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오늘의 음악

[음악]역사속의 재즈뮤지션1-The Bird, 찰리파커

1940년대 비밥재즈의 중심 찰리파커의 인생



첫번째 연재 '재즈와 친해지기'를 잇는 두버째 연재시리즈는 '역사 속의 재즈 뮤지션' 입니다. 첫번째 기획연재에선 재즈의 역사 위주로 굵직굵직하게 짚어봤다면 이번엔 주요 뮤지션들을 위주로 좀더 실질적인 정보를 드려보려합니다. 역사보다는 아무래도 뮤지션 한명씩을 알아가며 음악도 찾아들어보고 하는게 좋지않을까하는 생각에서입니다.^^ 대망의 첫번째 뮤지션은 1940년대 스윙재즈에서 비밥시대로 넘어갈때 그 중심에 있었던 천재뮤지션 찰리파커(Alto Saxophone)입니다.

찰리파커의 별명은 '버드'인데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새처럼 자유롭게 연주해서 붙여진 별명이란 설이 가장 와닿는군요. 찰리파크는 캔사스시티에서 태어났는데 그곳은 뉴올리온즈에서 돈을 벌기위해 건너온 재즈연주자들이 많이 있어서 찰리 파커는 어릴때 쉽게 음악을 접했습니다. 어릴 때는 창피와 굴욕의 연주도 많이 했지만 찰리는 피나는 연습으로 성장을 했죠. 그는 어려서 우리가하는 말로 '노안'을 자랑(?)하는 외모여서 14세때부터 클럽을 드나들었습니다. 당시 인기있던 레스터영의 연주와 카운트베이시악단의 레코드를 섭렵하고 천부적인 재능에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 18세쯤부터는 제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다른 방랑벽이 있었던 찰리 파커는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를 못했습니다. 1940년 제이맥샨 악단에 들어갔으나 게으르단 이유로 얼마못가 해고를 당하고, 다른 곳에선 마약 중독자란 이유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찰리파커가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져있죠..)떠돌이 뮤지션 생활을 하던중 그는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의 연주에 매료되어 급속히 친해지고, 비밥의 창시를 향한 두사람의 관계가 형성이 되었습니다.

파커는 1942년 디지와 함께 얼하인즈 악단에 들어가 활동을하다 잠시 헤어졌다가 1944년 빌리 엑스타인악단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 밴드는 최초의 비밥밴드라 불리우는 팀입니다. 뉴욕 재즈의 중심가인 52번가에서 찰리와 디지는 함께 본격적으로 비밥의 시대를 주도합니다. 그러나 초창기엔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그는 마약에 더 빠져들어 정신병원을 몇차례나 오가게되죠...대단 한 것은 이런 악순환을 겪으면서도 그의 연주는 계속해서 발전해나갔다는 점이죠^^  

찰리파커와 디지길레스피는 8주동안 뉴욕을 떠나 LA로 공연을 하러가는데 이 공연들은 망치게 됩니다. 첫번째 이유는 당시 뉴욕보다 재즈가 많이 늦었던 LA사람들은 그들의 비밥을 이해해지 못 했기 때문이고, 두번째 이유는 찰리가 약에 빠져서 약속을 어기는 등 사고를 계속 쳤기 때문입니다...

 

찰리파커는 디지와 헤어지게되고, LA에남아서 음반을 내게 되는데,1946년 7월 29일의 <Lover Man> 레코딩은 당시 찰리를 추종하던 마일즈 데이비스와 함께 녹음한 것으로 재즈역사상 가장 화제가 되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약물중독과 정신분열의 끝자락에 선 찰리가 의식 불명의 상태까지 가게 된 것이죠...녹음을 간신히 마치고 찰리는 결국 쓰러졌지만 이 녹음은 찰리파커 초유의 명연으로 남게됩니다. 호텔로 돌아가 쉬던중 찰리파커는 담배를 피던채로 잠이 들게되고 불을 내고 말게되죠...이 사건으로 찰리파커는 또 다시 정신병원에 수감이 됩니다.

<영화 'Bird'중에서>

한편 찰리 파커는 LA에 머무는 동안 라이브앨범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것은 나중에 재즈의 왕국이라 불리우는 버브레이블의 사장인 노먼 그랜츠가 기획한 JAPT에서의 공연기록입니다. 찰리파커는 이 공연에 세번 참가하였는데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일들이 계기가 되어 찰리파커의 말기 음악은 모두 버브레이블에서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내 그는 결국 마약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35세의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재즈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 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찰리파커의 창의력은 남다른 것이었죠. 지금도 그의 즉흥연주를 채보한 악보를 수많은 음악인들이 분석하고 공부하고 따라 연주하고 있습니다.

<영화 Bird의 장면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가감없이 찰리파커를 인생을 다룬 영화 'Bird'를 한번 보시면 더욱 찰리파커의 인생이 와닿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역사속의 재즈뮤지션 첫번째 'The Bir,Charlie Parkr' ,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마지막으로 링크하는 곡은 찰리파커의 명곡 중하나인 'Ornithology'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