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요 평균치의 2.3배라는 사실은 많이들 안다(2012). 왕년에 일본이 누리던 영광(?)이다 복지부에 의하면, 남자·저소득·고령일수록 극단적 선택이 많고, 이유는 정신과 증상·대인관계·빈곤·외로움·질병의 순서다. 정신과 증상은 분노조절장애와 스트레스로 인한 무기력·좌절감·우울증 등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 율은 전 국민 평균치의 3배로, 50%에 육박한다.당연히 독보적 세계 1위다. 허허벌판에 장기 연부도 아닌 현찰로 집을 마련하고, 자식 교육에 혼사(婚事)까지 거금을 쓰다 보니, 노후대책도 없는 가운데 청춘은 덧없이 흘러갔다. 국민연금은 용돈 정도요, 불경기에 허덕이는 자식들은 안쓰럽기만 하여 달리 손 내밀 곳이 없으니, 서러운 노인의 자살비율은 높아만 간다. “노인시민 재교육을 제안한다.”는 J 신문 칼럼을 읽었다(2015. 12). 지하철 승강기 앞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새치기한 노인의 예를 들어, ‘요즘 애들 버릇없다’하지만 실제로 노인의 무례가 더 많단다. 시위 현장에 가스통·쇠파이프 든 사람도 장 노년층이며, 연령대로 보아 노인범죄만 두 자릿수로 늘고 강력범죄 비중도 높아, ‘우리사회 분노의 진원지’가 되
자본주의는 성숙할수록 자체모순으로 무너지고 무산대중(도시빈민·노동자)이 지배하게 된다는 공산주의 이론은 한참 빗나갔다. 비록 시차(時差)의 진통은 컸지만, 인간의 얼굴을 가진 서구자본주의는 자유의지에 기반 한 자체보정을 통하여 스스로 개선해 나갔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싹도 틔워보지 못한 채 국민 90% 이상이 농노(農奴)요 문맹이던 러시아에서, 소수의 자칭 엘리트에 의한 유혈혁명으로 최초의 공산국가가 탄생한 것은 아이러닉하다.모순을 덮으려고 가상의 적을 조작하여 인민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인민을 외부와 격리한 채 계속 속이려니까 팽창주의를 통하여 울타리(철의 장막)를 보강한다. 이차대전 후 동구위성국가와 북한정권 수립이 좋은 예다. 상대적으로 미개한 러시아가 만든 모순투성이의 체제를 선진국에 수출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무리였고, 골병이 든 소련에게 레이건 대통령의 카우보이식 블러핑 ‘별들의 전쟁’은 신의 한 수였다.전후(戰後)에 영국의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들은 출구 없는 노조 천국 ‘영국병’을 만들었다. 1979년 수상에 취임한 철의 여인 대처는 이를 잘 수습하고, 영국의 최전성기였던 산업혁명과 빅토리아시대를 평가절하하려는 좌파학자들
‘20세기를 보내며’라는 글에서(1999), “신이 죽고 영웅도 사라졌다면, 그 원인이 풍요의 추구에 올인 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貪慾)인지 역사를 파괴한 이념 과잉(瞋恚: 분노)인지 너무 깊이 들어간 과학문명(愚癡)인지, 아니면 3자가 뭉쳐진 신의 움직임인지 알 수가 없다.”라고 썼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사회현상으로 굳어진 ‘분노’의 분출을 보면서, 오욕칠정에 묶인 인간의 세 가지 독(毒)이 탐진치임을 다시 실감한다. 분노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본능이자, 내 뜻을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감정적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치밀며 부교감신경 활성도가 높아지면서, 큰 근육에 혈액이 몰려 뇌는 취약해진다. 일단 화를 발산하면 힘이 용솟음치지만, 그 순간은 짧고 피해(후회)는 크며,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전 전두엽이 노화되어 더 작은 일에도 더 크게 분노한다.분노조절장애의 치유법으로, 명상을 통하여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인식의 틀을 바꿔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다스리는 연습을 권하기도 한다. 역사상 사회 분쟁은 전제군주와 귀족 또는 성직자와 군주 간의 권력다툼이었고, 사회 계층 간의 분노는 산업혁명 후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김형경씨에게 제1회 국민일보 문학상을 안겨준 감동적인 소설 제목이다(1993). 그러나 부엉이·뻐꾸기·꾀꼬리는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사람이 붙인 이름일 뿐, 그 새의 ‘인식(?)’