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익은 핸드피스를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자판을 두드리니, 막상 글발이 더디다. 글발의 발이 디디는 그 발이 아니요, 글발의 본뜻은 ‘글월 또는 문맥’임을 익히 알지만, 말끝에 달린 ‘발’을 꼬투리 삼아 글짓기의 완급에 비유함도, 이 또한 글쟁이의 특권이요 무료함을 달래주는 심심파적(破寂)이다. 마감에 쫓겨 가며 회무(會務)와 진료 틈틈이 원고를 쓸 적에는,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정작 멍석을 깔아놓으니 해찰을 부린다던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머릿속이 멍하고 생각이 멈추면 제 몸을 괴롭힌다.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쥐어뜯는 기사 조치훈의 심정을 짐작한다. 자해는 자위와도 통한다던가? 젊은이처럼 샌드백을 두들길 수도 없으니, 일단 갑갑한 방을 탈출한다. 마련해둔 사랑방이 마침 엑스포 공원 부근의 오피스텔인 덕분에, 산책 코스는 차고 넘친다. 선택 1호는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한밭수목원이다. 엑스포 시민광장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나뉘는 한밭수목원은, 갑천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무지개다리로 이어지는 엑스포 과학 공원과, 남으로는 예술의 전당·시립미술관·고암미술관·연정국악원·평송 청소년문화센터 등 문화예술-콤플렉스
조토가 그린 ‘유다의 입맞춤’(1305)이 최초의 르네상스 회화라고 한다. 예수를 넌지시 제사장에게 알린 그 신호로, 유다는 밀고자(密告者)의 대명사가 되었다. 소설 ‘밀고자(The Informer, Liam O’Flaherty 1925)’에서 지포는 현상금 20파운드에 친구 프랭키를 밀고하여 동료에게 처형당한다. 아일랜드는 말(게일 語)과 땅을 영국에게 빼앗긴 채 700여년을 살아왔다. 19세기 들어 다시 불붙은 독립 운동에 밀고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영국정부는 밀고자 신원을 극비로 보호하고, 반대로 아일랜드 민중은 밀고자라면 그 후손들까지 응징하였다. 그런 정서를 모르면 이 소설, 나아가 IRA(Irish Republican Army)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선조 5백년간 소수 양반만을 위해 살았고, 일제 36년 동안을 3등 국민이었던 한(恨)이 맺혀, 문득문득 드러나는 우리의 반관(反官) 정서와 밀고자에 대한 혐오를 많이 닮았다. 내부고발 자를 ‘whistle blower’라 한다. 도둑이나 간첩이 순경처럼 호루라기를 불을 리 없으니, 밀고에 대한 적대감은 잠시 접어두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과
일본에 유학하여 한창 물이 오른 기사 조훈현이 병역문제로 귀국하자, 마지막 애제자를 잃은 83세의 스승 세고에 9단이 자살한다. 기성(棋聖) 우칭웬을 키워낸 노스승에게는, 제2의 우칭웬을 기대한 제자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컸을까. 기력이 쭉쭉 뻗어가는 십대에 3년의 경력단절은 ‘절대’ 만회할 수 없고, 성인 성(聖)자는 만인이 승복해야만 붙이는 것 아닌가? 그 후 조훈현은 근 20년 간 한국바둑계에 전신(戰神)으로 군림하고, 십여 년간 세계를 제패한 신산(神算) 이창호를 길렀으며, 현역 국회의원이다. 만약 조훈현이 병역특례를 인정받아 계속 정진했다면, 대한민국의 위상과 세계바둑의 역사가 달라졌으리라. 몇 년 전까지도 공한증(恐韓症)에 떨던 중국바둑이, 정부의 대대적인 후원으로 고속 성장하여, 한국의 천만 바둑 팬들은 박정환·최정의 고군분투에 조마조마·일희일비하고 있다. 남자들이 모이면 화제 1호가 군대시절 얘기요 2호가 축구이니, 군대에서 축구하던 얘기를 하면 날 새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손흥민이 멋진 골을 넣으면 며칠 동안 온 동네 사람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밝으니 작업능률이 올라가고 국민화합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따질 수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의 중·남부에 있던 연맹왕국인 마한·변한·진한을 삼한(三韓)으로 통칭한다. 