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찾아봤더니, '대가리'는 '동물의 머리'를 이르거나 '사람의 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머리라는 말보다는 소대가리가 더 정확한 표현일 텐데, 소에 대한 고마움 내지는 '오마쥬'로 그러한 표현을 쓰지 않았나 싶군요. 그러나 돼지, 닭, 오리, 말... 할 것 없이 대가리와 머리를 혼용해서 쓰는걸 보면 조금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멸치' 말고는 대가리가 어울리는 동물이 거의 없는 건 아닌지요.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요즘의 수원 종로 네거리는 화성행궁과 종루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큰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거리 한 모퉁이엔 110년도 훨씬 넘은 교회와 바로 그 옆에 카톨릭 성지인 성당을 제외하면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건물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 광장 자리엔 원래 수원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었습니다. 터미널 옆엔 우체국이 있었지만 이젠 흔적도 없어졌고, 터미널 근처의 한 약국은 박카스와 활명수 그리고 이명래 고약 매출이 전국 제일이었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병의원들이 모여들었는데, 요즘 남아 있는 병원이라고는 겨우 한 두 개 정도입니다. 일본인들은 화성행궁을 없애고 그 자리엔
예로부터 소라는 동물은 살아서는 사람을 위해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도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고 갑니다. 그렇게 착한 놈을 신년벽두 대낮부터 먹으려니 께름칙하긴 합디다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소(한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특별히 한우나 수입육을 따지지 않습니다. 등심과 같은 부위를 좋은 숯에 구워먹을 때는 한우를 선택하지만, 양념을 한다거나 찜, 국 등으로 요리를 할 때는 육우니 혹은 수입육이니를 가리지 않지요. 고소함이나 씹는 질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양념을 해버리면 맛의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운데다 합리적이지 못한 가격 차이를 받아들이기 싫어서입니다. 비록 양력 설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새해이니 첫 술을! 그것도 낮술을 하고 싶은데 뭘 먹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두어 메뉴를 고민하다가 꼬리찜 사진을 보고는 바로 결정을 해버렸지요. 다음은 누구를 불러야 할 지 고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치과대학 동기들이 제일 만만합니다. 삼십여 년 이상을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으니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해주기 때문이겠죠. 카톡을 보냈더니 넷 중에 셋이나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5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사내들은
겨울 진미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삼치회가 가장 ‘BEST OF BEST’라고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송구스럽게도 제대로 된 삼치회는 아직 먹어보지를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삼치회 그것도 대삼치회를 먹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자에 언급된 내용을 종합했을 때,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까 하는 저만의 추측인 게지요. 그러나 냉동 상태로 올라 온 삼치회는 몇 차례 경험을 해보았는데, 그 맛이 마치 부드러운 셔벗이나 옛날 ‘서주 아이스주’ 비슷한 맛과 질감이었던 기억입니다. 헌데, 내륙에서는 왜 삼치를 회가 아닌 구이나 조림으로만 먹을 수밖에 없을까요? 삼치는 선어 상태로 보관을 할 때 이틀 정도가 한계라는군요. 그러니 대삼치가 아닌 작은 삼치를 냉동하여 시중에 유통을 하는 것이죠. 결국 우리는 구이나 조림 맛으로만 삼치를 평가해왔던 것입니다. 게다가 삼치는 살이 워낙 부드러워 선어 상태에서 회를 뜨기도 쉽지가 않은데다 아마추어가 어설프게 썰면 살이 그냥 뭉게져 버립니다. 그래서 삼치는 잡자마자 포를 뜬 뒤에 랩을 씌워 그대로 얼려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냉동된 상태의 삼치는 초보자라도 쉽게 썰 수가 있습니다. 회를 썬 뒤에도 절대 녹이면 안 됩니다
