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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말모이 운동 5 : 들온 말, 곁 말 (外來語·引喩)

[임철중의 거꾸로 보는 세상] - <241>

 

   각설이타령에서 잃어버린 한 구절.  “오하요 곰방와 사라지자, 할로 오케이가 웬 말이냐/ 게다짝 소리에 골치를 앓더니, 껌 씹는 소리만 짝짝짝.”  일제강점기에 이어 미군정, 다시 미군의 참전과 원조로 김일성 남침을 견디어낸 민초의 애환이 물씬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가‘기즈가 났다.’로 ‘스크래치(scratch) 갔다.’ 로 격상된(?) 것도, 들온 말(외래어) 침략의 역사다.  “상처를 입었다.”는 말 자체가 낯 선 수동(受動)태로 일제 잔재이니, 적폐청산 차원에서 없애자는 돌 아이도 있으나, 일본 수동태는 겸양의 의미가 크고(내 본심이 아니라는 뜻), 영어의 수동형은 과학적이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다.”와 “He was born in Seoul.”을 비교해보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 부처님도, “내 스스로 태어났다.”고 우기실 수는 없을 터이다.  태어남은 의미상 자동사 아닌 타동사니까.  일본어 – 라시이나 – 요우다의 잔재라는‘같아요’ 또는 -적(的)이라는 말은 절제해야 하지만, 어느 야구 해설위원처럼 “생각되어진다.” 정도만 아니라면, 수동태는 오히려 우리말의 성장과 과학화에 기여 할 것이다.  엘리트 레전드 패러다임처럼 잘못 옮기면 뜻이 변질될 수도 있는 ‘젊은 들온말’의 수용에도 조금 더 관대하자는 말이다.

 

   조선일보 ‘말모이 운동’에 열렬한 국민 참여는 반갑지만, 가끔 부자연스러운 억지 사투리가 뜬다.  다황은 성냥의 옛 이름인 당황(唐黃)에서 받침이 탈락한 낱말로 이미 큰 사전에 올라 있는데, 이런 식 으로 만든 생소한 낱말이 심심찮게 눈에 띤다.  사투리는 낱말보다는 리듬과 고저장단, 슬쩍 끼워 넣는 곁말이 생명 아닌가.
 칼럼 3 옮긴 글에 잠간 나온 곁말(allusive)을 조금 더 소개한다.  감나무 밑을 지나는데 뭐가 머리를 툭 친다.  “척 하면 홍시구, 딱 하면 땡감 아닌감?”  한마디에 금세 눈치 챈다는 얘긴데, 드라마에 늘 나와도 인용은 대부분 엉터리다.  “야그는 개떡 같이 혀두, 찰떡 같이 알아 들응께.”  노인의 슬기를 뽐낼 때는, “묵은 솔이 광솔이여.”  술을 가득히 따르며, “임은 품어야 맛이요, 잔은 채워야 맛이 재.”
 이왕이면 술은 여자가 따르라고(‘미투’ 죄송) “썩어도 준치, 늙어두 기생이여.”
 가까운 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이고, “엎어진 김에 절.”하며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  재수 없으면 “워매, 재수 옴 붙었네. 자빠져두 코가 깨진당게.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니께.”  평지풍파에는, “웬 긁어 부스럼이여.” 

 

   세계가 놀란 한류의 지속성과 장래를 걱정하면, 대답은 이구동성으로 ‘스토리텔링’이다.  곁말이야 말로 우리말 정체성 세우기에 필수요, 노인들이 뜨고 나면 건지지 못할 시한부 문화유산이다.  표현의 다양화 상상력의 확대, 그리고 스토리를 만드는 복합사고(複合思考) 훈련의 원천이다.  말모이는 선각자 주시경이 1910년경에 편찬하려던 최초의 국어사전 이름이다.  선생의 서거로 중단된 사업을 재개한 조선어학회는, 일제탄압으로 33인이 구속되고 원고는 분실되었는데(1942), 해방 후 기적적으로 찾아 ‘조선말 큰 사전’ 여섯 권을 완간한다(1957).  영화 말모이에는 극화(劇化)를 위하여 까막눈의 극장문지기(기도; 木戶) 김판수가 나와서, 아닌 말로 반일감정 부채질에는 성공하였다.  ‘조선일보 말모이’는 옛말·사투리·10대의 새말을 모아 ‘아름다운 우리말사전’을 만들려는 문화운동이다.  1991년 일본의 이와나미(岩波) 문고에서 사전 고지엔(広辭苑) 4판을 내자, 18세 여배우 리에의 누드사진집 ‘산타페’와 베스트셀러 경쟁이 붙었다.  이국적인 배경 속에 수줍게 웃는 리에는 지금 봐도 여전히 예쁜데, 결과는 220만 대 150만부, 고지엔의 압승이었다.
 우리가 정녕 “지지 않겠다!”면, 말모이가 적어도 50만부는 팔려야할 텐데, 글쎄... 

 

 

 

: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총회의장 
임철중 치과의원 원장 

전 대전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