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우편번호는 몇 번이시구요? 티켓은 내일이면 나오시구요, 공항세는 320불이세요, 지난 달까지는 270불이셨는데 이번 달부터 50불이 오르셨어요.” 한국에 가는 큰애의 비행기표를 구하기 위해 대한항공에 발권 문의를 했습니다. 몇 차례 변동이 생겨 세 번 통화를 하고 마지막으로 표를 찾을 때까지 다섯 담당자들과 연결이 되었지만 단 한 명을 빼고는 주어와 주체가 무엇이든 마구잡이로 모든 술어를 경어체로 말했습니다. 그네들의 해괴한 말법이 귀에 거슬려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어 옆에 있었다면 정말이지 한 대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내용만 알아들으려 해도 손톱 거스러미처럼 자꾸 신경이 쓰여 대화 내내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우스개로 옛날, 갓 상경한 어떤 촌사람이 말끝이 상냥한 서울 말씨를 흉내내려다가 푸줏간에서 “돼지고기 계세요?”라고 실수를 했다더니 이제는 그런 식의 우스운 말이 일상화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중에서 올릴 때 올릴 줄 알고 그대로 두어야 할 때 둘 줄 아는 단 한 명이 그렇게 대견하고 귀하게 여겨질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세대들의 혼탁하기 그지없는 언어환경에서 어찌 그리도 독야청청 올곧게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는지 마치
아기 적에 호주로 입양되어 온, 20대 중반의 초등학교 교사인 한국 아가씨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양부모가 자신의 한국 이름이 ‘재순’ 이라고 알려주었다면서, 자기 이름이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분위기는 어떤지를 제게 물어왔습니다. 뜻으로 말고 어감 상 느낌이 궁금하다니, 한마디로 촌스런 이름인지, 세련된 이름인지 구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 아가씨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따금 내왕하는 그 아가씨한테서 뿐 아니라 제 아이들에게서도 비슷한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돌을 막 지나 호주에 온 두 녀석은 한국 이름자의 고상하고 자시고를 떠나 이름만 듣고는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무런 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한국 친구들을 사귈 기회나 다른 한인들을 좀체 대할 수 없는 곳에서 한 10년을 살아온 탓에, 가족이나 주위의 몇 사람으로는 여자 이름과 남자 이름을 분류하고 구분할 충분한 자료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남자 어린이고, ‘영희’는 철수의 등교 길 단짝 여자 아이라는 걸 그 녀석들이 무슨 재간으로 알겠습니까. 이따금 철수의 친구 ‘인수’가 영희더러 “함께 학교 가
거의 1~2년에 한 번은 한국을 가지만 갈 때마다 매번 전과 달라진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속도감 없는 호주에 살다 보니 무엇보다도 점점 좋은 것이 나오는 한국의 문명 발전 속도에 멀미와 현기증을 느끼게 됩니다.한국에만 가면 저는 어리버리 정신없는 시골 쥐 꼴로, 세련되고 숨가쁜 서울 쥐들 틈에서 허둥대기 일쑤인 것도 그 탓입니다.이번에는 요즘 지은 웬만한 아파트에는 죄다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사무실이나 식당, 백화점 같은 공공 장소에도 화장실에 비데 설비가 덧놓여 있는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한국에 한 달을 머무는 동안 ‘볼 일’을 보고 ‘손으로’ 뒷처리를 한 일이 거의 없었으니 그 때마다 비데 시대 이후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비데 출현으로 우선 화장지 매출이 뚝 떨어졌을 거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보다 심각하게는 유아들의 용변 처리 훈련이 ‘ 필수’ 에서 ‘ 선택’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사는 일을 들여다보면 숨쉬는 일같이 하도 익숙해서 마치 용써서 배운 적 없이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된 것처럼 여겨지는 게 있습니다.‘똥을 누고 뒤를 닦는 일’도 그런 일 중 하나일 겁니다.하지만 배변
한국 기업의 호주 시드니 현지 법인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지인 한 분이 몇 달 전에 회사를 그만 두셨습니다. 월급쟁이들이 강제 퇴직 비슷하게 회사를 나오게 되면 토사구팽 이라는 말을 떠올리듯 그 분도 아마 그런 상황에 처했던 것 같습니다 . 떠밀리듯 직장에서 나오게 되니 난감하고 대책없는 심정이야 오죽 했을까요. 해외에 지사나 상사를 둔 한국 기업들은 아무리 나라밖에 사무실을 열었다 해도 기업 문화는 한국식을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호주 현지 직장인들처럼 5시가 ‘땡’ 하는 순간 ‘칼 퇴근’을 할 수도 없거니와 , 한국 만큼은 아니라 해도 한국인 상사나 동료들과 퇴근 후 술자리를 함께하거나 2차로 노래방을 가는 일이 아무래도 잦습니다. 호주에 산다 해도 한국계 회사를 다니는 한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아니면 본인들이 좋아서 ‘한국의 밤 문화’ 를 옮겨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도 요즘 젊은 세대들의 퇴근 후 문화는 기성세대와는 사뭇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회사를 그만둔 그 분처럼 4, 50대 직장인들은 거의 비슷한 일상의 쳇바퀴를 돌면서 조직 생활을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분의 퇴사 소식을 접하니 ‘ 중년 남성들은 무엇으로 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