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을 ‘미국의 건국’으로 시작한 것은, 식민지에서 스스로 일어선 유일한 독립국이요, 최초의 자유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독립선언서 채택 일을 국경일로(7월 4일: Independence Day)’ 삼은 것처럼, 대한민국도 기미 독립선언문 선포 일을 3·1절로 기념한다. 그러나 당시 우리의 국내현실에서는 미국처럼 바로 독립하지 못하고, 일제에 대한 간디 식 ‘비폭력·무저항 운동’밖에 할 수 없었다.악몽의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인류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준 전쟁의 참화를 막으려는 집단안전보장체제, 국제연합(UN)이 발족한다(1945. 10. 24.). 일차대전 후 국제연맹 실패의 경험이 좋은 반면교사였다. 전(前)문에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확인하고, 관용의 실천과 선량한 이웃으로서 평화공존과, 국제평화와 안전을 강조한다. 제1조 목적은, “모든 사람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촉진하고 장려함에 있어 국제협력을 달성한다.”로 재확인 한다. 미국 독립선언과 프랑스 대혁명의 기본정신을 계승하고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를 덧붙였다. 현대국가가 가야할 명확한 방향이요 지침이다. 북한은 19
세계 절대다수의 국가가(147/ 206) 고대 로마에서 시작된 ‘공화’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혼란스럽다. 공화제(共和: Republic)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선출한 대표가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위하여 통치하므로, 법치주의(法治: Rule of Law)가 통치의(권력행사) 핵심이다. 반대로 군주제(君主: Monarchy)의 주권자는 혈통으로 세습된 개인으로서, 국가권력의 발동과 행사가 군주 1인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군주제와 공화제는 서로 상대적 개념이다.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등장하는 인민(People)은 민주주의 용어인데, 코민테른(1919)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완전한 ‘국가의 철폐’를 목표로 설정한 이래, 자유국가의 공민(公民)과 구별되는 공산주의 전용어가 되어버렸다.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민중과 지배의 합성어(demos + kratos = democracy)다. 왕정이나 귀족 정을 물리쳐서 대중의 권리를 지키고, 이해관계의 충돌과 강한 자의 횡포가 빈번한 인간사회에서, 자유의 제한을 최소로 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최선의 정치제도다. 다만 여성·노예·외국인이 배제된 소수 남자만의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한
개전 41 일 만에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는(1940. 6. 22) 국토의 2/3를 점령당하고, 남부에 세운 페땡의 비시정부는 대체로 히틀러에 협조한다. 이에 반대한 국방차관 드골은 런던으로 망명, ‘자유 프랑스 운동’을 전개한다. 연합군이 아프리카에 상륙하자(1942. 11) 나치는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지만, 국민의 선택이라는 선출과정을 거치지 않은 드골은, 전쟁 중이나 전후 처리를 위한 연합국 정상회담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연합국의 배려로 드골 휘하의 르끌레르 사단이 파리 해방의 선봉을 맡아(1944. 8. 25)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하고, 이어서 드골은 임시정부 대통령에 취임, 프랑스는 UN 의 창립 회원국이 된다.국회의원 선거로(1945. 10: 여성 첫 투표권) 새 헌법에 의한 제4공화국이 수립되자, ‘강력한 의회·약한 행정부’에 반대한 드골은 사임하지만, 10여 년 뒤 알제리 위기 때 다시 돌아와, 강력한 대통령제의 제5공화국을 수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드골의 예를 든 이유는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경우와 비교되는 까닭이다. 국민정서와는 달리 연합국의 시선으로 볼 때, 임정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국민의 선출을 거치지 않은) 애국지사 단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은 21세기 인류가 수용할 수 있는 최선의 국가체제다. 