’과의 연결고리는 통 모르겠다.
이걸 쓴 감독이나 보고 결심한 분이나 둘 다 비범한 상상력의 천재? 아니면...
전지현의 쿨 한 매력이 압권인 영화 ‘암살’을 본 뒤, 월북하여 장관을 지내고 남침에 공로 훈장까지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로 서훈 하자는 발상도 뜬 금 없다. 말 그대로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어 마침내 독립군 역량을 집결했다.”라는데, ‘편입생’이 뿌리가 되는 경우를 봤나? 당시에 그의 공로를 인정하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서훈하겠다면, 대한민국을 말살하려는 남침으로 3백만이 목숨을 잃고 천만의 이산가족을 낳은 6·25 전쟁에 대한 청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미 존경하는 김일성의 서훈을 받은 고인에게, ‘이중’ 서훈은 오히려 오지랖 넓은 모욕이 될 수도 있다(3년 후 숙청당함).
광복회장 김원웅은 1년 후배로, 합당을 반대한 꼬마민주당과 15대 총선 참패 후 노무현과 함께 ‘하로동선’(여름 화로 겨울 부채, 1997) 식당을 열어 때를 기다린 의지는, DJ와 노 전 대통령 당선의 씨앗이었다. 공공이익을 위한 합리적인 부탁이라면 동분서주 해결해준 일은 지금도 고맙다.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을 하겠다며, 독립운동 당시의 공을 따져야지, 뒤에 월북은 별개의 문제라는 발언 역시 신선하다.
기미독립선언문 작성자 최남선도, 반만년 역사에 빛나는 경제혁명을 성취한 박정희도, 공은 공이요 과는 과로(功·過) 보자는 폭넓은 시야를 주장한 셈이다. 백선엽 장군도 대한민국을 남침에서 구해낸 영웅·은인의 시각으로 보자. 언론·소설·영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진실과 허구를 뒤섞어 대중의 판단력을 비몽사몽 상태로 만들려면, 조어(造語)가 뛰어나야 한다. “기생충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른 여러 개의 장르’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영화가 약간 헷갈린다는 칸 심사위원장의 완곡한 표현? 성화 봉송(奉送)의 ‘봉송 커플(봉준호와 송강호)’과 ‘봉준호 + 디테일 + 전태일 = 봉테일’도 절묘한 이름 짓기(Naming)다. 기발한 워딩에는 저절로 끌리고 인간은 끌린 것에 쏠린다. 끝으로 갈갈이 3형제 박준형의 유행어로 마무리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 따라하지 말자!” ‘개그 대신에 영화’를 넣어보았다. ‘따라 쟁이’ 아이들은 새겨들을 얘기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