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특히 소아 환자의 경우 성인보다 치과는 더 무섭고 두려운 곳입니다. 소아 환자의 재미있고 즐거운 치과 경험은 앞으로의 치과에 대한 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이 시기는 평생의 구강 관리 습관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여 소아치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진료실에서 활짝 웃어주는 아이들의 해 맑은 웃음을 볼 때, 아이들이 수줍게 꺼내서 주는 ‘선생님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소아치과는 출생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전반적인 구강 조직의 건강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과입니다. 소아환자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최소화하도록 항상 노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치아의 성장과 발육, 치아우식증의 예방 및 치료, 부정교합 관리, 외상 치료, 소수술, 진정요법, 장애인치과 등의 분야를 진료하고 있습니다. 유치는 빠질 치아라서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충치가 생기고, 충치 때문에 생긴 뿌리 아래 염증이 영구치가 자리 잡고 있는 곳까지 파고들게 되면 영구치 자체가 약하게 만들어지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나오게 되
가족을 식구(食口) 즉 ‘먹는 입’이라고 한다. 중국의 궈런(口人)보다 밥 식자가 더 솔직한 ‘먹여 살릴 입’이다. 조선조 후반 200여 년간은 농업 생산성이 조금도 향상되지 못하여, 농민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먹고 살기 어려웠다. 70년대까지도 농촌에서는, 입 하나를 줄이겠다고, 어린 딸을 부자 집에 수양딸로 보내곤 했다. 말이 좋아 딸이지 굶기지나 말라고 떠맡긴 어린 식모였다. 수양모가 착하면 십여 년간 집안일에 부린 뒤, 혼수를 찔끔 얹어 짝을 지워주었다. 펠리니 감독의 영화 ‘길’을 보면, 이차대전 후 어려운 이태리 농촌에서, 부모가 돈 몇 푼에 두 딸을 차례로 잠파노에게 넘긴다. 1943년 일본군 5,000명 모집에 조선인 30만 명이 지원(志願)했고, 이승만은 승전국은 고사하고, ‘일본 지원국(支援國) 명단’에서 한국 이름을 빼는 데에 애를 먹었다. 국가 총동원령 하의 배급사회에서 군수공장 노동자를 빼고 일자리가 어디 있었을까. 일본 남자는 몽땅 전쟁터에 나간 노동현장에서, 열악한 전시체제하의 노동조건에 불구하고, 징용은 총알받이를 면하면서도 입에 풀칠할 탈출구였다. 파산한 패전국 기업들이 밀린 임금·퇴직금을 깔끔히 마무리 못했던 측면도 있다. 1차
중학교 때 ‘공민(公民)’은 사회과목의 원조로, 내용은 기본 법률상식과 공중도덕이었다. “국회의 동의를 받은 국제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는 구절을 기억한다. 국가 간 신뢰와 안정을 위하여, 어느 나라 헌법에도 이런 쌍무 조항이 있다. 어릴 때 잘 배워야 히틀러 같은 돌 아이가 나중에 딴 소리를 못한다. 조선조가 대물림한 가난에 일제 수탈과 전쟁의 포화까지 덮쳐, 미국 원조로 연명하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살길은, 미국의 권고요 박정희의 소신인 한일국교정상화와 경제협력이었다. 1965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에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 타결되고, 경제협력 협정으로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관 3억, 총 8억 달러를 제공받는다. 그해 12월에 발효된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에는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 확인”, 제3조는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이 안 되면 30일 이내에 제3의 중재 위원... ”으로 명시 되어있다. 조약문에 이중삼중으로 안전망을 둘렀지만,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또다시 한일관계에 걸림돌로 떠올랐다. ‘65 한일기본조