경기도 수원은 큰 하천도 없고 대형 저수지도 없는 전형적인 물 부족 지역입니다. 그런데 수원(水原, 물골)이라고 최종적으로 이름을 정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었답니다. 물론 정조대왕('대왕'이란 표현엔 논쟁이 따릅니다만)의 하명을 받자와 그리 정하였겠지요. 원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도 '수원'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지만, 작은 고을 이름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큰 광역 지역을 의미했다는군요. 조선 정조 이전에는 화성유수부라고 불렀는데, 다시 '수원'으로 원위치한 이유는 아무래도 토속 신앙적 혹은 주술적 영향이 컸을 겁니다.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애써 신도시를 건설했는데, 물 부족 때문에 기근에 시달린다면 왕으로서 체통이 말이 아니었겠지요. 하여, 이름으로나마 물이 넘쳐나는 곳이라 지음으로 해서, 가뭄을 예방하려는 심리가 작동했겠지요. 그런 까닭인지 제가 수원에 산 이래로 큰 가뭄이나 그 반대인 물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수원천이 범람 일보 직전까지는 갔긴 했었지요)그런데 수원에 '수원'이라는 중국집이 있습니다. 당연히 음차를 적절히 이용한 표현입니다만, 역시 화교답게 '목숨 수(壽)'를 썼네요. 그리고 '동산 원(園)'이니 결국 '장수만세 마을'을 뜻
제주도는 외지인들이 보기에 극과 극으로 다가올 때가 간혹 있습니다. 가령, 일반 접객업소들도 아주 친절하거나 아니면 엄청나게 불친절하거나, 가격도 비싸거나 아니면 놀랄 정도로 아주 싸거나, 음식마저 끝내주게 맛있거나 아니면 ‘니맛도 내맛도’ 아니거나 말입니다. 요즘은 여기에 더하여 관광지나 음식점에 ‘중국 사람들이 너무 많거나 아예 없거나’가 추가되었지요.게다가 제주도민들이 관광객을 포함한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양극단이어서 놀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에 대해서 뭔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있지만 필설로 표현하기엔 정리가 좀 어렵습니다. 어쨌든 예로부터 뭍사람들에 대해서 배타적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옛날, 같은 하숙집에 제주도에서 유학을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평소엔 표준말을 사용하다가 집에서 전화가 오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 같은 말로 대화를 하더군요. 그러나 이제 제주어는 학생들이 점점 외면하고 사용하지 않는 바람에, 고어(古語)를 지나 사어(死語)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다름'에 대한 콤플렉스도 한몫 했거니와 육지와 섬이 이젠 한 몸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옛말에 말을 낳으면 제주도로, 사람을 낳으면
우리나라 입시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로 유명하지요. 그래서 요즘의 고3 담임이나 학부모라면, 족집게 도사가 되어야 하고 몇 차 방정식보다 어려운 대학별 입시사정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저희 때는 이과학생들은 국사와 윤리를 제외한 문과 한 과목만 선택이었고, 이과 과목은 전부 필수였습니다. 그러니 전국의 이과 학생들은 가장 점수 따기가 용이한 ‘국토지리’나 ‘사회문화’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골치 아픈 연대 외우기를 해야 하는 역사 관련 과목들은 다들 외면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사나 동양사는 남들이 이야기 할 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고백하건데, 후에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두어 번 통독을 하고서야 대충 이해를 했습니다. 물론 더 궁금한 것은 짬짬이 책을 찾아보기고 했고, 역사소설 등을 통해 지식을 쌓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한 나라의 입시제도가 개인의 지적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겠더군요.서양사에 '아비뇽의 유수'라고 명명된 교황의 굴욕은 그 이전에 있었던 '카놋사의 굴욕'과 연관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카놋사 사건은 왕이 교황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교황의 세력이 약해지게
홋가이도(북해도)에 가면 천지사방이 먹고 마실 것인지라, 딱히 무엇을 먹으러 여행을 간다고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만큼 리스트에 꼭 넣어야 할 것이 있다면 '스시'입니다. 도쿄 긴자에서 저녁식사 값으로 3~4만 엔을 각오해야 하는 스시 오마카세 코스(주인장 추천 코스)를 홋가이도에서는 더 뛰어난 맛임에도 절반 이하의 가격에 즐길 수 있다면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일단 저질러야 하는 것이지요.일단 삿포로의 대표 스시집은 스시젠(善)입니다. 신라호텔 일식당인 ‘아리아께’에 근무했었다가 지금은 ‘스시효’의 메인 셰프가 되었고,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에도 소개되었던 안효주씨가 도제 수련을 받았다는 곳이자. 긴자 최고수들도 머리 숙이고 간다는 곳이 바로 스시젠입니다. 만약 그곳에 가서 셰프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알려주면 그 쪽이 먼저 안효주씨를 아느냐고 되물어 올 정도입니다. 삿포로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있는 바닷가 소도시 오타루는 만화 ‘미스터 초밥왕’ 주인공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그만큼 초밥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며, 심지어 ‘스시거리’라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최고로 치는 곳은 ‘마사 스시’가 아닌 다
