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허용 및 부대사업 확대' 시도가 '의료민영화'란 이름으로 치환되면서 전국적인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의료단체들은 물론 야당 의원들에 노동단체까지 나서서 의료민영화 철회를 외친다.
보도에 따르면 관련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6월 11~7월 22일) 중 접수된 의견서가 10만 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복지부의 입법예고 의견서 접수 사상 최대 건수로, 지금까지는 지난해 보육법 개정 때의 8000여건이 최대였다. 이 가운데 서명지와 팩스로 접수된 문서만 4만건이나 된다니, 답신 문제로 복지부가 골머리를 앓을 만도 하다.
복지부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의료민영화 관련 글이 1300여건이나 올라와 있다. 대부분 반대 주장인 이 게시물들은 내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의료민영화 반대'가 전부이다. 제법 주장을 펼친 글들도 눈에 띄지만, 그나마 실상은 단말마 수준이다.
가령 "따라할 껄 따라 해라 아주 국민을 죽이려고 작정했냐? 돈 많은 **들한테만 좋은 민영화 제발 헛짓거리 좀 하지마라" "아플 때 병원 가는 건 최소한의 권리다. 국가는 이를 책임져줄 의무가 있다. 꼼수부리지 말자. 부분적이라 할지라도 의료민영화만큼은 절대 반대다!!!" 같은 것들인데, 이들이 이번 사안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비전문가 수준의 ‘호들갑’으로 일관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왜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정부의 정책이 국민들을 병원에서 내쫓는 나쁜 선택으로 비춰지게 된 걸까?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정책 당사자이자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에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있지만, 전문가 집단이라면 좀 더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다. 이번의 경우 입법예고안에 담긴 정부의 의도나 목표를 살핀 다음 내용을 하나씩 뜯어보는 것이 순서이다. 거기에서 입법 후의 변화를 그려내 개선점을 찾고, 이를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어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구호에 가까운 성명전으로 시종 문제에 맞섰다. 정부와는 대화다운 대화 한번 나누지 못한 채 가이드라인 중 아주 적은 가능성에서 문제를 끄집어내고, 이를 확대시켜 마치 제도가 시행되면 당장에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거의 비전문가들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이래서는 소위 한나라의 의료정책을 이끄는 정책 파트너로서의 소양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새로운 의료제도에 불안해하면 법안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이런 저런 부분만 바로잡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것이 의료계의 역할이다. 그래야 국민들도 정치권도 전문가적 식견을 존중하게 된다.
대응방식 좀 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어야
설사 처음부터 끝까지 제도 전체가 틀렸다고 해도, 그럴수록 전문가다운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옳다. 정부도 소비자도 의료계가 투쟁해야 할 상대는 아니다. 어떤 문제에서건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이렇게 치면 의료계는 분명히 정치권과도 시민단체들과도 접근방식부터 달라야 할 것이다.
예정대로 라면 복지부는 이달 중 입법예고안을 보완해 법제처의 법안심사를 거친 다음, 빠르면 8월 안에 의료법인에 영리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는 개정령의 시행에 들어갈 전망이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이 기간만이라도 치협을 비롯한 의료계가 좀 더 효율적으로 문제에 개입할 수 있기를 국민들은 바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