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젠임플란트 대표이기도 한 대구 미르치과 박광범 원장이 문자메시지를 이용, 동료치과의사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이 장문의 편지에서 그는 '이런 위급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응급조치 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아쉽다'며,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포비돈 요오드액을 꼭 사용해보길 권했다. 개인 및 치과 내 방역활동에 상당히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어서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전문을 소개한다. '언급한 제품들을 무상으로 제공하진 못하지만, 필요한 분들에겐 최대한 빨리 배송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그의 진심이 묻어 나 있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메가젠임플란트 박광범입니다. 코로나 19 (COVID-19) 감염 확진자가 증가함에 따라 치과계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치과의 경우 좁은 공간에서 진료하는 특성상 감염에 취약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환자의 걱정도 크지만, 그 걱정은 의료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항이기에 의료인의 건강에 대한 중요성과 예방이 더 절실한 상황입니다. 마스크가 필수이고, 이 부분은 원장님께서 잘 관리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마스크로 1차 방어를 한다고 해도 완전하지는
치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특히 소아 환자의 경우 성인보다 치과는 더 무섭고 두려운 곳입니다. 소아 환자의 재미있고 즐거운 치과 경험은 앞으로의 치과에 대한 인상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며, 이 시기는 평생의 구강 관리 습관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여 소아치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진료실에서 활짝 웃어주는 아이들의 해 맑은 웃음을 볼 때, 아이들이 수줍게 꺼내서 주는 ‘선생님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소아치과는 출생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전반적인 구강 조직의 건강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과입니다. 소아환자들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최소화하도록 항상 노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치아의 성장과 발육, 치아우식증의 예방 및 치료, 부정교합 관리, 외상 치료, 소수술, 진정요법, 장애인치과 등의 분야를 진료하고 있습니다. 유치는 빠질 치아라서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충치가 생기고, 충치 때문에 생긴 뿌리 아래 염증이 영구치가 자리 잡고 있는 곳까지 파고들게 되면 영구치 자체가 약하게 만들어지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나오게 되
허영구 원장을 모르는 치과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인기 연자였고, 네트워크 치과그룹의 대표원장이었으며, 지금은 메이저 임플란트 제조업체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이런 알만한 직함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를 특별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이 뭔가를 궁리한다는 데에 있다. 임상가로 얻은 자신의 경험을 강연을 통해 다른 치과의사들에게 전달하면서 허 원장은 일반 치과의사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하나 둘 머릿속에서 정리해 나갔고, 그런 결과로 그는 임상에서의 난관을 극복케 하는 여러 가지 솔루션들을 직접 제품화하기에 이르렀다. 임플란트 회사 네오바이오텍이 다른 업체들과 다른 점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허 원장 덕분에 네오는 남들보다 앞서 임상적 문제를 해결해 내는 원천기술을 다량 보유하게 됐다. 관련 특허만도 200여개에 이를 정도.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네오의 제품들은 대부분 개원가의 환영을 받았다. 무엇을 대하든 ‘완벽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허 원장의 습성 탓에 좁은 입안에서의 일일지언정 그가 궁리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은 언제나 무궁무진하다. 제품화의 시작은 임플란트 보철의 새로운 개념인 SCRP였다. SCRP는 당시 핫이슈였던
