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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니를 끼면..,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詩가 있는 풍경 3] 정호승의 ‘황순원 선생의 틀니’

 

황순원 선생의 틀니

                               정 호 승

 

황순원 선생님 단고기를 잡수셨다
진달래 꽃잎 같은 틀니를 끼고
단고기 무침이 왜 이리 질기냐고
틀니를 끼면 행복도 처참할 때가 있다고
천천히 술잔을 들며 말씀하셨다

아줌마, 배바지 좀 연한 것으로 주세요
우리들은 선생님의 틀니를 위해
일제히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황선생님만큼은 틀니 낀 인생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술을 마셨다

틀니를 끼면 인생은 빠르다
틀니를 끼면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틀니를 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의
덜미를 잡히기 시작한다
틀니를 끼는 순간부터 인간은
육체에게 비굴해진다

서울대입구 지하철역
경성단고기집을 나오자 봄비가 내렸다
황선생님을 모시고 우리들은 어둠속으로
밖을 향해 계속 길을 걸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틀니를 끼고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욱 두려워

더러는 지하철을 타고 가고
더러는 택시를 타고 가고
더러는 걸어서 가고
평생에 소나기 몇 차례 지나간
스승의 발걸음만 비에 젖었다

 

 

결핍
정호승 시인은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다.
문예 장학생으로 경희대에 입학했고, 장학금이 보장된 1학년 이후에는
학교를 계속 다니기 위해 몇 년씩 신춘문예에 매달려야 했다.
군 전역 무렵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나머지 학비문제를 해결했고,
한국일보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받은 7만원으론 어머니께 틀니를 해드렸다.
복학해서도 시인은 집에서 보내준 5,000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고 한다.
방값 2,500원을 내고 나면 한 달 내내 30원짜리 유부우동만 사먹어야
겨우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밥이 너무 먹고 싶어 전농동 부근 노무자 식당에서
2,500원짜리 월식(月食)을 시작하고부턴 차비가 없어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 무렵 교정에서 어떤 여학생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땡전 한 푼 없이 집까지 걸어갈 생각을 하고 있던 시인은
그 여학생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못들은 척
바삐 교문을 빠져 나왔다.
그런 결핍의 시기를 보내고도 시인의 감성은 따사롭기만 하다.
선생의 시 ‘밥 먹는 법’ 전문.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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