도합 78개의 국(國) 중에 마한 백제가 백제로, 변한 구야가 가야로, 진한 사로가 신라가 되었다. 삼국시대 이후 삼한이 신라·백제·고구려의 의미로 변하였으니 바로‘대한민국’의 어원이며, 마한을 고구려 - 변한을 백제 - 진한을 신라로 본 최치원의 일통삼한(一統三韓)이라는 기록이 ‘통일’의 기원이다. 그러나 삼한시대에 북쪽에는 부여·옥저·동예가 있었고, 3국 시대 백제·신라·가야의 북쪽에는 고구려가, 통일신라의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고 후백제를 병합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936). 엄밀하게 말하면 신라의 통일은 남·북국시대로 이어졌고, 명실 공히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통일’의 주역은 고려였다. 그 결과로 우리는 Corea (Korea) 라는 영자(英字)이름을 얻었고, ‘고려연방제’라는 작명(作名)에도 그런 뜻이 담겨있다. ‘적폐청산(積幣淸算)’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적폐의 판정기준이 상대와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다면, 청산은 사적인 원한을 풀려는 싸구려 갑 질로 전락한다. 반만년 역사에 최악의 적폐는
온 국민이 국제사정에 무지한 해방공간에서, 김일성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소련과 김일성이 조선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사기극’이 통했기 때문이다.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된 현재에도 이 날조를 믿는 광신도들에게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 일·소가 1941. 4. 13일 ‘중립조약’을 맺은 후, 관동군은 기관총 급 외에 모든 중화기를 시급한 미국과의 태평양전장에 넘겼으니, 백만 대군은 허수아비였다. 1940년 일제 토벌에 쫓긴 김일성이 소련으로 도망가 배치된 소련 극동군산하 ‘88 특별저격여단은, 국경지역 정찰과 공산주의 교육이 주 임무로 관동군과의 교전은 불필요·불가능했다. 스탈린은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에게, 대독전쟁이 끝나면 2, 3 개월 이내에 대일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한다. 8월 6, 9일 원폭이 투하되어 일제 항복이 확실시되자, 스탈린은 점령지 차지에 늦을세라,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한다. 그 후 사실상 무저항의 만주를 거쳐 북한을 점령하는데, 관동군사령관은 본국지시가 늦어져 8월 19일에야 항복한다. 소련군의 대일전쟁은 무려(?) 열흘간의 만주‘여행’이었고, 거기에 김일성은 없었다. 그는 점령군이 아니라, 소련에 간택된
신협 소식지 ‘미소’에 ‘정체성 이야기’ 라는 칼럼을 썼다. 누구든지 특히 전문 지식인은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데에서 보람을 찾아야 할진데, 언제부턴가 긍지와 자존감은 사라지고 ‘치부의 실현’ 즉 돈이 평가의 잣대·서열의 기준이 된 결과, 만인이 벌거벗은 욕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세상에는 증오·분노·갈등·폭력이 만연한다는 얘기였다. 지난 11월 3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프레디 머큐리에게서 느낀 ‘정체성 위기’를 화두로 몇 꼭지 글을 써보려 했는데, 주제가 벅찬 탓이었는지 시작부터 힘이 들어, 이제야 마무리에 들어간다. 순서상 우리 자신부터 주제파악을 해봐야겠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한국은 양차대전 후 지구촌의 지상목표가 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체제를 갖추고 OECD 클럽에도 가입하여, 외형상 정치·경제 양면에서 모범국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유’는 어느덧 사라지고, 70여 년 역사에 몸 성한 전직 대통령이 단 한 사람도 없다. 희화화 된 ‘이 윤 박 최 돌 물 깡’ 일곱 분 이후 네 분 또한 ‘봉 황 박 박’이니, 퇴임 후 폐서인(廢庶人) 되는 전통(?)을 깨뜨릴 대통령은 앞으로도 당분간 만나보기 어려울 것 같다.
