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능선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그 아래 하나 둘 나타났다 사라지는무거운 불빛한 곳 트일 데 없는 막막한 어둠하루를 후미진 산골을 돌아본들넝마처럼 해진 삶은 더욱 황량하고휴게소에서 내려 뜨거운 국수국물을 마신다무엇을 할 수 있는가끓임없이 뉘우치고만 있을 것인가타락의 대열 한귀퉁이에서파멸의 행진 그 한귀퉁이에서대폿집에서 찻집에서 시골길에서 길은 어둠 속을 향해 뻗쳐 있고다시 버스는 힘을 다해 달리는데긴 능선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그 허공 속에서 문득말없이 사는 이들의 숨죽인 울음소리를 듣는다[길]추석 연휴, 어릴 적 다니던 국민학교엘 갔습니다.운동장은 기억속에서 보다 훨씬 좁았고, 크게만 느껴졌던 2층 교사도 을씨년스레 키가 줄어 있었습니다.운동장 한옆 줄지어 선 플라타너스 몸통엔 상처처럼 아이들의 이름이 남아 있었습니다.재학이, 정흠이, 병욱이, 연희, 태석이..이름의 주인들은 새로 난 신작로를 따라 오래전 이곳을 떠났습니다.동네까지 찻길이 이어지고, 버스가 다니면서부터아이들은 떠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처음엔 면소재지 5일장을 드나들더니 읍내 구경을 다니다가 종내는 길 끝 아득히 이어진 대처로 나갔습니다.돌아오지 못할 길인줄 알면서도아무렇지 않은듯 그렇게 손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은 21세기 인류가 수용할 수 있는 최선의 국가체제다. 북한도 문패에 ‘민주공화국’을 써넣은 것을 보라. 본래 그 동네에서는 금기어(禁忌)인지 차마 못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자유’라는 말은 빠졌다. 본업이 테러인 IS 조차 ‘국가’를 표방하니 국가 숫자가 2백이 넘는데, 그 중에 국민이 “내 나라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증류수처럼 깨끗하고 공평한 사회는 만들지도, 그 안에서 살지도 못 한다.그러므로 정치나 국가체제는 합의된 계약서 ‘헌법’의 한계 내에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용되고, 드물게는 힘들고 복잡한 합의 과정을 거쳐 ‘개헌’을 한다.고로 당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공산체제나, 헌법 ‘해석’을 두고 장난치는 나라는, 언제든 헌법을 깔아뭉갤 수 있어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에 자격 미달이다. 제3의 적(敵)은 통칭‘근본주의(fundamentalism)’국가들로, 국민에게는 증류수 같은 순수함을 강요하고, 지배층은 장막 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즐긴다. 자유민주주의공화체제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므로, 위에 말한 적(敵)들이 그 탈을 쓰고 발호한다. 이해하기 쉽도록
근래 메밀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구황작물인데다 전쟁 때 원조식량이었던 밀가루 등에 밀려 천대까지 받던 메밀이 왜 다시 뜨고 있을까요? 대다수 강원도 스타일 막국수나 메밀전병은 솔직히 말해서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전병은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잘 모르겠고, 막국수 역시 달거나, 시거나, 맵거나 아니면 깨에 김 가루 듬뿍, 더하여 MSG의 향연입니다.그러나 같은 메밀로 만드는 평양냉면은 최근 남성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정도로 마니아가 많아졌습니다. 여성들이나 냉면에 문외한인 친구들에게 전문가인 척 하는 자세로 설명하려는 남자들의 행위를 속칭 '면스플레인'이라고 하던가요? 아마도 신규 영어단어로 등록된 맨스플레인(mansplain)을 차용한 것이겠죠(최근 등재된 단어 중에 제일 웃겼던 것은 쩍벌남을 뜻하는 manspreading인데, 뒤져보니 그에 조응하는 단어가 shebaggiing입디다. 옆자리에 가방을 두어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려는 여자이죠).여하튼, 냉면이 뜨니 순도가 높은 막국수도 덩달아 떴고, 고급 물 막국수와 냉면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보니, 100프로 순메밀 막국수를 우러러 보는 현상까지 생긴 것이지요.인천의 ‘부평막국수