북한도 문패에 ‘민주공화국’을 써넣은 것을 보라. 본래 그 동네에서는 금기어(禁忌)인지 차마 못 붙였는지 모르겠으나, ‘자유’라는 말은 빠졌다. 본업이 테러인 IS 조차 ‘국가’를 표방하니 국가 숫자가 2백이 넘는데, 그 중에 국민이 “내 나라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될까? 증류수처럼 깨끗하고 공평한 사회는 만들지도, 그 안에서 살지도 못 한다.그러므로 정치나 국가체제는 합의된 계약서 ‘헌법’의 한계 내에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운용되고, 드물게는 힘들고 복잡한 합의 과정을 거쳐 ‘개헌’을 한다.고로 당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공산체제나, 헌법 ‘해석’을 두고 장난치는 나라는, 언제든 헌법을 깔아뭉갤 수 있어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에 자격 미달이다. 제3의 적(敵)은 통칭‘근본주의(fundamentalism)’국가들로, 국민에게는 증류수 같은 순수함을 강요하고, 지배층은 장막 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즐긴다. 자유민주주의공화체제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우므로, 위에 말한 적(敵)들이 그 탈을 쓰고 발호한다. 이해하기 쉽도록
황석영 작가가 김일성을 을지문덕·세종대왕·이순신에 비한 것은 판단착오다.첫째 세 분 중 누가 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전국을 초토화하고, 3백만 사상자와 천만 이산가족을 낳았는가? 둘째 휴전 당시 소득은 북한이 훨씬 더 높았는데, 위대하신 백두혈통 70년 통치 아래 지금은 거꾸로 40배, 이 천문학적인 역전을 어떻게 설명하나? 셋째 서방진영의 봉쇄와 경제제재를 탓하지만, 바깥세상의 자유와 풍요(자신의 무능)를 인민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국경을 물샐틈없이 봉쇄한 것은, 바로 김일성이다. 넷째 남한사정을 꽤 안다는 소위 엘리트들이, “남한엔 웬 자살이 그리 많으냐?”며 자본주의의 각박한 경쟁사회를 비난한다. 부채와 빈부격차, 실업과 자영업자 몰락 같은 문제는 글로벌 현상이요, 중국이나 브라질은 물론, 장차 인간처럼 먹고 살게 되면 북한도 겪을 문제다.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단다.”철조망에 갇혀 사육당하는 가축이 자살을 하던가? 생활(live)이 아니라 생존(exist)하는 동물이 본능에만 충실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처럼 제나라 인민을 굶기고 주변국에 테러와 핵 공갈 등 해를 끼치는 무리는 인류의 공적이다. 낡은 이념에 천황제를 접목한 IS(이슬람국가)
공조직 중에서도 국제기구에는 사실상 주인이 없다. 임자 없는 회사에 CEO만 계속 바뀌면, 조직은 점차 비대해지고 눈에 안 보이는 파벌이 생기거나 직원들이 업무보다도 내 일부터 먼저 챙기는 경향이 있다. 조직에 동맥경화증, 관료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제7대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개혁총장’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나태와 안일에 손을 댔기 때문이며, 결국 UN 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일부 외신의 반기문 총장에 대한 비난은, 직전 총장과 비교되기 때문이지 무능은 아니고, 무난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외교전의 요체는 상호견제이므로, UN 사무총장 후보에 강대국은 자동적으로 배제된다. 역대 총장의 출신 국가는 인구가 천만 이하인 노르웨이 스웨덴 오스트리아, 그리고 미얀마 페루 이집트 가나이다.뒤늦게 UN에 가입한(1991) 한국은 10년 만에 제56차 총회의장을 배출하여(한승수 2001) 국가 위상을 빛내었으며, 한승수 의장은 반기문 장관(당시)을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하여, 사무총장으로 나갈 길을 터 주었다. 물론 아무리 이끌어주어도, 본인이 똑똑하고 하늘의 뜻, 즉 타이밍이 절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더구나 대한민국이 발언권이 큰
