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우리 대학시절에도 그룹 미팅이 있었다. 명문여고를 나와 E여대에 수석 입학한 친구 파트너와 생뚱맞은 설전이 벌어졌다. 삼남 7녀 대가족 속에서 부대끼며 자라다보니, 이성에 대한 신비한 환상보다는 남녀 간에 인간적인 욕구나 사회적 성취동기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었는데, 취중에 불쑥 나온 이런 말을 그녀는 자신의 여성성(女性 性: 여성으로서의 매력)에 대한 평가절하로 받아들인 것이다. 상대의 뛰어난 능력과 성취를 칭찬하려는 선의가, 때로는 이처럼 빗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이다. LPGA는 물론 JLPGA(일본)까지 한국 낭자군(娘子軍)이 상위를 휩쓸고, 올해 국내 골프대회 총상금은 여성 2백억 대 남성 99억으로 뒤집혔다. 본고장에서는 여자대회 상금총액과 남자대회 우승자 한 사람 상금이 비슷하며, 전설의 장타자 소렌스탐과 미셀 위가 남자대회에서 한 번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대체로 여성의 근골(筋骨)은 남성의 75% 정도이기 때문이다. 팬들이 여성골프를 많이 시청하는 이유도, 남자는 힘으로 치는 ‘개폼’이 통하지만, 스윙자세가 완벽에 가까워야 거리가 나는 여성의 특성과 관계가 깊다. 기록경기나 테니스에서 종종 성별검
엘가(E. Elgar 1857-1934)의 모음곡 ‘수수께끼 변주곡’은, 표제음악(programme)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나의 모티프가 변주와 전개를 반복하며 점차로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반 클래식에 비하여, 곡마다 독립적이고 난해한 현대음악의 선율 탓이었나 보다. 14 곡 모두가 지인들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라서 개성이 강하고, 모든 캐릭터를 숨겨 수수께끼로 남겨두었다는 배경을 알고부터, 이 곡이 사랑 받는 이유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다. 작년에 대전시립교향악단이 창단 30주년 기념으로 연주한 슈트라우스(R. Strauss 1864-1949)의 모음곡 ‘돈키호테’는, 금노상 지휘자가 15분쯤 해설을 곁들여 객석의 반응이 뜨거웠다.그때 쓴 공연리뷰 일부를 소개한다. “주연(主演)인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는, 13 토막의 대사 없는 오페레타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만약에 사전 해설이 없었더라면 객석이 절반쯤은 졸지 않았을까. 가정의 달 5월에 금난새(유라시안 필하모닉 CEO)씨가 지휘하는 대전아트오케스트라(DAO)의 ‘Carnival of Music' 공연이 있었다. 생상스(C. Saint-Saens
협회 전·현직 집행부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협회가 입법기관 국회에 우리의 실상과 의견을 이해시키는 길은 매우 좁다. 로비가 불법인 현실에서 협회의 노력을, ‘청부입법’이라는 선정적인 이름으로 비하하는 언론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은, 직업이 단순히 빵을 위한 생업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힘들고 장구한 세월 학업과 수련을 쌓은 전문직은, 자신의 천직에 자부심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이들이 모인 협회는 영리기업의 회원사(社) 단체처럼 ‘집단이익’에 매몰되기보다, 품위와 윤리의 유지, 그리고 어느 사회에나 나타나는 소수 불량회원을 감시하는‘자정(自淨)작용’의 속성이 강하다. 오히려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 강물을 흐려도” 협회에 강력한 징벌 권이 없어 속수무책인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치과 의료를 천직(天職)으로 삼는 치과의사가 ‘당장 눈앞의 달콤한 열매’에 판단력을 잃고, 국민건강에 역행하고 평생직장을 파괴하는 길로 빠져드는 일은, ‘직업윤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통계적으로 ‘다수가 선택하는 양심’ 이론에도 어긋난다. 국회의원은 주기적으로 격한 선거에 전부를 걸어야하는 선출직으로 항상 시간에 쫓기고, 6-7 인의 보좌