황석영 작가가 김일성을 을지문덕·세종대왕·이순신에 비한 것은 판단착오다.첫째 세 분 중 누가 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전국을 초토화하고, 3백만 사상자와 천만 이산가족을 낳았는가? 둘째 휴전 당시 소득은 북한이 훨씬 더 높았는데, 위대하신 백두혈통 70년 통치 아래 지금은 거꾸로 40배, 이 천문학적인 역전을 어떻게 설명하나? 셋째 서방진영의 봉쇄와 경제제재를 탓하지만, 바깥세상의 자유와 풍요(자신의 무능)를 인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국경을 물샐틈없이 봉쇄한 것은, 바로 김일성이다. 넷째 남한사정을 꽤 안다는 소위 엘리트들이, “남한엔 웬 자살이 그리 많으냐?”며 자본주의의 각박한 경쟁사회를 비난한다. 부채와 빈부격차, 실업과 자영업자 몰락 같은 문제는 글로벌 현상이요, 중국이나 브라질은 물론, 장차 인간처럼 먹고 살게 되면 북한도 겪을 문제다.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단다.”철조망에 갇혀 사육당하는 가축이 자살을 하던가? 생활(live)이 아니라 생존(exist)하는 동물이 본능에만 충실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처럼 제나라 인민을 굶기고 주변국에 테러와 핵 공갈 등 해를 끼치는 무리는 인류의 공적이다. 낡은 이념에 천황제를 접목한 IS(이슬람국가)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감정도 있다. 어떤 슬푼일이 생기면 먼저 감정으로 먼저 느끼고 그 다음 지금 내가 왜 슬픈지를 분석하고 그 슬품을 극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이성적인 행동이 뒤 따르게 된다. 이성이 객관적이라면 감정은 다분히 주관성이 내포되어 있고 원초적이고 솔직한 편이다. 이성을 관장하는 것이 정신이라면 감정에 이끌리는 것이 신체이다. 감정은 자연으로부터 생겨나고 인간의 몸속에 거주하면서 뜨겁고 충동적이며 직관적이고 생물학적 명령을 따른다. 이성은 운명으로부터 생겨나고 마음속에 거주하면서 감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자신과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범생인 셈이다. 또한 감정은 이성과 조화를 이루어 마음의 작동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모범적으로 설계된 소프트웨어 모듈(module)인 셈이다.감정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는 이유는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은 신체적인 기분의 상태를 나타내는 매우 의미 있는 현상 중에 하나이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 공포심을 느끼는 감정은 살아남는 행동에 도움을 준다. 옛날 유인원들은 외부공격에 두려움을 가지고 반사적으로 도망침으로서 살아 남는데 반드시 필
공조직 중에서도 국제기구에는 사실상 주인이 없다. 임자 없는 회사에 CEO만 계속 바뀌면, 조직은 점차 비대해지고 눈에 안 보이는 파벌이 생기거나 직원들이 업무보다도 내 일부터 먼저 챙기는 경향이 있다. 조직에 동맥경화증, 관료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제7대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개혁총장’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나태와 안일에 손을 댔기 때문이며, 결국 UN 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일부 외신의 반기문 총장에 대한 비난은, 직전 총장과 비교되기 때문이지 무능은 아니고, 무난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외교전의 요체는 상호견제이므로, UN 사무총장 후보에 강대국은 자동적으로 배제된다. 역대 총장의 출신 국가는 인구가 천만 이하인 노르웨이 스웨덴 오스트리아, 그리고 미얀마 페루 이집트 가나이다.뒤늦게 UN에 가입한(1991) 한국은 10년 만에 제56차 총회의장을 배출하여(한승수 2001) 국가 위상을 빛내었으며, 한승수 의장은 반기문 장관(당시)을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하여, 사무총장으로 나갈 길을 터 주었다. 물론 아무리 이끌어주어도, 본인이 똑똑하고 하늘의 뜻, 즉 타이밍이 절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더구나 대한민국이 발언권이 큰
