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의 주인이 치과의사로 바뀐 지 이제 딱 7개월째다. 전임은 서울시의사회장을 지낸 한광수 박사이고, 초대 총재는 박종화 목사가 맡았었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냐’ 보다 ‘어떤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냐’가 이 자리엔 더 중요하단다.
이수구 총재는 매일 9시반쯤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7층에 있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 총재실로 출근해 보고도 받고, 회의도 하고, 결재도 하다가 약속이 없는 날은 직원들과 점심까지 같이 들고 치과로 돌아온다. 오후엔 다시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다.
KOFIH의 총재실은 생각보다 작았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조그만 책장을 뒤에 두고 명패를 얹은 책상이 입구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창가에 자리 잡았다.
7명이 앉을 수 있는 검은 소파가 큰 면적을 차지했고, 책상 맞은편 벽면을 따라 길게 배치한 장식장엔 이 방의 주인들이 세계 각국을 무대로 펼친 활약상을 담은 사진들과 기념패 그리고 기념품들이 차분히 정리돼 있다.
KOFIH는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준 정부기관이다. 이 사무총장 사후에는 그를 기리는 추모사업으로 개발도상국의 의사들을 초청해 일정기간 공부를 시키는 Fallow ship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은 인원이 벌써 260명을 넘어섰다.
이밖에도 KOFIH는 개도국 보건의료지원과 북한 보건의료지원, 지진 등 해외 재난사태 발생 시 긴급구호, 재외동포들을 위한 보건의료지원 등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 일들은 세계 어느 곳에선가 KOFIH의 이름으로 이 시각에도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있다.
때문에 총재의 해외출장도 잦은 편이다. 이수구 총재는 이종욱 기념상을 수여하기 위해 WHO 총회를 다녀왔고, 스리랑카 탕갈레 지방에 건립한 응급의료센터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했었다. 이 자리엔 스리랑카 대통령도 참석, 이 총재를 대통령 사저로 초청하기도 했다.
KOFIH의 총재는 비상근직이며 따라서 급료도 없다. 하지만 총재로서의 업무 수행에는 지장이 없도록 활동비가 보장이 되고, 대외적으로 차관급 대우를 제공받는다. 내부적으로도 직원들의 인사에서부터 재정문제까지 비상근이지만 의사결정의 모든 권한이 총재에 쏠려 있다. 그러므로 비상근이라고 이름만 걸어두는 여느 자리처럼 여겼다간 큰 코 다친다.
KOFIH의 연간 예산은 270억원 정도이고, 해외에서 기업들과 공동으로 공익사업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보면 재단이 운용하는 한 해 예산은 300억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 총재는 이 일을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저녁엔 개인적인 약속이 어려울 정도로 만나야 할 사람도 가야할 곳도 많지만 그는 이 일을 즐기는 중이다. 본래 열정이 많은 사람인데다 KOFIH의 성격 자체가 이 총재와 너무나 잘 맞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학생들에게도 이제는 좁은 치과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세계에는 한국 의사 치과의사들을 기다리는 곳이 많고, 인턴십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국제보건기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다는 것. 현재 KOFIH에도 1명의 치과의사가 정식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수구 총재는 기자에게 KOFIH 내부를 일일이 소개해줬다. 고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활동 사진으로 4면을 메운 이종욱 기념센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 총재가 그 장면 장면을 마치 현장에 있었던 듯 자세히 설명한다. 애정이 아니고선 하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