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제작년에 타운스빌 국립병원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 하려고 해요. 호주뿐만이 아니고 서양사회에서는 요즘 점점 더 결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혼도 워낙 많이 하고, 또 결혼을 안하고 아이를 낳아서 사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러한 세태변화로 인해 병원에서 생기는 작은 문제점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미성년자들의 치과 치료시 부모님(Legal guardian)의 '치료동의서' 작성 문제입니다. 미성년자(만 0세~17세)의 경우 발치나 충치치료는 물론이고 방사선촬영이나 검진까지도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요. 보호자가 함께 치과를 방문했을 경우 구두로 동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호주 국립병원에서는 어떤 경우든 문서로 부모님의 동의서를 작성을 해야 해요. 그리고 문제는 종종 병원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어른 혹은 보호자가 아이들의 법적 보호자 (legal guardian)가 아닌 경우에 발생을 하지요. 그리고 법적 보호자는 친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거나 전과가 있을 경우, 혹은 부모가 이혼을 해서 양육권이 바뀐 경우에도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부모가 직접 아
치과대학 교양과정인 예과에서 ‘세계문화사’를 만났다. 고교시절 사건·인명·연대를 달달 외운 세계사가, 지나간 인류사회 사실(Fact)의 나열이라면, 그 시대 문화를 읽는 인문학단계로 격상된 것이 문화사다. 사전을 보면 ‘문명’은 “사회의 기술적·물질적 발전에 의하여 인간의 생활이 발달한 상태”요, ‘문화’는 “인간의 본성인 이상을 실현하려는 활동의 과정 또는 성과, 특히 예술·도덕·종교·제도 등 인간의 내면적·정신적 활동의 소산”으로 정의한다. 문명은 단기에 압축성장이 가능하지만, 문화는 면면히 이어지는 노력과 축적을 요한다. 또 문화가 앞장서서 문명을 이끌어 갈 때에만 역사는 정의 방향으로 나간다. 세월호와 같이 함량미달 전문직에 의한 대형사고, 땅콩 회항처럼 유치한 재벌 3세 임원, 어장(어쩌다 장관이 된) 수준의 고위공직자가 보여주는 추태 등 무한 재방송되는 국제적인 망신은, 바로 GNP 3만 달러의 문명을 성취했으되 문화는 아직도 3천 달러수준에 머물러 있는, “문화와 문명의 괴리(乖離)”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결론은, “문화의 생활화” 즉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문화시민으로 거듭나야만, 원시적·후진적인 추태나 망신, 비극에 마침표를 찍고,
예로부터 소라는 동물은 살아서는 사람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도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 갑니다. 그렇게 착한 놈을 신년벽두 대낮부터 먹으려니 께름칙하긴 합디다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소(한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특별히 한우나 수입육을 따지지 않습니다. 등심과 같은 부위를 좋은 숯에 구워먹을 때는 한우를 선택하지만, 양념을 한다거나 찜, 국 등으로 요리를 할 때는 육우니 혹은 수입육이니를 가리지 않지요. 고소함이나 씹는 질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양념을 해버리면 맛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운데다 합리적이지 못한 가격 차이를 받아들이기 싫어서입니다. 비록 양력 설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새해이니 첫 술을! 그것도 낮술을 하고 싶은데 뭘 먹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어 메뉴를 고민하다가 꼬리찜 사진을 보고는 바로 결정을 해버렸지요. 다음은 누구를 불러야 할 지 고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치과대학 동기들이 제일 만만합니다. 삼십여 년 이상을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으니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해주기 때문이겠죠. 카톡을 보냈더니 넷 중에 셋이나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사내들은
