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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가

30년째 쪽방촌을 밝히는 '인술의 빛'

'봉사가 희망이다'.. 영등포 요셉의원


요셉의원은 영등포역 부근 쪽방촌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큰길에서 10m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벌써 냄새부터가 달라진다. 한낮임에도 여기저기 할 일 없는 남자들이 모여 앉아 잡답을 나누거나 무료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병원 앞이라고 다를 것이 없어서 막상 사진을 찍으려니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하는 수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사진을 찍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앵글을 좁혀 간신히 요셉의원 현판을 넣은 출입문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했다.

현관을 밀고 들어서자 연세 지긋한 몇몇 자원봉사자들이 '무슨 일로 오셨냐'고 아는 체를 한다. 여차저차 용무를 설명하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잠시 기다리란다. 미리 약속한 한동호 사무국장이 2층으로 이어진 좁은 계단을 뛰듯이 내려온 건 그로부터 5분 후였다. 한 국장은 '말씀을 드려 놓았다'며 곧바로 원장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1987년 관악구 신림1동에서 처음 문을 연 요셉의원은 1997년 3월, 대지 100평에 건평 280평짜리 자그마한 3층 건물을 매입해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1~3층은 진료 공간으로 쓰고, 4층에 옥탑방을 만들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계단이든 뭐든 모든 게 좁게 보일 수밖에 없다.

무척 소박한 상담실 겸 접견실에서 마주한 신완식 원장은 요셉과 무척 잘 어울리는 온화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그는 설립자인 선우경식 원장의 뒤를 이은 2대 의무원장이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신 원장은 곧장 '궁금한 건 뭐든 물어보라'는 듯 호기롭게 양손을 펼쳐 보였다. 질문을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인 셈이다.



작지만, 세상 어느 병원보다 큰 병원


-우선 규모부터 좀 설명해주시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몇명이나 되나요?

"정규직원 15명에 상근 봉사자가 15명이나 됩니다. 의료인 봉사자는 100여명 가량이고, 간호사 등 봉사 스탭 수는 600~1000명 정도에요. 봉사자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건 의료기관별로 단체봉사가 많아서인데, 단체봉사는 아무래도 인원에 변동이 잦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럼 봉사 스케쥴을 어떻게 관리하죠? 파트별로 필요인원을 맞추기가 어려울텐데..

"그게 문제이긴 해요.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전체적으로 관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번씩 자원봉사자의 날을 정해 얼굴도 익히고, 함께 강연도 듣죠. 5년에 한번씩은 봉사자 전수조사도 실시하고요. 올해도 11월쯤 계획이 잡혀 있어요."

-진료과는 몇 개 과목이 있고, 일일 환자수는 어느 정도나 되나요?

"내과, 치과 등 20개과가 주 5일, 하루 6시간씩 진료해 일일 평균 100명 정도를 소화해냅니다. 환자는 이곳 쪽방촌 주민들을 중심으로, 노숙자와 행려자, 건강보험 채납자, 난민 또는 미등록 외국인근로자, 이외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해요. 진료를 받고 싶어하는 환자는 늘 넘치지요."

-이분들이 진료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내죠? 일정한 확인과정을 거치나요?

"일단 환자가 오면 1층 사회사업팀에서 상담부터 하게 돼 있어요. 이때 전화로 건강보험공단에 자격여부도 확인하죠. 그래서 진료대상자로 확인되면 진료증을 발급하고, 기초검사를 실시한 후 진료를 시작해요. 전국 시설기관에서 의뢰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특히 치과는 틀니 위주라 치료받고 싶어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 철저히 사전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운영비도 만만찮을 텐데요. 예산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고, 어떤 방식으로 충당하죠?

"하하~ 돈이야 많이들죠. 연간 예산이 15억 원 정도 돼요. 정기 후원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내 주시고, 기업들이 사회복지 차원에서 보태는 기부도 적지 않아요. 다행인 것은 전체 예산에서 고정 후원금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현재 전국에서 1만여 명이 매월 후원금을 내고 계세요. 저희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요긴하게 나눕니다."

-진료 이외 다른 구호 사업도 병행하시나요?

