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 전야에,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라는 절박감에 쫓겨 총회를 불과 3주 앞두고, 협회 의장직에 출사표를 던졌다(1999). 동반 연임을 원한 협회장과 의장에게는 실례였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난히 당선, 상처투성이일지언정 ‘치과전문의제도’안을 통과시킨 결과에 보람을 느낀다. 의장에 취임하자 바로 그해 10월 종합학술대회에서 전 회원에게 나누어 드릴 세 번 째 칼럼 집 ‘거품의 미학’8천부를 자비로 출판하였다. 가급적 자제해왔던“치과인 끼리 주고받을 이야기”30여 편을 우정 넣었다. 이제는 공개토론도 하고 결단을 내리자는 뜻이었다. 물론‘치과의료 문화상’수상에 대한(1998. 4. 25) 감사와 보은의 뜻도 있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글을 쓴다. 출판을 준비하면서 책 말미를 장식할 ‘마침표’가 아쉬웠다. 마침 대전은 새 천년을 맞아 낙후된 동부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동서 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역사(驛舍) 밑으로 관통도로를 뚫는 대역사(役事)를 진행 중이었다. 평생 낯익었던 역 광장이 천지개벽을 하니, 사라질 풍경에 추억의 일화를 곁들여 글로 남기고 싶었다. ‘바람 찬 흥남부두’나 ‘이별의 부산정거장’ 못지않은 한 많은 사연들을
'도다리국'은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도다리쑥국'은 일 년에 한 달에서 한 달 반 남짓, 그것도 초봄에만 맛 볼 수 있습니다. 쑥 향은 이미 날아갔고, 질겨서 끊어지지도 않는 ‘개쑥’도 상관이 없다면야 도다리쑥국은 '사철음식'이 되겠지만, 시대는 이제 '제철음식' 제대로 먹기가 대세 아니겠습니까?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해쑥'도 일반 뭍에서 나는 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남해안과 섬 지역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른 봄에 땅을 뚫고 나온 '해쑥'만이 도다리쑥국을 완성시키는 '화룡점정'이거든요. 게다가 음식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도다리마저 봄이 되어야 물이 한껏 오릅니다. 오죽하면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도 생겼을까만, 진짜 봄 도다리는 살이 탱글탱글하고 찰집니다. 꼭 도다리만 넣어야 쑥국이 완성되지는 않지만, 광어나 가자미를 넣어서는 일단 맛도 맛이거니와 쑥과 어우러지는 풍미도 별로이고, 쑥국을 부르는 말의 운치도 나지 않습니다.경남 통영은 도다리쑥국의 본향입니다. 물론 거제도를 비롯하여 인근의 큰 섬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통영시가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은 사실이지요. 게다가 각종 언론에서 해마다 봄소식을 전할 때 도다리쑥국
대전예술의전당 개관이래(2003) 후원회장을 맡아 가끔 공연리뷰를 쓰게 되었다. 많지 않은 글 중에 세 번 이상 나온 분들은, 한국 창작춤 단체 창무회를 창단하고 시립무용단장을 역임한 김매자씨와 플루티스트 재스민(최나경)양, 그리고 소프라노 한예진씨다. 필자에게 울림이 컸던 이 세 분을 리뷰 본문을 인용하여 소개한다. 김매자: 정밀(靜謐)한 정지동작과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역동적인 연결동작은, 탈춤에서 택견 권법까지 변화무쌍이다. 정지동작에서는 여백의 운치가 넘치는 한국화 류의 설치미술이요, 움직이면 동작이 정연한 병사들의 진(陣)을 연상시킨다. 관객석 뒤에서 무대까지 휘돌아간 백색의 무대장치와 함께, 독창적이고 뛰어난 미장센의 완성이었다. (2003 아트홀 심청) 아크로배틱 매스게임처럼 정밀(精密)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군무(群舞)는, 심청전·얼음 강·불이문(不二門)을 거치며 향상일로인 김매자 브랜드에 영락없다. 3·4부는 비 내리는 비래리로부터 우슬현을 감싸 도는 세 내(대전천·갑천·유등천)를 표현, 마치 작은 샘에서 발원하여 강을 이루어 대해로 흘러나가는 스메타나의 ‘몰다우’처럼, 훌륭한 ‘표제무용’을 연출한다. (2009 아트홀 대전블루스 0시 50분
가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방송을 보다가 한 가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아직도 어느 야구장의 스코어보드가 전광판이 아니고 사람이 손수 쓴 수동식 스코어판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 세인트루이스 구장이 아니였나 기억된다.옛날 우리나라 야구장에서도 사람이 직접 스코어판을 갈아 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모두 전광판으로 바뀌었고 대형 텔레비전 화면까지 장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미국과 같이 과학 선진국이고 부강한 나라에서 아직도 옛날식 스코어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은, 전광판으로 장치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는 더욱 아닐 터이다. 