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양식으로 갯장어와 민어가 최고라고들 합니다.그래서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민어나 갯장어 요리를 한번 맛보는 것이 마치 연례행사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갯장어나 민어 가격은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갯장어는 전남 고흥, 여수나 경남 고성 등지에서 많이 잡히니까 당연히 먼 거리를 달려 왔지만, 민어는 서해안 어디서건 다 잡히는 어종입니다. 심지어 인천 근처 바다에서도 꽤 잡힌다고 들었습니다만 가격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그러나 이런 '미친 가격'에 놀라 식도락가연 하며 폼 잡고 사는 사람이 좁쌀영감처럼 연례행사를 건너 뛸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OO갈비’에서 가장 비싸다는 설화등심 1인분도 솔직히 미친 가격입니다. 물론 매장 임대료, 인테리어, 종업원 임금 등을 고려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겠지만, 그래도 소비자 혹은 식도락가가 감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것은 분명합니다.긴자의 미슐랭 쓰리스타 초밥 집에서 그렇게 비싸다는 참치 대뱃살도 넙죽넙죽 잘 사먹으면서, 겨우 민어나 등심 값 때문에 이 무슨 ‘난리부르스’냐 하시겠지요. 그러나 수산시장이나 산지 공판장에서의 민어 가격은 조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kg에 30,000~50,000원 사
육개장이 개장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은 요리나 음식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별 이견이 없습니다. 보신탕을 드셔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고기를 결에 따라 손으로 찢어서 탕에 넣은 모양새가 육개장의 소고기 형상과 같기 때문이고, 게다가 육개장의 색깔이나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이 옛날 경상도 스타일 보신탕과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육개장에서 다시 한걸음 더 나간 것이 ‘닭개장’입니다. 비싼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사용한 것이지요. 흔히들 육개장을 ‘육계장’으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닭의 한자어인 계(鷄)라는 글자 때문일 겁니다.그런데 지나치게 유추를 하다 보니 과유불급한 해석도 있습니다.붉은 동지 팥죽을 먹는 이유가 잡귀를 쫓아내기 위함까지는 맞지만, 육개장의 색이 빨간 것도 잡귀를 쫓아내려는데 있다는 설은 그야말로 '썰'입니다. 그리고 육개장이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경상도 내륙음식인 것까지는 모르겠으나, 따로국밥도 육개장에서 나왔다고 하는 이야기는 조금 견강부회 같은 해석이 아닐까요? 옛날 시골 장터 국밥은 이것저것 다 넣고 고춧가루까지 왕창 넣어서 무조건 맵고 뜨거운 그리고 얼큰한 맛에 먹었습니다. 일종의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는 장터국밥이니
아래의 사진은 아는 분의 집안 어른이 출간한 자전적 수필집에 수록된 것입니다.책을 내신 어르신의 어머니(할머니)가 시집을 갈 때 예단을 보내는 광경을 찍은 사진인데, 그 규모로 봐서 보통 집안은 아니신 듯합니다. 그런데 어르신의 연배로 봐서 할머니의 결혼은 1910년대 중반일 것으로 짐작이 되는군요.제가 굳이 책에 있는 사진을 찍어서 올린 이유는 단순히 그 시절 대갓집의 예단 규모나 당시 중구 다동의 거리 풍경을 알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1910년대 서울 장안에 냉면집 간판이 보여서입니다.우리가 아는 서울의 평양냉면이란 한국동란 이후 이북 사람들이 내려와서 식당을 연 것이 시초라 대개 알고 있지만, 그 이전 일제시대에도 냉면을 내는 식당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사진에 나오는 '우춘관'이라는 식당은 한정식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저기 뒤져보니 1920~30년대 장안의 유지들이나 작가 혹은 기자들 모임이 우춘관에서 자주 열렸다는 기록이 있군요. 그러니까 우춘관은 냉면전문집이 아니고 일반 요릿집이면서, 특별 메뉴로 냉면을 따로 만들어 팔았던 것 같습니다.옛기록에 따르면 19세기 '동국세시기'에 냉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는
현재의 행정구역 개편을 언제 누가했는지는 몰라도 우스꽝스럽고 어색한 부분이 많다.가령 광역시 소속인데도 단위는 군, 면 등을 쓰는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이 그렇고, 울산광역시 울주군 등도 그렇다. 부산도 기장군이 이에 해당하는데 ,유독 서울만 그런 지명이 없다. 서울특별시 남양주군... 뭐 이런 지명도 나와야 확실한 지역균등이 아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그런 지역이 해당 광역시와 불가분 관계여서 그리 하였겠지만, 아무래도 억지스럽다.과거 큰 선거를 앞두고 광역시(당시에는 직할시) 승격을 무더기로 해준 적이 있었다. 100만 인구가 넘어가면 기계적으로 무조건 광역시로 높여 주었는데, 가령 광주가 인구가 모자라다 보니 인근 송정을 편입을 시켰고, 울산도 울주를 편입시켜 승격시켰다. 다 표를 노리고 그러했겠지만 선거결과가 그에 부응했는지는 기억이 없다. 문제는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수원이다. 인구가 115만을 넘어 120만을 향해 가는데도 광역시 승격은 감감무소식이다. 수원에 물꼬를 터주면, 성남, 안양, 부천, 용인, 화성... 서울을 둘러싼 모든 도시가 광역시가 되어 서울을 협공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자체의 세금 관련 때문일까?
