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의 종류는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가 익히 먹어보았던 기본적인 몇 가지 해장국에 더하여, 집집마다 어머니가 남편과 장성한 아들을 위해 뚝딱 만들어내는 '창작적인 해장국'까지 합친다면 그 가짓수는 그야말로 무량지수일 겁니다. 북어해장국, 콩나물해장국, 선지해장국, 순대해장국, 황태해장국, 다슬기해장국, 재첩해장국, 돼지국밥.... 여기에 주재료를 두어 개 이상을 조합하여 퓨전 해장국까지 만들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해장국의 대표선수는 선지해장국이 아닐까 싶네요. 옛날에는 가장 싸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동물의 피'였을 것이고, 다수 국민들이 영양실조 상태였던 전후(戰後) 몇 십 년 동안은 아마도 선지가 최고의 영양보충식이었을 겁니다.제가 초등학교 때 살았던 수원시 세류동에는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일주일에 한 두 번꼴로 선지장수가 "선지요! 선지가 왔어요~~!!"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지나갔습니다. 짐 자전거 양 쪽에 양철로 만든 쇼트닝 통 비슷한 것을 서너 개 씩 매달고 다니셨죠. 아이들은 엄마 심부름으로 몇 백 원과 큰 사발이나 바가지를 들고 나가면 아저씨가 선지를 퍼 담아주셨는데 저희들은 그게 진짜 '피고기'인 줄로만 알았다
저는 결혼식이나 돌잔치 뷔페 그리고 상갓집 문상을 가서는 웬만큼 배고프지 않고는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간혹 멀리까지 인사를 갔다면 차라리 인근의 맛집을 찾아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개 잔칫집 뷔페에 가면 윗저고리에 형형색색 스티커를 붙여줍니다. 손님 머릿수를 세기 위한 방법일 텐데 영 마뜩찮습니다. 사람에 대한 값어치가 단순히 스티커 하나로 평가되는 기분이 드니까요.문제는 상갓집입니다. 상갓집에서 밥이나 국 그리고 반찬은 일인당 얼마씩 책정된 것이 아니라 밥 한 솥, 국 한 양동이 단위로 계산을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서빙을 담당하는 상조회 직원의 요령에 따라 비용이 많이 나가기도 하고, 절약이 되기도 하고 하는 시스템입니다. 제 경우에서도 과일이나 음료 등이 밤마다 상당한 양이 사라진 경우가 있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예전에는 머리고기나 홍어, 가오리무침 등 때문에 단체 식중독도 생기곤 했는데, 요즘은 전문업체에서 제대로 만들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많이 줄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 최고라는 삼성병원, 아산중앙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할 것 없이 전국 대부분의 전문 장례식장 음식 내용은 거의 비슷하고 또 서빙 방식,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따로 '비빔 유전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골동반과 골동면이라 불리는 비빔밥과 비빔국수를 비롯하여, 어떠한 요리(혹은 반찬)라도 국물(소스)만 남아 있다면 일단 '챔기름' 혹은 달달하면서도 매운 각종 양념을 더하여 비벼줘야 직성이 풀리니 말입니다. 물론 남긴 국물이 아까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십여 년 전 홍콩 여행 중에 변두리 선창가 식당에서의 일입니다. 깐풍기 비슷한 맛이 나는 해물 요리를 먹고 남은 소스가 있어 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폴폴 날리는 안남미 밥을 주문했습니다. 실제 비빔밥이나 볶음밥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계열보다 밥알이 따로 노는 인디카 계열 쌀을 써야 제 맛입니다. 주문한 밥이 나오자, 여행용 고추장을 넣고는 사정없이 비볐더니 식당 사장 이하 주방 식구들이 모두 나와서 신기한 듯 쳐다보더군요. 드셔보시라고 한 수저 떠줬더니 너무 맛있다며 난리도 아니었던 기억이 납니다.여기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빔 소스나 기타 매운 요리(떡볶이 혹은 매운 찜갈비 등)의 소스를 만들 때 누가 누가 더 맵게 만드나 경쟁을 할 정도로 뭔가를 첨가합니다. 청양고추는 기본이고