BK치과는 청주 흥덕구 봉명사거리 한쪽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부도심 사거리인데다 주변 상권이 약해 대로변이긴 하지만 유동인구라곤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후엔 여느 신흥도시와는 달리 다닥다닥 주택단지가 형성돼 있고, 아파트라곤 반경 2킬로 이내에 조그만 단지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았을 뿐이므로 입지로 치자면 절대 탐을 낼만한 자리는 아니다. 건물 1층은 신한은행이 들어 있고, 2층을 BK치과가 쓴다. 대로에서 치과로 들어서는 입구는 은행 옆으로 좁게 나 있는데, 그나마 과일노점이 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외양에서 멋을 내기엔 애로가 많은 곳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BK치과는 청주에선 알아주는 대박치과이다. 2년여 함께 손발을 맞춘 B와 K 두 젊은 원장이 의기투합해 이곳으로 옮겨온 지 3년이 채 못 됐지만, 치과엔 꾸준히 환자들이 꼬여 평일에는 각자 20~30명씩, 그리고 야간진료가 있는 화 목요일에는 이보다 많은 환자를 이들은 소화해낸다. 일단 양적인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이유가 뭘까? 치과는 자리라는데, 그 ‘입지’의 위엄을 무색케 한 BK의 비결이 궁금해진다. 포근하고 깔끔한 실내 분위기건물 뒤편의
오충원 원장의 예원부부치과는 일산 동구 중산마을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단지가 형성되던 초창기에 이곳에 들어와 18년째 한곳에서 치과를 운영 중이다. 사거리 코너건물 3층에 위치한 예원부부치과의 첫 인상은 좁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입구를 밀고 들어서면 접수대와 대기실이 있고, 중문을 한 번 더 열고 들어가야 진료실로 이어지는 구조가 각각의 공간을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18년의 연륜은 치과 전체를 조금씩 올드하게 만들고 있었다. 딱히 어디가 어때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곳에서 밝고 화사한 느낌을 받긴 어려워 보인다’는 느낌은 분명했다.그럼에도 오 원장은 지금까지 꾸준히 경영성과를 유지해 왔다. 요즘은 오히려 잦은 강연을 통해 부지런히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 치과의사들에게 전파하는 중이다. 이는 결국 병원 인테리어와 환자 수의 상관관계가 그리 크지 않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치과는 분명 커피숍이나 호텔과는 다르다. 그런 장소야 분위기가 곧 주 상품이지만, 치과의 주상품은 분위기가 아니라 임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 원장은 철저히 임상 중심의 치과를 운영해 왔고, 또 그런 입소문을
강익제 원장은 얼마 전 치과를 확장했다. 그래봤자 30평에서 50평으로 넓힌 거지만, 비용으로 따지면 대충 1억여원이 들어갔다. 모두들 어렵다고 야단인데 왜 이 시점에 치과를 늘였을까? “40대면 치과의사의 정점이고, 그런 40대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를 한 셈”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체어도 2대 늘였으므로, 덕분에 환자들도 강 원장 자신도 조금은 편해진 것 같단다. 5년 전쯤 강 원장을 비슷한 성격의 인터뷰에 초대한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임플란트와 개원강의에 한창 신을 내는 중이었고, 개원 3년차임에도 이미 비교적 안정적으로 치과를 운영하는 단계에 들어 있었다. 다시 만남 김에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를 물었다. “주위가 많이 복잡해졌어요. 대형치과도 덤핑치과도 들어오고, 치과가 5개나 늘어났죠. 격전지가 된 셈인데..., 하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환자들도 여전하고, 수입도 줄어든 건 아니니까 나름 선방한 거죠?”강 원장은 여전히 개원 강연에도 짬을 내고 있었다. 1년에 3차례 정도지만, 특별히 광고를 하지 않아도 매회 60~80명의 젊은 치과의사들이 모여든다. 그들 입장에선 들을 게 충분하다는 의미다
산본 이마트 뒷편 플로리다치과 김대성 원장은 경북치대를 졸업하고 이대목동병원 구강외과에서 수련을 마쳤다. 그리곤 미국 플로리다치대로 건너가 다시 2년을 공부했다. 미국에선, 임시면허를 받아 환자 치료까지 맡았었는데, 탄탄한 기초에 바탕을 둔 전통적 술식을 구사하는 그들에게 김 원장은 썩 괜찮은 턱교정 술식을 선보여 유사 환자의 경우 의례 김 원장 차지가 되게 만들기도 했다. 귀국 후 연고도 없는 산본에 플로리다 치과를 연지 올해로 5년째다. 이 기간 동안 김 원장은 꾸준히 병원을 성장시켰다. 초기 임플란트에 치중해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했고, 한 때 실패 임플란트 재수술 치과를 구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임플란트 호황기는 의외로 빨리 저물었다. 지금은 임플란트 위주로 치과를 운영하기엔 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다행히 김대성 원장은 사랑니 발치로 틈새를 개척해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맞게 된 사랑니발치 환자가 주위에 ‘아프지 않게 빨리 뺀다’는 소문을 내줬다. 환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면서 김 원장은 어느새 인터넷에서 사랑니 발치의 달인이 돼 있었다. 요즘은 적게는 10명, 많은 날은 30명이 넘는 사랑니 발치 환자들이 매일 줄을 선다. 이쯤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