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경험과 실험 혹은 관찰로 이루어진 객관적인 지식 또한 아름다움, 사랑, 행복 같은 순수한 개인의 감정과 통찰만에 의해서 생기는 주관적 지식이 있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이 두 극단적인 객관과 주관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객관적 지식은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자연과학적 지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의 생활을 돕는 유용하고 실용적인 지식을 말하며 우리의 감성과 정서에 호소하는 예술적 지식은 대부분 주관적 지식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라틴어로 주관(Subjectum)은 ‘아래에 있는 것’, 객관적(Objectum)은 ‘건너편에 던져진’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어원적인 풀이를 보아도 주관이 객관보다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는 주관과 객관을 대상화시켜 그 사이에 넘지 못할 장벽을 만들고 주관에 더 큰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고 객관을 동질화시킴으로써 주관과 객관이 영원히 따로따로 놀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현대 철학에서는 주관은 객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의 분리는 모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주관과 객관의 구분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사전에는 임화(臨畫)를 “화집(畫集) 따위의 그림을 본 떠 그려 배우는 일, 또는 그 그림”이라고 정의한다. 왕초보 중학생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첫걸음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남의 것을 베끼는 도둑질 같아서 맘이 편하지 않았다. 눈으로 읽고 뇌가 해석한 영상과 감흥을 붓을 통하여 재현하는 ‘수법’은 배우겠지만, 데쌩과 구도와 창의(素描·構圖·創意)력을 발달시키는 데에는 역기능을 한다. 1990년대에 디트로이트의 한 아울렛에서 골프구두를 샀다. 같은 풋 조이 제품이 $40와 $120 의 두 가지였는데, 어느 비오는 날, 싼 것을 고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빗물이 멋대로 드나들어 양말을 적신 구두는, ‘Made in Taiwan’ 하청업체 제품이었다. 필자는 현대미술 팝 아트를 인정하기 싫다. 만화를 베낀 그림이나 조수를 동원한 대작이 미술품이라면, 예술로서의 미술은 존립 가치가 흔들린다. 하물며 오락·도박의 대명사 화투를 그려놓고 미술작품이라고 떼를 쓰는 주장은 용서할 수 없고, 조수에게 하청하여 대량생산한(Factory) 대작은 CG(컴퓨터 그래픽)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그저 벽지(Wall Paper) 대용품 정도가 아닐까? 일상의 용품도 장인(匠人)이
너를 기다리는 동안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사랑하는 이여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남들이 열고 들어 오는 문을 통해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기다림]기다려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건 일생에 한 번쯤은 가슴을 쿵꽝거리며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기다립니다.그래서.., 열리는 문마다 깜짝 깜짝 눈을 주다가 짧은 순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서야긴 한숨과 함께 눈길을 거둡니다. 시인의 말마따나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다 종내는 '내가 너에게로' 갑니다.먼데서 아주 힘들게 오고 있을 너를 앉아서 기다리기가 안스러워혹은,