우리 집 컴퓨터 앞에는 작은 스프링 노트 한권이 놓여 있다. 앞 페이지부터는 해야 할 일들을 적어 가고, 뒷 페이지에는 일상의 삶 속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 놓는다. 필요한 것인즉 우유, 달걀, 세제 등으로 구매 물품 목록이 적혀 있다. 그리고 항상 스프링 노트의 장점을 이용하여 한 장이 뜯어 가며 산다. 해야 하는 일들의 페이지에 순번은 일상적으로 20번에 육박하지만 어떤 때는 한자리 수에서 끝나는 행운이 있기도 하다. 해야 할 일은 대부분은 시급함에 의해 순번이 정해진다. 그렇게 번호를 달고 순번에 의해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두고도 또 마음에 슬그머니 핑계가 생긴다. ‘이건 밤에도 할 수 있어, 또 이건은 조용할 때 해야 해’. ‘음~ 이 문제는 의논하면서 해야 하고, 이건 시간이 많이 필요해’. 그러다 보면 순번을 여러 번 고쳐 가며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뒤로 밀린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필자에게 있어 뒤로 밀리는 일 대부분이 집안일이다. 아마도 이러한 일들이 덮어 두면 잠시 조금은 불편하지만 여러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표시 안 나기도 하고.아침에 눈을 뜨니 아직 내게 금·토·일 이라는 삼일의 추석연휴가 남아 있다. 편하게
21세기의 화두는 불신·불행·분노·증오·테러 등 부(負)의 감정을 소비한다.대중문화를 지배하는 방송가도 막말·비 호감·막장드라마가 대세다. 황금의 손 ‘김수현 드라마’도 도중에 횟수를 줄인다. 아기자기한 스토리, 청춘남녀의 오글거리는 사랑, 삼대가 주고받는 무뚝뚝한 대사 속에 숨은 끝 모를 희생과 가족사랑...모두가 우리 전통사회를 끈끈하게 얽어주던 청실홍실이요, 민족의 저력을 한데 묶어준 접착제였다. 이제는 세상만사 돌아가는 일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니, 불륜과 패륜으로 치닫는 막장이 아니고는, 약 팔리는 ‘구경꺼리’가 되지 못 한다.뺨 싸대기 왕복은 기본이요, 컵의 물을 얼굴에 끼얹고 두 무릎 꿇리기는 악수보다 흔한 싸구려 몸짓으로 자리 잡았다. 막장도 “갈 데까지 가보자.”로 경쟁이 치열해지니, ‘회까닥’하는 작가가 나오고, 차라리 ‘동물의 왕국’을 보겠다며 한탄을 한다. 그냥 다큐멘터리는 밋밋하니까, 애초에 소통과 화해의 토론문화가 낯 설은 제작진은, 토크쇼와 오락게임의 중간쯤에 ‘예능프로’를 개발힌디. 본래의 뜻과는 달리 코미디언·개그맨이 대종을 이루는 예능인 중에, 미남형인 신동엽·차태현·이휘재씨도 있지만, 대체로 비 호감이 더 많다. 이리저
흔히 말하는 B급 영화란 적은 예산을 들인 영화나 A급 영화에 견주어 질적으로 떨어지는 영화를 기술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가끔 저예산 영화들 중에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고, 독립영화처럼 예술성이 높은 경우도 있어 마냥 하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미식 차원에서도 원용할 수가 있습니다. 비싼 레스토랑이나 고가의 한정식, 한우전문점 혹은 일식집 같은 메뉴를 A급 미식이라 한다면, 평소 집에서 먹는 음식들이거나 비록 저가이지만 대중의 인기가 많은 경우를 B급 미식 혹은 B급 구루메(gourmet)라고 말할 수 있지요. 중구의 을지로 뒷골목은 그런 B급 음식점들이 몰려 있고, 요즘도 직장인들로 성황이어서 약간 한산한 주말의 B급 미식 투어로는 제격인 곳입니다. 특히나 약간 어스름할 때 을지로 뒷골목은 과거 속에 현대가 살고 있는지 아니면 현대 속에 과거가 숨어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묘한 곳입니다. 이곳을 걸을 때마다 저는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밀회를 즐기던 홍콩의 그런 골목들과 식당이 떠오르곤 하지요. 각설하고, 제가 대학을 입학하고 첫 미팅을 나간 곳은 종각 대일학원 옆 심원다방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첫사랑을 평
1960년대 대학생들에게 팝송은 생활의 일부였다. 브라더스 포의 그린 필즈나 팻 분의 에이프릴 러브 등 감미로운 멜로디들은 전설이 되었다. 미팅에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팝송 몇 곡은 불러야했는데, 필자는 세광출판사의 재즈멜로디 열 몇 권을 외운 덕분에 제법 폼을 잡았다. 빌보드 순위를 줄줄 외우던 동갑나기 외사촌 형이 명동에서 사온 도너츠판도 도움이 되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앞뒤 한 곡씩인 45회전의 작은 LP판).서울대는 11개 단과대학 대항 체육대회와 장기자랑을 개최했는데, 초청가수 인기 1호는 최희준·박형준·유주용·위키리의 4인조 포 클로버스였다. 송해 씨 전에 5년간 ‘정-궁-노래자랑’사회로 이름을 날린 바로 그 위키리다. 뒤이어 등장한 통기타 부대가 세시봉인데, 개인 히트곡도 많은 포 클로버스가 오케스트라라면 세시봉은 작은 실내악이요, 인기비중도 그랬다. 부르기 쉽고 듣기 부담 없는 팝송은, 옛 선비의 사군자(四君子: 梅蘭菊竹) 치기처럼 여기(餘技)에 가까웠다. 부르는 사람은 전업(專業)가수로서 장래에 확신이 없었고, 우리는 음악 감상실에서 무료로 들으며 함께 흥얼거리는 보너스 개념에 가까웠다. 아직도 그네들에게 영원한 아마추어의 매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