일본의 여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가 만든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면,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가 등장하고 조연 격으로는 루왁 커피가 나온다. 그 후속인 '안경'이라는 작품에는 우메보시나 팥빙수가 하나의 상징으로 출연하며, '토일렛'이라는 작품에서는 스시가 등장한다.감독이 그 음식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소외감이나 가슴 속의 상처 등을 치유하기 위한 치료제, 즉 '소울 푸드'의 필요성과 그 역할을 말하고자 함이다.그렇다면 자신만의 소울 푸드나 우리나라 중장년층들이 생각하는 대표적 소울 푸드로는 무엇이 있을까?사람마다 개인적 경험이 다르고, 살아오면서 입은 내면의 상처 또한 누구나 다르기에 그들이 선택하는 소울 푸드는 무척 다양하겠지만, 굳이 나만의 그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냉면'이 아닐까 한다. 함흥식 비빔(회)냉면은 까다롭고 쪼잔한 성격 때문에 오로지 두어 곳의 식당만 다니기에 논외로 치고, 평양식 물냉면만큼은 집집마다 고유한 포스 혹은 아우라가 있기 때문에 그 먼 길을 마다않고 기꺼이 방문을 하는 것이다.(어느 분야이든 초심자들이 항상 그렇지만) 냉면의 밍밍한 맛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마니아로 변해 갈 무렵,
나가사키는 한반도와 가깝고 또 중국과도 가까운 지역이라 오래 전부터 대륙으로 통하는 요충지였습니다. 게다가 최초로 외국(서양)에 개항된 곳이기도 합니다. 대략 17세기 전후에 개항을 했는데 처음에는 중국의 조차지역처럼 일정 구역에만 외국인들이 드나들도록 하였습지요(나가사키의 '데지마'라는 지역이 바로 그곳입니다).일본에 최초로 드나들었던 서양나라는 포르투갈이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동학난과 유사한 성격의 ‘시마바라의 난’ 이후에 축출되고 대신 네덜란드가 들어왔습니다. 그 중심 지역이 바로 나가사키입니다. 네덜란드를 의미하는 '오란다'라는 말은 네덜란드 사람도 뜻하지만, 서양 사람들 얼굴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양코배기들을 무조건 오란다라고 불렀다고도 하네요.서양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국과 우리나라도 아주 오래 전부터 큐슈 지방을 드나들었습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가 도래인으로서 그 지역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정유재란 그리고 그 이전에 왜구들에 의해 끌려간 사람들도 그 지역에 많이 살았으니 자연히 우리나라 문화가 엄청나게 녹아들었습니다. 실제 나가사키에서 시마바라 쪽으로 가다보니 시골집들의 기와가 우리나라 기와 스타일과 상당히 흡사
저희가 어렸을 적에도 해태, 오리온, 롯데제과가 있었습니다. 삼립식품의 호빵도 있었고, 샤니식품, 삼강식품 등도 있었는데, 이중에는 아직도 건재한 회사들이 있는가 하면, 상호는 남았지만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곳도 있고, 통폐합하여 다른 이름으로 바뀐 곳도 있습니다. 그런 유수의 회사에서 만든 종합선물세트라도 선물 받는 날이면 지금의 로또 당첨 이상으로 행복했었지요. 장롱이나 벽장 속에 형 몰래 숨겨두고 며칠이고 몰래 꺼내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그러나 이런 번듯한 회사의 과자를 사먹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달고나(뽑기), 번데기, 소라(지금 생각하니 다슬기), 쫀득이, 라면땅, 비닐튜브 속에 든 달콤한 그 무엇... 대략 이런 과자들이 저희들의 군것질 대상이었습니다. 만화가게에서 파는 오뎅이나 핫바는 큰맘 먹고 저지르는 사치였지요. 동네 문방구에서도 소라과자, 달팽이과자, 무지개색 웨하스 같은 인근 과자공장에서 만든 것들을 팔기도 했고요.수원 세류초등학교에서 역전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과자공장이 둘 있었습니다. 두 곳 다 저희 반 친구들 집이었는데, 그 집에 놀러가는 날은 각종 과자로 배를 채우고 오는 날입니다. 대개 만들다가 실
