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day'는 사용하기에 따라 무척 은유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완벽한 하루라는 의미를 실제론 가장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 빗대는 거지요. 루 리드(Lou Reed)의 노래 'Perfect day'도 마찬가집니다. 가사는 가장 완벽한 하루를 그리고 있지만 노래의 분위기는 음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혹 '공원에서 상그리아를 마시고,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영화를 보고, 늦은 시각 아쉽게 집으로 돌아오는 완벽한 하루'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합니다.하지만 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치과의사들의 'Perfect day'입니다. 환자를 한 명도 보지 못한 경우를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루 리드의 노래를 빌리자면 이런 식입니다.정말 완벽한 하루였어. 종일 환자들에게 시달리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퇴근을 하지. 정말 완벽한 날이야. 하루 종일 임플란트를 심고, 몇몇 환자는 돌려보내고, 내일 할 일을 스크린한 다음에야 피곤한 몸으로 퇴근을 해. 오 정말 완벽한 하루. 이런 날을 맞을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든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물론 반어적인 'Perfect day'
경기도 수원은 큰 하천도 없고 대형 저수지도 없는 전형적인 물 부족 지역입니다. 그런데 수원(水原, 물골)이라고 최종적으로 이름을 정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었답니다. 물론 정조대왕('대왕'이란 표현엔 논쟁이 따릅니다만)의 하명을 받자와 그리 정하였겠지요. 원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도 '수원'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지만, 작은 고을 이름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큰 광역 지역을 의미했다는군요. 조선 정조 이전에는 화성유수부라고 불렀는데, 다시 '수원'으로 원위치한 이유는 아무래도 토속 신앙적 혹은 주술적 영향이 컸을 겁니다.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애써 신도시를 건설했는데, 물 부족 때문에 기근에 시달린다면 왕으로서 체통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하여, 이름으로나마 물이 넘쳐나는 곳이라 지음으로 해서, 가뭄을 예방하려는 심리가 작동했겠지요. 그런 까닭인지 제가 수원에 산 이래로 큰 가뭄이나 그 반대인 물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수원천이 범람 일보 직전까지는 갔긴 했었지요)그런데 수원에 '수원'이라는 중국집이 있습니다. 당연히 음차를 적절히 이용한 표현입니다만, 역시 화교답게 '목숨 수(壽)'를 썼네요. 그리고 '동산 원(園)'이니 결국 '장수만세 마을'을 뜻
밤 노래·4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바람부는 언덕에서, 어두운 물가에서어깨를 비비며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마른 산골에서는 밤마다 늑대들 울어도쓰러졌다가도 같이 일어나 먼지를 터는 것이 어디 우리나라의 갈대들뿐이랴.멀리 있으면 당신은 희고 푸르게 보이고가까이 있으면 슬프게 보인다.산에서 더 높은 산으로 오르는 몇개의 구름,밤에는 단순한 물기가 되어 베개를 적시는 구름,떠돌던 것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가 되어 내리고내가 살던 먼 갈대밭에서 비를 맞는 당신,한밤의 어두움도 내 어리석음 가려 주지 않는다.[갈대]갈대들이 서걱서걱 마른 몸을 부딧치며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꼬불 꼬불 멀리 걸었습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넓은 들 저편에서 이편으로 길게 비명이 이어졌습니다.털 달린 방한모자를 뒤집어 쓰는 척 우리는 귀를 막았습니다.그렇습니다. 멀리서 보면 회색의 무리로 일렁일뿐이지만가까이서 보면 날카롭게 몸을 부빕니다, 그들은.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겠습니까만,이럴때면 사는 모양이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을까 싶습니다. 시인은 떠돌던 것들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로 내린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언제쯤 비가 되어 누군가를
