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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칼럼

철수는 영희의 남친?

[신아연의 공감]-③

 아기 적에 호주로 입양되어 온, 20대 중반의 초등학교 교사인 한국 아가씨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양부모가 자신의 한국 이름이 재순이라고 알려주었다면서, 자기 이름이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분위기는 어떤지를 제게 물어왔습니다.

뜻으로 말고 어감 상 느낌이 궁금하다니, 한마디로 촌스런 이름인지, 세련된 이름인지 구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 아가씨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따금 내왕하는 그 아가씨한테서 뿐 아니라 제 아이들에게서도 비슷한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돌을 막 지나 호주에 온 두 녀석은 한국 이름자의 고상하고 자시고를 떠나 이름만 듣고는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무런 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한국 친구들을 사귈 기회나 다른 한인들을 좀체 대할 수 없는 곳에서 한 10년을 살아온 탓에, 가족이나 주위의 몇 사람으로는 여자 이름과 남자 이름을 분류하고 구분할 충분한 자료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남자 어린이고, ‘영희는 철수의 등교 길 단짝 여자 아이라는 걸 그 녀석들이 무슨 재간으로 알겠습니까. 이따금 철수의 친구 인수가 영희더러 함께 학교 가자고 할 때에도 걔가 영희의 또 다른 남친인지 아니면 여친인지 알 도리가 없는 거지요.

용필, 병헌, 성근, 범수등등은 남자이름이고, ‘미화, 경숙, 정순, 순자 는 여자 이름이라고 하면 어째서?’하는 표정으로 눈만 말똥말똥 굴립니다. 그래 놓고 왜 그렇냐는 겁니다. 어떻게 척 듣기만 하면 남자인 줄 알고, 여자인 줄 아는지 한국 이름의 남녀 구분법을 가르쳐 달라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합니까? 이름자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고유하고 본래적인 성품과 지향하고자 하는 품성을 담고 있다는 식의 한자 뜻풀이를 해주는 것은 나중 단계의 이야기이니, 왜냐고 물으면 그냥 웃을 수 밖에요.

 

하지만 상황은 역전되어 이번에는 제가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지난 번 글에 썼듯이 저는 소위 영어의 세련된 이름과 그렇지 않은 이름에 대한 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10대 후반인 제 아이들의 감성과 감각에 맞춘 촌스런 영어이름은 이런 것들입니다. 물론 객관적인 기준 같은 건 없습니다.

여자로는 오드리, 마가렛, 엘리자베스, 로즈마리 등이고, 남자는 헨리, 엘리어트, 해리 등이 그렇답니다. 반면에 제니스, 크리스틴, 크리스티나 등은 세련된 축에 속하며, 헤나, 소피아 같은 이름은 귀염성 있다고 하네요. 제가 아는 70대 할머니 중에 델마라는 분이 있어서 그건 어떠냐고 물으니, 그 이름은 그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에 유행했을 법한, 자기가 듣기에는 구식이다 못해 고리타분할 정도랍니다.

역시나 저로서는 아무런 감도 오지 않는 터라 이번에는 제가 아들을 멀뚱히 바라보았습니다. 하긴 그 분은 당신의 이름을 떳떳이 말한 적이 없는 데다 그것도 줄여서 이라고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촌티를 조금이라도 벗어보려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난번 제 글을 읽고 제 영어이름이 궁금하다며 도저히 밝히지 못할 정도냐고 물어오신 분들이 더러 계셨습니다만, 제 이름은 헤다 (Heather) 입니다. 제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독자들도 아무 느낌이 없을 줄 압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헤다(Heather)는 유럽의 고산지대 박토에서 피는 보라, 분홍, 흰색 빛의 자잘한 야생화로 소박하면서도 강인하며 단아한 이미지의 꽃이라고 합니다. 여자로서 꽃 이름을 가졌으니 뜻이야 무난한데, 전에도 말했듯이 저보다 한 세대 전의 사람들한테 익숙한 이름이라니 그만 덧정이 없어져 버린 겁니다. 참고로 아까 말한 70대 델마 할머니의 친구 중에도 헤다가 있을 정도니까요.

헤다라고 부를 때마다 풀이 죽는 제게 아들 녀석은 10년 정도 지나면 엄마한테도 헤다라는 이름이 잘 어울릴 거예요.”라며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로 저를 약올리곤 하니 호주 와서 이름 잘못 골라잡은 죄가 질기게도 오래 갑니다.

 

글: 신아연

신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부터 호주에서 살면서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shinayoun 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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