에티오피아는 극심한 3년의 가뭄 끝에 대 기근으로 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1984). 급속한 인구 증가와 산림훼손과 사막화도 큰 몫을 했지만, 국제사회의 원조를 횡령한 공산정부가 재앙을 키웠다. 스탈린 공산정권에도 똑 같은 전례가 있다. 세계 3대 곡창지대(우크라이나 흑토, 북미 프레리, 남미 팜파스)인 우크라이나에 ‘집단농장’을 세우자 대기근이 발생했는데, 스탈린은 전처럼 계속 식량을 수출하여 결국 250 – 350만 명이 굶어죽었다. 똑같은 잘못으로 ‘인민공사’를 강행한 중국 모택동은, 1960년대에 자연재해까지 겹치자, 대국답게 3년 동안 2 – 4천만 명을 굶겨 죽였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김정일의 북한은, ‘고난의 행군’중에 수백만이 굶어죽고, GNP가 $239까지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로 부패하는 ‘절대독재 국가경영’의 경직된 공산체제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에티오피아 참상이 미디어로 알려지자,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쓰고 라이오넬 리치가 공동작곡한 노래 ‘We are the World(우리는 하나)’의 악보를 제작자 퀸시 존스에게 넘긴다. USA(United Support of Artists) for Africa의 굶주림을 없애자는 운동으
자코페티 감독의 다큐 ‘몬도카네’에는(1962), “화려한 제복, 그러나 연전연패의 군대”라는 자학적인 멘트가 나온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후예들이 어쩌다가? 게르만 침입으로 무너진 이래, 이탈리아는 국가 정체성을 상실한 채(메테르니히) 오랜 세월 ‘외세 지배와 분열의 역사’를 거쳐, 뒤늦게야 통일을 이룩한다(1870). 식민지 따먹기 경쟁에 지각한 무솔리니는, 독가스까지 동원한 현대무기로 맨주먹의 에티오피아를 무자비하게 점령하고(전사만 275,000; 1936), 솔로몬과 시바 여왕 사이에 태어난 3천년 혈통을 자랑하는 셀라시에 황제는 망명한다. 이탈리아 역사상 유일한 승전(?)이다. 아무도 돕지 않았던 뼈아픈 기억을 간직한 황제는, 김일성 남침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돕자는 UN의 파병요청에 응하여, 6천의 병력을 보낸다(1951). 이들은 5백여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123명의 전사자 가운데 한명도 포로로 항복하지 않아, ‘검은 전사들’의 용명을 날린다. 그러나 귀국한 영웅들을 맞은 것은 7년의 가뭄이었다. 재앙 뒤에 항상 악마처럼 따라붙는 공산당의 쿠데타로 $3,000의 중진국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1974), 한국전쟁
인류역사상 최악의 인간백정 스탈린도 그 미소(微笑)는 인자하다. 김정은을 ‘위인’으로 존경한다는 얼뜨기가 번식하는 이유다. 대전충남치과의사신협 소식지의 이름이 ‘미소’인데, 최근에 경제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을 일찌감치 일궈낸, ‘미소(微小) 금융’이라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요즘은 또 다른 미소와 만날 계획에 들떠있다. 내년 5월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미소(美小)국 12일” 여행이다. 리히텐슈타인 산마리노 모나코 안도라 등... 풍광이 아름다워 화려한 그라비어 우표를 수출상품으로 찍어내는 나라들이다. 헤밍웨이 고흐 세잔느 샤갈의 체취를 더듬는 즐거움은 덤이요, 겸사겸사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려한다. 시간이 멈춘 듯 내일에 대한 불안을 잊고, 오롯이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 인구 4만 명 이쪽저쪽의 동화처럼 작은 나라들... 그러나 무심한 나그네들은 그들이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주변 강대국들 간에 절묘한 힘의 균형을 가늠해가며 얼마나 어렵게 노력 해왔는가? 라는 외교적 노력에는 별로 관심도 이해도 없이 지나친다. 평화와 안정을 위한 국력의 적정 규모는? 대부분이 서구 복지국가들을
만나지지 않는 것들과의 만남을 위하여 곳곳에서 우리는 착하게 싸웠어 풀잎들은 풀잎들과 싸우고 바람들은 바람들과 싸웠으며 낱말들은 낱말들과 싸웠어 수유리에서 만나 화곡동까지 맨발로 뛰기도 했어 이제 순한 짐승끼리 끼리가 되어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도록 해 한 해가 저물고 있어 허락받은 한 바구니의 과일이 있다면 이웃에게도 조금은 나누어 주는 적은 것의 풍요를 적은 것의 아름다움을 모를 리 없잖아 한 해가 잠기어 가고 있어 돌아가 이제는 입성도 빨아 입어야지 아, 저 사내 어둔밤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등불 하나 그를 위한 따뜻한 식탁도 우리가 마련해야지 모를 리 없잖아. [반성] 다시 연말입니다. 이때쯤이면 꼬물거리듯 살아 온 한 해가 새롭게 보입니다. 그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이 지금까지 밀려와 있고, 하지 말아야 했을 후회가 여전히 산처럼 큽니다. 내 시간에 의견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시키는대로' 라지만, 그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착하기는 커녕 간신히 악다구니 정도만 피해가며 구불구불 여기까지 밀려왔습니다. 누군들, 그걸 모를 리 있을까요. 그래서 시인은 돌아가 입성이라도 빨아 입을 것을 권합니다. 어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