과는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표현이 쌓이면서 인간의 감성세계는 더 풍성해지고,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며, 인류에 대한 시인·소설가의 기여다.“발칙한 서술형 제목 뽑기”는, 눈을 끌려는 잔재주가 아니라 깊은 사유의 샘에서 길어 올린 ‘의제 설정’으로, 작가가 사랑받는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J 일보에 연재중인 칼럼 “남자를 위하여”를 읽으면 가끔 피로감을 느낀다. ‘위(爲)’하여가 ‘위(威)’가 되어, 남성을 미성숙·관음증·폭력과 공격성 및 나르시시즘의 대명사로 읽고, 그로부터 피해 입은 여성의 억눌린 분노(Pent-up Anger)를 대변하려고 발톱을 세운 전사(戰士)로 보인다. 칼럼에서 지적한 남성의 죄목(?)을 보자. 첫째, 남성 우월적 행태는 대부분 남녀 구별을 떠나 사회적 역할에서 비롯한다. 엄혹한 생존경쟁에서 생계(生計)책임자가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최면이나,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동물적인 방어기전의 산물이
채식 전도사 이상구씨가 우유도 먹지 말라던 때가 있었다. TV를 온통 뒤덮은 그 주장에, 거의 전 국민이 최면상태에 빠져 육류소비가 급감했는데, 정작 가장 큰 피해자는 농민이었다. 구은 고기에 파 절이와 찜장과 마늘을 얹어 상치에 싸먹던 건강식을 버리자, 야채재배 농가의 판로가 막힌 것이다. 채식과 소식이 맑은 정신과 장수를 선물할지는 모르나, 연로한 고승(僧)이 기력이 쇠하면 진한 고기국물에 죽을 쑤어 공양을 올린 관행을,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성장기의 아이들과 병약한 노인, 그보다도 올림픽 메달을 따려면, 동물성 담백질이 필수임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 당시 농가와 국민건강은 Dr. 리의 편향된 채식예찬론에 유탄을 맞은 부수적 피해자였던 셈이다. 먹방의 물결을 타고 갑자기 떠오른 판단력 없는 셰프의, “설탕·MSG·정크 푸드는 몸에 해롭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해로우면 깐깐한 미 식약청·소비자단체가 가만두었을까? 경계대상은 편식과 과량 섭취일 뿐이다. 우로 돌려 3, 좌로 5, 다시 우로 10... 다이얼 식 열쇠 번호인가? 2015년 3월 국회를 통과하여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금년 가을부터 시행될 소위’김영란 법’이 정한, 처벌 면제
로마제국 군단은 기마병을 합쳐 6천 명 정도로, 같은 병력의 속주(屬州)병을 더한 1 + 1 편성이었단다. 로마에 의한 세계평화시대(Pax Romana)에 로마군이 무적이었던 것은 전술은 물론 병사의 사기가 매우 높았던 덕분이다. 로마시민은 사상 최고의 권리와 혜택을 누렸기에, 위기에는 애국심과 긍지로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속주 병사 역시 시민권을 얻을 일념으로 뒤따랐다.인기에 영합한 황제가 시민권을 남발하면서부터 제국은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영제국의 노블리스 오브리제도 마찬가지다. 귀족 명문학교 이튼 졸업생 중에 양차대전 전사자가 40%에 가까웠다는 얘기는 전설이 되었다. 미국 국력이 세계 1위로 올라선 것은 남북전쟁 후 재건의 활력이 넘치던 1870년경이라고 한다. 유럽은 독일·이태리의 뒤늦은 통일과 산업혁명·식민지 각축에 바빴고, 미국은 고립주의에 빠져(몬로주의, 1823: 5대 James Monroe 대통령), 서로 길이 어긋났을 뿐이다. 1917년 28대 윌슨이 일차대전에 참전하지만, 그가 창설한 국제연맹 가입을 미 의회가 거부하자 미국은 다시 고립에 빠진다.자본주의경제의 조정기인 대공황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총대를
알파고의 승리가 던져준 실업문제 다음으로 두려운 것은 인류의 노예화와 인류멸망의 시나리오다. 노예화 문제는, 인공지능이 아직은 인간의 조종 하에 있되 그 인간이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집단으로, 나쁜 편의 손아귀에 인류가 인질이 되는 설정이므로, 결국 인간끼리의 싸움일 뿐이다. 인간의 안녕·복지를 보장하던 전통적인 정치·사회제도를 압도하는, 우수한 무기인 인공지능을 독점한 악당과 선량한 시민이 대결하는 테마는, 이미 많은 공상과학 소설·영화에서 다루었으니 제쳐두자.문제는 그보다 한 단계 위, 신이 된 인공지능의 출현·군림이다. 종교는 토론하기 껄끄러운 주제다. 