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봉준호 감독 영화는 ‘괴물’이었다(칼럼; 괴물과 퀴즈, 2006. 8). 개봉 2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보도에 이끌려 영화관을 찾았다. 스크린과 좌석 수의 독점(각각 37%와 68%)은 논외로 하고, 필자의 세 가지 퀴즈를 검토해보자.
첫째 괴물의 탄생 원인은?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 군무원 맥팔랜드가 시신 방부제 포르말린을 한강에 방류한 탓이다. 독성이 비슷한 크레솔은 포르말린 화합물로서, 희석하여 검진기구 소독용으로 많이 쓴다. 둘째 괴물을 쓰러뜨린 세 가지 무기는?
운동권의 주 무기인 화염병 신나(thinner)와 쇠파이프다. 셋째 마지막에 조사결과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 연구소(CDC) 발표의 의미는? “패망한 이라크에서 핵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를 패러디하여, “북 핵은 없다”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때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시대였으니까. 일본의 전설 ‘고질라(1954)’에 비해 날렵한 괴물의 동작은 CG 덕분이지만 과연 디테일하고, 아쉽게 시간패 아픔을 간직한 양궁선수 배두나의 활약은 코믹하고도 뭉클하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두 시간짜리 ‘이념 찬양의 간접광고(PPL)’만 본 듯한 씁쓸함도 없지 않았으리라.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는 절대자 앞에서 벌레처럼 무너지는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소설이다. 자식을 잃고 괴롭고 긴 세월을 보낸 뒤, 이제야 평정심을 되찾아 범인을 용서하려고 찾아갔더니, 범인은 벌써 회개하여 주님의 품 안에서 행복하다.
용서할 기회도 빼앗긴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약자의 마지막 ‘항의’였을까? 영화화 할 때(2007) 이창동은 제목을 ‘밀양’으로 바꾸고 그녀를 살려냈다.
결말이 뒤집힌 데 대하여 이청준은, “살아가는 고통이 더 클 수도 있다.”로 용인했지만 해명이 너무 군색하다. 제목이 그저 잠시 살던 주소 ‘밀양’이 된 것도 엉뚱한데, 비밀의 밀과 볕 양자에 꿰어 맞춘 영어제목 ‘Secret Sunshine’은, 비밀리에 진행된 DJ의 햇볕정책에 대한 오마주인가? 굳이 찾자면 “구석에 비치는 햇볕 한 조각에도 주님의 뜻이 있다.”는 대사인데, ‘Miryang’하면 그만일 지명이 다시 ‘비밀의 햇볕’으로 둔갑한 것. 전도연은 밀양으로 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문을 두드린 지 20년, 봉 감독은 드디어 칸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이다.
프랑스는 권위주의 나라, 종교개혁을 패스하고 고위공무원은 예나 출신일색이며 ‘미투’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스크린 쿼터 제의 창시자로, 한 번 스타이면 영원한 스타요, 오랑우탄을 닮은 70세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청춘 미남 역할을 연기한다.
그래서 ‘문화담당 장관’출신 감독의 의미는 각별하고, 이창동의 칸 사랑은 쌍방향으로 열매 맺어, 칸은 한국영화의 국제무대 진출 창구가 되었다. 그야말로 기립박수를 받을 외교적 성공이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기생충’은 다소 실망이었다.
우선 성격이 딴 판인 영화 두 편을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재 몰입이 꽤 껄끄럽다.
둘째 네 식구가 범죄적인 수법을 통하여 차례로 한 가정에 들어가, 제목대로 기생(奇生)하면서, “냄새가 난다.”는 부부 간 대화를 ‘엿듣고’ 분노하는 설정도 잘 와 닿지 않는다. 셋째 정원 파티에서 다시 그 말을 듣는 순간 격분, 주인을 찌르는 운전기사. 기생충이 의식적으로 숙주를 살해하는 행위가 상식적이지 않고, 우발적이라면 빈부격차 문제를 제기한다는 작품 의도와 모순이 된다. 핸드 헬드 카메라처럼 달리고 흔들리면서도 초점을 유지한 촬영은 최상급이다. 특히 계단과 가파른 내리막 아스팔트를 거쳐 하수구 반지하방까지 흘러내리는 ‘빗물의 기행’을 집요하게 따라간 장면은 압권이다. 이념찬양 소도구의 간접광고에서 성장하여, 인류의 보편적인 양극화 문제로 업그레이드중인 봉 감독의 문제의식은 인정하고 주목한다.
글: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