옛날부터 사용해 왔던 전통적인 관습을 굳이 과학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서 섣불리 갈아치우는 것보다 옛날 것의 멋스러움과 향수를 쉽게 팽개치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 치우는 성급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배려되어 있는, 의식적인 전통에 대한 고집 같은 것 일 것이다.과학적 지식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정확한 지식이며 과학적 방법과 검증만이 쓸모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임엔 틀림없다. 인류문화의 초기에는 대부분의 지식은 주관적 지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문명이 점
쌀쌀한 날 해거름이면 문득 생각나는 명동 ‘조타집’. 소공동 수련의시절에 가끔 찾던 대포집이다. 뭉근한 불을 절대로 꺼뜨리지 않는다는 오뎅 국물이 일품이다. 인기 안주는 참새구이 꼬치로 애 저녁에 동이 난다. 아작하고 깨물면 고소하고 짭쪼롬한 그 맛... 정종 대포 서너 잔에 한 시간쯤이면 혀가 슬슬 풀리면서 온몸이 혼혼해진다. 주머니가 두둑해도 네 마리를 꿴 한 꼬치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음은 늦은 주당들에 대한 배려다. 따끈한 국물에 연갈색 무가 무한 리필이요 서비스 보따리(후꾸로)도 있으니, 귀한 걸 나눠 먹는 건 말없는 약속이었다. 반세기가 지나 사는 형편이 나아지고 입맛도 변했지마는, 이젠 진짜 참새구이는 먹고 죽으려 해도 없다. 농약 때문인지 환경오염 탓인지 참새 자체가 원체 귀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 핵심목표로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에 재미교포 김종훈씨가 내정되었다. 15세에 이민하여 빈민촌에서 굶기를 밥 먹 듯 고생한 끝에, 30대 후반에 미국 400대 부자가 된 과학자이며 CEO다. 존스 홉킨스대 전자공학과 졸업, 해군장교로 7년간 핵잠수함을 탔다. 메릴랜드대 공학박사과정을 마치고 벤처회사 설립, 개발한 장비가 성공하여 큰돈
저처럼 와이프에게 쫀쫀하기로 소문난 사람들이 진료를 하루 땡땡이 치고 놀러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대개 이런 일을 감행하는 치과의사들은 개원 경력이 오래 되었거나(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진 않았죠),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 너무 지친 사람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을 모아놓고는 차를 하나 빌려서 1박 2일로 남해안 나들이나 다녀오자고 살살 꼬드겼습니다. 악당들의 유혹에 넘어간 피노키오처럼 동기 친구들은 잘도 속아서 따라옵니다. 제 입장에서는 같이 갈 일행이 있어서 좋은데 한편으론 덜컥 겁도 납니다. 진료도 팽개치고 시간과 돈을 들여 놀러 가는 마당에 만약 볼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시원치 않다면, 그 원성은 고스란히 제 몫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제 신조가 ‘선사고 후수습’인 까닭에 일은 저지르고 볼 일입니다. 와이프들에게 바가지 긁히는 것은 차후의 문제이지요. 차량도 대형 ‘카니발’로 빌렸고, 심지어 운전기사도 수배했습니다. 같은 돈 내고 쉬러 가는 판에 누구는 운전하느라 피곤하고 게다가 술까지 못 마신다면 공평한 일이 아니지요.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지형은 벌교가 목줄을 쥐고 있는 ‘캥거루 불알주머니’ 형상입니다. 반도의 좌우로 여자만, 득량만,
1950년 6월 김일성의 남침으로 농사까지 망쳐 온 국민이 가난에 허덕이고, 어딜 가나 시장형편은 부산과 비슷하였다. 대전은 양키시장으로 시작하여, 몇 번의 화재와 신축을 거쳐 도매시장, 다시 중앙시장이 되었다. 서울은 이름이 자유 대도 남대문시장 등이었는데, 안쪽에 미제물건을 파는 도깨비시장이 있고, 건너편 양동 골목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넣고 끓인 꿀꿀이죽이 푸짐했다. 가게에 단칸방이 딸린 판자 집은 다닥다닥 붙었고 지붕은 타르 먹인 루핑에 호롱불과 석유곤로 일색이니 사흘이 멀다 하고 불이 났다. 시장에 불이 난 다음에는 불같이 일어난다하여 은행에서 돈을 잘 빌려주었고 상인들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식량은 미국 잉여농산물 원조로 밀가루와 분유와 불면 날아갈듯 한 안남미요, 기름은 미군부대 뒷문으로, 석탄은 기차역에서 역시 비공식으로 유통되었다. 전후(戰後) 10여년을 GNP $100 미만의 최빈국으로 ‘국가재건’에 매달렸던 시절이다. 북한은 달랐다. 장개석과 국공(國共) 내전 중 김일성의 도움을 받은 모택동은, 전세가 북한에 불리해지자 즉각 파병을 결정, 북한 내 중공군이 최대 120만 명에 이르렀다. 휴전 후 원조 $10억에 1956년까지 5