인류가 서있는 대지가 들끓는 마그마 위에 떠도는 부평초 신세임을 금년처럼 절감한 때가 없다. 총선에서 여당은 지 승질을 못 이겨‘자 뻑’을 하고, 제 차례를 맞은 미 공화당에 막말의 달인·미국 판 허경영(?)이 돌출하여 선두주자가 된다.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그렇다 쳐도, 미국·유럽연합의 두 경제공룡이 출구를 찾지 못하여, 경제학교과서 비틀기로 몸부림을 친다. 이슬람 국가(IS)의 테러는 계속 난민을 양산하고,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는 인간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개발도상국에는 비상이 걸렸고. 전 세계 제조·유통 의 공장인 동북아 3국이 휘청거린다. 이 모든 현상의 배후와 결과에 막장드라마처럼 들끓는 ‘분노의 저주’ 가 어른거린다. “분노의 해법은 나와 내 가족으로부터”라는 의미에서 대전고등법원 소식지에 기고했던 ‘2월의 단상(斷想)’을 소개한다. - 집에서 S 설렁탕까지 allegro non troppo로 걸어 25분 걸린다. 지난 X마스에 그렇게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대덕대교에서 발이 멈췄다. 38년 만에 찾아왔고 날씨가 맑아야 만날 수 있으며 앞으로 19년은 지나야 또 온다는 유난히도 크고 밝은 슈퍼 문... 아내와 함께 우성이산 중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3대 족발집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장충동 '평안도족발집'에서 족발을테이크아웃 해봤습니다.헌데, 3대니 4대 혹은 5대같은 표현을 대체 어느 누가 시작했는지 몰라도 상당히 용감무쌍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런 서열이란 것이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판단인데, 이를 기자가 받아쓰고 다시 블로거들이 열심히 퍼 나르다 보니, 마치 역사교과서처럼 기정사실로굳어져 이를 감히 부정하고 개인적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매우 곤란한 지경이 되었습니다.어쨌거나 과거에 경험했던 평안도집 족발 맛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도 않거니와 “세상의 족발이 다 그 족발이지 뭐가 특별날까?”하는 냉소적 마음에 전화로 물어보니밤 11시까지 식당을 연다고 하여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습니다. 게다가 족발이 조금 뿐이 남지 않았으니 주문부터 하고 출발하라는 말에 어찌나 급하게차를 몰았는지 시골 집에서 장충동까지 한 시간도 걸리질 않았네요. 그러나 식당 안에는 아직 회식이 끝나지 않은 팀들이 두엇 보이고, 제가 주문한 족발만 까만 '비니루 봉다리' 속에서 임자를 기다리고 있네요.그런데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주변 간판을 돌아보니 죄다 원조 간판입니다.
난전(亂廛)에도 상도의가 있고, 성직자 중에서도 상상도 못할 범죄자가 나온다.역경과 핍박을 삭여낸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투사가 되지만, 분노에 굴복하면 짐승만도 못한 테러리스트가 된다. 정상적인 민주시민은 가혹하게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반발하는데, 국민을 짐승처럼 가두고 사육하는 동물농장 북한에서는 그마저 불가능하다.가난해도 자유와 활력이 넘치던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난데없는 10월 유신은 날벼락이었다(1972). 당시의 남북관계·국제상황과 유신의 평가는 뒤로 미루고, 적어도 종신집권을 기도한 독재체제라는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분노와 저항은 당연한 반응이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지학순 주교를 구속하자, 마침 세계적인 사회참여의식 속에 유행하던 ‘정의구현운동’과 맞물려,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출범한다. 그 후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고, 6·29선언을 끌어내는 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민주화의 큰 물줄기를 잡았으니 숨 한번 고르고, 성직자요 어른답게 세속의 정치·사회문제에 너무 자주 개입하지 않았다면, 비(非)신자들에게도 여전히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이란처럼 신정일체 국가를 빼면, 종교의 정치개입은
