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재미있기 위해서는 뻔한 스토리로 가는 걸 피해야 한다. 백설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긴~ 잠에 빠지지만, 반전을 위해 다음 단계에 왕자의 키스가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정치도 마찬가지다. 뻔한 스토리를 피하기 위해 이합집산이니, 합종연횡이니, 음모니, 배신이니 하는 말들이 늘 따라 다닌다. 치과계라고 다를 것은 없다. 이곳 정치에도 이합집산은 물론 음모도 배신도 있다. 그래서 선거를 치룰 때마다 몇몇은 마음에 치유하기 힘든 깊은 자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집행부 내부의 선거역학은 현재 ‘협회장 대 부회장단’으로 굳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쪽’과 ‘집행부의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는 쪽’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이 또한 선택받기 위한 필사의 경쟁인 셈이다.
그러므로 전편에서 예고한 최남섭 부회장의 반격은 어떤 의미에선 홍순호 부회장의 반격일 수도 있다. 그 또한 모교 동창회를 등에 업고 열심히 가치를 키워가는 중이므로, 우종윤 부회장까지를 포함한 3인의 선출직 부회장이 힘을 합쳐 협회장을 압박할 경우 집행부 내부의 긴장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김세영 협회장 역시 이기는 게임을 위해선 이들 3인과의 동맹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보는 내가 한다, 느낌 아니까~
최남섭 부회장이 최종 주자로 살아남기 위해선 먼저 서울치대 동창회라는 또 하나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여기에선 당연히 안창영 전 부회장과 김철수 예비후보가 관계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이 부분과 관련해 최 부회장은 일단 동창회를 압박하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라면 그 길을 당당히 걸을 명분이나마 얻게 되길 그는 바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새로 시작하기보다 고치는 작업이 더 힘든 법이다. 최남섭 부회장이 단도직입하지 못하고 속을 태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 부회장에 비하면 안창영 전 부회장은 ‘김철수 무력화’에 훨씬 적극적이다. 왜냐하면 그의 입장에선 김철수 예비후보만 넘어서면 우선은 달리 눈치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동창회 요로에 경선요건의 주요 하자를 지적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동창회가 안 전 부회장의 지적이나 요구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오히려 궁금한 것은 이후 그가 꺼내 들 카드가 뭘까 인데, 여기에 대해선 아직은 양 당사자 모두 함구중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안창영 전 부회장의 속마음을 읽어내기는 쉽지가 않다. 하지만 경선을 포함해 이미 몇 번의 선거를 경험한 그로선 유, 불리를 떠나 사람간의 관계를 전적으로 신뢰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져 있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 믿음의 문제가 결국 내부에서 ‘치과계를 위해 나 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선발주자의 비애, 내 상대는 누구?
이쯤에서 이들 두 전,현직 부회장과 대치점을 이룬 김철수 예비후보(치과미래정책포럼 대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대표는 실제적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한 유일한 예비후보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치과의사들이 모이는 자리면 거의 빼놓지 않고 참석하려 하고, 또 참석한다. 지난 토요일 밤에도 그는 홍대 앞 자이리톨밴드의 공연 뒷풀이에 등장해 한참을 어울리다 일어섰다.
지난 7월 막을 올린 릴레이식 정책콘서트는 실효성에 상관없이 그가 주도적으로 사람을 모으고 회무철학을 전파하는 공식창구로 활용 되고 있다. 6년 전 안성모 집행부의 법제이사로 일한 경험이 중앙회 회무이력의 전부인 김 대표가 상대적으로 뒤질 수밖에 없는 지명도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이 정책콘서트는 훌륭한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먼저 출발했다고 모든 게 좋은 것은 아니다. 주위의 견제가 만만치 않은데다 반 서울대 분위기를 무마하는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내부 단속을 위해 동창회와의 유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식도 선거전에 본격 돌입해선 결국 본인에게 부메랑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고, 그는 어쨌든 움직이는 방식을 선택한 듯 보인다. 청 코너에서 먼저 열심히 몸을 풀면서 홍 코너에 올라올 상대 선수를 기다리겠다는 계산이다.
그 상대가 기왕이면 김세영 협회장이었으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이어도 상관은 없다. 다만 그로선 솟은 듯 링 위로 뛰어올라 입술을 앙 다문 채 두 주먹을 퍽 퍽 부딪는 홍 코너의 선수가 최남섭 부회장이나 안창영 전 부회장인 상황만은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발 앞의 기회를 차버리진 않겠다
지금으로 봐서는 이번 선거는 양자구도로 굳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치과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선거’라는 변수가 그런 다자 구도를 부추길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집행부 내부 동맹이 깨지는 경우를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협회장과 부회장단이 갈라서는 경우와 조정에 실패한 최남섭, 홍순호 부회장이 동시에 출마하는 경우.
이렇게 되면 표의 집중력이 약해져 의외의 다크호스를 선거판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인물은 이상훈 전 치개협 대표. 현재 부천시치과의사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늘 젊은 지지세력들에 둘러싸여 있다. 본인이 결정하기에 따라 출마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는 얘기다.
다른 의미에서 박영섭 부회장도 항상 출마 가능성을 저울질 당하는 입장이다. 그는 자의든 타의든 그동안 자신의 영향력을 선거를 통해 평가 받아왔으므로 정치적 자산에 있어선 통장 잔고를 보듯 언제나 투명한 상태. 박 부회장은 지난 회무에서의 적지 않은 성과를 바탕으로 특히 지방 치대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두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괜히 서둘러서 일을 그르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물리적으로 이들에겐 아직 기회가 남았다는 의미인데, 그렇더라도 두 사람은 '심사숙고는 하겠지만 발 앞에 떨어진 기회를 그냥 차버리지는 않겠다'는 각오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