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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詩가 있는 풍경 13] 마종기 시인의 '밤 노래·4'

 

밤 노래·4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바람부는 언덕에서, 어두운 물가에서
어깨를 비비며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마른 산골에서는 밤마다 늑대들 울어도
쓰러졌다가도 같이 일어나 먼지를 터는 것이
어디 우리나라의 갈대들뿐이랴.

멀리 있으면 당신은 희고 푸르게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슬프게 보인다.
산에서 더 높은 산으로 오르는 몇개의 구름,
밤에는 단순한 물기가 되어 베개를 적시는 구름,
떠돌던 것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가 되어 내리고
내가 살던 먼 갈대밭에서 비를 맞는 당신,
한밤의 어두움도 내 어리석음 가려 주지 않는다.

 

[갈대]

갈대들이 서걱서걱 마른 몸을 부딧치며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꼬불 꼬불 멀리 걸었습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넓은 들 저편에서 이편으로 길게 비명이 이어졌습니다.
털 달린 방한모자를 뒤집어 쓰는 척 우리는 귀를 막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멀리서 보면 회색의 무리로 일렁일뿐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날카롭게 몸을 부빕니다, 그들은.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겠습니까만,
이럴때면 사는 모양이 어쩌면 그렇게 똑 같을까 싶습니다.
시인은 떠돌던 것들은 모두 주눅이 들어 비로 내린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언제쯤 비가 되어 누군가를 적실까요?
살아온 어리석음을 떠올리면
귀를 막듯 그런 날이 더욱 두려워집니다.

마종기 시인은 193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방사선과 의사로 활동했습니다.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도미 이후에도 꾸준히 시작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시집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에 함께 실린 짧은 시 '기도' 전문.

 

하느님,
나를 이유 없이 울게 하소서.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
눈물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죽어서는
그들의 눈물로 지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