몇 달 전 대전예술의전당 후원회원 50여명은, 65년 만에 한동일씨 영구귀국과 한국 시민권 회복을 축하하는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1954년 당시에 줄리아드에 가는 피아노 신동 한동일의 뉴스는, 휴전 직후 각박한 우리 삶에 밝은 위안이었다. 필자 두 살 위의 또래였기에 기억에 더 깊이 새겨졌으리라. 음악가는 연주로만 말한다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 천진한 어린이의 말투로 난해한 클래식을 쉽게 풀어주는 ‘금난새 식 콘서트’의 인기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에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거쳐, 비록 하이라이트지만, 오페라(La Traviata))에 이르렀다. 근엄한(?) 백발의 금노상 지휘자보다 6세 맏이 형이면서도, 더 젊어 보이는 금난새의 미소 띤 동안(童顔)이 만들어낸 변화로, 클래식 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참신한 시도다. 지난 8월 18일 한동일씨의 ‘나의 삶과 피아노’ 공연도, 축복 속에 8순을 눈앞에 둔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감사와 추억의 말씀’을 가득 담은 감동의 ‘금난새 식’ 콘서트였다. 제1부는 슈베르트 즉흥곡 1, 3번으로, 인생의 추수기를 맞은 노인의 감사기도다. 공산치하에서 빈손으로 쫓겨난 흥남시절 회고담으로
영화 ‘판도라(2016)’를 보면서 몇 번 울컥했다. 딴따라시절부터 우리 연예계는 곡마단 단막극 ‘홍도야 우지마라’나 ‘눈물의 여왕 전옥’ 등 최루성 드라마로 잔뼈가 굵었다. 절체절명의 공포 속에서 내 목숨보다 서로를 더 아끼는 가족애(愛),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에 뛰어드는 작지만 위대한 영웅들. 대형 재난영화답게, 주연보다 정진영 나문희 등 베테랑급 조연진과 군중을 정밀하게 지휘한, 박정우 감독의 오케스트라는 감동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진 팬들은, 김영애씨의 열연에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투자한 ‘황토팩’ 사업에 1,700억 매출의 대박이 터지며 순항했지만, “중금속에 오염됐다.”는 소비자고발 프로(이영돈 PD, 2007) 한방에 도산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거대언론을 상대로 피 마르는 법정투쟁 중에 사업파트너였던 남편과 이혼, 가정파탄에 건강마저 잃는다. 결국 보도내용은 1심에서 ‘허위’로 밝혀져 일억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상고심의 해석은, “명예훼손 행위가 공공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였고(2012), 그해에 췌장암 수술을 받는다. 억장이 무너지고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연기의 열정을 불태우고 갔다.
처음 본 봉준호 감독 영화는 ‘괴물’이었다(칼럼; 괴물과 퀴즈, 2006. 8). 개봉 21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보도에 이끌려 영화관을 찾았다. 스크린과 좌석 수의 독점(각각 37%와 68%)은 논외로 하고, 필자의 세 가지 퀴즈를 검토해보자. 첫째 괴물의 탄생 원인은?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 군무원 맥팔랜드가 시신 방부제 포르말린을 한강에 방류한 탓이다. 독성이 비슷한 크레솔은 포르말린 화합물로서, 희석하여 검진기구 소독용으로 많이 쓴다. 둘째 괴물을 쓰러뜨린 세 가지 무기는? 운동권의 주 무기인 화염병 신나(thinner)와 쇠파이프다. 셋째 마지막에 조사결과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 연구소(CDC) 발표의 의미는? “패망한 이라크에서 핵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를 패러디하여, “북 핵은 없다”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때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시대였으니까. 일본의 전설 ‘고질라(1954)’에 비해 날렵한 괴물의 동작은 CG 덕분이지만 과연 디테일하고, 아쉽게 시간패 아픔을 간직한 양궁선수 배두나의 활약은 코믹하고도 뭉클하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두 시간짜리 ‘이념 찬양의 간접광고(PPL)’만 본 듯한 씁쓸함도 없지 않았으리라. 이청준의
박정희의 창씨개명은 다카키마사오(高木正雄), 일제 말 학교입학과 취직에 중요 절차였다. 굳이 그 이름을 부활시킨 수법은, ‘친일파-매카시즘’이 생업인 자들이 상대를 “거리낌 없이 죽여도 되는 괴물”로 만드는 세뇌작업 첫 단계다. 만주·일본 육사와 만주근무도 그렇다. 일제 36년, 한반도에 현대적 전문 군사지식·기술을 익힐 기관이나 방법이 있었는가? 만주 특설대를 악용한 해석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필자는 그를 인간적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뱀띠답게 차가운 성격도 비 호감 포인트요, 특히 육 여사 서거이후 드러낸 탐닉과 엽색의 행각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그가 그린 ‘조국근대화’를 위한 웅대한 밑그림과, 끈질기게 추진한 열정·끈기·결단력은, 5천년 역사에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뻥튀기’도 따라오지 못할 폭발적인 성장 속에, 땅 짚고 헤엄치는 그 흔한 축재(蓄財)도 하지 않았다. 가히 반만년 역사의 위인 반열에 오를만하다. 남침 전과자인 무장집단과 맞서서 삼선개헌·유신의 무리를 거듭하면서, 그는 적과 피해자를 양산하였다. 미국원조에 매달려 굶기를 밥 먹듯(絶糧) 하던 GNP $80 시절부터 경제가 몇 백배로 수직상승하자, 소외된 계층의 불평도 그