IRA를 아시는지요? 북아일랜드 공화국의 독립투쟁은 1994년 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이 휴전을 선언하고 이어서 2001년 IRA가 무장해제를 하면서 현재는 영국과 평화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언제고 다시 터질 가능성이 많은 휴화산에 다름없습니다. IRA의 투쟁을 다룬 영화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아버지의 이름으로', '마이클 콜린스', '제네럴', '크라잉 게임' 등 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영국 영화들 중에 감동을 받은 것은 죄다 IRA 영화이거나 '대처리즘'에 반대하는 좌파적 영화들이죠. 그렇다고 제가 좌파는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빌리 엘리엇'이나 '풀 몬티', '브라스드 오프' 같은 영국식 좌파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고 또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더군요. 사족입니다만, '크라잉 게임'이라는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남성의 성기가 등장하기도 했지요. 보이 조지가 부른 주제가도 일품이었고요. 뭐 요즘이야 송강호의 볼 품 없는 거시기도 자랑스레 나옵디다만.... 크라잉 게임이 개봉할 당시엔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요. 북아일랜드만 독립투쟁을 한 것은 아닙니다.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에도 투쟁단체가 있습니다. 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덕이 어디고 강구항이 뭐하는 곳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대략 15~6년 전 쯤 부터일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영덕대게는 임금님 진상품이었고, 영주와 안동 쪽 내륙으로 해산물을 실어 나르는 출발지로 알려졌으니 완전히 이름 없는 소도시는 아니었습니다. 6.25 전쟁 때는 학도병들이 장사상륙작전을 펼친 곳으로도 유명했고, 법원의 지원과 검찰의 지청까지 있을 정도로 경북 북부동해안에서는 나름 사법과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하지요.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본들, 15년 전 쯤에 방영된 드라마 한편보다는 못합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되어 전 국민들이 알기 전까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영덕과 강구항은 그저 그런 한적한 시골읍과 항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그 드라마 이름은 바로 '그대 그리고 나'입니다. 최진실, 박상원, 차인표, 최불암, 박원숙 등과 같은 초호화 멤버들이 어림잡아 6개월 이상 강구항에 출몰(?)하면서 촬영을 한 덕에 그 이후 몇 년 동안 강구항의 모든 대게집들은 ‘드라마에 방영된 집’이라거나 ‘진실’이나 ‘불암이’ 아저씨가 다녀간 집이라고 써 붙여
계절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봄이 봄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봄이 온 줄도 모른다는 건 그만큼 불행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하여,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봄맞이 나들이를 간다는 것은 각박한 세상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는 남다른 호사나 여유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하지만 일상의 바쁜 와중에 짬을 내어 산수유 축제니, 매화 축제니, 벚꽃놀이니 하는 것도 실업이나 불황으로 인해 많아진 시간 때문에 더 흥청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힘들수록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새 봄의 나물로 미각을 돋운다면 이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는데 한줄기 빛은 되지 않을까요? 사람마다 봄을 맞이하는 음식들은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달래, 냉이, 두릅, 씀바귀, 봄동... 같은 봄나물이나 채소도 있겠고, 저처럼 도다리 쑥국, 우럭젓국 혹은 주꾸미 요리를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남해안의 도다리쑥국은 봄 맞으러 가는 길치고는 너무 멉니다. 서울 시내에 도다리쑥국 제대로 낸다는 집을 찾아낸 것도 멀리 남해안까지 봄마중 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서울에서는 봄맛을 제대로 느끼질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봄은 그곳에 가서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