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보내며’라는 글에서(1999), “신이 죽고 영웅도 사라졌다면, 그 원인이 풍요의 추구에 올인 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貪慾)인지 역사를 파괴한 이념 과잉(瞋恚: 분노)인지 너무 깊이 들어간 과학문명(愚癡)인지, 아니면 3자가 뭉쳐진 신의 움직임인지 알 수가 없다.”라고 썼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사회현상으로 굳어진 ‘분노’의 분출을 보면서, 오욕칠정에 묶인 인간의 세 가지 독(毒)이 탐진치임을 다시 실감한다. 분노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본능이자, 내 뜻을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감정적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치밀며 부교감신경 활성도가 높아지면서, 큰 근육에 혈액이 몰려 뇌는 취약해진다. 일단 화를 발산하면 힘이 용솟음치지만, 그 순간은 짧고 피해(후회)는 크며,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전 전두엽이 노화되어 더 작은 일에도 더 크게 분노한다.분노조절장애의 치유법으로, 명상을 통하여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인식의 틀을 바꿔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다스리는 연습을 권하기도 한다. 역사상 사회 분쟁은 전제군주와 귀족 또는 성직자와 군주 간의 권력다툼이었고, 사회 계층 간의 분노는 산업혁명 후
식사를 하고 있는데 누가 밥맛없는 얘기를 꺼내면 "밥 먹는데 X 얘기 하냐?"고 주변에서 면박을 줍니다. 실제로 말이 많은 사람은 자기 말에 탄력이 붙으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방언'이 줄줄 흘러나오는데 이럴 땐 스스로 제어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특히나 그런 사람 입에서 느닷없이 '배설'에 관한 단어가 밥상 앞에서 마구 튀어 나오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오늘은 작정을 하고 음식 이야기와 화장실 이야기를 함께 해보겠습니다.요즘은 화장실이 재래식(푸세식)이 아니라 대부분은 양변기이고, 또 비데까지 달려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중간 단계인 화식(일본식) 변기도 있습니다. 지금도 공중화장실은 화식이 꽤 많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오래 전 뉴델리공항에서 화장실을 들렀는데, 남녀 구분이야 당연하지만 또 다른 구분도 있었습니다. 소위, internationa과 domestic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내국인은 도메스틱으로 외국인은 인터내셔널로 가서 일을 보라는 것이겠지요. 또 제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인도 사람은 용변 후 종이 대신 손가락과 물로 해결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말 잘하는 인도 가이드가 자기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김형경씨에게 제1회 국민일보 문학상을 안겨준 감동적인 소설 제목이다(1993). 그러나 부엉이·뻐꾸기·꾀꼬리는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사람이 붙인 이름일 뿐, 그 새의 ‘인식(?)’과는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현이 쌓이면서 인간의 감성세계는 더 풍성해지고,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며, 인류에 대한 시인·소설가의 기여다.“발칙한 서술형 제목 뽑기”는, 눈을 끌려는 잔재주가 아니라 깊은 사유의 샘에서 길어 올린 ‘의제 설정’으로, 작가가 사랑받는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J 일보에 연재중인 칼럼 “남자를 위하여”를 읽으면 가끔 피로감을 느낀다. ‘위(爲)’하여가 ‘위(威)’가 되어, 남성을 미성숙·관음증·폭력과 공격성 및 나르시시즘의 대명사로 읽고, 그로부터 피해 입은 여성의 억눌린 분노(Pent-up Anger)를 대변하려고 발톱을 세운 전사(戰士)로 보인다. 칼럼에서 지적한 남성의 죄목(?)을 보자. 첫째, 남성 우월적 행태는 대부분 남녀 구별을 떠나 사회적 역할에서 비롯한다. 엄혹한 생존경쟁에서 생계(生計)책임자가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최면이나,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동물적인 방어기전의 산물이