인간은 정신(mind)과 신체(body, 몸)로 구성되어 있다. 정신과 신체 중에 어느 것이 더 인간의 진정한 면모를 대표하는 것일까?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을 관장하는 정신이 보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하며 몸보다 정신을 더 값진 것으로 쳐주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정신은 신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신체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먹고, 입고, 활동하는 신체만이 참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몸이 인간의 주체로서 그 중요성이 인정받게 되면서 현대사회에서 신체에 작용하는 많은 권력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이것을 생체권력이라 했다. 현대사회에서 생체권력은 교묘한 방식으로 신체를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요즘 왠만한 길목이나 동네 어귀에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다. 시도때도 없이 우리의 몸은 감시 받고 있는 셈이다. 지상에 움직이는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할 수 있는 인공위성이 우리머리 위에서 돌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에 살고 있는 셈이다.21세기가 되면서 개인의 행복추구가 어떤 가치나 권리보다 더 소중하게 생
“그 어려운 걸 또 해냅니다, 제가.” 특전단 중에도 엘리트, 알파팀 유시진 대위(송중기)의 대사다. 특수부대는 10여명 병력으로 40명이 넘는 일개소대 몇 배의 전투력을 발휘해야 하므로, 의무·통신·폭파·수송·암호 등 여러 특기 중 두개 이상에 숙달해야한다. 특등사수에다가 순식간에 적을 해치우는 필살기는 기본이다.상남 보병훈련대는 ‘귀신 잡는 해병’을 길러낸 곳이다. 해군군의관후보생 시절 이곳에서 일주일간 지옥훈련을 받았다. 침투훈련은 70cm 높이로 기관총알이 날아오고 전후좌우에서 TNT가 계속 터지는 가운데, 낮은 포복으로 재빨리 목표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팔꿈치 무릎이 까져 군복에 피가 흥건해도, 앉거나 멈출 수 없다.훈련의 땀은 실전의 피요 훈련의 피는 전장의 목숨이다. 이와 같이 몇 년간 고된 단련을 거쳐 전원 부사관 급 이상인 태양의 후예, 특전 팀이 탄생한다. 그동안에 겪는 극한상황과 매와 체벌, 거기에서 오는 좌절·인격적인 모욕과 자존심의 상처로, 가슴속에 쌓인 분노가 평생 응어리로 남아야 정상이다. 반대로 지원제도가 아니라 징집대상인 일반 훈련병은, 과거와 달리 인격적·민주적인(?) 훈련에, 학부형 아닌 군 부형(?)의 간섭 또한 만만치
평과 나무 소독이 있어모기 새끼가 드물다는 몇 날 후인어느 날이 되었다.며칠만에 한번 만이라도 어진말솜씨였던 그인데오늘은 몇번째나 나에게 없어서는 안된다는 길을 기어이 가리켜 주고야 마는 것이었다.아직 이쪽에는 열리지 않는 果樹밭사이인수무나무 가시 울타리긴줄기를 벗어 나그이가 말한 대로 얼만가를 더 갔다.구름 덩어리 얕은 언저리植物이 풍기어 오는 유리 溫室이 있는언덕 쪽을 향하여 갔다.안쪽과 周圍라면 아무런기척이 없고 無邊하였다.안쪽 흙 바닥에는 떡갈 나무 잎사귀들의 언저리와 뿌롱드 빛깔의 果實들이평탄하게 가득 차 있었다.몇 개째를 집어 보아도 놓였던 자리가 썩어 있지 않으면 벌레가 먹고 있었다.그렇지 않은 것도 집기만 하면 썩어갔다.거기를 지킨다는 사람이 들어와 내가 하려던 말을 빼앗듯이 말했다.당신 아닌 사람이 집으면 그럴 리가 없다고----.[잔상]김종삼 시인의 시는 묽은 수채화 같습니다. 사물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색채가 강렬하지 않은.., 여백이 많아서 편안한 풍경화 같습니다.그는 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별 관심 없다는 투'로 툭 던지듯 독자들에게 말을 건냅니다.그가 시를 쓰는 일종의 방식인데, '원정'은 등단 이전의 초기 작품이지만 시
한국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요 평균치의 2.3배라는 사실은 많이들 안다(2012). 왕년에 일본이 누리던 영광(?)이다 복지부에 의하면, 남자·저소득·고령일수록 극단적 선택이 많고, 이유는 정신과 증상·대인관계·빈곤·외로움·질병의 순서다. 정신과 증상은 분노조절장애와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좌절감·우울증 등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 율은 전 국민 평균치의 3배로, 50%에 육박한다.당연히 독보적 세계 1위다. 허허벌판에 장기 연부도 아닌 현찰로 집을 마련하고, 자식 교육에 혼사(婚事)까지 거금을 쓰다 보니, 노후대책도 없는 가운데 청춘은 덧없이 흘러갔다. 국민연금은 용돈 정도요, 불경기에 허덕이는 자식들은 안쓰럽기만 하여 달리 손 내밀 곳이 없으니, 서러운 노인의 자살비율은 높아만 간다. “노인시민 재교육을 제안한다.”는 J 신문 칼럼을 읽었다(2015. 12). 지하철 승강기 앞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새치기한 노인의 예를 들어, ‘요즘 애들 버릇없다’하지만 실제로 노인의 무례가 더 많단다. 시위 현장에 가스통·쇠파이프 든 사람도 장 노년층이며, 연령대로 보아 노인범죄만 두 자릿수로 늘고 강력범죄 비중도 높아, ‘우리사회 분노의 진원지’가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