환자들이 내원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 중에 환자의 주소(Chief complain)를 듣는 일이다. 치과질환에서 일반적으로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아프다’는 표현과 ‘이가 시리다’는 표현이 제일 많을 것이다. 교과서에 나열 되어있는 주소의 내용은 의학적인 용어로 동통, 치은출혈, 지각과민(Hypersensitivity), 입냄새, 잇몸가려움 등으로 기술이 되어 있지만 막상 환자들이 호소해오는 주소는 환자 나름대로의 극히 평범하고 유치한 표현으로 그들만의 특이한 언어(言語)로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환자들이 그러한 호소를 재구성 편집하여 또다시 의학적인 주소로 바꾸어 판별, 분석함으로써 치과질환의 진단이나 치료방법을 선택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우리들이 가장 곤혹스럽고 또 오진을 범하기 쉬운 경우가 환자의 주소를 잘못 판별했을 때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과장되거나 엄살이 지나치거나 또는 전혀 거짓 호소를 해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환자들의 호소를 그대로 받아 치료를 적응하면 과잉치료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치과질환이란 진단의 학문이 아니다. 치과의 2대 질환이라 불리우는 충치나 잇몸병은 누구나가 찾아낼 수 있고 또
겨울 진미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삼치회가 가장 ‘BEST OF BEST’라고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송구스럽게도 제대로 된 삼치회는 아직 먹어보지를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삼치회 그것도 대삼치회를 먹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자에 언급된 내용을 종합했을 때,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까 하는 저만의 추측인 게지요. 그러나 냉동 상태로 올라 온 삼치회는 몇 차례 경험을 해보았는데, 그 맛이 마치 부드러운 셔벗이나 옛날 ‘서주 아이스주’ 비슷한 맛과 질감이었던 기억입니다. 헌데, 내륙에서는 왜 삼치를 회가 아닌 구이나 조림으로만 먹을 수밖에 없을까요? 삼치는 선어 상태로 보관을 할 때 이틀 정도가 한계라는군요. 그러니 대삼치가 아닌 작은 삼치를 냉동하여 시중에 유통을 하는 것이죠. 결국 우리는 구이나 조림 맛으로만 삼치를 평가해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삼치는 살이 워낙 부드러워 선어 상태에서 회를 뜨기도 쉽지가 않은데다 아마추어가 어설프게 썰면 살이 그냥 뭉게져 버립니다. 그래서 삼치는 잡자마자 포를 뜬 뒤에 랩을 씌워 그대로 얼려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냉동된 상태의 삼치는 초보자라도 쉽게 썰 수가 있습니다. 회를 썬 뒤에도 절대 녹이면 안 됩니다
올 해에만 4,798명의 치과위생사들이 새로 배출됐습니다만, 일선 개원가에선 늘 인력수급이 문젭니다. 광고를 내도 지원자조차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보건기관을 포함해 전국 치과에 근무하는 치과위생사 수는 기껏 2만7천 명 정도입니다. 1년에 5천여 명의 신규 인력이 배출되는 걸로 치면 겨우 5.5년 치 자원만 현업에 남아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설마 5년 동안만 일하기 위해 어렵게 치과위생사 자격을 딴 건 아닐테고, 대체 그 많은 인원이 죄다 어디로 숨어버린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유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결혼 등 개인 사정으로 인한 자발적 유실분이고, 다른 하나는 치과에서 선호하는 년차를 지난 고임금 인력들의 ‘자의반 타의반’식 도태입니다. 치과위생사들은 근무 경력이 한곳에서 쭉 이어지면 비교적 오랜 기간 현장에 남지만, 이리저리 치과를 옮겨 다니다 보면 뜻하지 않게 조기에 현업에서 물러나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결국 한 해에 5천여 명이나 배출되면서도 현장에선 필요한 인력을 제 때 채용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빚어지는 거지요. 그러나 인력문제는 하소연만 한
'Perfect day'는 사용하기에 따라 무척 은유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완벽한 하루라는 의미를 실제론 가장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 빗대는 거지요. 루 리드(Lou Reed)의 노래 'Perfect day'도 마찬가집니다. 가사는 가장 완벽한 하루를 그리고 있지만 노래의 분위기는 음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혹 '공원에서 상그리아를 마시고,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영화를 보고, 늦은 시각 아쉽게 집으로 돌아오는 완벽한 하루'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치과의사들의 'Perfect day'입니다. 환자를 한 명도 보지 못한 경우를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루 리드의 노래를 빌리자면 이런 식입니다. 정말 완벽한 하루였어. 종일 환자들에게 시달리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퇴근을 하지. 정말 완벽한 날이야. 하루 종일 임플란트를 심고, 몇몇 환자는 돌려보내고, 내일 할 일을 스크린한 다음에야 피곤한 몸으로 퇴근을 해. 오 정말 완벽한 하루. 이런 날을 맞을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 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든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 물론 반어적인 'Perfect d