인간이 영성(Spirituality)을* 이해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테레사 수녀도 어느 교황도 믿음의 동요에서 오는 괴로움을 고백한 적이 있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시 대통령과 세계적인 부흥회 목사 그레이엄이, 영성을 되찾고자 한국의 C 목사를 찾아와 안수기도를 받았다는 풍문도 있다. 이제는 고령의 C 목사 자신도 옛날 같지 않아 보인다. 비종교인으로서 피상적이나마 종교에 대한 소견을 펼쳐본다. 목수는 자신을 위해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배려하는 서민 집안에서 태어난 예수는 평생을 서민 속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5번 기가 남긴 불안과 공포의 후유증은, 대량실업과 인간의 노예화와 인류멸망의 시나리오, 이 세 가지다. 먼저 실업문제. 제1차 산업혁명 때 동력기관과 방적기의 등장으로 일감을 빼앗긴 노동자·영세업자들은 러다이트(기계 파괴)운동을 벌였다. 값비싼 희생 끝에 불법 극렬 행동은 진압되었으나, 결국 노동력 착취(미성년자·노동시간)를 개선하고, 보통시민도 선거권을 얻는 물꼬를 뚫었다.20세기에 들어 자동차 생산라인의 용접 로봇은, 인공지능의 초보로 다수의 실업자를 낳았으나, 자동차의 대량보급은 새로운 일자리를 다수 만들었다. 농장과 건설현장에는 페이로더·굴삭기와 컴바인·경운기처럼 정밀하게 작동하는 중장비가 막노동을 대신하고, 전자기기의 사무자동화는 3-5 개소의 동사무소를 하나의 주민 센터로 대체했으며, 은행지점과 행원 숫자도 대폭 줄었다.전통적인 직업 종사자의 대량 실업이 불가피했던 대신, 대량생산으로 소득이 축적되어 복지예산이 확보되고, 여가선용과 노동 3권 보장의 길이 열렸다. 비록 속도가 느려서 시차(時差) 극복의 고통은 극심했지만, 결과적으로 타협과 조정을 통한 인류생활수준 향상의 역사였다. 20세기 후반 IT 산업 기에 접어들면서 정
벼락(落雷) 경보를 무시하고 티 그라운드에 선 골프광은 어떤 채를 잡아야 할까? 정답은 1번 아이언이다. 이 채는 하느님도 못 맞춘다니까. 물론 흔한 골프조크의 하나로, 신의 무오류성에 창세기의 비바람·천둥번개를 조합한 그럴듯한 우스개다.탄생의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 성경구절은, 무기 가스를 가득 채운 시험관에 전기충격을 가하여 유기물을 생성하는 실험을 통하여 증명된 바 있다(Miller-Urey, 1953).한 개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진화가 돌연한 변화의 결과요, 돌연변이에는 자체결함이나 환경조건의 격변을 동반해야만 한다면, 완벽한 개체의 자가 복제(自家複製)만으로는 진화가 일어날 수 없다. 인간은 생명의 유한함(Mortality)을 안고 태어나고 수많은 약점 탓에 진화·향상하므로, 그 모든 인간의 취약함은 역설적으로 한없는 강함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치열하고 끈질긴 사유·수련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비바람과 천둥번개는 고뇌와 난관의 종교적 비유만이 아니라, 수많은 부딪힘(Storming)과 노력(에너지 공급)으로 읽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완벽한 기계가 갖지 못한 부분이요, 인공지능이 심층학습과 그래픽처리기술의 점프로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었어도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1983년 2월 ‘도쿄 선언’에서, 반도체산업 진출계획을 발표하였다. 당시로는 천문학적인 3천억 원 투자로 기억하는데, 일본재계의 반응은 싸늘하였다. 제3차 산업혁명인 ‘IT 산업의 쌀’을 내다본 혜안으로 삼성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컸고, 현재 나라살림의 20%를 떠받들고 있다. 그때 년 수출 629억 달러를 상상이나 했을까?구글회장은 알파고를 만든 창업 4년차의 작은 회사 딥마인드를, 그 창의성과 기술력만 보고 4억 파운드(5,440억 원)에 샀다(2014). 허사비스는 구글의 방대한 데이터와 고성능 컴퓨터 활용을 위하여 회사를 팔고 스스로 ‘고용 사장’이 되었으니, 그 회장의 배짱과 그 사장의 능력이 환상적으로 만난 것이다. 구글은 이세돌과 알파고 5번 기의 승자 상금만 백만 달러를 걸었다. 4승1패로 승리한 알파고는 상금 $123만 전액을 기부하였고, 1승을 건진 이세돌은 17만 달러(2억 원)를 받았다. 그러나 구글의 실제 흥행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를 사람은 없다.첫째 뉴욕증시에서 구글의 주가총액은 대국 전날부터 제5국 사이에(3월 8일-15일) 5% 이상, 58조원이 늘어났다. 둘째 이번 승리로 구글은, 1) 인터넷 검색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