제 1회 한·중·일 젊은 치주과학 연구자 교류회가 7월 21일 중국 선양 마리팀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2015년부터 작년까지는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한·중 젊은 치주과학 연구자 교류회로 진행되어 오다 올해부터 일본이 합류하여 한·중·일 3개 국의 젊은 치주 연구자들이 교류하는 행사로 발전하였다. 올해 교류회에는 대한치주과학회 김남윤 부회장님과 국제실행이사를 맡고 계신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치주과 김현주 교수님이 임원 자격으로 참석하였고, 서울대학교치과병원 치주과 이정원교수님과 부산대학교 치주과 김현주 교수님 그리고 연세대학교 치주과 연구강사로 재직 중인 나는 발표자로 참석하였다. 매년 교류회 행사에 함께 하셨던 신형식 (재)대한치주연구소 이사장 겸 원광대학교 치주과 명예교수님도 올해 행사에 참석하였다. 행사가 진행된 중국의 선양은 랴오닝성(省)의 성도(省都)로, 역사적으로는 잠시 고구려의 영토였던 적도 있는, 동북 3성중에 가장 큰 도시이며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도시이다. 실제로도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 남짓의 시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였으나, 그 곳으로의 여정이 모든 이들에게 편안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교류회에 참가하는 일행 6명
본과 3년 때 명동 서점에서 페렌바크의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을 샀다(1965). 깨알 같은 본문만 장장 720여 쪽을 닷새 만에 읽었을 만큼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최근 번역본이 나왔다기에 찾아내보니, 너무 낡아 다시 읽기는 포기했다. 첫째 궁금증은 처음 도착한 스미스 부대 4백여 명이 왜 사흘 만에 반 토막이 났을까? 이차대전 후 대폭 축소된 미 육군. 맥아더 사령부에는 사실상 전투 병력이 없었다. 타자수와 취사병 등으로 급조된 부대는 오합지졸(Ragtag Outfit). “당신들 모습만 보아도, UN 결의에 따라 외국군이 왔다는 사실에, 양국의 전투행위는 끝날 것이다.” 즉 경찰행위(Police Action)일 뿐이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지시를 받고 중화기도 없이 파견되어, 이름만 거창한 스미스부대(Task Force Smith)였다. 둘째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행방이다. 예상 못한 기습에 무너진 책임을 지고 해임된 Fat Chae(유도선수 출신 육중한 체격 탓)는, 사실상 백의종군 중에 하동전투에서 전사한다. 한밤에 텐트 밖이 소란하자 무모하게 권총을 뽑아들고 뛰어나가, “누구야!”하고 외치는 순간 집중사격을 받아 쓰러졌다
“현대전의 승패는 병참(Logistics)이 좌우한다.” 사막의 여우 롬멜의 명언이다. 근대 이전에는 농업생산성 1.5배가 넘으면 필승이었다. 전력이 약했던 유방은 승리의 공을 총사령관 한신보다 보급 담당 소하에게 돌렸다. 최근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독일군은 전상보다 아사나 병·동사자(餓死, 病·凍死 者)가 더 많았을 정도요, 생산·이동체계가 열악하고 인명에 무관심한 스탈린의 전체주의 공산국 소련은 두 배가 훨씬 넘는 것으로 본다. 좌경학자들은 이차대전 승리의 주역을 소련으로 포장한다. 소련국민 2,700만이 죽어, 독일·서방연합군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이다. 서부전선의 교착상태 해소,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하여, 처칠·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동부전선의 강력한 공세(Offensive)를 강청한 것은 맞는다. 그러나 넓은 영토의 농민 동원도 어렵고, 문맹이 집총 대오를 갖추기까지 훈련도 힘들며, 먹이고 무장시킬 능력이 없었다. 스탈린은 루즈벨트에게 간난 아기 젖 보채듯 군수물자를 요구한다. 양대 전선에서 바쁜 미국의 생산에 한계가 있고, 북해항로에서 험난한 파도와 날씨, 잠수함과 싸우며 월 50만 톤을 수송하는 악전고투는, 매클레인의 소설 ‘HMS U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