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통일의 기운’ 세 편을 쓰고(2015. 7. 27-7. 31) 게재되기도 전에 날벼락처럼 목함 지뢰가(8월 4일) 터졌다. 임기 5년의 반환점에서 획기적인 대북제의를 구상하던 대통령만큼은 아니라도, 필자도 한순간 원고폐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7·4 공동성명(1972) 이후 40여년을 정리해 두면, 앞날을 전망하는 원점으로서 유용하리라고 판단하여 그대로 살리고, 이번 사건의 의미 두 편을 덧붙여 보기로 했다.첫째는 ‘뗑깡’이다. 과거 대통령 특사 후에 한동안은, 동네의원이나 상점에 별 몇 개씩 전과를 자랑하는 짧은 머리 불청객의 행패가 심했다. 기물을 부수고 손님들을 쫓아내면, 주인(원장)이 알아서 몇 푼 쥐어 준다. 주면 더 자주 오고, 칼같이 거절하면 결국은 안 온다. ‘퍼주기’라고 탓하면서도 우리가 나쁜 버릇을 키워온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둘째 ‘무모함’... 중국은 개방되고 푸틴의 과거로의 회귀도 유가 폭락에 비틀거리며, 베네수엘라 차베스는 죽고 쿠바도 미국과 악수하였다.세계가 먹고살기·경제 살리기에 여념이 없어 기댈 곳은 오직 남한뿐인데, 북측의 도발은 너무나 어리석다. 셋째 ‘병적인 신앙’이다. 황병서는 북한이 지뢰와 전혀 관계없다고 우기
허영구 원장을 모르는 치과의사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인기 연자였고, 네트워크 치과그룹의 대표원장이었으며, 지금은 메이저 임플란트 제조업체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특별한 이유는 이런 알만한 직함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를 특별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이 뭔가를 궁리한다는 데에 있다. 임상가로 얻은 자신의 경험을 강연을 통해 다른 치과의사들에게 전달하면서 허 원장은 일반 치과의사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하나 둘 머릿속에서 정리해 나갔고, 그런 결과로 그는 임상에서의 난관을 극복케 하는 여러 가지 솔루션들을 직접 제품화하기에 이르렀다. 임플란트 회사 네오바이오텍이 다른 업체들과 다른 점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허 원장 덕분에 네오는 남들보다 앞서 임상적 문제를 해결해 내는 원천기술을 다량 보유하게 됐다. 관련 특허만도 200여개에 이를 정도.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네오의 제품들은 대부분 개원가의 환영을 받았다. 무엇을 대하든 ‘완벽한 것은 없다’고 여기는 허 원장의 습성 탓에 좁은 입안에서의 일일지언정 그가 궁리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은 언제나 무궁무진하다. 제품화의 시작은 임플란트 보철의 새로운 개념인 SCRP였다. SCRP는 당시 핫이슈였던
동갑내기 황석영의 소신과 용기에 늘 감탄한다. 작가로서 엄청난 자산을 쌓을 기회라 해도, 목숨을 걸고 밀 입북하여 7회나 김일성을 만난 것은 어려운 결단이다.그러나 김일성을 을지문덕·세종대왕·이순신 같은 위인으로 칭송한 것은, 재간둥이라는 칭찬에 홀린 글쟁이의 아부라기보다, 세계관의 착시가 빚어낸 잘못된 소신으로 본다. 5년의 투옥 끝에 DJ 특사로(1998) 나온 뒤 안정을 찾고, 소설 ‘낯익은 세상’(2011)의 성공은 대한민국과의 화해선언이었던가? 참았던 끼가 끝내 폭발하여, 장편 ‘여울 물소리’를 서점에서 거둬들이고 절판선언을 한다(2013). 과거에 혜택을 보고도 출판사만 탓한다는 시비도 있었으나, 베스트셀러를 조작하는 출판사의 ‘사재기’에 경종을 울린 용기는 갈채를 받았다.지난 대선에서는 문 후보를 지지하면서, 박 후보가 당선되면 프로방스에서 밥집을 한다는 공개 약속을 하였으나, 결국 부도를 냈다. 이와 같은 과거의 화려한 무용담(?)에 비하면 ‘문창과 설화(文創科 舌禍)’는 약과다. 다만 이제라도, 쿠데타가 육사 탓이 아니듯 한국 문단의 침체가 문창과 탓이 아님을 인정하는, 사시(斜視)교정 시술을 받았으면 좋겠다. 싹싹하게 실수를 인정한 황석