로마 공화정의 호민관(護民官: tribune)은 평민의 권리를 옹호하기위하여 정무관의 직무와 원로원 결의에 거부권을 갖는 임기 1년의 직위다. 그래서 신문사 이름에 즐겨 쓰인다. 로마제국에서는 황제가 그 권한을 빼앗아 행사하였다. 집정관·정무관이 오늘날 사정의 칼을 쥔 행정부라면, 평민회 선출직인 호민관은 국회의원 성격이 짙다. 다르다면 로마는 입법권이 귀족 원로원에 있고, 호민관은 2-10 인의 소수였다는 점이다. 원로원이 없는 현대사회에서 행정부 견제기능과 입법권을 함께 쥔 국회의원의 힘은 막강하다. 기업경영에 재미를 본 고 성완종 회장이 정치에 집착한 이유를 이해할만 하다. 그러나 예컨대 관급공사처럼 건설업자에게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독점하면, 경쟁자 간에 형평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내가 하면 로비가 남이 하면 로브(rob)다. 미국 영국 등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특히 한국과 일본에서 로비를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직업의 다양성이 풍부한 나라 역시 그 숫자를 크게 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회가 다양화하면서, 백 년 전에는 몇 백에 불과하던 직업이 몇 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료계를 보자. 조
4월은 과연 잔인한 달인가? 세월 호에 이어 한 기업인의 자살이 대한민국 호를 뒤흔들며 국민의 아픈 가슴을 다시 헤집고 있다. 우리 민도와 기업풍토와 정치에 열패감을 재확인하는 아픔이다. 마당발 인맥과 정경유착을 통하여 독학에 맨몸으로 대기업을 일구었다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이야기... 지난 4월 9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성완종 회장의 성공과 실패는, 1997년 IMF를 불러온 한보철강 정태수 회장과 판박이다. 다른 점은 정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하여 뇌물 준 정치인 이름과 내용에 끝까지 비밀을 지킨 의리(?)의 사나이였다. 심재륜 부장의 솜씨에 잠시 흔들렸지만 곧 다시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성 회장은 정반대로 갔다.자살 직전 언론과 인터뷰하고, 주머니에 여권 실세 이름과 돈 액수가 적힌 메모를 넣은 채 핸드폰을 열어놓아, 위치를 알린 똑 떨어지는 고발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고자질은 ‘나쁜 짓’으로 배웠고, 소설이나 회화에 등장하는 밀고자(informer)를 속어로 휘파람 또는 피리 부는 사나이(Whistler)라 하니, 서구에서도 별로인 모양이다. 좀처럼 밝히기 힘든 조직비리의 내부고발이나 범행을 미리 불어 감형 받는 플리바겐, 담합을
1950년 12월 16일 흥남부두. 제10군단 아몬드 육군소장이 선택한 승선(乘船) 순위 1번은 미 해병 제1사단이었다. 그 의미를 새겨보자. 첫째, 심각한 타격을 입은‘병동(病棟)사단’에 대한 응급 배려다. 사상자가 70%에 가깝고, 생존자 반 이상은 심한 동상환자였다. 둘째, 유공자 예우다. 해병사단 12,000 명을 격멸하려고, 중공군 제9병단은 장진호 전투에 7개 사단 12만을 투입하였다. 제1사단은 후퇴하면서 17일간 중공군의 발을 묶어놓아(tie-down), 동북지역 국군과 UN군 10만이 흥남으로 집결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중공군은 사상자 45,000명으로 아군의 6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어(공군의 폭격과 해군 함포사격의 도움) 3차 공세에 합류하지 못하고, 적군의 진격은 수원 선에서 멈추었다. 결국 아몬드 장군은 영웅의 값비싼 희생에 ‘마땅한 예우’를 해준 것이다. 짧은(3년, 월남전 9년) 국지전에서 미국은 36,576명의 꽃다운 젊은이를 잃었다.(전사자를 54,000명으로 집계한 보도가 더 많다.) 트루먼의 결단과 UN의 참전결의는 빠르고 추상같았으나, 막대한 희생과 매카시즘에 대한 반동으로, 아이젠하워 후보의 종전(終戰)공약이 대세가 되
“국수 언제 먹여줄 거야?” 미혼 남녀에게 흔히 던지는 멘트다. 그래서 국수를 장터나 단체회식용 서민음식으로 알지만, 실은 있는 집 아니면 잔치 때나 맛보는 귀하신 몸이었단다. 밀은 보리보다 수확이 늦고 쌀과 이모작이 어려워 생산량도 적었다는데, 전란의 폐허에서 어떻게 칼국수 같은 값 싼 분식이 가능했을까?미국과 상호안전보장법(1951)에 의하여, 소위 ‘잉여농산물’로 밀이 대량 공급된 때문이었다. 원조 근거는 미 공법 480호로 단일 화 되었다가, 1963년부터 무상이 아닌 장기차관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칼국수 대전’이 탄생하고, ‘막 파스타’ 칼국수가 배고픈 ‘피난 코리아’를 먹여 살렸다. 밀에는 글루텐이 많아 위장은 낯가림으로 불평을 한다. 밀가루음식의 캡은 본시 빵이지만, 반죽·발효·숙성에 오븐을 거치는 과정은 시간과 품이 드니까, 위를 속이려고 적당히 물과 섞어(?) 무쇠로 된 빵틀에 구워내는 ‘막 빵’을 고안해 낸다. 그것도 막 노동자가 허기를 때우는 값싼 ‘풀빵’과, 그럴듯한 꽃무늬에 달달하게 팥고물이 들어간 ‘국화빵’으로 신분에 차별이 있었다. 빵에 곁들일 주스는 냉차가 제격이다. 역 오른쪽에 7, 8 가구가 몰려 사는 낡은 일본식가옥이 있
