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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기미를 아는 당신에게...

[詩가 있는 풍경 2]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

 

고통의 祝祭
             -편지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生의 機微를 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이 기미지, 그게 얼마나 큰 것입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만나면 나는 당신에게 色쓰겠습니다.
色卽是空. 공시. 색공지간 우리 인생.
말이 색이고 말이 공이지 그것의 실물감은 얼마나 기막힌 것입니까.
당신에게 色쓰겠습니다. 당신한테 空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편지란 우리의 감정결사입니다. 비밀통로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識者처럼 생긴 불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
시민처럼 생긴 눈물 덩어리 공중에 타오르고 있다.
불덩어리 눈물에 젖고 눈물덩어리 불타
불과 눈물은 서로 스며서 우리나라 사람모양의 피가 되어
캄캄한 밤 공중에 솟아 오른다.
‘한 시대는 가고 또 한 시대가 오도다’, 라는 코러스가
이따금 침묵을 감싸고 있을 뿐이다.

 

나는 감금된 말로 편지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감금된 말은 그 말이 지시하는 현상이 감금되어 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러나 나는 감금될 수 없는 말로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영원히.
나는 祝祭主義者입니다. 그중에 고통의 축제가 가장 찬란합니다.
합창 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행복하다’(까뮈)고.
생의 기미를 아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안녕.

 

 

機微
생의 기미를 안다는 건 그 나이엔 불가능했습니다.
그냥 어렴풋한 느낌으로 짐짓 고통을 가장했을 뿐입니다.
젊은 우리는 그랬습니다. 한 번도 확실한 뭔가를 가진 적이 없었습니다.
튼튼히 내 안에 뿌리내린 무엇으로 말하는 척하지만,
머릿속으론 언제나 반론에 대비했습니다.
생의 기미가 무엇이든, 거친 내 언어들이 적어도 눈앞에선
마주 앉은 이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처음 접하던 그 때, 우리들의 밤은 늘 그렇게 시인의 불명한 시어들처럼
정돈되지 못한 채 깊어갔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고통의 축제'는 민음사가 1974년에 출간한 같은 제목의 시선집에 들어 있습니다.
이 책에 함께 실린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이란
제목의 짧은 시 하나.


주고 받음이 한줄기
바람 같아라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차지 않는 이 마음.

내 마음의 공터에 오셔서
競走를 하시든지
잘 노시든지
잠을 자시든지……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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