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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무·정책

그 자리에서라면 누구라도 그랬을까?

죽느냐 사느냐, 0.1 포인트의 전쟁

5월 31일, 법적 시한은 이날 자정이다. 수가협상에 나선 5개 단체가 모두 이 시간 안에 타결이든 결렬이든 결론을 내야 한다. 때문에 밤 9시를 지나자 협상장이 있는 건보공단 15층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다.
좁은 H자 복도의 한쪽 끝 세미나실을 협상장으로 사용했으므로 복도가 넓어지는 중앙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기다린다. 세미나실의 문이 열리고 의협이든, 병협이든, 한의협이든 대표단이 나오기만 하면 일제히 후레시를 터뜨리지만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엔 한 결 같이 묵묵부답이다. 기껏해야 '이따 다시 봅시다'는 정도.


다시 보자는 말은 아직 '밀땅' 중이어서 회의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입을 굳게 다물고 곧장 전용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대표단도 있다. 이들에게 결과를 물어봤자 "얼굴 보면 몰라요?"라는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정말 봐도 모를 표정들을 하고서 그들은 스스슥- 만화같이 사라진다.
치협 협상단이 모습을 드러낸 건 밤 9시 40분쯤 이었다. 오후 5시경 4차 협상을 끝내고, 숨을 고른 다음 막 5차를 치룬 직후이다. 몇 몇 치과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앞장 서 나오던 마경화 부회장이 손사래를 친다. "찍지 마세요, 아직 안 끝났어요."


-특별한 쟁점이 있나요?
"지금 쟁점을 따질 단계는 아니고, 수치 싸움이죠. 우린 할 얘기 다 했어요."
-갭이 큰가요?  
"어쨌든 그 쪽이 꼼짝을 안 해요."
-가능성은 어떻게 보세요?
"모르죠 그거야..., 끝까지 해 봐야죠."
마경화 부회장과 박경희 보험이사, 최대영 서치 부회장, 김영훈 경기 보험이사 그리고 사무처 유희대 국장과 김은애 대리까지, 치협 대표단은 일층으로 내려와 휴게실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목도 축이고 열기를 식히면서 다음 회의를 준비한다.
지친 표정의 이들은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박경희 보험이사는 물을 한잔 들이 킨 후 공단 측 협상단의 태도에 불만을 터뜨렸다. "아니 왜 화를 내냐고~ 받아들이든 아니든 각자의 판단이고 선택인데… 그렇지 않아요?"
"그래도 이번엔 공단 쪽도 많이 조심하는 거예요. 지난번 결렬이 그쪽에도 부담이 될 거거든요. 우리야 뭐 그냥 우리 페이스로 가면 돼요."
마 부회장이 '더 얘기 말자'는 듯 말을 받았다. 이제 기자들이 자리를 비켜야 할 차례다.

 

 

‘우린 그냥 우리 페이스대로 가자’

 

15층에는 의협, 병협, 약사회 순으로 6차 협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원래 5차까지가 공식 테이블이므로 6차부터는 번외인 셈이다. 지금부터는 협상 시한인 자정까지 어느 쪽이든 갈 데까지 가야 한다.
의협 대표단은 마지막까지 의뭉스럽다. 기자들이 말도 못 붙이게 이번에도 스스슥~ 사라진다. 어떤 기자가 대표단의 뒷모습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뭐야 도대체, 우리가 왜 여기에 죽을 치고 있냐구.” 그 말끝에 겨우 한마디가 돌아온다. “또 봅시다.”
공급자 단체 대표도 대표지만 사실은 공단 쪽 협상단도 참 대단하다. 이 사람들은 한 자리에 앉아서 끊임없이 5개 단체 대표들을 상대한다. 의협이 나가면 병협이 들어오고, 병협이 나가면 약사회가 들어오지만 그 지리한 샅바싸움에도 이들은 끝까지 지킬 끈을 놓치지 않는다.


다음 차례인 병협 대표단이 회의장을 빠져 나오자 이번에는 기자들이 선수를 쳤다. “또 올라올 건가요?” 이들은 다만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마쳤다. 다들 마지막까지 갈 심산인가 보다.
드디어 치협 대표단이 대기실로 들어가기 위해 복도로 들어섰다. 치과 기자들이 성심을 섞어 응원을 건넸다. “잘 하세요~.” 아~ 잘, 좋은 말이다. 마 부회장이 손을 한번 들어보였는지 아닌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이번엔 결론을 낼까? 기자들은 초조히 회의장과 이어지는 복도의 한쪽 끝을 지키고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1시 반쯤, 들어간 지 15분쯤이 지나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번에도 마 부회장이 앞장을 섰다.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시에 표정을 살폈다. 어둡다. 여전히 지쳐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를 묻는 질문에 “다시 올라와야 해요.”라고 낮은 목소리로 그가 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 다들 이젠 그만 하고 싶다는 표정들이었다. 오후 2시에 치과를 나서서 자정이 다 돼 가도록 쳇바퀴 돌 듯 1층과 15층을 오간 것이다.

 

‘목표는 처음부터 2.7% 였다’

 

1층 휴게실에 좌정을 하자 마 부회장이 조금 안정을 찾은 듯 기자들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그리곤 설명을 시작했다. 요지는 이랬다.
‘지금 0.1%가 문제다. 돈으로 치면 10억이 조금 넘는 수준이니까 개별 치과의 월 급여비로 보면 표도 나지 않을 정도지만 우린 이걸 포기할 수 없다. 아무리 올해는 보장성 강화 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지난해 보다 낮은 인상률로 어떻게 회원들을 보나. 그렇지만 공단 쪽은 부대조건 없는 2.7%는 지난해 보다 적어도 0.2포인트를 더 봐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공단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우린 2.7%를 끝까지 고수할 거다. 그렇게 되진 않겠지만, 행여 결렬로 가더라도 우리가 먼저 0.1%를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다들 말이 없었다. 시간은 뚜벅뚜벅 자정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11시 50분, 전화가 왔다. 마지막 협상을 통보하는 전화였다. 마 부회장이 결심한 듯 ‘어차피 사인을 할 일이 있으면 내가 하면 되니까 건너편 호프집으로 가서 기다리라’고 일행에게 일렀다.


치협 협상단은 그렇게 단장을 적지에 남겨둔 채 공단을 철수했다. 2.7% 타결을 알리는 전화는 음식점 2층에 자리를 잡은 일행이 막 맥주 한잔씩을 받아 들 즈음 울렸다.
전화를 받은 유희대 국장이 “싸인 하셨대요.”라고 짧게 알렸고, 일순 분위기가 폈다. 지리~한 싸움이 끝난 것이다. 자정을 5분 남긴 시간이었다.
마경화 부회장이 음식점으로 들어섰을 때 일행은 함께 박수를 보냈다. 목표는 그냥 세워지는 게 아니다. 목표는 이뤄낼 자신과 계획이 있을 때 비로소 그려지는 것이다. 치협 협상단은 2014년 치과보험 수가협상에서 그 목표를 이뤄냈다. 따라서 지금의 박수는 회원들과 약속한 그 절대치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협상단을 위한 자축의 의미를 담고 있다.


축하사절도 속속 도착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서울 25개구협의회 회장인 이석초 은평구회장이 그리고 근처에서 다른 회의를 마친 김세영 협회장과 안민호 총무이사, 이성우 치무이사가 속속 들이 닥쳤다. 
김세영 협회장은 회원들을 대신해 오랜 기간 수가협상에 정진해준 협상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 사이 창문밖으론 지리했던 5월이 지나고, 아주 천천히 6월의 새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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