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덕이 어디고 강구항이 뭐하는 곳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대략 15~6년 전 쯤 부터일 겁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영덕대게는 임금님 진상품이었고, 영주와 안동 쪽 내륙으로 해산물을 실어 나르는 출발지로 알려졌으니 완전히 이름 없는 소도시는 아니었습니다. 6.25 전쟁 때는 학도병들이 장사상륙작전을 펼친 곳으로도 유명했고, 법원의 지원과 검찰의 지청까지 있을 정도로 경북 북부동해안에서는 나름 사법과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본들, 15년 전 쯤에 방영된 드라마 한편보다는 못합니다. 그 드라마가 방영되어 전 국민들이 알기 전까지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영덕과 강구항은 그저 그런 한적한 시골읍과 항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 드라마 이름은 바로 '그대 그리고 나'입니다. 최진실, 박상원, 차인표, 최불암, 박원숙 등과 같은 초호화 멤버들이 어림잡아 6개월 이상 강구항에 출몰(?)하면서 촬영을 한 덕에 그 이후 몇 년 동안 강구항의 모든 대게집들은 ‘드라마에 방영된 집’이라거나 ‘진실’이나 ‘불암이’ 아저씨가 다녀간 집이라고 써 붙여두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한 장소가 아예 국민 관광지로 바뀐 첫 사례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인데, 요즘은 아예 매년 4월초를 전후하여 대게축제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그 기간에 대게를 맛보러 갔다가는 초주검을 면치 못합니다. 전국의 식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아예 차량이 강구항으로 진입하기조차 힘들 정도인데, 결국 진입에 한 시간, 주차에 한 시간, 빠져나오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려 결국 고압수증기로 익혀 죽은 대게 신세가 되고 맙니다.
대게 원조를 가지고는 울진과 영덕은 언제나 으르렁거립니다. 울진 입장에서는 실제 어획고가 울진이 더 많다고 알려진 탓에 억울할 법도 하지요. 거기에 요즘은 구룡포 대게까지 도전장을 내민다는군요. 한 때 영덕군은 차별화한다고 박달대게에 영덕 출신임을 알려주는 '완장'까지 채웠지만 꼴만 사나워졌습니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처럼 죄 없는 대게한테 감투만 씌어주고 가격만 올린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것이지요. 재밌는 것은 소설에서도 완장이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였다는데 대게 완장도 노란색에 파란 글씨입니다.
불행히도 제 수준에서는 러시아산, 일본산과도 맛 구별이 어렵습니다.(예전엔 북한산까지 있었지요) 등딱지에 붙은 뭔가를 가지고 구별한다고도 하고, 그냥 주인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도 하고.... 심지어 너도대게(청게) 같은 잡종까지 있으니 손님 입장에서는 아예 그렇거니 하고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항구 쪽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 바닷가에서 먹으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반해, 다리 건너기 전 시장 안의 횟집에서는 그 반값에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덤으로 동네 할머니들의 각종 봄나물도 살 수 있고, 재수 좋으면 이시가리 (줄가자미)회도 사먹을 수 있지요. 그것도 완전 헐값에 말입니다.
마침 동행한 분이 시장 횟집 앞에서 영덕군청의 높은 자리에 계셨던 분을 만났지 뭡니까? 그 양반 말씀이 영덕의 동네 사람들이나 기관장들도 모두 시장통에서 대게를 먹는다는군요. 그 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너무 싸서 짝퉁 대게인가를 고민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강구항 건너 시장 골목 안에 있습니다.
미주구리회입니다. 물가자미를 이 동네에선 미주구리라고 합니다. 물론 서비스 메뉴입니다.
아예 양푼이로 초장을 가져다 줍니다.
문어와 소라... 역시 서비스 메뉴!
한 마리를 촬영용으로 들어줍니다. 실내 사진에 근자에 다녀간 최불암 아저씨도 보이고요, 사이가 좋았을 때의 신성일과 엄앵란 사진도 보입니다.
전부 8마리를 시켰죠. 이 집은 그냥 얼마짜리로 해달라고 하면 알아서 그냥 해줍니다.
대게가 '되게' 맛있어요.
게 요리의 하이라이트죠.
헐!!! 분위기 어울리지 않게 그라빠를? 이태리의 와인명가 사시까이아에서 와인도 만들지만 그 부산물로 그라빠도 만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