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이전 한반도의 중·남부에 있던 연맹왕국인 마한·변한·진한을 삼한(三韓)으로 통칭한다. 도합 78개의 국(國) 중에 마한 백제가 백제로, 변한 구야가 가야로, 진한 사로가 신라가 되었다. 삼국시대 이후 삼한이 신라·백제·고구려의 의미로 변하였으니 바로‘대한민국’의 어원이며, 마한을 고구려 - 변한을 백제 - 진한을 신라로 본 최치원의 일통삼한(一統三韓)이라는 기록이 ‘통일’의 기원이다. 그러나 삼한시대에 북쪽에는 부여·옥저·동예가 있었고, 3국 시대 백제·신라·가야의 북쪽에는 고구려가, 통일신라의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고 후백제를 병합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936). 엄밀하게 말하면 신라의 통일은 남·북국시대로 이어졌고, 명실 공히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통일’의 주역은 고려였다. 그 결과로 우리는 Corea (Korea) 라는 영자(英字)이름을 얻었고, ‘고려연방제’라는 작명(作名)에도 그런 뜻이 담겨있다. ‘적폐청산(積幣淸算)’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적폐의 판정기준이 상대와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다면, 청산은 사적인 원한을 풀려는 싸구려 갑 질로 전락한다. 반만년 역사에 최악의 적폐는
온 국민이 국제사정에 무지한 해방공간에서, 김일성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소련과 김일성이 조선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사기극’이 통했기 때문이다.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된 현재에도 이 날조를 믿는 광신도들에게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일·소가 1941. 4. 13일 ‘중립조약’을 맺은 후, 관동군은 기관총 급 외에 모든 중화기를 시급한 미국과의 태평양전장에 넘겼으니, 백만 대군은 허수아비였다. 1940년 일제 토벌에 쫓긴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망가 배치된 소련 극동군산하 ‘88 특별저격여단은, 국경지역 정찰과 공산주의 교육이 주 임무로 관동군과의 교전은 불필요·불가능했다. 스탈린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에게, 대독전쟁이 끝나면 2, 3 개월 이내에 대일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한다. 8월 6, 9일 원폭이 투하되어 일제 항복이 확실시되자, 스탈린은 점령지 차지에 늦을세라,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한다. 그 후 사실상 무저항의 만주를 거쳐 북한을 점령하는데, 관동군사령관은 본국지시가 늦어져 8월 19일에야 항복한다. 소련군의 대일전쟁은 무려(?) 열흘간의 만주‘여행’이었고, 거기에 김일성은 없었다. 그는 점령군이 아니라, 소련에 간택된
신협 소식지 ‘미소’에 ‘정체성 이야기’ 라는 칼럼을 썼다. 누구든지 특히 전문 지식인은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데에서 보람을 찾아야 할진데, 언제부턴가 긍지와 자존감은 사라지고 ‘치부의 실현’ 즉 돈이 평가의 잣대·서열의 기준이 된 결과, 만인이 벌거벗은 욕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세상에는 증오·분노·갈등·폭력이 만연한다는 얘기였다. 지난 11월 3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프레디 머큐리에게서 느낀 ‘정체성 위기’를 화두로 몇 꼭지 글을 써보려 했는데, 주제가 벅찬 탓이었는지 시작부터 힘이 들어, 이제야 마무리에 들어간다. 순서상 우리 자신부터 주제파악을 해봐야겠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한국은 양차대전 후 지구촌의 지상목표가 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체제를 갖추고 OECD 클럽에도 가입하여, 외형상 정치·경제 양면에서 모범국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유’는 어느덧 사라지고, 70여 년 역사에 몸 성한 전직 대통령이 단 한 사람도 없다. 희화화 된 ‘이 윤 박 최 돌 물 깡’ 일곱 분 이후 네 분 또한 ‘봉 황 박 박’이니, 퇴임 후 폐서인(廢庶人) 되는 전통(?)을 깨뜨릴 대통령은 앞으로도 당분간 만나보기 어려울 것 같다.