진화현상은 10억년을 거쳐 일어난 사건인데 지금 우리가 그것에 대해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 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모든 생명들이 과정을 관찰한 많은 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 속에 많은 허점이 발견된다고 한다. 물론 인간도 그중에서 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어느 생물도 추종할 수 없는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 특수한 종(種)으로 진화해온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인간은 다른 생물과는 달리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를 수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상호 토론도 하며 예술적 능력을 갖추어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어느 다른 생물도 우리와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종은 없다.우리들이 가진 유전형질은 생물이 존재하기 전부터 진화해온 것이기 때문에 유전 형질 자체가 조잡한 오점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명석한 두뇌를 뽐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멍청하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도 두뇌 못지 않게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다. 다마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그런 결함들은 그냥 받아 들이고 있다. 일정 기준치에 못 미치는 기억력이나, 시도때도 없이 폭팔 하는 감정의 실체, 편견에 사로잡히는 집년 등
채식 전도사 이상구씨가 우유도 먹지 말라던 때가 있었다. TV를 온통 뒤덮은 그 주장에, 거의 전 국민이 최면상태에 빠져 육류소비가 급감했는데, 정작 가장 큰 피해자는 농민이었다. 구은 고기에 파 절이와 찜장과 마늘을 얹어 상치에 싸먹던 건강식을 버리자, 야채재배 농가의 판로가 막힌 것이다. 채식과 소식이 맑은 정신과 장수를 선물할지는 모르나, 연로한 고승(僧)이 기력이 쇠하면 진한 고기국물에 죽을 쑤어 공양을 올린 관행을,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성장기의 아이들과 병약한 노인, 그보다도 올림픽 메달을 따려면, 동물성 담백질이 필수임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당시 농가와 국민건강은 Dr. 리의 편향된 채식예찬론에 유탄을 맞은 부수적 피해자였던 셈이다. 먹방의 물결을 타고 갑자기 떠오른 판단력 없는 셰프의, “설탕·MSG·정크 푸드는 몸에 해롭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해로우면 깐깐한 미 식약청·소비자단체가 가만두었을까? 경계대상은 편식과 과량 섭취일 뿐이다. 우로 돌려 3, 좌로 5, 다시 우로 10... 다이얼 식 열쇠 번호인가? 2015년 3월 국회를 통과하여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금년 가을부터 시행될 소위’김영란 법’이 정한, 처벌 면제
부모라는 권력에 의해 혹은 어른이라는 허울 아래 자식들이나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제가 대학 예과 시절 수원에는 야학이 서너 군데 있었습니다. 당시의 야학은 대학생들에게 있어 일종의 유행 비슷한 것이기도 했고, 또 어느 정도 - 이념적 해방구 역할을 했던 - 자기 위로적인 성격이 강했던 장소라 할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수원에서는 저희 야학을 제외하고 대부분 운동권 학생들이 교사를 맡고 있었지요. 저희들은 그야말로 순수하게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학생들을 주로 가르치고 있었고, 최종 목적은 그들에게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손에 쥐어주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다녔던 야학은 운영비를 공군부대에서 전액 지원하였기 때문에 반국가적인 일을 도모하기도 어려웠습니다.하루는 모 야학에서 학생들이 연극제를 한다면서 초청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연극 내용에 좀 놀랐습니다. 배우(어린 학생)들이 모닥불에 둘러 앉아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자기 회사 사장이나 그 사모 혹은 공장장의 비리를 돌아가면서 이야기 하고, 욕을 하는 내용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지요. 그 절정은 마지막에 합창 구호로 "타도하자~