한식과 와인의 궁합을 맞추려는 시도는 와인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래 끊임없이 있었을 것입니다.이러한 궁합 맞추기를 통상 '마리아쥬'라고 부르는데, 이는 곧 남녀의 결혼과 그 의미와 같기 때문이겠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식과 와인의 어울림에 대해 딱 부러진 결론이 없다는 것은 마치 동성애자끼리의 결혼처럼 영원히 2세를 잉태할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스토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로버트 파커나 젠시스 로빈슨 같은 유명 와인 평론가들이나 유럽의 와인메이커들은 우리나라에 와인붐을 일으키고 또 와인판매고를 올리기 위해 어떤 포도 종류로 만든 와인이 한식과 무척 어울린다고 강변을 하고 다니지만, 적어도 제 결론은 이런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것입니다.왜 그럴까요?한식의 특징은 일단 짜고 맵습니다. 마늘은 그래도 익힌 뒤에는 그 성질이 부드러워지지만, 고추류를 포함한 오신채들은 익힌다 한들 본래의 성질이 그대로이죠. 음식에 과도히 집어 넣는 소금은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혀를 마비시키는 음식첨가물들은 와인의 맛을 즐기는데 절대적인 장애물입니다.사정이 이러할진대, 론 지역 와인이 비교적 어울린다는 둥, 시라즈 품종이 좋다는 둥 하는 것은 '견강부회'일 따름
1.커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는 채 이십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물론 그 이전에도 다방 레지언니가 타주는 커피나 자판기 커피 애호가였고, 가끔은 블랙커피가 몸에 좋다며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곤 했었지요.그러나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서점에서 커피에 관한 간단한 책을 몇 권사서 읽고서는, '그까이꺼~!' 커피가 뭐 대단하냐는 생각과 '에스프레소'가 아니면 커피도 아니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했었습니다. '로부스타'종 커피는 개도 안 마시 거고, 아메리칸 스타일은 미국의 트럭 운전수들이나 마시는 거고, 일본 애들은 쓰잘 데 없이 이상한 기구나 필터 용지를 써서 커피를 뽑아 먹는게 마치 포르노에 등장하는 해괴망측한 짓과 다름없다고 여겼으니 말입니다.그러나 영화 '카모메 식당'과 '버킷리스트'에서 '커피 루왁'이 언급되고, 일본만화 '카페 드림'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저는 지금껏 드립식 커피를 제대로 마셔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포도는 실거야'하고 지레 포기한 여우였던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물론 이전에도 동경에 갈 때 마다 인스턴트 드립 커피를 구해와서 마시긴 했지만, 커피를 뽑아내는 지난한 과정이 생략된 커피란 '밀당'이 핵심인 연애 과
매년 도루묵값이 금값이더니 일본 원전 사고 때문에 올해는 많이 내렸습니다. 게다가 풍어까지 겹쳐 어민들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올 겨울 술안주는 무조건 도루묵구이입니다.날씨가 쌀쌀해지니 도루묵 생각이 간절해집니다.예전엔 제철에 잡은 도루묵보다 사철 냉동한 놈들을 내놓는 곳이 많아서 살도 퍽퍽하고 특유의 감칠 맛도 적으며 알을 에워싸는 점액질도 있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크기도 좀 컸으면 좋으련만 기껏해야 양미리 정도 사이즈이니 씹는 맛도 기대난망이었죠.하지만 도루묵 제철에 제법 큰 놈을 구어 먹다 보면, 뱃속 알의 크기도 이쿠라(연어알) 정도인데다 낫또의 그것처럼 점액질 범벅이라 묘한 맛을 냅니다. 하나하나 씹히는 알의 질감 역시 매우 독특합니다.알려진 도루묵 요리로는 찜, 찌개 등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어처럼 구워 먹어야 제맛입니다.일단, 웰던(well-done) 수준으로 도루묵을 구운 뒤에 꼬리와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머리부터 속의 뼈까지 남김없이 씹어 먹는 것이 정석입니다. (전어를 구워서 먹는 방법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전설에 따르면, 고려시대의 어느 왕이 동해 쪽으로 몽진을 갔다가 이 생선을 맛있게 먹고는(피난길엔 허기가 반찬인지라.