가을이다. 어느 나라의 人口가 줄어든다.긴 편지를 쓰고 끝에는 '끝'이라고 썼다.어제 솎은 六十日케비지 한 접시남은 傾斜의 술은 다 마셨다.들쥐들이 終點에서 終點으로 몰려 다닌다.오늘 영원한 百원짜리를 벌었다.너무나 많은 끝이 내 발등에 쌓인다.感謝하다. 感謝하다.朱黃色 손수건으로하늘을 보고 자꾸 흔들어야 한다.가을이다. 저 小學校 운동장에서 一生의 호각소리가 그친다.모든 무덤들은 말한다.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고...머무는 親友여, 나는 혼자서 뻗은 길을 걷고 싶구나.[종점]노벨상 시즌이면 고은 시인의 이름도 한두번은 꼭 오르내립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선생이이 상의 주인이 됐다는 소식은 좀 채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선생의 시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한결 같은 목소리로 '끝'(소멸)을 노래합니다.그래서 선생의 시들은 가을에 특히 잘 어울리는지도 모릅니다. 위에 소개한 '예감'에서도 그런 소멸의 조짐은 군데군데서 드러납니다.어느 나라의 인구가 줄어들고, 편지에 '끝'이라고 쓰고, 남은 술은 다 마셨고, 들쥐들은 종점에서 종점으로 몰려 다닙니다.영원한 백원짜리, 일생의 호각소리, 무덤, 뻗은 길 같은 시어들도 결국은 그
■ 55세 환자의 임플란트를 발거하는 경우 급여가 되나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치과임플란트 제거술은 연령의 제한이 없습니다. 55세 환자의 매복치 발치가 급여대상이듯이 55세 환자의 임플란트 제거 역시 급여대상입니다. 한국에서 시술했거나 중국에서 시술했거나 관계없이 급여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분은 요양급여비용의 30프로만 본인부담하게 됩니다. 치과임플란트 제거 및 유지관리를 제10장 제5절 보철물의 유지관리에 행위를 별도로 신설하지 않고 기존의 행위에 준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치과임플란트 유지관리가 제10장 제5절에 분류되어졌다면 많은 불편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치과임플란트 제거술이 제10장 제5절로 분류하지 않은 것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초진료와 수차례에 걸친 재진료 그리고 차-21 수술후 처치 가.단순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10장 제5절 산정지침에 의하면 진찰료, 치료재료, 약재는 포함된 것으로 별도로 산정할 수 없습니다. 즉 의치수리를 위하여 첫날 내원 시 인상채득을 하고 기공소에서 의치수리를 한 후 두 번째 내원하여 수리된 의치를 장착하고 셋째날 수리된 의치를 조정하더라도 별도의 진찰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1960년대에는 대학 수가 적고 진학률도 낮아 대학생들의 자존심이 꽤 높았다.등록금 비싼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아, 시골에서 소나 논밭을 팔아 등록금을 대니, 우골탑(牛骨塔)이라는 자조 섞인 말도 생겼다. 뒤집어보면, 아직은 상아탑(象牙塔)이니 등용문(登龍門)이라는 우아한 어휘가 유효하던, 가난해도 희망을 향하여 달리던 시절이기도 하다. 청량리 하숙집에서 경희대 국문과 학생과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 학생이 만나 한 쪽이, “한국외대 부속 경희학원” 하면 “경희대 병설 외국어과”라며 받아치는 약 올리기 입씨름이 일쑤였다. 당시 SKY를 빼고는 어느 대학이던 서로가 지지 않는 맞수였는데, 드물게 예외적인 존재가 바로 서라벌예대였다.특히 문예창작과는 소신지원의 고고(孤高)함을 자타가 인정하였다. 명문 인문고교 학생이면 열에 두 셋은 철학서를 뒤적이고 예능(경박한 TV예능이 아님)을 존중하던 시절이라서, 열정과 천부적 재능을 갖추고 취업전선에서 라이벌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를 인정했던 것이다. 어느덧 서라벌의 문창과는 중앙대에 합병되고, 모두 60 군데이던 문창과가 다시 40여 곳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동안 문창과는 한국문학의 사관학교로서 쟁쟁한 문인들을 배출했을
추석맞이 열린치과봉사회 인도네시아 진료봉사!!! 벌써 17차지만 이제서야 가보게 되었다. 인천공항은 여행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진료봉사라는 거창함 반 일상의 탈출 반으로 인도네시아행에 몸을 실었다 다소 낯선 나라 인도네시아!!이슬람 문화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속에 자카르타공항에 내렸다. 자카르타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교통지옥이었고 생긴 모습은 내가 근무하는 한국의 강남역과 비슷한 모습이다..여기서 한국 사람이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는게 놀라울 뿐.. 인도네시아 북부로 가 '다다코리아'에 도착!! 생각보다 좋은 환경이다 에어콘에 맥주에.. 도마뱀은 귀여울뿐이다. ㅎ 다음날 봉사를 시작하는데 4년동안의 축척된 열치의 노력으로 다다코리아에는 제법 치과의 모습을 갖추었다. 