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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편지를 쓰고 끝에는 '끝'이라고 썼다

[詩가 있는 풍경 16] 고은 시인의 '豫感'

 

가을이다. 어느 나라의 人口가 줄어든다.
긴 편지를 쓰고 끝에는 '끝'이라고 썼다.
어제 솎은 六十日케비지 한 접시
남은 傾斜의 술은 다 마셨다.
들쥐들이 終點에서 終點으로 몰려 다닌다.

오늘 영원한 百원짜리를 벌었다.
너무나 많은 끝이 내 발등에 쌓인다.
感謝하다. 感謝하다.
朱黃色 손수건으로
하늘을 보고 자꾸 흔들어야 한다.

가을이다. 저 小學校 운동장에서
一生의 호각소리가 그친다.
모든 무덤들은 말한다.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고...

머무는 親友여, 나는 혼자서 뻗은 길을 걷고 싶구나.

 


[종점]

노벨상 시즌이면 고은 시인의 이름도 한두번은 꼭 오르내립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선생이 이 상의 주인이 됐다는 소식은 좀 채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선생의 시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한결 같은 목소리로 '끝'(소멸)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선생의 시들은 가을에 특히 잘 어울리는지도 모릅니다.

위에 소개한 '예감'에서도 그런 소멸의 조짐은 군데군데서 드러납니다.
어느 나라의 인구가 줄어들고, 편지에 '끝'이라고 쓰고, 남은 술은 다 마셨고, 들쥐들은 종점에서 종점으로 몰려 다닙니다.
영원한 백원짜리, 일생의 호각소리, 무덤, 뻗은 길 같은 시어들도 결국은 그의 '소멸'에 가 닿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소멸일까요? 평론가들은 선생의 시에서 '서로 부대끼며 모여서 흘러가는 삶들의 강물'을 발견합니다.
마치 우연처럼 각자의 삶이 거기에 동참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그것은 허무한 우연이 아니라 건강한 필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 건강한 필연으로 함께 흐르는 삶의 강물이 마침내 당도하는 곳이 바로 선생이 말하는 '종점'이자 '소멸'인 셈입니다.

아래는 1975년 1월 민음사가 펴낸 선생의 시집 부활에 함께 실린 '작은 노래' 중 일부

 

 
눈깔사탕을 사주고 싶은데
나에게는 딸이 없다

가을의 구멍가게.

        *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를 다 찾아도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 있어라.

        *

병든 말 잠에서 깨일 때
제 방울소리 듣는 긴 얼굴

        *

해 저문 날 낯선 마을을 지나다가
우는 아이에게 길을 묻다.

        *

집 없어서 종점에 내렸는데
저녁 때 골목골목에 쌓인 아이 부르는 소리

        *

아아 이 세상 같아라.
우는 여자 떠나는 서울역

        *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국밥을 사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