로마제국 군단은 기마병을 합쳐 6천 명 정도로, 같은 병력의 속주(屬州)병을 더한 1 + 1 편성이었단다. 로마에 의한 세계평화시대(Pax Romana)에 로마군이 무적이었던 것은 전술은 물론 병사의 사기가 매우 높았던 덕분이다. 로마시민은 사상 최고의 권리와 혜택을 누렸기에, 위기에는 애국심과 긍지로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속주 병사 역시 시민권을 얻을 일념으로 뒤따랐다.인기에 영합한 황제가 시민권을 남발하면서부터 제국은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영제국의 노블리스 오브리제도 마찬가지다. 귀족 명문학교 이튼 졸업생 중에 양차대전 전사자가 40%에 가까웠다는 얘기는 전설이 되었다. 미국 국력이 세계 1위로 올라선 것은 남북전쟁 후 재건의 활력이 넘치던 1870년경이라고 한다. 유럽은 독일·이태리의 뒤늦은 통일과 산업혁명·식민지 각축에 바빴고, 미국은 고립주의에 빠져(몬로주의, 1823: 5대 James Monroe 대통령), 서로 길이 어긋났을 뿐이다. 1917년 28대 윌슨이 일차대전에 참전하지만, 그가 창설한 국제연맹 가입을 미 의회가 거부하자 미국은 다시 고립에 빠진다.자본주의경제의 조정기인 대공황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총대를
알파고의 승리가 던져준 실업문제 다음으로 두려운 것은 인류의 노예화와 인류멸망의 시나리오다. 노예화 문제는, 인공지능이 아직은 인간의 조종 하에 있되 그 인간이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집단으로, 나쁜 편의 손아귀에 인류가 인질이 되는 설정이므로, 결국 인간끼리의 싸움일 뿐이다. 인간의 안녕·복지를 보장하던 전통적인 정치·사회제도를 압도하는, 우수한 무기인 인공지능을 독점한 악당과 선량한 시민이 대결하는 테마는, 이미 많은 공상과학 소설·영화에서 다루었으니 제쳐두자.문제는 그보다 한 단계 위, 신이 된 인공지능의 출현·군림이다. 종교는 토론하기 껄끄러운 주제다. 인간이 영성(Spirituality)을* 이해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테레사 수녀도 어느 교황도 믿음의 동요에서 오는 괴로움을 고백한 적이 있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시 대통령과 세계적인 부흥회 목사 그레이엄이, 영성을 되찾고자 한국의 C 목사를 찾아와 안수기도를 받았다는 풍문도 있다. 이제는 고령의 C 목사 자신도 옛날 같지 않아 보인다. 비종교인으로서 피상적이나마 종교에 대한 소견을 펼쳐본다. 목수는 자신을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배려하는 서민 집안에서 태어난 예수는 평생을 서민 속에
수천만 년 전 유인원들도 개개인으로 사는 것보다 무리를 이루어 사는 것이 개개인으로 사는 것보다 훨씬 장점이 있음을 익히 알고 개개인의 자유를 상당히 포기하면서 사회 공동체를 진화시켜왔다. 17세기 철학자 흡스는 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쫓는 야만적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를 이룩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성적인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개인들의 상호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 사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은 루소(Rousseau)였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반드시 공동체 사회생활이 진화적인 순수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다. 개인의 자유를 포기한 만치 공공의 이익이 생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승자와 패자가 탄생함으로서 패자가 고통을 받아야하는 불공평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우리는 다 같이 잘 살기위해셔 공동체 사회로 진화 시켜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생기면서 지배자와 패배자의 상태로 변질되면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받는 모순을 낳고 말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나 다른 한편 생존의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데 문제가 있다.지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 기가 남긴 불안과 공포의 후유증은, 대량실업과 인간의 노예화와 인류멸망의 시나리오, 이 세 가지다. 먼저 실업문제. 제1차 산업혁명 때 동력기관과 방적기의 등장으로 일감을 빼앗긴 노동자·영세업자들은 러다이트(기계 파괴)운동을 벌였다. 값비싼 희생 끝에 불법 극렬 행동은 진압되었으나, 결국 노동력 착취(미성년자·노동시간)를 개선하고, 보통시민도 선거권을 얻는 물꼬를 뚫었다.20세기에 들어 자동차 생산라인의 용접 로봇은, 인공지능의 초보로 다수의 실업자를 낳았으나, 자동차의 대량보급은 새로운 일자리를 다수 만들었다. 농장과 건설현장에는 페이로더·굴삭기와 컴바인·경운기처럼 정밀하게 작동하는 중장비가 막노동을 대신하고, 전자기기의 사무자동화는 3-5 개소의 동사무소를 하나의 주민 센터로 대체했으며, 은행지점과 행원 숫자도 대폭 줄었다.전통적인 직업 종사자의 대량 실업이 불가피했던 대신, 대량생산으로 소득이 축적되어 복지예산이 확보되고, 여가선용과 노동 3권 보장의 길이 열렸다. 비록 속도가 느려서 시차(時差) 극복의 고통은 극심했지만, 결과적으로 타협과 조정을 통한 인류생활수준 향상의 역사였다. 20세기 후반 IT 산업 기에 접어들면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