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어렸을 적에도 해태, 오리온, 롯데제과가 있었습니다. 삼립식품의 호빵도 있었고, 샤니식품, 삼강식품 등도 있었는데, 이중에는 아직도 건재한 회사들이 있는가 하면, 상호는 남았지만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뀐 곳도 있고, 통폐합하여 다른 이름으로 바뀐 곳도 있습니다. 그런 유수의 회사에서 만든 종합선물세트라도 선물 받는 날이면 지금의 로또 당첨 이상으로 행복했었지요. 장롱이나 벽장 속에 형 몰래 숨겨두고 며칠이고 몰래 꺼내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이런 번듯한 회사의 과자를 사먹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서 파는 달고나(뽑기), 번데기, 소라(지금 생각하니 다슬기), 쫀득이, 라면땅, 비닐튜브 속에 든 달콤한 그 무엇... 대략 이런 과자들이 저희들의 군것질 대상이었습니다. 만화가게에서 파는 오뎅이나 핫바는 큰맘 먹고 저지르는 사치였지요. 동네 문방구에서도 소라과자, 달팽이과자, 무지개색 웨하스 같은 인근 과자공장에서 만든 것들을 팔기도 했고요.
수원 세류초등학교에서 역전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과자공장이 둘 있었습니다. 두 곳 다 저희 반 친구들 집이었는데, 그 집에 놀러가는 날은 각종 과자로 배를 채우고 오는 날입니다. 대개 만들다가 실패한 달팽이과자, 소라과자였지만 가끔 센베이를 먹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제시대 때부터 있었던 과자 기계를 인수하여 공장을 차렸을 거라고 짐작은 합니다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불량과자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그때 맛보았던 센베이의 수준은 요즘 유명 제과점에서 만든다는 명품 센베이와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십여 년 전 전주 풍년제과의 센베이를 맛본 이후부터는 어렸을 적의 그 센베이는 짝퉁 센베이였구나 할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파래가루를 넣은 부채꼴 모양의 센베이 일색이어서 어린 입맛에도 그다지 맛있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잣 뿐만 아니라 땅콩가루 등 다양하게 변주되고 또 계란, 버터 같은 재료도 아낌이 없고 튀기는 기름 역시 고급이라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됩니다.
센베이는 한문으로 전병(煎餠)입니다. 기름에 지진 과자란 뜻이죠. 전병의 일본식 발음이 바로 센베이고요. 우리나라의 각종 밀가루, 쌀가루 지짐들도 전병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한중일 세나라 모두 전병이라는 과자가 있었고 그 원형은 중국입니다. 음력 팔월십오일 추석에 먹는 중국 과자 중엔 월병이라고 있습니다만, 생김새를 달처럼 둥글게 만듭니다.
요즘 명절날 제사상엔 전통적인 한과류가 올라가지만, 부모님이 젊으셨을 적에 즐겨 드셨던 음식이나 과자를 올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며칠 전 귀한 센베이를 선물 받았을 때 문득 떠오른 생각입니다. 원래 제사의 진설법이란게 가가례(家家禮)이니까요.
제가 전주 PNB 풍년제과 센베이와 부산 이대명과 센베이를 같이 놓고 동시에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전주가 훨씬 두껍고 진중한 맛이라면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은 부산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부산 경남 지역의 센베이계를 점령한 이대명과! 창업이 1954년이면 60년이나 되었군요.
처음엔 이화여대출신이 사장인가 했더랬지요.
열어보니 종류별로 네 가지가 들었습니다. 행복이 마구 밀려오고 엔돌핀이 뿜어져 나옵니다.
잣맛 전병인데 잣이 통 크게 박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