제주도는 외지인들이 보기에 극과 극으로 다가올 때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일반 접객업소들도 아주 친절하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불친절하거나, 가격도 비싸거나 아니면 놀랄 정도로 아주 싸거나, 음식마저 끝내주게 맛있거나 아니면 ‘니맛도 내맛도’ 아니거나 말입니다. 요즘은 여기에 더하여 관광지나 음식점에 ‘중국 사람들이 너무 많거나 아예 없거나’가 추가되었지요.게다가 제주도민들이 관광객을 포함한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양극단이어서 놀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에 대해서 뭔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있지만 필설로 표현하기엔 정리가 좀 어렵습니다. 어쨌든 예로부터 뭍사람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옛날, 같은 하숙집에 제주도에서 유학을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평소엔 표준말을 사용하다가 집에서 전화가 오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같은 말로 대화를 하더군요. 그러나 이제 제주어는 학생들이 점점 외면하고 사용하지 않는 바람에, 고어(古語)를 지나 사어(死語)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다름'에 대한 콤플렉스도 한몫 했거니와 육지와 섬이 이젠 한 몸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옛말에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사람을 낳으면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경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치과의사 선생님들도 일터에서는 조 부사장처럼 명백한 오너이므로 언제든 똑 같은 무리를 저지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필자도 잠시 신문사를 직접 운영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사실 부끄러운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걸 내 기준에서 생각했으니까요. 가령 기자들이 올리는 원고가 아주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할까, 성의 없이 대충대충 쓰갈기는 건 아닐까? 단 한번도 마감 때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산고를 겪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참지 못하고 부릅니다. "야 이게 뭐냐 원고가"로 시작해서 "차라리 내가 다시 쓰는 게 낫겠다"로 마무리 할 때 쯤이면 기자들도 엥간히 주눅이 듭니다. 문제는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똑 같은 얘기를 매번 반복해야 하니까 짜증이 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날 그 친구가 얼굴색을 붉혀가며 반발을 하더군요. '국장님은 제가 하는 일은 모두 맘에 안드시는 거'라면서.. 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같이 잘 해보자는 상사에게 저렇게 대들
‘우물 안 개구리’란 속담이 새삼 실감이 난다. 필자가 대학에 재직하고 있을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막상 대학을 떠나 우물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세상은 넓고 대학은 너무 좁은 공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대학이란 공간에서 생활할 때는 대학만이 온 우주이며 대학만이 진리가 존재하는 절대적 공간이라는 환각에 빠져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사고 속에서 생활해 오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과 회한이 교차되는 것이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가 존재하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고 빛과 특권과 즐거움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빛과 즐거움이 온누리에 골고루 퍼져 있음을 알고자하면 빨리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벗어던질 줄도 알아야 하는 건데... 급변하고 있는 의료현실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 이론, 방법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한국의학교육엔 의학지식과 의료기술만을 고집하는 교육에 집착할 뿐 막상 의료현실에 대한 감각엔 둔감해 있다. 세상에 모든 이론이 현실에 뿌리를 박고 출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아직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꿈의 세계에서 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의학교육 커리큘럼만 보아도 아직 기초의학과 임상의