사전을 찾아봤더니, '대가리'는 '동물의 머리'를 이르거나 '사람의 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머리라는 말보다는 소대가리가 더 정확한 표현일 텐데, 소에 대한 고마움 내지는 '오마쥬'로 그러한 표현을 쓰지 않았나 싶군요. 그러나 돼지, 닭, 오리, 말... 할 것 없이 대가리와 머리를 혼용해서 쓰는걸 보면 조금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멸치' 말고는 대가리가 어울리는 동물이 거의 없는 건 아닌지요.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요즘의 수원 종로 네거리는 화성행궁과 종루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큰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거리 한 모퉁이엔 110년도 훨씬 넘은 교회와 바로 그 옆에 카톨릭 성지인 성당을 제외하면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건물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 광장 자리엔 원래 수원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었습니다. 터미널 옆엔 우체국이 있었지만 이젠 흔적도 없어졌고, 터미널 근처의 한 약국은 박카스와 활명수 그리고 이명래 고약 매출이 전국 제일이었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병의원들이 모여들었는데, 요즘 남아 있는 병원이라고는 겨우 한 두 개 정도입니다. 일본인들은 화성행궁을 없애고 그 자리엔
1950년 11월, 동부전선의 유엔군 10군단 3만여 병력은(사령관 아몬드) 그 존재도 몰랐던 중공군 제9병단 15만의 기습으로 전멸의 위기에 빠졌다. 특히 주력부대의 하나인 미 해병 1사단은(스미스 소장: 12,000), 중공군 7개 사단(12만)이 포위한 약 40km의 장진호협곡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추위로 병사 절반 이상이 동상을 입은 채, 14일간 악전고투를 거쳐 탈출에 성공 한다 (전사 2,500, 실종 200, 부상 5,000). 중공군 제9병단도 그 뒤로 4개월 간 전투에 복귀하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 전쟁의 흐름이 바뀌었다. 1983년, 당시 살아남은 전우들이 모여 ‘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미군이 쓰던 일본지도에 장진이 일본발음 초신으로 되어 있고, “Chosen Few 하면 선택된 소수”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잭 니콜슨과 탐 크루즈의 영화 “A Few Good Men"도 여기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흥남에 집결한 미 3, 7사단과 국군 제1군단 등 도합 105,000, 그것도 대부분 총상·동상에 시달리는 부상병들을, 적의 추격 속에서 장비와 함께 철수시키는 일은 큰일이었다. 필수차량만 17,500
‘만일 곧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우리가 가고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미국의 코미디언 어윈 코리가 한 말입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무척 속 깊은 잠언입니다. ‘빨리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결과는 예상한 그대로’라는 의미이니까요. 어윈은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 40억원대 자산가이면서도 매일 길거리로 나가 구걸을 해 모은 돈으로 불쌍한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그는 아마 ‘지금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집안에서 외로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은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 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치과계를 두고 한번 생각해보죠. 지금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개원가는 어떻게 될까요? 아니 그 보다, 지금 치과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상황을 일반화시켜 정리하자면 치과계는 지금 무한경쟁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예전엔들 경쟁이 없진 않았지만, 이전까진 그래도 ‘여기까지야’ 하고 선을 그어둔 부분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안전장치마저 모두 제거되고 말았습니다. 안전장치란 가격, 지역, 종별 구획을 말하는데, 그런 구획들이 무너지면서 이젠 얼마를 받건, 어디에 있건, 병원 의원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한데 엉켜 악다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