에티오피아는 극심한 3년의 가뭄 끝에 대 기근으로 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1984). 급속한 인구 증가와 산림훼손과 사막화도 큰 몫을 했지만, 국제사회의 원조를 횡령한 공산정부가 재앙을 키웠다. 스탈린 공산정권에도 똑 같은 전례가 있다. 세계 3대 곡창지대(우크라이나 흑토, 북미 프레리, 남미 팜파스)인 우크라이나에 ‘집단농장’을 세우자 대기근이 발생했는데, 스탈린은 전처럼 계속 식량을 수출하여 결국 250 – 350만 명이 굶어죽었다. 똑같은 잘못으로 ‘인민공사’를 강행한 중국 모택동은, 1960년대에 자연재해까지 겹치자, 대국답게 3년 동안 2 – 4천만 명을 굶겨 죽였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의 북한은, ‘고난의 행군’중에 수백만이 굶어죽고, GNP가 $239까지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로 부패하는 ‘절대독재 국가경영’의 경직된 공산체제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에티오피아 참상이 미디어로 알려지자,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쓰고 라이오넬 리치가 공동작곡한 노래 ‘We are the World(우리는 하나)’의 악보를 제작자 퀸시 존스에게 넘긴다. USA(United Support of Artists) for Africa의 굶주림을 없애자는 운동으
자코페티 감독의 다큐 ‘몬도카네’에는(1962), “화려한 제복, 그러나 연전연패의 군대”라는 자학적인 멘트가 나온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후예들이 어쩌다가? 게르만 침입으로 무너진 이래, 이탈리아는 국가 정체성을 상실한 채(메테르니히) 오랜 세월 ‘외세 지배와 분열의 역사’를 거쳐, 뒤늦게야 통일을 이룩한다(1870). 식민지 따먹기 경쟁에 지각한 무솔리니는, 독가스까지 동원한 현대무기로 맨주먹의 에티오피아를 무자비하게 점령하고(전사만 275,000; 1936),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 태어난 3천년 혈통을 자랑하는 셀라시에 황제는 망명한다. 이탈리아 역사상 유일한 승전(?)이다. 아무도 돕지 않았던 뼈아픈 기억을 간직한 황제는, 김일성 남침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돕자는 UN의 파병요청에 응하여, 6천의 병력을 보낸다(1951). 이들은 5백여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123명의 전사자 가운데 한명도 포로로 항복하지 않아, ‘검은 전사들’의 용명을 날린다. 그러나 귀국한 영웅들을 맞은 것은 7년의 가뭄이었다. 재앙 뒤에 항상 악마처럼 따라붙는 공산당의 쿠데타로 $3,000의 중진국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1974), 한국전쟁
인류역사상 최악의 인간백정 스탈린도 그 미소(微笑)는 인자하다. 김정은을 ‘위인’으로 존경한다는 얼뜨기가 번식하는 이유다. 대전충남치과의사신협 소식지의 이름이 ‘미소’인데, 최근에 경제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을 일찌감치 일궈낸, ‘미소(微小) 금융’이라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요즘은 또 다른 미소와 만날 계획에 들떠있다. 내년 5월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미소(美小)국 12일” 여행이다. 리히텐슈타인 산마리노 모나코 안도라 등... 풍광이 아름다워 화려한 그라비어 우표를 수출상품으로 찍어내는 나라들이다. 헤밍웨이 고흐 세잔느 샤갈의 체취를 더듬는 즐거움은 덤이요, 겸사겸사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려한다. 시간이 멈춘 듯 내일에 대한 불안을 잊고, 오롯이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 인구 4만 명 이쪽저쪽의 동화처럼 작은 나라들... 그러나 무심한 나그네들은 그들이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주변 강대국들 간에 절묘한 힘의 균형을 가늠해가며 얼마나 어렵게 노력 해왔는가? 라는 외교적 노력에는 별로 관심도 이해도 없이 지나친다.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력의 적정 규모는? 대부분이 서구 복지국가들을