진료에 익숙한 현지인의 어시스트, 기공팀과 진료팀의 훌륭한 조화는 진료에 흥을 더하기만 한다. 환자를 위해 서로 상의하고 고민하는 모습들.. 현지인들은 뜨거운 태양아래 진료순서를 기다린다.. 그들은 보아하니 양치를 잘 하지 않는듯 했다..ㅠㅠ 치석은 교합면에도 대단하였고 잇몸은 건드리기만해도 피가 났다.. 또 여기는 물에 석회물질이 많아보였다. 여러 이유로 치석은 엄청났고, 그런 그들이 스켈링을 하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조선의 치과계는 환희 속에서 당면 문제에 대응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치과계 최초의 종합지로 1946년 5월 1일에 발간된 『朝鮮齒界』 창간호에는 당시 치과계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였고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생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연재하면서 70년 전 선배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당시의 맞춤법이 지금과 적잖이 다르지만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정리: 조영수■ 해방 전후의 적십자병원 치과 적십자병원 치과 노희서해방 전후의 本院 치과를 간단히 소개하려 합니다. 1944년에 본인이 취임하였으며 本치과에 조선인이 근무키는 이것이 처음인가 봅니다.당시 서울종합병원 치과 중 조선인 의사의 有在 활동을 볼 수 없는 곳은 적십자병원 치과 뿐이었읍니다. 이 때 나는 몇가지 장래 일을 생각하고 本치과에서 일하기 주저치 않으며 間或은 本意 안인 복종을 한 때도 잇었습니다. 당시 本科에는 치과의사 2人(日男), 조수(日女) 1人, 합 3人인데 과장(志田)이란 자는 사무장 무슨 長을 겸하야 實上 병원을 총지휘하는 인물로 치과와는 별 관계 없는듯이 환자 한 명도 진료치 않고 助手란 女子난 도로혀 妨害
■ 비급여로 시술한 임플란트도 발거하는 경우 급여가 되나요? 2015년 7월 1일부터는 70세 이상으로 치과임플란트와 틀니 급여적용 연령이 확대되었으므로, 틀니 유지관리 역시 70세 이상이라면 등록 후 유지관리 행위를 급여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비급여로 시술받은 틀니라고 하더라도 급여적용 연령인 70세 이상이면 급여로 유지관리를 적용받을 수 있습니다. 즉 만 70세 이상의 틀니 장착자(기존 비급여 제작 틀니 장착자 포함)가 적용 대상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귀금속(gold plate)류 구조물이 들어가 있는 완전틀니나 부분틀니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해당되는 틀니는 반드시 레진상 또는 금속상으로 제작된 틀니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치과임플란트 제거술이나 유지관리는 어떻게 될까요? 치과임플란트와 틀니는 제18장 치과의 보철료에 속하는 같은 부류의 행위로 분류되지만, 유지관리는 완전히 다른 적용을 받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급여행위 분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 매년(최근에는 격년으로 제작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제작하여 배포하는 [치과건강보험 요양급여비용 및 급여기준]이라는 책자
토마스 해리스의 Red Dragon 시리즈는, ‘맨 헌터(1986)’로부터 ‘한니발 라이징(2006)’까지 계속 영화화 되고, A. 홉킨스와 J. 포스터가 출연한 ‘양들의 침묵’이 대박을 터뜨려, 사이코패스·연쇄 살인범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한니발은 피해자의 숨을 끊는 순간 신(神)이 된 듯 착각과 희열을 느낀다. 생명을 창조할 수 없지만 뺏을 수는 있다는 이상심리에서, 우간다의 이디 아민처럼 초인적인 힘을 얻겠다고 인육까지 손을 댄다.조직결속을 위한 것이라는 차이는 있으나 우리 범죄사에도 지존파가 있다. 신부가 되려던 스탈린은 권력투쟁 때부터 수천만을 숙청한 ‘인간백정’이었다. 종전 후 독일수용소에서는 귀국이 두려워 자살하는 소련포로가 속출하고, 스탈린은 마지못해 받아들인 2백만 명을 시베리아에 분산시켜 자동해결(?) 했다고 한다. 귀국이 두려운 이유는, 첫째 독일 포로생활이 소련의 일상보다 풍요했고, 둘째 죽지 않고 포로가 되어 조국을 배신했다며 처형당할 걱정, 셋째 비록 적국 수용소지만 자유를 경험한 포로들이 돌아와 잘 길들인 인민을 오염(?) 시킬 우려 때문에, 스탈린이 살려둘 리 없다는 점 등이다. 소련 전사자는 750만인데 부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