21세기의 화두는 불신·불행·분노·증오·테러 등 부(負)의 감정을 소비한다.대중문화를 지배하는 방송가도 막말·비 호감·막장드라마가 대세다. 황금의 손 ‘김수현 드라마’도 도중에 횟수를 줄인다. 아기자기한 스토리, 청춘남녀의 오글거리는 사랑, 삼대가 주고받는 무뚝뚝한 대사 속에 숨은 끝 모를 희생과 가족사랑...모두가 우리 전통사회를 끈끈하게 얽어주던 청실홍실이요, 민족의 저력을 한데 묶어준 접착제였다. 이제는 세상만사 돌아가는 일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니, 불륜과 패륜으로 치닫는 막장이 아니고는, 약 팔리는 ‘구경꺼리’가 되지 못 한다.뺨 싸대기 왕복은 기본이요, 컵의 물을 얼굴에 끼얹고 두 무릎 꿇리기는 악수보다 흔한 싸구려 몸짓으로 자리 잡았다. 막장도 “갈 데까지 가보자.”로 경쟁이 치열해지니, ‘회까닥’하는 작가가 나오고, 차라리 ‘동물의 왕국’을 보겠다며 한탄을 한다. 그냥 다큐멘터리는 밋밋하니까, 애초에 소통과 화해의 토론문화가 낯 설은 제작진은, 토크쇼와 오락게임의 중간쯤에 ‘예능프로’를 개발힌디. 본래의 뜻과는 달리 코미디언·개그맨이 대종을 이루는 예능인 중에, 미남형인 신동엽·차태현·이휘재씨도 있지만, 대체로 비 호감이 더 많다. 이리저
1960년대 대학생들에게 팝송은 생활의 일부였다. 브라더스 포의 그린 필즈나 팻 분의 에이프릴 러브 등 감미로운 멜로디들은 전설이 되었다. 미팅에서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팝송 몇 곡은 불러야했는데, 필자는 세광출판사의 재즈멜로디 열 몇 권을 외운 덕분에 제법 폼을 잡았다. 빌보드 순위를 줄줄 외우던 동갑나기 외사촌 형이 명동에서 사온 도너츠판도 도움이 되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앞뒤 한 곡씩인 45회전의 작은 LP판).서울대는 11개 단과대학 대항 체육대회와 장기자랑을 개최했는데, 초청가수 인기 1호는 최희준·박형준·유주용·위키리의 4인조 포 클로버스였다. 송해 씨 전에 5년간 ‘정-궁-노래자랑’사회로 이름을 날린 바로 그 위키리다. 뒤이어 등장한 통기타 부대가 세시봉인데, 개인 히트곡도 많은 포 클로버스가 오케스트라라면 세시봉은 작은 실내악이요, 인기비중도 그랬다. 부르기 쉽고 듣기 부담 없는 팝송은, 옛 선비의 사군자(四君子: 梅蘭菊竹) 치기처럼 여기(餘技)에 가까웠다. 부르는 사람은 전업(專業)가수로서 장래에 확신이 없었고, 우리는 음악 감상실에서 무료로 들으며 함께 흥얼거리는 보너스 개념에 가까웠다. 아직도 그네들에게 영원한 아마추어의 매력이
사전에는 임화(臨畫)를 “화집(畫集) 따위의 그림을 본 떠 그려 배우는 일, 또는 그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왕초보 중학생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첫걸음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남의 것을 베끼는 도둑질 같아서 맘이 편하지 않았다. 눈으로 읽고 뇌가 해석한 영상과 감흥을 붓을 통하여 재현하는 ‘수법’은 배우겠지만, 데쌩과 구도와 창의(素描·構圖·創意)력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역기능을 한다. 1990년대에 디트로이트의 한 아울렛에서 골프구두를 샀다. 같은 풋 조이 제품이 $40와 $120 의 두 가지였는데, 어느 비오는 날, 싼 것을 고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빗물이 멋대로 드나들어 양말을 적신 구두는, ‘Made in Taiwan’ 하청업체 제품이었다. 필자는 현대미술 팝 아트를 인정하기 싫다. 만화를 베낀 그림이나 조수를 동원한 대작이 미술품이라면, 예술로서의 미술은 존립 가치가 흔들린다. 하물며 오락·도박의 대명사 화투를 그려놓고 미술작품이라고 떼를 쓰는 주장은 용서할 수 없고, 조수에게 하청하여 대량생산한(Factory) 대작은 CG(컴퓨터 그래픽)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그저 벽지(Wall Paper) 대용품 정도가 아닐까? 일상의 용품도 장인(匠人)이
인류가 서있는 대지가 들끓는 마그마 위에 떠도는 부평초 신세임을 금년처럼 절감한 때가 없다. 총선에서 여당은 지 승질을 못 이겨‘자 뻑’을 하고, 제 차례를 맞은 미 공화당에 막말의 달인·미국 판 허경영(?)이 돌출하여 선두주자가 된다.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그렇다 쳐도, 미국·유럽연합의 두 경제공룡이 출구를 찾지 못하여, 경제학교과서 비틀기로 몸부림을 친다. 이슬람 국가(IS)의 테러는 계속 난민을 양산하고,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개발도상국에는 비상이 걸렸고. 전 세계 제조·유통 의 공장인 동북아 3국이 휘청거린다. 이 모든 현상의 배후와 결과에 막장드라마처럼 들끓는 ‘분노의 저주’ 가 어른거린다. “분노의 해법은 나와 내 가족으로부터”라는 의미에서 대전고등법원 소식지에 기고했던 ‘2월의 단상(斷想)’을 소개한다. - 집에서 S 설렁탕까지 allegro non troppo로 걸어 25분 걸린다. 지난 X마스에 그렇게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대덕대교에서 발이 멈췄다. 38년 만에 찾아왔고 날씨가 맑아야 만날 수 있으며 앞으로 19년은 지나야 또 온다는 유난히도 크고 밝은 슈퍼 문... 아내와 함께 우성이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