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은 큰 하천도 없고 대형 저수지도 없는 전형적인 물 부족 지역입니다.
그런데 수원(水原, 물골)이라고 최종적으로 이름을 정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었답니다. 물론 정조대왕('대왕'이란 표현엔 논쟁이 따릅니다만)의 하명을 받자와 그리 정하였겠지요. 원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도 '수원'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지만, 작은 고을 이름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큰 광역 지역을 의미했다는군요. 조선 정조 이전에는 화성유수부라고 불렀는데, 다시 '수원'으로 원위치한 이유는 아무래도 토속 신앙적 혹은 주술적 영향이 컸을 겁니다.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애써 신도시를 건설했는데, 물 부족 때문에 기근에 시달린다면 왕으로서 체통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하여, 이름으로나마 물이 넘쳐나는 곳이라 지음으로 해서, 가뭄을 예방하려는 심리가 작동했겠지요. 그런 까닭인지 제가 수원에 산 이래로 큰 가뭄이나 그 반대인 물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수원천이 범람 일보 직전까지는 갔긴 했었지요)
그런데 수원에 '수원'이라는 중국집이 있습니다.
당연히 음차를 적절히 이용한 표현입니다만, 역시 화교답게 '목숨 수(壽)'를 썼네요. 그리고 '동산 원(園)'이니 결국 '장수만세 마을'을 뜻합니다. 이런 상호를 지은 분은 지금 사장님의 선친이십니다. 화교시지만 옛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출신이시고, 대만 장개석 정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 사는 화교 혹은 화인들도 우리네가 일본에서 겪은 고민과 비슷했을 겁니다. 국민당 장개석을 따르는 사람들과 모택동의 공산당을 따르는 사람들로 나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화교들은 예전엔 압도적으로 국민당파 일색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신세 역전입니다. 중국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 들였던 것이지요.
일본의 민단과 조총련 사정도 비슷합니다. 과거 북한이 우리보다 국력이 강했을 때는 당연히 조총련이 우위였지만, 지금의 조총련은 존립조차 희미합니다. 게다가 근현대사에서 여러 사정 때문에 일본으로 밀항을 했던 분들 중에 다수가 북한 편을 들었겠지만, 이제 대한민국이 압도적으로 잘 살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체제 경쟁은 끝이 나버렸습니다. 게다가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탈이념이 당연시되고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축구선수 정대세 같은 재밌는 친구도 나타난 것이겠지요.
각설하고, 중국집 '수원'에는 짜장면이 없습니다. 당연히 우동도 없고, 빨간 짬뽕도 없습니다.
겨울철엔 굴탕면(석화탕면)을 냅니다만, 우리의 굴짬뽕과는 약간 다른 맛입니다. 유일한 면요리가 우육탕면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식사를 해야 할까요? 바로 만두입니다. 그러니까 ‘수원’은 요즘 보기 드문 정통 중화요리집인 게지요.
우리나라에선 만두라고 통칭하여 부르지만, 중국에선 만두, 교자, 포자로 나누어 부릅니다. 실제 오랑캐 머리를 뜻하는 만두(蠻頭, 만터우)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고추잡채나 부추잡채를 싸먹는 꽃빵이 곧 만두입니다.
만두에 속을 채우고 껍질이 두껍고 오동통하게 만들어 쪄낸 것은 포자(包子, 바오쯔)라고 하고, 만두소를 넣고 외피를 얇게 하여 속이 비칠 정도로 만든 뒤 찌거나 구워낸 것을 교자(餃子, 자오쯔)라고 부릅니다. 일본에서는 만두를 거의 교자 스타일(야끼만두)로만 하는데 이젠 완전히 일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기서 저만의 '제대로인 중국집'과 '아닌 중국집' 감별법을 소개할까 합니다.
식당 외부, 내부가 금색, 홍색으로 너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고, 빛이 바랜 흔적이 없는 곳은 엉터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웬만해선 인테리어를 자주 손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식기가 너무 고급이고 새 것이어도 전통의 중화요리집이 아닙니다.
진시황 무덤에서 발굴되었던 병마용 짝퉁 상을 세워둔 곳 역시 기대하면 곤란합니다. 종업원들이 치파오 같은 중국식 유니폼을 맞춰 입은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종합적으로 다 잘하는 것이 아닌 한 두 개 요리로 마케팅이나 하는 중국집도 역시 아닙니다.
주방이 오픈된 곳 중에서, 나이 많은 요리사들과 신참들 여럿이 바글거리고 있다면 제법 괜찮은 곳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나이 든 주방장이 있다는 것은 전통의 옛맛을 유지한다는 말이며, 도제식 교육을 해야 하는 중화요리의 특성상 학교 역할을 하는 식당이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조용한 뒷골목인데, 밤엔 거의 조명도 켜두지 않습니다. 오고 싶은 사람만 오라는 거죠.
간판의 불도 반만 들어오고, 만두의 'ㄷ'이 도망을 가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금문고량, 천진고량 그리고 연태고량이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좀 인기가 있습니다.
그중에도 가격도 저렴하고 향도 좋으며, 알콜 도수가 약한 연태고량이 가장 만만합니다.
그러나 53도짜리 행화촌 분주 정도는 마셔야 정통 중화요리와 어울리죠.
산서성에서 만든 백주인데 중국 10대 명주로 꼽히고 있습니다. 행화촌 분주와 당나라의 명시에 얽힌 일화도 있지요.
전가복입니다.
이 집은 대체로 요리가 싱거운 편이나, 한국형 중국집은 맛을 내기 위해 좀 짜거나 간이 강합니다.
깐풍새우입니다.
고추잡채. 주변의 꽃빵이 바로 분류계통상 오리지널 '만두'입니다.
겨울철에만 내는 석화탕면입니다.
군만두. 그러니까 분류상 교자입니다.
찐만두입니다. 역시 교자에 속합니다.
속은 완전 고깃덩어리와 야채로 채워져 있습니다.
군만두와 찐만두 하나씩 포장해 갔더니 아이들이 숨이 넘어갑니다. 착한 아버지 노릇하기 참 쉽죠?
글: 석창인
에스엔유치과병원 대표원장
음식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