"네 어려운 사람들 곁에 있다보면 어느 하나만 갖고는 늘 모자랍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배는 안 고프겠어요? 또 배고픈 사람이 춥지 않을 리가 없죠. 그래서 쉴 곳도 제공하고, 무료급식사업도 병행해서 하고 있어요. 전국에서 들어오는 기부물품으로 이 분들에게 철마다 옷도 나눠드리고요. 4년전엔 필리핀에도 요셉의원을 냈는데, 그곳에서도 무료진료는 물론 어린이 무료급식에 장학금까지 지급합니다. 다 물심양면 함께 하시는 분들 도움 덕분이죠."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신다면?

"계획이라기 보다, 요셉의원 일대가 현재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요. 동네 자체가 언제 철거될 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옮겨갈 곳을 물색해야 하는데, 그게 또 만만찮습니다. 우선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곳이어야 하고, 접근성도 좋아야 하는데다 땅값도 싸야 하거든요. 그러니 우선은 병원을 이전하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 될 것 같아요. 하하"

내과 전문의인 신완식 의무원장은 지난 2009년 취임해 벌써 9년째 요셉의원을 지키고 있다. 그 공로로 2014년엔 보령의료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이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에겐 가장 중요하고 감사한 일일 뿐이다.

인터뷰를 마친 신 원장은 기자에게 3층을 가르키며 '얼른 치과에도 올라가 보라'고 손짓을 했다. 그가 일러준대로 좁은 계단을 오르자 왼쪽으로 치과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치과는 틀니 위주 완전예약제로 운영


"어서오세요. 연락 받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정식 원장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김 원장은 요셉의원이 설립되면서부터 치과파트를 맡아 30년째 봉사를 이어온 이곳의 산증인이다. 현재 요셉의원 치과는 월, 수는 저녁 7~9시 두시간씩, 화, 목, 금은 오후 2~4시와 저녁 7~9시 총 4시간씩 진료가 이어진다. 일주일에 대략 16시간 꼴이니 한달이면 64시간이나 된다. 

이 많은 시간을 소화하려면 봉사인력도 많겠다 싶겠지만, 치과의사 봉사자는 김 원장을 비롯, 25년차 이충규 원장 등 16명이 전부이다. 게다가 고정 치과위생사 봉사자는 겨우 4명이어서 늘 인력난에 시달린다. 치과기공사는 3명의 소장님들이 수고를 하고 있다.

진료시스템은 낮시간이든 저녁시간이든 매주 자기가 맡은 진료시간을 책임지는 형태여서 치과의사들의 경우 주 1회 봉사가 기본이다. 가령 금요일 오후 시간을 맡은 김정식 원장은 매주 금요일 2시부터 4시까지 환자가 있건 없건 치과를 지켜야 한다.  취재가 있은 날은 김 원장과 최봄 원장이 함께 진료를 하고 있었는데, 최 원장은 치과를 잠깐 쉬고 있던 중에 KBS '다큐 3일'에 소개된 요셉의원을 보고 감동해 지난해 연말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치과를 휘 한바퀴 둘러보니 대체로 깨끗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고 장비도 좋아 보였다. 김 원장은 '이곳 유니트체어 4대는 한국타이어에서 후원한 것으로, 일반 치과에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랑을 했다.

진료는 단연 보철 위주이다. 저작기능 회복이야말로 이곳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치료이기도 해서 예산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틀니 위주의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단다. 매월 평균 45명 정도가 혜택을 보고 있어 시중의 절반 가격으로 치는 기공료로만 한달에 700~800만원이 지출된다. 치료비는 후원금으로 대부분을 충당하지만 여유가 되는 환자들에겐 작은 금액이라도 부담을 시킨다. 그래야 틀니를 더 소중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란다.

봉사고참 김정식 원장은 '스탭 봉사자들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애로'라면서 진료 부문에선 '앞으로 틀니뿐만 아니라 임플란트 치료까지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이곳에서도 그만큼 치과수요가 고급화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취재를 마치고 금요일 오후 치과 진료팀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섰다. 오른쪽부터 최봄 원장, 김정식 원장, 석성호 소장 그리고 익명의 천사. 모두 행복한 표정들이다.