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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학술

파리의 치과의사 '피에르 포샤르'를 만나다

300년전 그를 되살린 번역의 美學

지난달 28일 저녁, 연세대 알렌관으로 대한치과의사학회 회원들이 모여 들었다. 이 학회 이름으로 펴낸 ‘치과의사’ 번역본의 출판기념회를 위해서 였다. 20여명의 참석자들은 입구에서 출판사가 막 실어온 따끈따끈한 책 한권씩을 받아 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곤 한동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념회가 시작되자 역자들을 앞으로 불러 낸 조영수 회장은 2년여에 걸친 번역의 과정을 소개한 뒤 “이번 출판으로 우리는 삼백년 전 공공에 가장 유용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했던 치과의사 피에르 포샤르와 새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참석자들도 이들 젊은 역자들이 빚어낸 피에르 포샤르의 현신에 다들 깜짝 놀란 눈치들이었다. 실제 번역본 ‘치과의사’는 그 장정과 디자인에서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다. 치과계가 펴낸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격조를 따진다면 단연 군계일학으로 치켜세울 수 있을 만큼 전체적으로 매끈하다.
그러나 정작 독자들이 놀라게 되는 건 이들의 책 ‘치과의사’를 펼치고 난 이후 부터이다. 그 속에선 마치 어제의 일처럼, 300년 전 파리의 치과의사 피에르 포샤르가 온기를 머금은 채 되살아난다.

 

-1720년, 파리 모베 가르송 거리에 사는 철물상 클제지 씨의 스물다섯 된 아들이 하악 우측 두 번째 큰 어금니 우식이 있어 계란 노른자 크기의 종양이 생겼다. 종양은 빰 바깥쪽에 생겼는데 곪아 터지곤 했다. 처음에는 마을의 공인 외과의사를 찾아갔다. 그는 메스로 째고 붕대로 압박하면 나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그렇게 해도 빰의 누관은 없어지지 않고 매일 고름이 흘렀다. 젊은이는 마침내 나를 찾아왔고, 진찰해 보니 치아 우식 말고는 문제될 만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주저 없이 발치했고 오래지 않아 환자는 완치되었다.

-1724년 11월 11일. 파리의 선서 외과의사 타르탕송 前 학장은 하악 절치와 송곳니에 심한 통증이 있었다. 치아 윗부분만 약간 닳았을 뿐 우식도 전혀 없었는데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며 나를 불렀다. 검사한 결과 우측 송곳니가 민감했으며 이것이 통증의 원인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 치아가 다른 치아보다 윗부분이 많이 닳아서 치수강으로 들어가는 신경이 바람과 접촉하여 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치수강 안에 썩은 침전물이 생겨 있을 것이며 구멍을 뚫어 빼내면 통증도 멈추고 치아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아 윗부분에 조각도를 대고 우측에서 좌측으로 다시 좌측에서 우측으로 돌려 구멍을 뚫고 같은 방법으로 굴삭기를 돌려 구멍을 더 크고 깊게 파냈다. 치수강이 열리자마자 상당한 양의 농과 피가 흘러 나왔고, 그의 도제인 라레르 씨가 있는 자리에서 환자에게 거울로 보여 주었다. 매우 숙련된 외과의사임에도, 그에게 이 장면은 아주 독특하고 보기 드문 일이었다.
어떤 저자가 이와 비슷한 질병에 대해 보고했더라도, 내가 한 것처럼 치아를 구멍을 내서 갇혀있는 농에 배출구를 만들어 주는 치료법을 생각해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1727년 1월, 아믈로 드구르네 회장의 열세살 난 아들이 돌에 걸려 넘어져 치료를 받으러 왔다. 상악 좌측 중절치의 끝 부분이 많이 부서져 있었고, 측절치는 완전히 부러져 치근만 남아 있었다. 치근을 뽑고 나서 그 공간 쪽으로 송곳니와 첫 번째 작은 어금니를 당겼다. 남아 있는 세 절치도 당겨서 빈 공간을 잘 채워 지금 보면 마치 아무 치아도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루걸러 철선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5주 시술한 후 치아 길이를 줄로 다듬어 마치 끝이 부서진 치아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했다.

 

 

책은 원저에 따라 1, 2권으로 내용을 구분했는데, 1권에선 구강질환과 치료법 및 임상 케이스를 2권에선 치료에 필요한 각종 기구와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물론 위에서 예로 든 치료사례들이다. 피에르 포샤르의 임상 케이스를 읽다 보면 ‘현재의 치료와 다를 게 뭔가’ 싶을 만치 과학적이며 계통적이다.

그는 책 속에서, 빼낸 치아를 자유자재로 다시 심고, 공간을 확보한 후 치아를 밀고 당겨서 가지런히 정렬하는가 하면 오염된 치수강을 끍어낸 후 충전 하는 보존치료까지를 탈 없이 해내고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동시에 오늘날의 치과의사들에게 얼마나 큰 자극인가. 그는 그의 책 '치과의사'의 서문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나는 40년 이상 쉼 없는 임상 경험을 통해 서서히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고, 처음 생각의 결함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고통과 밤샘을 거쳐 얻은 열매를 모두 이처럼 공개하는 것은 치과의사라는 전문 직종을 수행하려는 이들에게 쓸모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치아를 건강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생존하고 있는 저자로서,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감사하며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된다. 바로 그 점에서 나 자신이 공공에 가장 유용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한다.-

 

[신간안내] ‘치과의사’ Le Chirurgien Dentiste, 피에르 포샤르 지음, 강명신 김백일 김혜영 김희진 박용덕 박호원 이주연 조영수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刊. 사륙판 668쪽, 값 3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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