만나지지 않는 것들과의 만남을 위하여 곳곳에서 우리는 착하게 싸웠어 풀잎들은 풀잎들과 싸우고 바람들은 바람들과 싸웠으며 낱말들은 낱말들과 싸웠어 수유리에서 만나 화곡동까지 맨발로 뛰기도 했어 이제 순한 짐승끼리 끼리가 되어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도록 해 한 해가 저물고 있어 허락받은 한 바구니의 과일이 있다면 이웃에게도 조금은 나누어 주는 적은 것의 풍요를 적은 것의 아름다움을 모를 리 없잖아 한 해가 잠기어 가고 있어 돌아가 이제는 입성도 빨아 입어야지 아, 저 사내 어둔밤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등불 하나 그를 위한 따뜻한 식탁도 우리가 마련해야지 모를 리 없잖아. [반성] 다시 연말입니다. 이때쯤이면 꼬물거리듯 살아 온 한 해가 새롭게 보입니다. 그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지금까지 밀려와 있고, 하지 말아야 했을 후회가 여전히 산처럼 큽니다. 내 시간에 의견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시키는대로' 라지만, 그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착하기는 커녕 간신히 악다구니 정도만 피해가며 구불구불 여기까지 밀려왔습니다. 누군들, 그걸 모를 리 있을까요. 그래서 시인은 돌아가 입성이라도 빨아 입을 것을 권합니다. 어둔
Memento mori! 고고한 동양철학으로 무장하여 생사를 초월한 척해 봐도,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서 나이를 잊자는 망년(忘年)회야말로, 죽음의 공포 앞에 나약한 속내의 노출이 아닐까? 서양에서는 종무식처럼 그냥 종년(Year-end) 파티라 한다. 다행히 요즘은 묵은해를 보내는(Bid the old year out) 송년회로 통일이 되고,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음악회를 찾는 인구도 늘었다. 필자가 빠뜨리지 않는 콘서트의 으뜸은 베토벤의 교향곡 #9 환희의 송가다. 130여명이 우렁차게 외치는 ‘인간 승리’의 심장 떨리는 합창은, 한 해 동안 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새로운 다짐에 가슴 부풀게 하는 인생응원가다. 다음, 가족동반이면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다. 러시아 민요의 정수만을 뽑아낸 차이코프스키의 선율과 환상적인 율동에 이끌려 한바탕 꿈결에 잠겼다가 깨어나면, 아이들은 평생 간직할 아름다운 꿈을 적립하고, 어른들은 연말선물로 푸짐한 힐링을 챙긴다. 부부나 연인사이라면 다소 어둡지만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이 좋다. 프랑스인들이 체코 중서부 주민들을 집시 같은 유랑민족으로 착각하여 붙인 이름이 보헤미아(Bohemia)이지만, 여기서
영화 ‘맨발의 청춘’은 한국판 ‘젊은이의 양지’였다. 라스트 신은 허름한 리어카에 아무렇게나 둘둘 말은 거적때기 밖으로 삐죽 삐져나온 신성일의 맨발. 땅이 꺼지는 좌절감, 방향 모를 분노, 다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도전의욕 등등... 문득 재킷 그림만 보고 벅의 CD 한 장을 사게 된 사연을 엮은 칼럼(1997)의 한 대목이다. 며칠 전 영원한 청춘스타 신성일씨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가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한국영화계에는 신파의 끝물 김진규와 최무룡, 그리고 이미 몸매가 팡 퍼진 신영균 아재의 사극(史劇) 밖에 없었다. 청춘남녀들은 세련된 외국영화에 비해 왠지 유치한 한국영화 상영관에 들어가기를 망설였고, 고무신 부대만으로 객석을 채우자니 영화계는 배가 고팠다. ‘맨발의 청춘’으로 젊은 남녀가 극장에 오기 시작했으니, 한국 영화계에 ‘스타’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신성일이 “슈퍼스타가 있는, 당당하게 두발로 선 한국영화계”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가 다시는 나타날 수 없는 영원한 청춘스타인 까닭이다.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대한민국 개발연대의 속내를, 당시의 주연들로부터 직접 보고 듣는 기록이었다. 전직 대통령을 포함하여, 열 쪽
몇 년 전 대전에서 경찰의 실수로 인질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설득 끝에 인질에게 칼을 겨눈 채 나온 범인을 죽도(벨 수 없는 연습용 대나무 칼)로 내려쳤다. 범인은 반사적으로 인질을 찔렀으니, 경찰이 무고한 사람을 죽인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미련한’ 사고를 막으려고 현장교본(Field Manual)을 만들고, 실전 같은 모의훈련을 한다. 인질사건은 확실한 인질보호와 범인‘제압’이 최우선이다. 오래전 얘기지만 사슴목장에 초대를 받아 피를 먹은 적이 있다. 어차피 잘라야 할 사슴뿔(鹿茸)이요 그 때 흐르는 피를 술에 타서 마신다. 철망을 두른 공간에 말만한 엘크를 몰아넣고 수의사가 파이프 총으로 마취약을 쏘는데, 연거푸 세 발을 맞고도 쓰러지기까지 족히 5분쯤이 걸렸다. 지난 9월 18일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했다. 마취 총을 맞고 포획했다는 소식에 안심했는데, 한 시간쯤 지나 결국 사살했다는 정정뉴스가 나오자, 전국의 네티즌들은 후끈 달아올랐다. “평생 갇혀만 살던 불쌍한 퓨마, 마취 총으로 생포를 해야지, 아름답고 우아한 동물을 왜 잔인하게 쏘아죽였느냐? 이건 동물학대다.” 비난이 쏟아졌다. 마취 탄을 맞출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