새 밀레니엄 전야에,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절박감에 쫓겨 총회를 불과 3주 앞두고, 협회 의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1999). 동반 연임을 원한 협회장과 의장에게는 실례였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난히 당선, 상처투성이일지언정 ‘치과전문의제도’안을 통과시킨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 의장에 취임하자 바로 그해 10월 종합학술대회에서 전 회원에게 나누어 드릴 세 번 째 칼럼 집 ‘거품의 미학’8천부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가급적 자제해왔던“치과인 끼리 주고받을 이야기”30여 편을 우정 넣었다. 이제는 공개토론도 하고 결단을 내리자는 뜻이었다.물론‘치과의료 문화상’수상에 대한(1998. 4. 25) 감사와 보은의 뜻도 있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글을 쓴다. 출판을 준비하면서 책 말미를 장식할 ‘마침표’가 아쉬웠다. 마침 대전은 새 천년을 맞아 낙후된 동부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동서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역사(驛舍) 밑으로 관통도로를 뚫는 대역사(役事)를 진행 중이었다. 평생 낯익었던 역 광장이 천지개벽을 하니, 사라질 풍경에 추억의 일화를 곁들여 글로 남기고 싶었다. ‘바람 찬 흥남부두’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못지않은 한 많은 사연들
대전예술의전당 개관이래(2003) 후원회장을 맡아 가끔 공연리뷰를 쓰게 되었다.많지 않은 글 중에 세 번 이상 나온 분들은, 한국 창작춤 단체 창무회를 창단하고 시립무용단장을 역임한 김매자씨와 플루티스트 재스민(최나경)양, 그리고 소프라노 한예진씨다. 필자에게 울림이 컸던 이 세 분을 리뷰 본문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김매자: 정밀(靜謐)한 정지동작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역동적인 연결동작은, 탈춤에서 택견 권법까지 변화무쌍이다. 정지동작에서는 여백의 운치가 넘치는 한국화 류의 설치미술이요, 움직이면 동작이 정연한 병사들의 진(陣)을 연상시킨다.관객석 뒤에서 무대까지 휘돌아간 백색의 무대장치와 함께, 독창적이고 뛰어난 미장센의 완성이었다. (2003 아트홀 심청) 아크로배틱 매스게임처럼 정밀(精密)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군무(群舞)는, 심청전·얼음 강·불이문(不二門)을 거치며 향상일로인 김매자 브랜드에 영락없다. 3·4부는 비 내리는 비래리로부터 우슬현을 감싸 도는 세 내(대전천·갑천·유등천)를 표현, 마치 작은 샘에서 발원하여 강을 이루어 대해로 흘러나가는 스메타나의 ‘몰다우’처럼, 훌륭한 ‘표제무용’을 연출한다.(2009 아트홀 대전블루스 0시 50분)
쌀쌀한 날 해거름이면 문득 생각나는 명동 ‘조타집’. 소공동 수련의시절에 가끔 찾던 대포집이다. 뭉근한 불을 절대로 꺼뜨리지 않는다는 오뎅 국물이 일품이다. 인기 안주는 참새구이 꼬치로 애 저녁에 동이 난다. 아작하고 깨물면 고소하고 짭쪼롬한 그 맛... 정종 대포 서너 잔에 한 시간쯤이면 혀가 슬슬 풀리면서 온몸이 혼혼해진다. 주머니가 두둑해도 네 마리를 꿴 한 꼬치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음은 늦은 주당들에 대한 배려다. 따끈한 국물에 연갈색 무가 무한 리필이요 서비스 보따리(후꾸로)도 있으니, 귀한 걸 나눠 먹는 건 말없는 약속이었다. 반세기가 지나 사는 형편이 나아지고 입맛도 변했지마는, 이젠 진짜 참새구이는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 농약 때문인지 환경오염 탓인지 참새 자체가 원체 귀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 핵심목표로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에 재미교포 김종훈씨가 내정되었다. 15세에 이민하여 빈민촌에서 굶기를 밥 먹 듯 고생한 끝에, 30대 후반에 미국 400대 부자가 된 과학자이며 CEO다. 존스 홉킨스대 전자공학과 졸업, 해군장교로 7년간 핵잠수함을 탔다. 메릴랜드대 공학박사과정을 마치고 벤처회사 설립, 개발한 장비가 성공하여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