소설가 김승옥 선생의 작품 중에 '염소는 힘이 세다'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60년대 고단하고 피폐한 도시 변두리 인생들의 무기력에 관한 내용인 걸로 압니다만,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힘'의 뜻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일종의 ‘나비효과’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염소 못지 않게 힘이 센 놈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지금이 제철이라는 방어입니다. 아마도 11월 중순부터는 제주 모슬포로 방어를 즐기기 위해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모여들고 있을 겁니다. 제주 근해에서 잡히는 방어는 여름에는 오호츠크까지 올라가서 먹이활동을 하며 살을 찌우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하러 제주까지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회유 코스 중에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 앞바다를 지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요령부득입니다. 겨울에 모슬포 주변에서 잡히는 방어는 빠른 해류를 이기려고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근육이 찰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근육 사이사이로 기름이 잔뜩 올라 있으니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슬포 항구의 횟집이든 제주 전역의 횟집이든 방어의 크기는 4~50cm 정도로 작습니다. 이를 일본 사람들은 ‘하마찌’라고 부릅니다. 물론
조선시대 때부터 임금님 진상품이었다는 어란의 역사가 더 오래일까 아니면 도쿠가와 막부 이후 쇼군 진상품이었다는 일본의 가라쓰미가 더 원조일까 하는 문제는 음식문화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꽤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어란과 가라쓰미에 필적할 만한 이탈리아의 '보타르가'는 외양과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긴 하지만 급수에 있어서 견줄 바가 아니어서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보타르가는 참치알이나 숭어알로 만들기는 하지만 워낙 염장을 심하게 해서 짠맛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제 나름의 생각은 가라쓰미가 더 원형에 가깝고 이를 들여온 우리나라에서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하여 참기름을 바르지 않았을까 추정을 해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영암의 김광자 할머니가 만드는 어란이 거의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지만(실제 여러 곳에서 만들기는 합니다), 일본에서는 가라쓰미의 고향인 나가사키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만들어지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음식 문화에서도 민족주의가 발휘되어 우리나라에서는 일본과 별도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제 아이가 코흘리개 시절, 우는 아들을 카시트에 동여매고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들렀던 전라도 영암 버
20대는 쇠를 씹어 먹어도 될 정도로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녀불문하고 그 나이엔 뱃속에 걸신이 들어있어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고, 포식을 하고 뒤만 돌아서도 배가 꺼져 버리는 그런 때입니다. 그야말로 인생의 화양연화에 다름 아니지요.그러나 동료들에게 다이어트 한다고 괜히 큰소리를 친 바람에 점심 식사를 김밥 한 줄에 왕뚜껑 컵라면으로 버티는 직원들도 꽤 있습니다. 물론 기혼직원들은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매식을 하더라도 꼭 밥과 국이 있는 종류를 선택합니다. 최근엔 병원에서 한 식당을 정하여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해서 이런 고민이 사라지긴 했지요.과거엔 점심을 대충 때우니, 7시 전후로 진료가 끝나면 뱃속에선 칼로리를 빨리 넣어달라고 아우성이기 마련입니다.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간다 하여도 혼자 자취하는 직원들은 저녁을 제대로 차려 먹기가 힘듭니다.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해치운 뒤에 바로 쓰러지는 것이죠. 재미있는 드라마가 있는 날은 '본방사수!!'를 외치며 졸면서 보기도 하구요.점심을 대충 때운 직원들은 오후 5시 전후로 병원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케익 혹은 빵과 같은 간식을 먹으러, 몰래 주방(준비실)을 틈틈이 들락거리기 마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