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조선의 치과계는 환희 속에서 당면 문제에 대응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치과계 최초의 종합지로 1946년 5월 1일에 발간된 『朝鮮齒界』 창간호에는 당시 치과계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였고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생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연재하면서 70년 전 선배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당시의 맞춤법이 지금과 적잖이 다르지만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정리: 조영수■ 창간사 8.15를 기하야 해방된 조선에 새 世紀的 환희의 첫 봄이 왔다. 봄은 건설의 상징이다. 과거에 있어서 日政 하에 건실한 발달을 일으지 못한 조선 치과계는 바야흐로 건설기에 돌입하였다. 건설 의욕에 불타올으는 齒科醫人, 齒科商人의 품속에서『조선치계』는 탄생한다.오늘날 우리 치과계를 우리 손으로 재편하여 운영한다는 현실성은 朝鮮齒科史에 대서특필할 감격적 경사 아닐 수가 없다. 치과의인은 優生 부문에 있어서 치과의학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그 學理를 究明하고 추구하고 파악함으로써 씩씩한 조선 인민의 보건을 確守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세계적 치과의학 수준에의 향상 到達을 도모하고 있으며, 치과상인은 치과기재의 생산 促成
원장이 된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이 호칭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들어 있는지를 알게 되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원장이란 첫째 환자들을 책임지고 진료하는 임상의이다. 둘째 직원들을 뽑고 일과를 관리하는 고용주이다. 셋째 치과의 재정을 건전하게 이끌어야 할 경영자이다. 넷째 국가에 성실납세의 의무를 지는 납세자이다. 다섯째 소속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할 지역리더이다.이 가운데 어떤 역할이 가장 어려울까? 이제 막 개원을 했거나, 개원을 예정하고 있는 젊은 치과의사들에게 가장 낯선 얼굴은 아마 고용주로서의 원장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전에 한번도 배워 본 적이 없는 분야인데다 그동안은 이해의 부딧침이 없는 관계로만 주위의 스탭들을 대해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일단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로 규정이 되면 그 때부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분명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한 배를 탄 ‘가족’이긴 한데 그 안의 디테일에선 자주 입장이 맞선다. 가령 ‘급료를 좀 올려줬으면 좋겠다’는 게 직원들의 생각이라면 ‘기분좋게 보너스라도 줄 수 있도록 좀 더 열심히 일해 줬으면..’ 싶은 것이 원장의 마음이다. 직원들이 ‘휴가 기간이 너무 짧아 불만’이라면, 원장은 ‘어려운 병원 사
이 쪽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치과소개를 부탁하는 전화를 자주 받습니다. 가깝다고 생각해서 하는 부탁인만큼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하는데요, 이 분들이 바라는 소개 조건은 한결 같습니다. 경제력에 상관없이 모두들 ‘싸고 잘하는 치과’를 원하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저마저도 그런 치과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대체 얼마나 싸야 싼거고, 또 얼마나 잘해야 잘하는 건지 기준 자체가 애매하거든요. 얼마전엔 양심치과 소동이 있었습니다. 방송에 소개된 ‘양심치과’로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몇몇 치과들은 본의 아니게 문전성시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이 모두 그 치과의 환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자들은 결국은 자기 치과를 찾아가게 되어 있거든요. 조금 싸다고 치과를 이리저리 옮겨다닐 만큼 경박하지도 않거니와 환자들은 대부분 그럴 용기조차 내질 못합니다. 치아건강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좋은 치과의사를 곁에 둔다는 것이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환자들을 돌려 세우는 건 치과의사들이죠.한번은 제 기사에서 ‘환자에게 치료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했더니 어떤 분은 ‘그렇게 잘 알면 치과의사를 하지’ 라고 빈정대더군
사람의 몸은 명사일까 동사일까? 혹은 나의 몸은 내 것일까, 아니면 내가 나의 몸일까? 불량 유전자가 왜 살아남았는지를 묻고 있는 이 책은 태어남과 늙어감, 질병과 고통, 뇌와 마음, 유전과 진화 그리고 몸과 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물론 불량 유전자가 아닌 인간의 몸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고 이를 통해 생명과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데 있어 보인다. 초반부에서는 과거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생명을 농경으로 생각하고 땅속에 무언가를 묻어 생명을 만들려 했던 사건이나 출산 시 위생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산모들을 희생시키던 사건을 보여준다. 정력제 사용이나 노화에 대한 예시를 통해 생명의 생존과 번식에 대한 욕망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미생물학의 발전과 세균과 인간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고통과 마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몸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모더니즘의 세계에서는 몸은 내가 아니라 내가 몸을 소유하고 있다는 개념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으며 내 몸을 하나의 기계처럼 대하였다. 이런 개념을 가진 세계에서는 마음이 몸과 따로 존재하며 내 몸의 어디엔가 마음이
‘만일 곧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가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코미디언 어윈 코리가 한 말입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무척 속 깊은 잠언입니다. ‘빨리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라는 의미이니까요. 어윈은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 40억원대 자산가이면서도 매일 길거리로 나가 구걸을 해 모은 돈으로 불쌍한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는 아마 ‘지금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집안에서 외로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은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 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치과계를 두고 한번 생각해보죠. 지금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개원가는 어떻게 될까요? 아니 그 보다, 지금 치과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상황을 일반화시켜 정리하자면 치과계는 지금 무한경쟁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예전엔들 경쟁이 없진 않았지만, 이전까진 그래도 ‘여기까지야’ 하고 선을 그어둔 부분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안전장치마저 모두 제거되고 말았습니다. 안전장치란 가격, 지역, 종별 구획을 말하는데, 그런 구획들이 무너지면서 이젠 얼마를 받건, 어디에 있건, 병원 의원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한데 엉켜 악다구니
