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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小人이 돼 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詩가 있는 풍경 6] 김수영 시인의 '강가에서'

 

강가에서

 

저이는 나보다 여유가 있다
저이는 나보다도 가난하게 보이는데
저이는 우리집을 찾아와서 산보를 청한다
강가에 가서 돌아갈 차비만 남겨 놓고 술을 사준다
아니 돌아갈 차비까지 다 마셨나보다
식구가 나보다도 일곱식구나 더 많다는데
일요일이면 빼지 않고 강으로 투망을 하러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반드시 4킬로가량을 걷는다고 한다

 

죽은 고기처럼 혈색없는 나를 보고
얼마전에는 애 업은 여자하고 오입을 했다고 한다
초저녁에 두 번 새벽에 한 번
그러니 아직도 늙지 않지 않았느냐고 한다
그래도 추탕을 먹으면서 나보다도 더 땀을 흘리더라만
신문지로 얼굴을 씻으면서 나보고도
산보를 하라고 자꾸 권한다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는데
남방샤쓰 밑에는 바지에 혁대도 매지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도 가난해 보이고
그는 나보다도 짐이 무거워 보이는데
그는 나보다도 눈이 들어갔는데
그는 나보다도 여유가 있고
그는 나에게 공포를 준다

 

이런 사람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그처럼 살고 있는 것같다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사이에
자꾸 자꾸 소심해져만간다
동요도 없이 반성도 없이
자꾸 자꾸 小人이 돼간다
俗돼간다 俗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

 

 

反省
김수영 만큼 한국 시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시인도 드물다.
그는 그가 영위한 길지 않은 시작 기간 동안 줄곧 ‘자유’와 ‘혁명’이라는 탐구어에 매달렸다.
‘공자의 생활난’ ‘달나라의 장난’ ‘거대한 뿌리’ ‘헬리콥터’ ‘그 방을 생각하며’ ‘풀’ 같은 작품들이 그의 이런 시세계를 잘 보여준다.
위에 소개한 ‘강가에서’도 그가 추구한 자유와 무관하지 않다.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부산에서 미군 통역 일을 하다가 상경해 잡지사를 전전하며 그는 늘 생활고와 무거운 싸움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번역일, 풀빵 봉투 붙이기 부업, 양계업은 詩作 이외 그가 치열하게 다툰 또 다른 삶의 흔적들이다.
‘강가에서’는 그러므로 그에겐 '가난한 지식인 가장의 자기반성'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은 1968년 6월 15일 한낮, 귀가 도중 좌석버스에 치여 4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번역서 에머슨 논문집, 20세기의 문학평론 등을 남겼다. 

시인의 작품 중 ‘사랑’이란 짧은 시 하나.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刹那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