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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끊임없이 흥미로워야.. 그래서 도전 즐겨'

[기획/ 치과의사 발명가들 1] 네오바이오텍 허영구 원장

허영구 원장을 모르는 치과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인기 연자였고, 네트워크 치과그룹의 대표원장이었으며, 지금은 메이저 임플란트 제조업체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이런 알만한 직함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를 특별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이 뭔가를 궁리한다는 데에 있다. 임상가로 얻은 자신의 경험을 강연을 통해 다른 치과의사들에게 전달하면서 허 원장은 일반 치과의사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하나 둘 머릿속에서 정리해 나갔고, 그런 결과로 그는 임상에서의 난관을 극복케 하는 여러 가지 솔루션들을 직접 제품화하기에 이르렀다.

임플란트 회사 네오바이오텍이 다른 업체들과 다른 점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허 원장 덕분에 네오는 남들보다 앞서 임상적 문제를 해결해 내는 원천기술을 다량 보유하게 됐다. 관련 특허만도 200여개에 이를 정도.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네오의 제품들은 대부분 개원가의 환영을 받았다. 무엇을 대하든 ‘완벽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허 원장의 습성 탓에 좁은 입안에서의 일일지언정 그가 궁리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은 언제나 무궁무진하다.

 

제품화의 시작은 임플란트 보철의 새로운 개념인 SCRP였다. SCRP는 당시 핫이슈였던 ‘스크류 방식이냐, 시멘트방식이냐’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의 아이디어로 기존 방식들의 장점만을 따낸 빠르고, 쉽고, 안전한 임플란트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 다음엔 'Sinus Quick'으로 ‘대박’이 났다. 상악동 임플란트 시술을 겁내는 개원의들이 많다는데 착안, 끝이 뽀족하고 스레드가 강력한 픽쳐를 개발한 것. 이 전혀 새로운 임플란트는 상악의 얇은 골에서도 단시간에 우수한 고정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에 ‘SCA Kit’가 가세하면서 임플란트 시장엔 이른바 ‘상악동 붐’이 일기 시작했고, 이는 곧 네오바이오텍이 급속히 성장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그런 자신의 제품들을 대하는 허 원장 본인의 기분은 어땠을까?

 

 

-개발자들도 스스로에게 감동을 하나요? 허 선생께 그런 제품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하하.. 감동까지는 몰라도 보람은 느낍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꼭 필요했던 물건이라고 여겨 주니까요. 가령 ‘FR Kit’는 잘못된 임플란트를 제거하는 툴인데, 아무리 유착이 잘된 픽쳐라도 골 손상없이 빼내거든요. 이전에는 꼼짝없이 넓게 도려내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다들 무척 신기해했죠. 이걸 보고 일본의 고미야마 선생은 ‘20세기엔 브레네막이 영웅이었다면 21세기엔 FR Kit의 허 선생이 최고다’고 추켜세우기도 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임상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요즘도 임상은 계속합니다. 사업이라곤 하지만 회사에선 연구 개발쪽 일만 담당하므로 저한텐 임상이 곧 선생인 셈이지요. 계기로 치자면 아무래도 미국 유학이 되지 않을까요? 개원 5년차에 모든 걸 훌훌 털고 미국으로 갔으니까요. 주위에선 반대가 심했죠. 하지만 당시의 저로선 변화가 절실했어요. 그곳에선 임플란트 뿐 아니라 베이직에서 보철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이 기간에 어눌했던 영어도 완성을 하고. 그리곤 갖고 간 돈을 다 써고 5년만에 돌아왔는데, 그러고 나니 뭔가 눈이 좀 터이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 때부터 배운 걸 부지런히 국내에 전달하기 시작했죠.”

-아~ 이 때가 BAO를 이끌던 시기군요. 호응이 아주 좋았죠 아마?

“그랬을걸요? 하하~ 제 강연은 몰입도가 높은 편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했던 걸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거든요. 임상의 스탭 스탭을 사진으로 찍어 실제 경험을 전달했고, 이것이 바로 제 강연의 핵심이었죠. 1997년부터 한 10년간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 시기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요? 그런데 어떻게 회사를 하게 됐나요?

“2006년에 SCRP를 갖고 회사를 차렸어요. 누구에게 맡겼다가 잘 안 돼서 직접 나서게 된 경우였죠. 그런데 이듬해 네오바이오텍 회장이 저를 찾아와선 느닷없이 회사를 인수하라는 거에요, 네오를 살릴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면서. 다른 건 몰라도 공장과 연구소는 탐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모아 덜컥 일을 저질렀죠. 김인호 사장을 만난 것도 그 때에요.”

-잠깐만요. 치과만 해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분이 왜 리스크가 큰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걸까요?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글쎄요~ 아마 제게 변화의 DNA가 있나 봐요. 그냥 있는 건 뭐든 답답하게 느껴지거든요. 사업은 리스크가 커지만 제 삶의 철학이 회사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인생은 끊임없이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 제 신조이고, 그런 면에서 전 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도전이라.., 그래서 그 도전에 성공을 한 건가요, 지금쯤? 이 부분은 김인호 사장님이 답변을 좀 해 주시죠.

“하하~ 그렇다고 봐야겠죠? 2007년 당시 직원 23명, 연매출 30억원의 회사가 10년도 안돼 직원 300명, 매출 550억 정도의 중견기업으로 자랐으니까요. 더구나 내년부턴 해외 진출도 본격적으로 이뤄집니다. 대상국의 허가를 올해 모두 끝냈거든요. 내부 조직도 직무중심제로 시스템을 바꿔가는 중이에요. 이렇게 되면 팀별 미션이 보다 명확해져요. 작년에 World Class 300에 들었고, 네오는 현재 ‘2025년 매출 1조원’을 목표로 차근 차근 로드맵을 밟고 있는 중입니다.”

 

 

김인호 사장은 이어 ‘고객만족을 위해 품질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이를 위해 모바일 VOC(고객의 목소리)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도 소개했다.

그 사이 허영구 원장은 책장에서 제품 카탈로그를 가져 와서는 이 역시 그의 머릿속에서 출발했을 무척 아이디얼한 제품 두어개를 더 보여 주었다. 하나는 ‘CTi-Mem’이라고 GBR을 아주 쉬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i-Brush’라는 제품으로 임플란트 주위염 치료를 위해 픽쳐의 나사골 사이사이를 순식간에 깨끗이 청소해주는 툴이었다.

그는 요즘엔 Guided Implant에 꽂혀 있다. 네오의 Lab용 밀링기는 이미 시중에 150여대가 깔려 있고, 치과용 밀링기도 완성 단계에 있다. 이 제품이 개원가로 진출하는 날엔 CT, 스케너, 3D프린트와 라인업을 이뤄 임플란트에서 ‘Anytime Loading’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란다.

허영구 원장은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행복의 관점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현재 생각 이상으로 잘 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고객들에게도 ‘문제가 뭐든 거기에 맞는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피드백을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