우리나라 입시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로 유명하지요. 그래서 요즘의 고3 담임이나 학부모라면, 족집게 도사가 되어야 하고 몇 차 방정식보다 어려운 대학별 입시사정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저희 때는 이과학생들은 국사와 윤리를 제외한 문과 한 과목만 선택이었고, 이과 과목은 전부 필수였습니다. 그러니 전국의 이과 학생들은 가장 점수 따기가 용이한 ‘국토지리’나 ‘사회문화’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골치 아픈 연대 외우기를 해야 하는 역사 관련 과목들은 다들 외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사나 동양사는 남들이 이야기 할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고백하건데, 후에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두어 번 통독을 하고서야 대충 이해를 했습니다. 물론 더 궁금한 것은 짬짬이 책을 찾아보기고 했고, 역사소설 등을 통해 지식을 쌓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한 나라의 입시제도가 개인의 지적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겠더군요.서양사에 '아비뇽의 유수'라고 명명된 교황의 굴욕은 그 이전에 있었던 '카놋사의 굴욕'과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놋사 사건은 왕이 교황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교황의 세력이 약해지게
호주의 치과 전문과목은 Dento-maxillofacial radiology (방사선과), Endodontics (보존과), Oral and maxillofacial surgery (구강 외과), Oral medicine (구강내과), Oral pathology (구강병리학과), Oral surgery (구강 외과), Orthodontics (치과교정과), Paediatric dentistry (소아치과), Periodontics (치주과), Prosthodontics (보철과), Public health dentistry, Special needs dentistry 그리고 Forensic odontology 등 총 13개 과목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이중 구강외과는 과거 전문의 과정 2년 수련 후 취득할 수 있는 ‘Oral surgery’에서 현재는 4년의 대학원 과정 이후 3년의 registerer 과정을 마쳐야 취득할 수 있는 ‘Oral maxillofacial surgery’로 바뀌었습니다. 이외 다른 과목의 치과 전문의는 치대 졸업 후 2년의 치과의사 경력을 쌓은 뒤 대학원에서 2~3년의 수련과정을 마치면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2006
1925년 상하이로 건너간 전창근은 소설가 김광주 독립운동가 김구 등을 알게 되어, 교사로 일하는 등 사상적 영향을 받았으며, 영화배우·감독을 하다가 귀국한다(1938). 각본·감독·주연한 영화 ‘복지만리’(!941)의 대사가 불온하다는 혐의로 100일간 구금과 심문을 받던 중 상하이의 항일활동까지 알려져 영화를 접었고, 일제를 찬양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훗날 ‘친일 인물 명단’에 들어간 이유다. 1942년 이후 미국에 연전연패하던 일제는, 일본인은 신민(臣民)이라는 이름으로 총동원하고, 식민지 조선인과 점령지 중국인은 무자비한 무단(武斷)통치로 억눌렀다. 일본제국의 최후발악 3년 동안에 벌어진 지식인·지도급인사의 훼절(毁節)에는, 다분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총리가 ‘현역’ 육군대장으로 총력전을 벌이는 전시에, 군(軍)과 체제에 항거하는 식민지 조선인은 파리 목숨이요, 오늘날 북한처럼 그럴만한 빈틈도 없는 혹독한 ‘병영국가’였다. 필자가 아는 한 일제 강점기에 고 전창근만 한 애국자도 드물다. 남북분단과 6·25가 낳은 ‘연좌제’도 없앤 마당에, 70년도 지난 친일행적을 ‘확대해석’하는 일은, 국민화합에 공적(公敵) 행위로 의심 받을 수도 있다.
홋가이도(북해도)에 가면 천지사방이 먹고 마실 것인지라, 딱히 무엇을 먹으러 여행을 간다고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만큼 리스트에 꼭 넣어야 할 것이 있다면 '스시'입니다. 도쿄 긴자에서 저녁식사 값으로 3~4만 엔을 각오해야 하는 스시 오마카세 코스(주인장 추천 코스)를 홋가이도에서는 더 뛰어난 맛임에도 절반 이하의 가격에 즐길 수 있다면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일단 저질러야 하는 것이지요.일단 삿포로의 대표 스시집은 스시젠(善)입니다. 신라호텔 일식당인 ‘아리아께’에 근무했었다가 지금은 ‘스시효’의 메인 셰프가 되었고,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도 소개되었던 안효주씨가 도제 수련을 받았다는 곳이자. 긴자 최고수들도 머리 숙이고 간다는 곳이 바로 스시젠입니다. 만약 그곳에 가서 셰프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알려주면 그 쪽이 먼저 안효주씨를 아느냐고 되물어 올 정도입니다.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있는 바닷가 소도시 오타루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 주인공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만큼 초밥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며, 심지어 ‘스시거리’라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최고로 치는 곳은 ‘마사 스시’가 아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