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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옛 사진에서 찾아보는 냉면집과 치과

[석창인의 밥집 이야기]- <31>

     

아래의 사진은 아는 분의 집안 어른이 출간한 자전적 수필집에 수록된 것입니다.

책을 내신 어르신의 어머니(할머니)가 시집을 갈 때 예단을 보내는 광경을 찍은 사진인데, 그 규모로 봐서 보통 집안은 아니신 듯합니다. 그런데 어르신의 연배로 봐서 할머니의 결혼은 1910년대 중반일 것으로 짐작이 되는군요.

제가 굳이 책에 있는 사진을 찍어서 올린 이유는 단순히 그 시절 대갓집의 예단 규모나 당시 중구 다동의 거리 풍경을 알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1910년대 서울 장안에 냉면집 간판이 보여서입니다.

우리가 아는 서울의 평양냉면이란 한국동란 이후 이북 사람들이 내려와서 식당을 연 것이 시초라 대개 알고 있지만, 그 이전 일제시대에도 냉면을 내는 식당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우춘관'이라는 식당은 한정식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저기 뒤져보니 1920~30년대 장안의 유지들이나 작가 혹은 기자들 모임이 우춘관에서 자주 열렸다는 기록이 있군요. 그러니까 우춘관은 냉면전문집이 아니고 일반 요릿집이면서, 특별 메뉴로 냉면을 따로 만들어 팔았던 것 같습니다.

옛기록에 따르면 19세기 '동국세시기'에 냉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  200년 더 이전에도 냉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남한에 냉면전문집들이 집단적으로 많이 생긴 곳은 서울이 아니고 인천입니다.

이미 1920년대 인천 화평동에 평양관이라는 냉면집이 생겨서 인기를 누렸고, 심지어 자전거로 서울까지 열심히 배달했다는 사료도 있습니다.(강북 어디인가에 85년이나 된 냉면집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간판에만 그렇게 써있을 뿐 확실한 근거가 없는 식당입니다.)

 

대개 할머니들의 앨범 속엔 구한말이나 일제시대 때 찍은 빛바랜 옛 사진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간혹 이 중에는 역사적 사료가 되는 귀한 사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치과계에서도 순종의 인산일과 월남 이상재 선생 장례 행렬 사진에서 '이해박난 집'이라는 간판이 있어서 귀한 사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집 안의 빛바랜 사진을 뒤져보시죠? 혹 압니까? 비싼 값에 팔릴지....

아래 사진은 서천 마량포로 주꾸미 먹으러 갔다가 인근의 동백정에 있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위업을 기리는 게시판을 찍은 것입니다.

1927년 월남 이상재 선생의 사회장 장례 행렬 사진인데, 종로의 어느 치과 간판이 보이는군요.(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1926610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1874~1926)의 인산(왕실의 장례)에 우연히 찍힌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 간판입니다.

1907년 순종 원년 종로에서 잇방을 개설한 최승용이라는 사람이 사진 속에 있는 '이해박난집'이라는 간판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의 서울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은 일제시대 때 경성치과의학교(19251회 졸업)와 경성치과의학 전문학교(19301회 졸업)이 통합되어 1948년 국립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1926년과 1927년의 서울의 치과들은 일본인 치과의사 밑에 있던 조수들이 면허를 얻어 개업을 했거나, 외국인들이 하던 치과진료소에 근무를 했던 사람 그리고 일본 유학생들이 개업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참말로 호랑이 담배치던 시절 이야기지요.

 

 대한민국 주꾸미 요리의 본좌, 마량포 서산회관입니다.

 

  

서천 특산 막걸리와 함께 주꾸미 볶음을 드셔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