올 해에만 4,798명의 치과위생사들이 새로 배출됐습니다만, 일선 개원가에선 늘 인력수급이 문젭니다. 광고를 내도 지원자조차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보건기관을 포함해 전국 치과에 근무하는 치과위생사 수는 기껏 2만7천 명 정도입니다. 1년에 5천여 명의 신규 인력이 배출되는 걸로 치면 겨우 5.5년 치 자원만 현업에 남아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설마 5년 동안만 일하기 위해 어렵게 치과위생사 자격을 딴 건 아닐테고, 대체 그 많은 인원이 죄다 어디로 숨어버린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유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결혼 등 개인 사정으로 인한 자발적 유실분이고, 다른 하나는 치과에서 선호하는 년차를 지난 고임금 인력들의 ‘자의반 타의반’식 도태입니다. 치과위생사들은 근무 경력이 한곳에서 쭉 이어지면 비교적 오랜 기간 현장에 남지만, 이리저리 치과를 옮겨 다니다 보면 뜻하지 않게 조기에 현업에서 물러나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결국 한 해에 5천여 명이나 배출되면서도 현장에선 필요한 인력을 제 때 채용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빚어지는 거지요.그러나 인력문제는 하소연만 한다
'Perfect day'는 사용하기에 따라 무척 은유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완벽한 하루라는 의미를 실제론 가장 완벽하지 못한 상황에 빗대는 거지요. 루 리드(Lou Reed)의 노래 'Perfect day'도 마찬가집니다. 가사는 가장 완벽한 하루를 그리고 있지만 노래의 분위기는 음울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혹 '공원에서 상그리아를 마시고, 동물원의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영화를 보고, 늦은 시각 아쉽게 집으로 돌아오는 완벽한 하루'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합니다.하지만 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치과의사들의 'Perfect day'입니다. 환자를 한 명도 보지 못한 경우를 그렇게 부른다더군요. 루 리드의 노래를 빌리자면 이런 식입니다.정말 완벽한 하루였어. 종일 환자들에게 시달리다가 날이 어두워서야 퇴근을 하지. 정말 완벽한 날이야. 하루 종일 임플란트를 심고, 몇몇 환자는 돌려보내고, 내일 할 일을 스크린한 다음에야 피곤한 몸으로 퇴근을 해. 오 정말 완벽한 하루. 이런 날을 맞을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든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물론 반어적인 'Perfect day'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경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치과의사 선생님들도 일터에서는 조 부사장처럼 명백한 오너이므로 언제든 똑 같은 무리를 저지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필자도 잠시 신문사를 직접 운영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사실 부끄러운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걸 내 기준에서 생각했으니까요. 가령 기자들이 올리는 원고가 아주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할까, 성의 없이 대충대충 쓰갈기는 건 아닐까? 단 한번도 마감 때마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산고를 겪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참지 못하고 부릅니다. "야 이게 뭐냐 원고가"로 시작해서 "차라리 내가 다시 쓰는 게 낫겠다"로 마무리 할 때 쯤이면 기자들도 엥간히 주눅이 듭니다. 문제는 다음에도 또 다음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똑 같은 얘기를 매번 반복해야 하니까 짜증이 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날 그 친구가 얼굴색을 붉혀가며 반발을 하더군요. '국장님은 제가 하는 일은 모두 맘에 안드시는 거'라면서.. 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같이 잘 해보자는 상사에게 저렇게 대들
생각해보면, 환자들도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일에 쫓겨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로 치과 문을 들어섭니다. 그런, 스트레스가 심한 환자는 치과에까지 스트레스를 옮겨 놓습니다. 그들은 마취가 잘 안되고 치료동의율이 낮은데다 치료비도 선뜻 지불하지 않습니다. 치과에서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될까봐 예약을 취소하거나 예약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환자들은 과민하고 경직되어 있어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나쁘게 해석합니다. 아마 치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일 겁니다.반대로 치과에선 무엇이 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줄까요? 아시다시피 주사는 환자의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치료비도 스트레스 유발 요소입니다. 어쩌면 치과의사가 하는 모든 행동이 환자들에게 스트레스일지도 모르지만, 진료를 해야 하는 담당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정도는 당위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주기는 해도 짜증나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스트레스가 심한 환자일수록 주사, 치료, 치료비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로 치과에 오면 아주 사소한 것들이 스트레스
지난번 '소중하지만, 맞지 않는 환자는 보내라' 편에서 환자들의 성격을 진단하는 도구로 DISC 시스템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하지만 환자의 동의를 받아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뭐니 뭐니 해도 그들을 마음으로 대하는 자세이다. 환자들에게 치과의사는 여전히 사회적 엘리트집단이므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가령 대기실의 환자 이름을 부르면서 먼저 인사를 해 보라. 그에게 직접 커피를 건네고, 그가 자신을 중요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도록 잠깐이나마 진심으로 그에게 관심을 집중시켜 보라.그와 마주 앉았다면, 당신의 의자 위치를 조정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바디랭기지도 환자와의 소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당신의 의자가 환자 의자를 기준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너무 가까운지, 너무 먼지 아니면 너무 높은지? 이런 요소들은 원장 선생님에 대한 환자들의 선입견에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치과경영에 관심이 많은 A 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나는 항상 '스트라이크 존'에 앉는다. 내가 붙인 이름인데, 환자와 비스듬하게 앉은 위치를 의미한다. 이런 각도에서는 언제나 환자를 똑바로 볼 수 있고, 팔을 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