저의 식도락 노트에 용두식당과 함께 세트 메뉴로 붙어 다니는 식당이 있습니다. 풍기읍내의 '서부냉면'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쪽 여행을 할 때 봉화의 용두식당을 먼저 가기도 하고, 풍기의 냉면을 먼저 먹고 용두식당을 나중에 들르기도 하니 어찌되었든 두 식당에서 취급하는 한우구이를 하루에 두 번씩이나 먹게 됩니다. 봉성의 솔잎 숯불구이(돼지고기)를 먹으러 갈 때도 있지만 이럴 경우 용두식당이나 서부냉면 둘 중에 하나는 포기를 해야 하니 베르테르 못지않은 번민이 따릅니다. 당일치기로 울진이나 영덕까지 내려가 대게를 먹는 날에도 한 곳만 선택을 해야 하니까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최장 터널인 죽령터널이 생긴 이후로 풍기는 이제 오지라 할 수는 없는데, 예전엔 풍기나 영주에 한 번 가려면 박달재를 지나 죽령이나 이화령을 거쳐 돌고 돌아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오지였던 경상도 두메산골인 풍기에 난데없는 정통 평양냉면이 왠말입니까?지금은 은퇴하신 대학 은사님이 계십니다. 교수님의 원래 고향은 평안도이신데, 전쟁 때 피난을 풍기로 내려오셨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이곳에서 다니시다 고등학교는 다시 다른 지역으로 유학을 가셨다는군요. 그런데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은수에게 말합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그러나 사랑은 변합니다. 노련한 은수는 이미 그걸 알고 있고, 어리버리 상우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그럼 우리의 입맛도 변할까요? 대략 60대가 넘어가면 혀의 미뢰세포가 많이 소실되어 미각이 둔화되고 결국은 음식의 간을 맞추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머님들은 자식들에게 해주는 반찬이 불안하여 자꾸 소금이나 간장을 집어넣기 마련입니다. 결국 소금찌개나 간장국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그렇다고 어머니께 투정을 부리면 곤란합니다. 영화 '음식남녀'의 주인공인 '주부사'가 미각을 잃은 이유가 가족으로부터의 소외감이나 고독 따위로 포장되었지만, 결국 노화가 근본 원인입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단골로 다니던 식당의 반찬들이 과거와 같은 맛이 아니라면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니면 식당의 찬모 손맛이 변한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식당의 영업 전략에 따라 일부러 바꾼 것인지 요령부득입니다.경북 봉화는 두메산골 지역이지만 의외로 먹거리가 다양한 지역입니다.일단 송이버섯의 최대산지이죠. 양양군이 더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양양은 인접한 인제, 평창, 고성 등지에서 채취한 송이의 집산지라
제주에 갈 때면 열에 다섯은 ‘J 식당’을 찾습니다.물론 열에 아홉은 골프 때문에 제주에 갔으니, J 식당의 다금바리는 친구들과 ‘19홀’을 완성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말입니다.지난 토요일에도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전 김포공항에서 전화를 걸었습니다."접니다! 오늘 다금바리 있어요?"그러나 사장님의 대답은 평소와 조금 다릅니다. 예전엔 요즘 파도가 거세 몇일 배가 못떠서 없으니 다른 어종으로 드시라든지 혹은 몇 킬로그램짜리가 하나 있다거나, 1킬로그램은 다금바리로 드시고 나머진 돌돔(갓돔)이나 뱅에돔으로 채워 드시라는 게 통상의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중국산이 있는데 이 놈도 맛이 똑 같아요!"랍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중국산이라니요...?시쳇말로 '대략난감'입니다. 나름 양반 체면에 그건 또 얼마냐고 묻지도 못하고 덜컥 예약부터 했습니다. 제주에 도착해서 골프 치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음은 물어보나 마나지요.사람이란 원래 얄팍한 존재입니다.아무리 미인이고 학력이 좋아도 '신정아'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그녀에 대한 애정이 단박에 식어버리듯이 오늘 다금바리가 중국산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쫀득쫀득했던 육질이 왠지 오늘따라
소고기 육회를 듬뿍 넣어 비벼먹는 진주 비빔밥입니다. 원래 진주 교방(쉽게 말해서 요정 혹은 기생집)에서 만들어 내는 비빔밥은 칠보화반이라고 하여 붉은꽃이 활짝 핀 것처럼 꾸미지만, 진주의 천황식당이나 제일식당에서는 일반 대중을 위해 얼기설기 내는 모양새입니다.위 사진은 구마모토의 명물인 말고기 사시미(바사시)입니다. 마블링이 소고기 이상이죠? 실제 식용으로 기르는 말이기 때문에 고베소고기처럼 육질을 개량한 것입니다. 말의 발음이 '바'이기 때문에 '니기리'를 더하여 '바니기리'라는 스시(초밥)로도 먹습니다. 물론 스테이크로도 먹고요.위 두가지 음식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임진왜란이라는 공통분모가 숨어 있습니다.진주비빔밥은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 당할 때, 군사들과 백성들이 결사항전을 다짐하고자 모든 소를 징발하여 잡은 뒤에 같이 비벼 먹은데서 유래한 음식입니다. 어차피 전쟁에 지면 소가 필요도 없고 왜군에게 뺏길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6만 내외의 군사와 백성이 희생된 슬픈 전쟁 음식인 셈입니다. 그에 비하여 전주비빔밥은 그보다는 역사도 짧고 덜 유명했지만, 마케팅 효과로 널리 알려진 음식입니다. (해주도 비빔밥이 유명합니다. 해주는 곰탕, 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