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적에 호주로 입양되어 온, 20대 중반의 초등학교 교사인 한국 아가씨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양부모가 자신의 한국 이름이 ‘재순’ 이라고 알려주었다면서, 자기 이름이 어떤 뉘앙스를 풍기는지, 분위기는 어떤지를 제게 물어왔습니다. 뜻으로 말고 어감 상 느낌이 궁금하다니, 한마디로 촌스런 이름인지, 세련된 이름인지 구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 아가씨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따금 내왕하는 그 아가씨한테서 뿐 아니라 제 아이들에게서도 비슷한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돌을 막 지나 호주에 온 두 녀석은 한국 이름자의 고상하고 자시고를 떠나 이름만 듣고는 그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무런 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한국 친구들을 사귈 기회나 다른 한인들을 좀체 대할 수 없는 곳에서 한 10년을 살아온 탓에, 가족이나 주위의 몇 사람으로는 여자 이름과 남자 이름을 분류하고 구분할 충분한 자료로 삼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남자 어린이고, ‘영희’는 철수의 등교 길 단짝 여자 아이라는 걸 그 녀석들이 무슨 재간으로 알겠습니까. 이따금 철수의 친구 ‘인수’가 영희더러 “함께 학교 가
거의 1~2년에 한 번은 한국을 가지만 갈 때마다 매번 전과 달라진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속도감 없는 호주에 살다 보니 무엇보다도 점점 좋은 것이 나오는 한국의 문명 발전 속도에 멀미와 현기증을 느끼게 됩니다.한국에만 가면 저는 어리버리 정신없는 시골 쥐 꼴로, 세련되고 숨가쁜 서울 쥐들 틈에서 허둥대기 일쑤인 것도 그 탓입니다.이번에는 요즘 지은 웬만한 아파트에는 죄다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사무실이나 식당, 백화점 같은 공공 장소에도 화장실에 비데 설비가 덧놓여 있는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한국에 한 달을 머무는 동안 ‘볼 일’을 보고 ‘손으로’ 뒷처리를 한 일이 거의 없었으니 그 때마다 비데 시대 이후 한국 사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곰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비데 출현으로 우선 화장지 매출이 뚝 떨어졌을 거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보다 심각하게는 유아들의 용변 처리 훈련이 ‘ 필수’ 에서 ‘ 선택’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사는 일을 들여다보면 숨쉬는 일같이 하도 익숙해서 마치 용써서 배운 적 없이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된 것처럼 여겨지는 게 있습니다.‘똥을 누고 뒤를 닦는 일’도 그런 일 중 하나일 겁니다.하지만 배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