경기도 수원은 큰 하천도 없고 대형 저수지도 없는 전형적인 물 부족 지역입니다. 그런데 수원(水原, 물골)이라고 최종적으로 이름을 정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었답니다. 물론 정조대왕('대왕'이란 표현엔 논쟁이 따릅니다만)의 하명을 받자와 그리 정하였겠지요. 원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도 '수원'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지만, 작은 고을 이름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큰 광역 지역을 의미했다는군요. 조선 정조 이전에는 화성유수부라고 불렀는데, 다시 '수원'으로 원위치한 이유는 아무래도 토속 신앙적 혹은 주술적 영향이 컸을 겁니다.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애써 신도시를 건설했는데, 물 부족 때문에 기근에 시달린다면 왕으로서 체통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하여, 이름으로나마 물이 넘쳐나는 곳이라 지음으로 해서, 가뭄을 예방하려는 심리가 작동했겠지요. 그런 까닭인지 제가 수원에 산 이래로 큰 가뭄이나 그 반대인 물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수원천이 범람 일보 직전까지는 갔긴 했었지요)그런데 수원에 '수원'이라는 중국집이 있습니다. 당연히 음차를 적절히 이용한 표현입니다만, 역시 화교답게 '목숨 수(壽)'를 썼네요. 그리고 '동산 원(園)'이니 결국 '장수만세 마을'을 뜻
밤 노래·4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바람부는 언덕에서, 어두운 물가에서어깨를 비비며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마른 산골에서는 밤마다 늑대들 울어도쓰러졌다가도 같이 일어나 먼지를 터는 것이 어디 우리나라의 갈대들뿐이랴.멀리 있으면 당신은 희고 푸르게 보이고가까이 있으면 슬프게 보인다.산에서 더 높은 산으로 오르는 몇개의 구름,밤에는 단순한 물기가 되어 베개를 적시는 구름,떠돌던 것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가 되어 내리고내가 살던 먼 갈대밭에서 비를 맞는 당신,한밤의 어두움도 내 어리석음 가려 주지 않는다.[갈대]갈대들이 서걱서걱 마른 몸을 부딧치며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꼬불 꼬불 멀리 걸었습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넓은 들 저편에서 이편으로 길게 비명이 이어졌습니다.털 달린 방한모자를 뒤집어 쓰는 척 우리는 귀를 막았습니다.그렇습니다. 멀리서 보면 회색의 무리로 일렁일뿐이지만가까이서 보면 날카롭게 몸을 부빕니다, 그들은.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겠습니까만,이럴때면 사는 모양이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을까 싶습니다. 시인은 떠돌던 것들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로 내린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언제쯤 비가 되어 누군가를
제주도는 외지인들이 보기에 극과 극으로 다가올 때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일반 접객업소들도 아주 친절하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불친절하거나, 가격도 비싸거나 아니면 놀랄 정도로 아주 싸거나, 음식마저 끝내주게 맛있거나 아니면 ‘니맛도 내맛도’ 아니거나 말입니다. 요즘은 여기에 더하여 관광지나 음식점에 ‘중국 사람들이 너무 많거나 아예 없거나’가 추가되었지요.게다가 제주도민들이 관광객을 포함한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양극단이어서 놀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에 대해서 뭔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있지만 필설로 표현하기엔 정리가 좀 어렵습니다. 어쨌든 예로부터 뭍사람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옛날, 같은 하숙집에 제주도에서 유학을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평소엔 표준말을 사용하다가 집에서 전화가 오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같은 말로 대화를 하더군요. 그러나 이제 제주어는 학생들이 점점 외면하고 사용하지 않는 바람에, 고어(古語)를 지나 사어(死語)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다름'에 대한 콤플렉스도 한몫 했거니와 육지와 섬이 이젠 한 몸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옛말에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사람을 낳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